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뷰봇viewerbot이 필요해?"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5. 13. 14:28

본문

  

1

박상영의 단편소설집이다. 단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알고보니 이전에 작품집에서 보았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스킵! 어디까지가 연결되고 어디까지가 끊기는지 유심히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마치 『제리』의 색다른 BL버전이라고 할까?  

 

    

 

2

   소라는 갑부집의 망나니같은 딸로 연기하지만, 실은 3년째 엄마 병수발을 들고 있는 여자이다. 그런 비밀을 문경 언니에게만 고백하고 살아왔는데, 문경 언니가 뒷통수를 친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연하 남자친구(섹스파트너?) 태혁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는 자리, 소라는 식욕억제제를 먹은 탓에 화장실에 간 사이에 문경 언니의 뒷담화를 우연히 듣게 된다.

 

‘“쟤 원래 저래. 남자에 죽고 못 살잖아.”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그렇긴 하지, 라고 대답했다. 더럽게도 방음이 안 되는 화장실이로군. 남자에 죽고 못 사는 여자가 누군지 웬지 알 것만 같았다. 대차게 문을 열고 나가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눈물이라도 찍어 삼겨야 하나, 어쩔까 고민하다가 속으로 삼십 초를 세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식당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라야. 너 그거 피해 의식이야.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김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아니라 오빠가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거겠지.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언제나 큰 일을 내고서야 끝났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문경 부부와 태혁의 뒷모습이 보였다. 멀뚱히 서 있는 태혁의 뒤에서 슬그머니 팔짱을 꼈다. 넓은 태혁의 어깨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게 뭐야. 추울 때 남자만한 건 없지. ‘남자에 죽고 못 사는 여자, 박소라’라니. 꽤 그럴 듯한 로그라인인데? 다음 영화에 써먹어야겠어. 자꾸 웃음이 나왔다. ‘(111-112p)

 

 

 

 

3

모더니즘이 해체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넘어오면서 모든 것이 본질이 해체되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관계>, 바로 <관계의 해체>가 아닐까 싶다. 소라와 같이 사는 김, 두 사람은 같이 동거는 하지만, 섹스는 따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걸 보이지 않게 인정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영화를 보다가 속이 좋지 않아 태혁이 먼저 호텔로 간 사이, 소라는 술에 만취되어 택시를 타고 가다가 무임승차, 폭행, 기사의 관자놀이에 남은 손톱만한 구두굽 자국의 폭행의 근거를 남긴다. 파출소에 태혁이 들어왔다.

 

 

‘“박소라씨 보호자 되십니까?”

“아, 그게 저...제가 보호자는 아닌데....”

“두 분 어떤 관계이십니까”

“제 사촌동생이에요.”

 

 

....몸을 기댄 채 걷는 우리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사촌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모와 조카 같아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이런 내 모습을 보면 김은 또 자의식 과잉이라고 욕을 할테지. 사람들은 네가 누구랑 있든 아무 신경도 안 써.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김의 문자였다. 역시 양반은 못 됐다.

 

-나 플랜트 관련 미팅이 있어서 울진에 왔어. 저녁 먹고 커피 한잔 하는 중, 바쁘지?

-응. 오빠, 촬영 일정이 정신없네.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바빠서 그런 건데 뭐. 힘내 소라야, 보고 싶네.

-오빠도 힘내. 나도 보고 싶어

 

문자만 보면 우리는 서로를 몹시고 사랑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커플처럼 보인다. 서로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피 튀기게 싸우도 신고를 당하고, 서로를 제외한 다른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하고, 함께 기르던 반려견을 잃어버린 존재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많은 추잡한 일들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하긴 상대방에게 진실을 숨긴 채 다른 것들을 욕망하며 사는 우리의 관계야말로 지극히 일반적이고도 정상적인 커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122-123p).’

 

 

 

 

4

모든 것의 해체 이후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박소라는 술만 마시면 맥도날드 햄버거가 그렇게 땡기는 인물이었다. 맥도날드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고, 술은 만취된 상태에서 모래사장을 걷다가 하이힐을 벗어버린다. 스타킹은 구멍이 났고, 자신의 핸드폰 액정은 산산조각났고, 태혁의 구형 핸드폰은 배터리가 죽어 있었다.

 

‘성치 못하고 쓸데 없는 것만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꼭 내 인생 같네.’(134p)

 

 

 

아...이 헛헛함이여! 박소라, 왜 이렇게 불쌍해...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어쩐지 핸드폰이 켜져 있기만 하다면 내 처지에 대해 투명하고 담백하게 인스타 업로드를 할 생각’을 한다. 그래도 생의 심각한 절망 가운데서도 누군가 자신의 허세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관심주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나 #박소라

전직 #피팅모델이자 #사회운동가, 그리고 #영화감독.

이제는 #서른둘의 #파혼녀

네 시간 전에 있었던 곳은 #부산국제영화제

몸이 좋고 커야 할 것이 적당히 큰 군인의 #물주이자 #자살연습생. 말기 암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암수발녀. 조만간 #상주가 될 예정. 한때는 충실한 #약혼녀이자 #패리스 힐튼의 #반려인이었으나 지금은.

#'

 

 

 

 

5

  유튜브가, 동영상(디지털 플랫폼)이 현대인의 새로운 인기몰이를 하면서 유튜버들의 인기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초딩애들의 꿈을 물으면, ‘1인 크리에이터’란 직업에 대해 쉽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직업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봐 주어야 되는 직업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구독’과 ‘좋아요’가 돈이 되는 시대가 된 지는 오래다. 요근래 1인 크리에이터의 개인방송과 방송사 간의 갈등으로 인한 사건을 알게 되었다. 핵심은 ‘뷰봇을 사용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이다. 뷰봇이란 말을 첨 들어봤다. 글을 쓰다가 한번 찾아 봤다.

 

viewer bot "viewer bot"의 음차, 줄임말. 인터넷 봇(인간의 행동을 흉내내도록 만들어진 응용 소프트웨어)의 일종으로, 개인 방송등 에서, 시청자수를 늘리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터넷 봇을 의미한다(출처: 네이버사전).

 

구독과 좋아요, 시청시간 등등이 돈이 되니, 이제 뷰봇이 등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봐주고, 시청해주고, 감상해주고, 리액션해주는 상품도, 컨텐츠도, 크리에이터도 살아남는다.

 

 

 

 

6

“소라야. 너 그거 피해 의식이야.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소라의 동거남, 김의 대답인데,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라는 문장이 남는다. 오프라인의 관계는 점점 잠식되어지고 온라인의 관계가 더 활성화되고 있다. 주인공 박소라는 인스타마니아이다. 삶의 혼돈과 혼란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녀는 관심을 갈구하고, 관심의 시선을 받고 싶어한다. 동거남 김의 관심을 받지 못한 그녀가 자꾸 떠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그런데도, 그녀는 사람들의 헛헛한 관심을 받고자 핸드폰을 떠올리는 포노 사피엔스(‘포노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긴 제 리뷰를 참고하시길)이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SNS는 필수이다. SNS에서 그녀는 해체된 관계를 보상하려고 하고 있다.

   

 

박소라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인 우리에게 어쩌면 영혼의 뷰봇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뷰봇이 필요해?!?!?

 

때로는 ‘신경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크 맨슨의『신경끄기의 기술』이란 제목이 떠오른다! 마크 맨슨도 몇 년동안 따라다녔던 스토커가 있었다고....

 

 

 

"남들로 하여금 말하게끔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너는 너의 길을 걸으라"

-단테의 <신곡>중에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