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ck stops Here!
이 말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결론적으로 2차 세계대전을 종결짓게 만들었던, 일본을 패전국으로 만들게 했던 강력한 한 방, 바로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떨어뜨린 핵폭탄 작전을 실행하겠다고 결심하면서 내뱉은 유명한 말이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나에게서 끝난다)
“벅이 여기서 멈추다. (The buck stops here. ;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
오래 전에 읽었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란 책에서 이 내용을 보았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를 클릭하면 책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유명한 문장은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실패와 실수에 대해 다른 사람을 향해 원인을 돌리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소위 말하자면, ‘속죄양 콤플렉스’에 빠지는 셈이다. 인생의 실수, 실패, 시험의 낙방, 텅 빈 은행 잔고, 연애의 실패, 이별, 낙태, 이혼, 상처, 사고, 손절하지 못한 주식, 미친 듯이 떡락하는 코인을 바라보며 흘리는 망자(?)의 눈물(내 다시는 도지 코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자녀들의 비행, 승진에서의 누락, 도태된 현실, 기우는 가문 등등....수많은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탓’을 하고 싶어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문제의 원인과 이유가 다른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오늘 새벽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선수, EPL의 토트넘 소속 손흥민 선수가 결승골(PK)을 넣으면서 사우스햄튼에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손흥민의 이번 골은 개인 커리어 최다골이기도 해서 의미심장하다. 보통 페널티킥PK는 해리 캐인이나 가레스 베일이 자주 찬 것으로 기억하는데, 해리 케인은 부상이어서 가레스 베일이 차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날은 손흥민이 PK를 차게 되었다. 손흥민이 PK를 차는 경우가 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손흥민이 오늘 경기에서 골을 넣었지만 루카스 모우라가 공보다 앞선 위치에서 골키퍼의 시야를 가렸다는 이유로 골이 오프 사이드 선언이 되면서 노골이 되었기 때문에 손흥민이 PK를 차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겠다.
특별히 오늘 경기는 의미있는 것이, 축구계에서 유명한 명장 무리뉴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퇴출을 당한 이후에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치른 첫 경기이기에 더 그러하다. 임시적인, 일시적인 감독이겠지만, 손흥민보다 한 살 많은 동료출신의 감독대행, 어쩌면 EPL사상 가장 젊은 감독의 나이가 아닐까 싶다. 토트넘 유소년 출신의 라이언 메이슨 감독이 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시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갑자기 왜 축구 이야길 하느냐 하면, 토트넘 핫스퍼의 전 감독이었던 무리뉴 감독이 이번 시즌 초반에는 굉장히 승승장구했고 리그 우승 후보까지도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계속된 강행군의 경기 일정과 수비축구의 지루한(?) 전술로 인해 흥미도 없고, 승리도 없는, 리그 4강조차도 불안한 형국을 만들어냈다.
무리뉴 감독의 때론 재치있는 유머는 참 흥미롭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이 이끈 경기에서 선제 득점을 하고 앞서가다가 역전패를 당하거나, 무승부가 된 경기가 너무나 많았다. 어의 없는 경기결과가 너무나 많았고 결국 그것이 아직 감독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한 것이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결과에서 패배를 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자주 선수들을 비난했고 그들을 ‘탓’했다. 감독은 팀의 두목이자 매니저로서 그렇게 하면 안 되었다. 맘에 들지 않을 때는 늘 손흥민을 이뻐하다가도 지난번 경기에선 왜 슛을 때리지 않고 케인에게 패스를 하느냐? 는 어의없는 망발(?)을 하기도 했다. 보신 분은 알겠지만,그때의 상황은 개인적으로 볼 때, 패스가 옳았다. 손흥민에겐 수비수가 붙어 있었고 슛 각이 없었다.
아무튼 무리뉴 감독에게도 필요한 것은 해리 트루먼의 이 문장이 아닐까 싶다.
“The Buck stops Here!”
무리뉴 감독이 스스로 팀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론 감독이 팀의 불우한 성적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방출당한 것이니 이 문장이 간접적으로 무리뉴 감독에겐 적용된 셈이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탓’을 많이 한다.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며 뒷담화를 늘어놓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실수와 시행착오와 실패와 고통과 저주의 책임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The Buck stops Here!”
이 문장을 보니 갑자기 20대 시절에 외우고 읊고 다녔던 서정윤의 시가 생각난다.
서정윤의 자기 인생, 삶에 대한 처절한 책임감을 토로한 대목이 굉장히 선명하게 느껴진다.
홀로서기 5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 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불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다른 뜻은 무엇일까.
그런데,
서정윤의 <홀로서기 5>, 이 시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홀로서기’ 시인 서정윤의 엇나간 제자 사랑> 기사보기
아...서정윤에 대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2013년에 있었다. 교사로 있던 학교의 여중생을 성추행했다니...시를 그렇게 화려하게 썼던 시인이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것이 화려한 문장과 문단과 단어들 사이에 숨어 있을 수 없었는가 보다.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무리뉴 감독도, 서정윤 시인도 내심 고백해야 할 문장이다.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삶에 대한 책임, 인생에 대한 진정성이 책임감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따라 해리 트루먼이 괜히 고맙게 느껴진다. 핵폭탄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지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세계의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출사표를 내던진 것이다.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요약하면,
‘정죄하지 않게 하소서 내 눈의 들보를 보게 하소서’
(마태복음 7:1-5)
이다.
“The Buck stops Here!”
제 과거를 돌아보니, 서정윤의 <홀로서기 5>를 가지고 글을 쓴 게 더 있어 링크를 걸어놓아 봅니다(근데, 서정윤 사건은 좀 충격적입니다...아! 인간은 다 죄인이긴 하지만...).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 paper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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