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다니엘 페낙/ 소설처럼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6. 5. 00:00

본문

 

 

 

Story is Enough!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나 동화에 흠뻑 매료된 기억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이야기를 흠모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은 한 교육자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독서의 태도나 독서법, 독서의 방식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소설처럼

“소설은 그냥 소설로, ‘소설처럼’ 읽자!”교사 출신 프랑스 국민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애정과 위트로 가득 찬 독서 교육론정말 골 때리는 책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영겁의 돌덩이,

www.yes24.com

 

 

다니엘 페나크는 20년 남짓 교사를 한 인물이다. 12살까지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다. 학창 시설 열등생의 심각함도 보였다. 그런 성장배경이 어떻게 교사를 20년 동안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는가! 중국영화 중에 이런 영화가 있다. 제목이 <빅 브라더>.



특수부태 출신의 이력이 있는 교사가 5명의 핵심적인 문제아가 있는 고3반을 맡게 되는데, 그 5명이 또 사고를 쳐 완전히 퇴학 위기에 몰리게 되는데, 그 선생님 한 사람의 영향력과 수고를 통해 아이들이 변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화려한 선생님의 이력만큼 액션씬도 보인다. 파란만장한 삶의 과거가 있는 교사는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가 삶에 가득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이해하는 대목에서도 영민함이 돋보이기 마련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아마 그런 유형의 교육가라고 볼 수 있겠다.

 

 

 

견자단이 주연한 영화 '빅 브라더'의 한 장면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오늘날의 다니엘 페나크는 여행과 문학(독서)로 마블링 된 방랑 생활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삶이 ‘소설처럼’느껴졌던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느껴졌듯이, 모든 작품, 모든 문학, 모든 소설이 진작에 ‘소설을 소설답게,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스토리를 스토리답게’읽어줘야 하는 다이나믹한 역동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늘 꿈틀거리고 생각하고 시종일관 좌충우돌이다.



몇일 전에 딸 아이가 ‘영화배우’가 뜬금없이 되고 싶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말을 하기가 싫었다. 후에 아이와 이야기를 해보니 아빠의 말투에서 ‘무시당하는’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젠장! 아이에게 많은 사전지식적 정보를 내놓으면서 아이를 설득하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내가 반감과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니 아이의 마음이 다치게 된 셈이다. 아이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동감을 해주고 후에 설득이 되어져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교육인 듯 하다.

 

 

 

‘우리는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우리가 받은 지식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될수록 빨리! 그렇지 않으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부터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59p)

 

 

 

‘“좋아! 그렇다면 이제 텔레비전 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

그렇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텔레비전이 보상이라는 지위로 격상함에 따라, 당연히 독서가 억지로 해야 할 고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다름 아닌 바로 우리에게서 나온....우리 자신의 발상이었다는 사실을....’(63p)

 

 

우리도 그렇게 대단한 교육을 받은 자도, 대단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자도 아니면서 부모라는 위치가 그런 것을 강제하게끔 하는 것 같다. 쉽지 않다. 디지털 이주민인 부모 세대가 디지털 원주민들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독자입니다.”(67p)

 

 

‘아이는 누구나 훌륭한 독자가 될 자질을 타고난다.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이 몇 가지 지침만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까지고 훌륭한 독자로 남을 것이다. 우선은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아이에게 열정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무조건 암기와 복습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북돋워 줘야 할 것이다. 모퉁이에 서서 아이가 도착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볼 일이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 써야 한다. 한때는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아이 스스로가 그 즐거움을 의무로 삼고자 할 때까지는 말이다. ’(67p)

 

 

아이들의 자발성과 동기부여가 될 만한 독서교육이 쉽지 않다. 아이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내놓기가 주저된다. 나도 쉽고 싶고, 나도 지치고 어렵고 힘들고, 아이들이 생각지 못하는 인생의 사안들이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기다려주는 여백의 미’가 필요하다.

 

 

 

‘평생 저녁마다 장부의 수지 타산을 맞추는 일만 한 아버지를 뒀던 프란츠 카프카는 어린 시절, 이렇게 썼다.

 

어른들은 저녁나절, 한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 있는 아이를 결코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만 책을 읽고 자야만 하는 이유를 강변하는 어른들만의 논리를 아이는 결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75p)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이 말은 ‘엄마 아빠와 나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찰 만큼 서로 사랑해야 해요’라는 뜻이다. 다시 읽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늘 새롭게 보여주는 끝없는 사랑의 표시다.(71p)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 교육자가 된 부모는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경직되고 부드럽지 못하다.



저자 다니엘 페나크는 강의시간에 소설을 10분동안 ‘큰 소리로 읽어주기’만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소설의 매력, 이야기의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는 임상실험으로 인해 검증된 교육학적 보고를 하고 있다.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청중을 향해 페로스 교수(이야기의 주인공)가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이든 큰 소리로 읽어주셨다는 사실이에요! 교수님은 이해하고 싶은 우리의 열망에 단숨에 자신감을 심어주셨어요.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신 덕분에 우리는 책의 높이에 닿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지요.‘(121p)

 

 

‘단지 아이들은 책이 무엇이며,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151p)

 

 

“그게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이야. 책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마음은 입에서 입으러 전해지는 법이거든. 당신은 바로 그 책에 대한 사랑을 전도하는 대사제인 셈이야.”(96p)

 

 

 

‘프랑스에서는 <읽다>를 속된 말로 꼼짝없이 매이다라고 표현한다. 두꺼운 책은 흔히들 보도블록에 빗대기도 한다. 이러한 구속에서 벗어나면, 보도블록도 구름이 될 것이다.’(163p)

 

 

 

아이들에게 책읽기, 독서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다니엘 페나크는 무언가를 바라지 말기를 권한다. 부모의 욕심, 부모의 꼰대근성, 부모의 아집, 부모의 편견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독서의 독, 교육의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그 어떤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한다...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164p)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급함과 바쁨이 현대인의 일상이요, 화두가 된 지금, 우리는 기다리지 못한다. 참지 못한다. 분노와 화와 짜증과 책망과 꾸중이 아이들에게 나아가고 심지어 체벌까지로 더해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기다림...쉽지 않지만...기다려야 한다. 부모인 우리도 우리를 기다려준 우리의 부모님과 수많은 교육자였던 소울 메이트와 지인들이 있지 않았던가!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독서를 하면서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다’(178p)

 

 

독서는 하나의 작품, 이야기는 하나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읽고 듣고 느끼고 깨닫고 사유하고 생각하는 것이지,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종의 체감이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다시 말해서, 쓰기의 자유는 결코 읽기의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195p)

 

‘아무도 우리에게 책과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 보고서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225p)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게, 아이들이 이야기의 매력이 흠뻑 빠져들 수 있게 무엇보다 부모는 이야기를 제시해주기만 하면 된다. 이것도 쉽지 않다. 다니엘 페나크는 이 책에서 우리의 인생이 이야기인 것처럼, 우리의 삶이 소설인 것처럼 그 자체로, 작품 그 자체로 대해줄 수 있는 자리로 부모들을 초대하고 있다. 우리도 금방 독서가로 자리매김할 수 없지 않았던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늪에 빠져들지 않았던가!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력과 매력이 존재한다. 이야기는 충분하다. 소설은 충분한 힘과 에너지와 변화의 파워를 가지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Story is Enough!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