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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풀꽃.3'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3. 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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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 '풀꽃.3'가 있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 포스팅을 한다. 풀꽃시리즈 시는 아주 인기가 있는 나태주 시인의 시이기도 합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묵직한 맛이 있어 풀꽃3 다같이 함께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풀꽃.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나는 MBTI가 INFP이다. 시간이 지나 조금 변했나 싶지만, 여전히 INFP가 강하다. 뭐 나는 내 MBTI가 좋다. 하지만, E와 다른 I는 좋은 말로 섬세하고, 나쁜 말로 소심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sensitive하고 포장하고 싶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성격이 맘에 들지 않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내 성격인데 어쩌겠는가! 외모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연예인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부러워한다고 해도 정말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존재가 나타나 어떤 것을 매개로 하여 바꾸자고 하면 바꾸겠는가? 바꾸면 내가 아닌데. 못나고 때론 볼품없고 마땅한 점이 때론 너무 없는 나이지만,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왜 나는 나니깐.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날 수도 없지만, 인생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어제 사전투표를 하면서 신분증을 내고 지문을 인식했다. 지문은 정말 신의 지문이다. 인간이 가진 모든 지문은 다 다르다. 똑같은 지문이 없다. 똑같은 성격도, 똑같은 외모도 없다. 그만큼 독특하다. 그만큼 Unique하다. 이런 걸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늘 쳐져 있다. 무기력해 한다. 기죽어 산다. 그게 인간이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의 &#39;풀꽃.3&#39;시입니다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소설가 이승우가 그의 소설 <모르는 사람들>의 서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걸 기억한다.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했다고 한다. 작가 이승우는 신학대학원을 다니다가 작가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때 자기에게 와닿은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내겐 뭐가 없고, 뭐가 부족하고 뭐가 결핍되어 구구절절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을 때 와 닿은 깨달음...."네가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네가 다 가지고 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대답으로 기억한다. 그 대답이 읽는 독자인 나에게도 약간 심쿵했기도 하다. 

 

 

 

 

시인은 '풀꽃.3'에서 그렇게 말한다. 시인의 연륜이나 내공이 만만치 않다. 나이가 들어서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자신감 없어하고 힘들어하고 참지 못하고 부끄러워했던 지난 날이 과연 어떻게 느껴질까?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좀 더 힘을 내고 좀 더 화이팅하고 좀 더 용기있게 살 지 못한 것에 땅을 치며 후회할 지도 모를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다.

“Twenty years from now you will be more disappointed by the things you didn’t do than by the ones you did do. So, throw off the bowlines. Sail away from the safe harbor. Catch the trade winds in your sails. Explore. Dream. Discover.”

“20 년 후에는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에 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인(돛을 뱃머리 쪽에 매는 밧줄)을 버리십시오. 안전한 항구에서 멀리 항해하십시오.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잡으세요.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

 

 

 

그래서, 우리는 기죽지 말아야 한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이래나 저래나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 너무 기죽어 사는 것 같다. 순간 순간 하루하루 치달아오르는 감정선과 지갑의 형편과 삶의 환경, 주위의 관계들로 인해 우리는 늘 기죽어 살아가는 것 같다. 그 기는 어쩌면 우리가 평생 죽고 지내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어깨 쫙 펴고 자신감있게 살지 못하는 걸까? 내 성향이나 내 성격 때문에 그런걸까? 아니면 나는 기라는 걸 한번 더 제대로 못 펴고 살아가야만 하는걸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는 기 펴고 살고 누구는 기 죽어 살라고 우리 인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 자신의 결정과 선택이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처럼 ,

 

 

Explore. Dream. Discover...답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나태주 시인은 어릴 때 친구에게 받은 상처받는 말이 가슴이 맴돌았을 때 있었고 왕따도 당했다고 한다. 친구가 없었다고, 혼자 지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20대에는 실연 때문에 목숨을 끊고자 하는 시도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왕따의 경험이 혼자 있는 것을 통해 시를 쓰는 습관이 들었다고 한다. 기죽어 지낸 시인의 옛날의 모습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 없고 볼품없고 숨기고 싶은 과거이다. 정말 그 고통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의 심경을 제3자는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은 그 기죽어 지낸 세월 가운데 자기 안에서 '샘'을 발견한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이승우 작가가 말했듯이 자기에게 부족하고 처량하고 외롭고 가난하고 결핍된 것에 초점을 맞추다가 문득 아니 마침내 자기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물론 이건 나의 추측이며 뇌피셜이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은 그때의 외로움, 고독, 아픔, 왕따의 시절이 자신의 시인의 자질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인생의 고통과 답답함과 상처는 때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 같다. 기죽어 지내는 시절이 있어봐야 기를 펼 수 있는 시절의 소중함을 알 지 않을까 싶다. 영화 <베테랑>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조태오(유아인 분) 캐릭터는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대는 스타일이다. 자기 밖에 모른다. 스파링 파트너 이중격투 수행원(엄태구 분-내가 좋아하는 엄태구!!!)에게 쳐맞으니깐 나중에는 꼰대처럼 오히려 엄태구를 패버리고 아작 내버리는! 남의 밑에 있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찌 아래 사람의 고충과 아픔을 알 수 있을까?

 

 

 

 

이야기가 곁길로 샜다. 시에서 이야기하는 말은 조태오처럼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극중의 조태오같은 캐릭터는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종류이다. 권력과 돈으로 갑질하는, 갑질의 대명사!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어릴 적 나는 대가족 형태에서 살았다. 대구로 전학가기 전까지 말이다. 할아버지는 굉장히 완고하셨다. 6.25전쟁 이후 필사적으로 악착같이 모으고 모으셔서 우리 가족이 그 시골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다. 너무 억척같이 살아오신 탓에 여유가 없으신 할아버지는 내게 친절하고 따뜻한 말 하나 건넨 적이 없었다. 그냥 눈치 보고...부모님은 할아버지의 그런 성격적인 거침으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해주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그런 성격적인 터프함을 온전히 받아내면서 어린시절을 보내셨고 한 평생 그렇게 생활을 하셨다.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그런 내성의 균열은 아버지의 성격에서 한번씩 드러났다. 하지만, 내가 기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온전한 환대와 사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가정에서 온전한 보호막이 작동한다고 해도 환경과 상황이 나를 기죽게 만들게 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 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야구를 했고, 혼자서는 매일 그림을 그렸다. 기죽어 지내기 보다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깨에 힘은 조금 빠져 지낸 듯 하다. 자신감이 넘쳤으면 좋겠지만, 조태오처럼 남들 위에서 갑질하면서 권력과 돈을 휘두르는 그런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컴플렉스의 일종인 듯 싶다. 인간은 존엄한 것이다. 존엄한 인간은 있는 그대로 존엄하게 인간으로 대해주는 매너가 진정한 인성의 기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기죽게 만드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스스로도 기죽어 지내는 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어디서도 도출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우리 아들이 요즘 자주 부르고 시청하는 노래 <회전목마>의 가사 중 일부이다. 

 


....Speed up 어제로 돌아가는 시곌 보다가
청춘까지 뺏은 현재
탓할 곳은 어디 없네
Twenty two 세에게 너무 큰 벽
그게 말로 하고 싶어도 어려웠어
가끔은 어렸을 때로 돌아가
불가능하단 건 나도 잘 알아
그 순간만 고칠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더 나았을까
달려가는 미터기 돈은 올라가
기사님과 어색하게 눈이 맞아
창문을 열어보지만 기분은 좋아지지 않아
그래서 손을 밖으로 쭉 뻗어 쭉 뻗어
흔들리는 택시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해
방 하나 있는 내 집 안의
손에 있던 짐들은
내가 힘들 때마다
이 노래가 찾아와...

 

 

Twenty two 세...22세? 난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철벽 침을 당하고 혼자서 아파트에서 헨델의 <메시야>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푸하하하! 생각만 해도 웃긴다. 가사에 22살이 나오길래 내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지금껏 달려왔던 삶의 어느 순간만 바꾼다면, 고친다면 변할 수 있을까?  좀 더 기죽지 않고 살았다면, 좀 더 어깨 펴고 살았더라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거기에 내가 있고, 내가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을 크게 없을 것이다. 인간은 후회를 거듭하는 시지프스의 신화 같은 쳇바퀴를 돌리는 구도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밖에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주어진 현재에 기죽어 지내지 말고 꽃을 피워보자. 기죽어 지내는 시간은 시행착오의 순간으로 돌리고 꽃을 피워보는 게 좋겠다. 기죽어 지내고 후회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 노래가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기죽고 힘없이 무기력하게 론리lonely하게 지냈기 때문에 희망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태주 시인을 생각해보자. 그가 보내었던 칠흙같이 어두운 시간이 시를 탄생하게 했다는 것을! 초등학교 교사와 교장으로 43년동안 교편생활을 했던 나태주 시인이다. 깊은 기죽음을 경험한 시인이 우리에게 시로 노래한다. 꽃을 피워보자고.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넘사벽의 순간에, 자신이 기죽는 순간에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그 무언가에 자신의 마음을 토닥토닥, 자신의 존재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중에는 꽃을 피울 것이다. '참 좋아' 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무언가가 노래가 될 수도 있고, 시가 될 수도 있겠다.  



자, 우리 모두 화이팅!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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