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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길 위의 인간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5. 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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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간, 호모 비아토르~

 

 

 

1

오래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다. 사연은 이런 내용이다.

 

직장에서 한 남편이 사내 경품추첨에서 당첨이 되었다. 4인 가족 외식뷔페식사권에 당첨이 되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기뻐하면서 외식 상품권을 누구에게 선물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중에, 아내는 ‘애기도 봐주시는데, 엄마한테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흔쾌히 장모님 드리면 되겠다고 동의했다고 한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남편은 사내 방송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제 식사상품권 당첨되신 분 중에 끝번호가 XXX인 번호는 바코드가 잘못되어서 기존의 상품권을 가지고 오셔서 교환해 가서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이 방송을 들은 남편은 혹시나 자신이 가져간 상품권에 오류가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어제 당첨된 상품권 말야. 그 바코드 끝자리가 XXX인지 확인해 줄 수 있나?”

“아, 그거 벌써 엄마 드렸는데. 왜 무슨 문제있어?”

 

 

 

2

남편은 알았다면서, 장모님에게 황급히 전화를 건다.

 

“장모님, 어제 아내에게서 외식상품권 받으셨지요? 그거 상품권에 보면 바코드를 확인할게 있는데요. XXX인지...”

“아, 김서방이구만, 너무 고맙네 고마워. 내가 살다가 그런 상품권을 처음 받아봐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너무 고마우이. 근데 내가 그거 나 혼자 쓰기엔 너무 아까워서 내가 동네 서예원에 가서 서예를 배우는데, 서예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내가 그 선생님께 드렸지. 근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아닙니다. 장모님, 상품권 바코드넘버가 어떻게 되는가 해서요. 실례하지만, 그 서예 선생님 전화번호를 좀 알 수 있겠습니까?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아, 그래? 잠깐만...010-XXX-XXXX....”

 

 

 

3

남편은 황급히 전화번호를 받아적은 뒤에 다시 장모님에게 서예를 가르치시는 분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네, 저는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서예 제자중에 ooo분의 사위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희 장모님께서 상품권 하나 선물하시지 않았나요?”

“아 그 상품권 너무 감사합니다.”

“근데 거기 상품권에 보면 바코드 넘버가 있는데, 확인을 해볼 게 있어서요. 지금 확인하실 수 있습니까?”

“상품권, 그거 내가 너무 감사하게 받았는데, 어쩐다. 나도 그 상품권을 막상 쓰려고 하니 맘이 그랬는데, 문득 40년 전에 은사 선생님이 생각이 나서 그분께 선물을 드리면 좋겠다 싶어 그분께 선물해 드렸네...”

 

남편은 회사에서 폰을 붙들고 전화를 돌리다가 순간 멍해졌다.

 

“아, 그러면 죄송한데, 그 40년 전의 은사 선생님의 전화번호라도 알 수 있겠습니다. 확인만 하면 되는데요.”

 

 

 

4

남편은 또 다시 장모님의 서예 선생님의 은사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네 저는 어제 상품권 선물하신 40년 전의 제자분이 계시지죠? 그 제자분이 가르치는 동네에서 서예를 배우는 분 중에 저희 장모님이 계신데, 그 장모님의 사위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어제 받으신 상품권의 바코드 넘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그 상품권 지금 확인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 그 상품권, 나한테 지금 없어. 그 상품권 우리 조카딸에게 줬지. 나는 나이가 들어서 어디 밖에 나가는 게 너무 힘들어. 외출하는 게 버거운 사람에겐 외식상품권은 아무 필요가 없지. 그래서 우리 조카딸에게 줘버렸지. 흐흐흐”

“아....네...그러면 그 조카따님 분 연락처라도 좀 알 수 있을까요? 급히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5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근데 누구세요?”

“아. 네 저는 상품권...동네 서예선생님...장모님...사위....40년 전 은사 선생님...상품권 어쩌구 저쩌구...그래서, 그 은사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조카따님에게 선물을 드렸다고 해서 연락을 드립니다. 중요하게 확인할 게 있는데, 상품권 받으셨으면 지금 가지고 계신가요? 확인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상품권요? 그런거 받은거 없는데. 아...어제 고모가 나한테 뭔가 주던데, 거기 있었나? 고모가 봉투에 넣어서 주던지 하지. 영수증이랑 고지서랑 같이 뭔가를 주던데 거기에 들어있었나 보네요.”

“아, 네 다행입니다. 혹시나 그 상품권 바코드 넘버 지금 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하게 확인을 해야 할 게 있는데 말입니다.”

“아, 그거요. 영수증이랑 고지서랑 다같이 찢어서 버렸어요. 고모가 상품권이라고 하고 줬으면 내가 챙겼지. 늘 그런 식이라니깐. 흥!”

“네?....”

 

 

 

6

이 이야기의 사연이 소개되고 난 후, 사회하는 두 사람은 한동안 웃었다. 그러더니 정선희이었던가? 그 DJ가 이런 멘트를 날렸다.

 

“마치 우리 인생 같네요...”

 

돌고 도는 인생, 상품권처럼 돌고 도는 인생 같은...상품권 받을 땐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지만, 그게 결국 돌고 돌아 결국은 사용도 못하고 찢어서 버려지는 헛헛함은 무엇!?!

 

 

 

 

7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이 허무함을 노인의 고깃배에 겨우 붙어 있는 청새치의 앙상한 뼈만 남은 몰골로 표현해준다. 노인은 몇 일 동안의 거대한 청새치와의 사투를 벌이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일요일 저녁에 시작된 팔씨름이 다음날 월요일 아침까지 승부가 나지 않다가 다들 고깃잡으러 갈, 일하러 갈 시간이 되자 자신이 팔씨름대회에서 결국 승리하게 되었다는 그 호쾌한 추억 말이다. 노인은 그렇게 자신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청새치와의 전투(?)를 견디고 견딘다. 아마도 내가 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지금은 라디오 시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선희는 남편의 죽음과 이별, 그리고 많은 인생의 슬픔을 겪은 연예인이다. 그가 뱉은 “마치 우리 인생 같네요...”라는 멘트가 참 가슴에 내려 앉는다.

 

    

 

 

8

이런 헛헛함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에 읽은 하정우의 에세이에서 잠시 읽게 된다.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에 보면, 하정우가 국토대장정을 떠나게 된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단순 걷기 프로젝트였다.

 

‘사람들은 인생살이에서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살아간다. 나중에는 형편이 나아지겠지, 세월이 지나면서 다 괜찮아지겠지,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면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되어 있겠지.......어릴 때는 이런 희망과 꿈이 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지만, 나이들수록 그 폭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고 뉘우치며 포기하는 단계까지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며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차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無)’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 종일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 뿐일 테다.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농담처럼 시작된 국토대장정은 걷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가 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몸의 땀냄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꿉꿉한 체취, 왁자한 소리들, 먼지와 피로, 상처와 통증......오히려 조금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아픈 것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25-26p)

 

    

 

 

9

결국은 헛헛함이 남는 인생이겠지만, 그래도 더 즐겁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기독교 유신론자인 나의 생각들은 다른 이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하정우가 뱉은 이 대목이 가슴에 남는다.

 

‘길 위에서 만난 별 것 아닌 (오늘의) 한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는...

 

하정우의 에세이에서 가장 남는 대목은 ‘힘들다, 걸어야겠다’라는 말이다. 하정우는 모든 것을 걷는 것으로 구현한다. 5천보, 만보....영화 『터널』을 찍기 전에는 터널 속에서의 초췌한 몰골을 연출하기 위해 살을 빼야 해서 제주도로 4-5일 정도 여행갔는데, 계속 걷기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6kg를 뺐다고 한다. 걷기의 위대함을 체험하는 하정우, 멋지다!

 

   

 

 

10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길 위의 인간, 길 위를 여행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리뷰를 남겼기에 그 이야기를 생략하고자 한다.

 

길 위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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