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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의 '그믐밤'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3. 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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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시인, 황동규의 '그믐밤'이란 시를 오늘은 같이 음미해보고자 한다. 그믐밤이란 시간과 배경을 왜 설정해서 시인은 이렇게 시를 기록하는 지,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보면서 시인의 상실감과 슬픔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황동규 '그믐밤' 시 내용입니다
황동규의 연옥의 봄에서 게재된 '그믐밤'이란 시이다

 

 

시: 그믐밤


여행 도중 받은 아끼던 제자의 부음,
벌써 가는 나인가 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별이나 보자꾸나, 민박집 나와 언덕을 오를 때
휴대폰 전짓불이 나갔다.

 


냄새로 달맞이꽃 무리를 거쳐
반딧불이만 몇 날아다니는 관목 덤불을 지났다.

 


빛이 다가오는가 했더니 물소리였다.
불빛 낮춘 조그만 방같이 환한 여울을 건넜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별이 하나 떨어졌다.

 


걸음 멈추고 아는 별들이 제대로 있나
잊혀진 별자리까지 찾아보았다.
더 내려오는 별은 없었다.
땅으로 숨을 돌리자 풀벌레 하나가
마음 쏟아질까 가늘게 울고 있었다.


 

<그믐밤>: 시를 해석하다

 

 

1연

여행 도중 받은 아끼던 제자의 부음,
벌써 가는 나인가 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별이나 보자꾸나, 민박집 나와 언덕을 오를 때
휴대폰 전짓불이 나갔다.

 


시인이 여행중에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접한다. 사람은 언제나 죽음을 내재화하여 살아간다.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 스승인 시인보다 제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벌써 가는 나인가'라고 질문해보면서 제자의 나이를 갸늠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말을 한다. 아마 인생의 법칙인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현실을 떠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생명은 모든 것을 부화시키고 미소짓게하고 환희를 가져오지만, 죽음은 언제나 참담한 감정과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지독한 악인이나 파괴자, 살인자 같은 인생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죽음은 눈물을 동반하며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시인의 제자, 그것도 아끼는 제자의 아픔은 마음을 더 시리게 했을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드는 제자의 부음, 그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것도 여행중이라 결국 시인은 다음 행동을 취한다.

 


"별이나 보자꾸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이별과 상실의 감정을 동반할 때 우리를 위로해 줄 있는 이가 때론 간혹 있을 수 있지만, 그 무게감을 함께 할 수 있는 이는 소수이며 드물다. 그때 우리 곁에 있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이다. 자연이다. 시인이 제자의 죽음을 가슴에 마음에 담은 후에 감정의 마아블링이 심각할 때 그의 곁에 있는 것은 매일 밤 하늘을 지키는 '별'이다. '별이나 보자꾸나'...이건 자조적인 행위이고 제스쳐일 수 있다. 무언의 몸짓이기도 하다. 별들을 보려고 민박집 언덕을 오르는데 난데없이 '휴대폰 전짓불'이 나갔다고 한다. 전짓불은 '손전등에서 비추는 불빛'이다. 휴대폰의 라이트등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게 잘 나갈 수가 없는 게 아닌가? 직접 버튼을 꺼지 않거나 터치를 하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불빛이다. 하지만, 휴대폰, 현대인의 가장 필수품이자 없어서는 안 될 생존도구와 같은 휴대폰의 전짓불까지 나갔다는 것은 시인이 느끼는 제자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비유해주는 것이 아닐까? 휴대폰 밧데리가 방전되었다면 다시 충전하면 될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다시 휴대폰 원래 기능을 감당할 수 있으면 되겠지만, 인생의 상실의 아픔, 아끼는 제자의 죽음 앞에서 신경질나게 휴대폰 전짓불빛까지 먹통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휴대폰 전짓불이 왜 소중하냐하면 이 시의 배경이 그믐밤이기 때문이다. 그믐은 음력으로 달의 마지막날인 29일 혹은 30일을 말하며, 그믐에 뜨는 그믐달은 보름달 반대로 가장 작아진 달을 말한다. 달이 가장 작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어둠이 더 짙어졌다는 뜻이다. 시인은 깊고 어두운 그믐밤에 휴대폰 불빛까지, 전짓불까지 나가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아끼는 제자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메타포로 담아두고 있다.

 

 

 

2연

냄새로 달맞이꽃 무리를 거쳐
반딧불이만 몇 날아다니는 관목 덤불을 지났다.


밤이다. 그것도 달이 가장 작은 날의 그믐날의 그믐달이다. 깜깜한 어둠으로 인해 시각이 차단된 시간대에 후각의 냄새와 달의 밝기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자연적인 조명과 생명체인 반딧불 몇이 날아다니는 시각적인 조명에 의지해서 관목 덤불을 지나고 있는 시인이다. 휴대폰 등불이라도 있었으면 숨통이 좀 트이련만. 지금 시인의 가는 거리는 달빛이 환하여 앞뒤를 분간하기 쉬운 배경은 아닌 듯하다. 달빛이 너무 밝으면 조명이 따로 필요치 않지만, 달빛이 어두우면 너무 캄캄해서 우리는 인공적인 불빛, 도구를 의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게 안 된다.

 

 

 

3연

빛이 다가오는가 했더니 물소리였다.
불빛 낮춘 조그만 방같이 환한 여울을 건넜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별이 하나 떨어졌다.

 


빛을 기다렸는데, 그냥 물소리가 먼저 시인을 반긴다. 여울은 하천바닥이 작은 급경사를 이루어 물이 흐름이 빠른 부분(riffle)을 말해준다. 여울이 흐르는 하천바닥에는 큰 조약돌이 많아서 물이 흘러내릴 때 소리를 내면서 움직인다. 빛을 기다렸는데, 시각이 밝아지길 원했는데, 청각만 밝아진 꼴이다.

그런 와중에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별이 하나 떨어졌다'...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듣고 시각이 거의 제한된 상황 가운데 물소리의 청각만이 시인을 때리는데, 눈에 들어온 장면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이 말이다. 사람의 운명은 그 누구도 예견할 수 없다.

 



4연

걸음 멈추고 아는 별들이 제대로 있나
잊혀진 별자리까지 찾아보았다.
더 내려오는 별은 없었다.
땅으로 숨을 돌리자 풀벌레 하나가
마음 쏟아질까 가늘게 울고 있었다.

 



자신의 아끼던 제자, 그 제자는 유명을 달리했다. 아무리 친구들이 많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도 한 사람이 인생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별의 상처, 상실의 고통은 견디기 힘든 현실이다. 이 세상에 사람은 다 다르고 특별하고 독특하다. 똑같은 사람이 없다. 쌍둥이도 서로 차이점과 대별점이 있다. 사람마다 개개인이 뿜어내는 온도와 향기가 다르다. 여기서 온도와 향기는 영혼에서 나오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던 사람이 지금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을 '걸음 멈추고 아는 별들이 제대로 있나 잊혀진 별자리까지 찾아보았다'고 한다. 아는 별이 제대로 있는 것을 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잊혀진 별자리'까지' 찾아보았다는 것을 볼 때, 떠나간 이, 오직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아끼던 한 영혼에 대한 부재감에 대한 허전함에 몸부림치는 시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내려오는 별은 없었다'...우리가 어떤 고통스런 현실이 있더라도 하늘은 여전히 하늘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하늘은 그대로의 하늘이다. 그래서 인간은 땅을 버티고 사는 존재이기에 땅만 바라보고 살 수 없는 듯,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지상의 슬픔과 상실의 허함을 달래기 위해 하늘을 헤집고 그 하늘에 박힌 별들을 살피며, 별자리까지 찾아보다가 이제는 겨우 자신의 터전이 땅으로 시선을 향하게 되는 시인이다. 그런데, 그 때의 시인의 자화상을 풀벌레에 대입시켜놓고 있다.

'풀벌레 하나가 마음 쏟아질까 가늘게 울고 있었다'...시인의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들끼리 더 이상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육체의 부재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풀벌레'의 '가늘게 울음'으로 대입시켜주고 있다.

 

 

 

 

Epilogue...

황동규 시인은 '즐거운 편지'로 내게 훅 치고 들어와 좋은 추억과 기억이 있는 시인이다. 시로서 내게서 다가온 것이라기 보다는 영화 <편지>였던가? 거기서 감동을 주었던 시였다. 어쨌든 내가 시를 좋아하게끔 한 계기가 된 시인이기도 하지만, 그 즐거운 편지가 게재된 <삼남의 내리는 눈>이었던가? 그 시집도 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기억 때문에 황동규의 <연옥의 봄>을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쥐뿔도 없지만, 매일 시를 하나씩 해석해보고자 하는 결심을 내린다. 거창하진 않지만, 그냥 시를 생각하고 해석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황동규 시인은 자신의 상실의 고통과 아픔을 그믐밤이라는 시간적인 배경에 자연을 거닐면서 헤집고 있다. 그믐, 그믐날, 그믐달, 그믐밤의 의미를 찾아보다가 너무 깜짝 놀랬다. 그믐달이 보름달과는 대조적인 가장 작은 달이라는 의미를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시인이 얼마나 비통한 아픔 속에 있는지를 그믐달로 표현해주고 있다. 밤의 어두움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듯한, 오로지 청각과 후각으로 움직여야 하는 그리고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그렇게 나는 느꼈고 그렇게 해석한다.

 

황동규 시인의 &#39;연옥의 봄&#39;이란 시집이다
황동규의 연옥의 봄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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