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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파수꾼(2010) 감상과 사색- Story is Enough!

탐독: 탐미/영화M

by 카알KaRL21 2021. 5. 1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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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파수꾼>의 줄거리, 등장인물, 결말, 그리고 개인적인 해석까지 모두 공개합니다!

 

1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박정민 때문이었다!

다들 이제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박정민 때문이었다. 박정민을 영화 <변산>에서 새롭게 재발견했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그를 확인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박정민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통해 남우조연상을 은근히 많이 받았네(21년 백상예술 남우조연, 21년 청룡영화 남우조연, 20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조연상) 근데 이 영화가 2010년도 만들었으니,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제훈, 박정민, 서준영 모두가 20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박정민의 데뷔작인 셈이다. 박정민의 데뷔작이니만큼 감독에겐 박정민의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 오디션에 탈락했다고 한다. 박정민의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과장된 톤에 거부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감독은 박정민에게 연습말고 수다나 떨자고 하면서 그 순간을 영상으로 찍어 '수다나 떨자'고 하면서 나오는 '날 것의 연기'에 대해 지도하면서 박정민의 연기가 조금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수꾼의 삼총사

 

2 하지만, 영화<파수꾼>은 이제훈의 영화였다

박정민의 데뷔작이어서 좋았지만, 뭐라해도 이제훈의 연기가 볼만했다. 아니나다를까2? 청룡영화제, 대종상 영화제, 그리고 영화평론가 신인남우상을 휩쓸어버렸다. 최근에 봤던 드라마 <시그널>에서 보여준 이제훈의 모습, 그리고 영화 <박열>에서 보았던 완숙한 톤과는 다른 젊은 청춘의 고등어 푸른 빛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들이 다들 20대 중반이지만, 역할은 고등학생이었다.



기태(이제훈),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 이 세 사람의 우정은 기태의 죽음을 두고 아버지(조성하)가 아들의 친구들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영화는 기태를 둘러싼, 세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기태가 자살한 장례식장에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동윤은 참석도 하지 않고 자퇴를 해버리고, 희준은 다른 학교를 전학을 가버린 상황이었다. 무언가 미심쩍은 여지가 있어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파수꾼과 친구들

 

3 이 영화는 Bleak Night이지만, 그러나 아름답다...

영화의 제목, <파수꾼>처럼, 감독 또한 J.D. 샐린저의 고전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하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이 맞았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파수꾼은 기태의 아버지, 청소년들의 부모가 자녀들의 파수꾼이 되어줘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게 차들이 오가는 도로와 마당 사이에는 가드레인(벽)이 설치되어 있어야 더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방치하고 내버려둔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며 무책임한 처사이다. '파수꾼'의 역할이 바로 그런 역할이다. 부모가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작품 속엔 기태의 아버지였다. 기태의 엄마는 없었다.



기태는 희준과의 관계의 균열이 조금이 일어나는 가운데, 매일 하교후에 기찻길에서 야구를 한 것처럼 동윤이 야구하러 가자고 하지만 거절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정사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은 이유를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잔소리하고, 아침에 깨워주는 엄마가 없다는 것, 집에 들어가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지각이라고 불평하고 짜증내면서 스트레스를 분출할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밥 하는 것도 언제나 혼자였고 늘 외로웠고 항상 괴로웠던 것이다. 감독이 원래 의도했던 기태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책임이 비중이 많았다고 하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지의 비중을 줄이고 세 사람에게 무게중심을 옮겼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영화는 박수와 갈채를 받아 마땅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았다. 참고로, 영화의 영어제목은 'Bleak Night'(암울한, 절망적인 밤)으로 표현했다(이 글을 적고 다시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모든 것을 한 번 정리하고 다시 보는 영화의 감회는 새로웠고 결말을 알고 접근하니, 영화의 우울함이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균열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명작은 음미하면 음미할 수록 더 가치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현재에서 과거로 오가는 이런 촬영기술은 영화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더 없이 크게 다가오고 울림이 있는 이유는

바로 너도, 나도 모두가 10대의 학창시절을 지내오면서 누구에게나 상처를 주고 받아온 시절이 있다는 경험에서 오는 공감과 동감 때문일 것이다. 다시 영화를 찬찬히 보는데, 처음 볼 때의 울림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게 시큼하다. 기태, 동윤, 희준, 이 세 사람의 우정은 굉장히 견고해보이지만, 그들은 10대였다.

 

 

파수꾼의 포스터



4 잃어가고 있는 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너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 세 사람의 우정의 균열 조짐은 보인 것은 희준의 집에서 놀 때였다. 희준의 여친이 기태와 함께 있던 장면을 목격하고는 희준이 오해를 한 장면이었다. 기태는 후에 동윤에게 자신은 예쁜 희준의 여친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자신은 희준과의 우정과 의리를 생각해 거절했다고 말한다. 희준의 여친은 그 이전 3:3으로 놀러간 날, 중국집에서도 기태에게 호감을 보이며 음식을 챙겨주는 장면이 있었다. 희준은 오해를 하고 마음의 의구심의 먹구름이 가득 차 있지만, 기태는 기태 나름대로 친구들과의 굉장히 견고한 우정의 기초를 세워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여자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지 않는 의리는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안에서만 맴도는 기태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희준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기에 자꾸만 엇나가게 된다.

 

 

 

희준에겐 오히려 역반응을 일으킬 과다한 폭력으로 다가간다. 기태는 희준에게 다가가고 싶은 몸짓인데, 희준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오해하고 있던 희준을 더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기태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희준의 여친을 의리 때문에 밀어내고 갈등 이후에도 등교하는 희준에게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희준의 자아는 이미 곯을대로 곪아버린 상황이었다. 친구들 앞에서 가차없는 폭력과 욕설로 자신에게 모욕을 준 기태를 희준은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희준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함께 우정을 나누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함께 할 의미도, 가치도, 대의명분도 없고, 남아있는 정까지도 탈탈 털어버렸기 때문에 전학을 결심한다. 함께 나누었던 우정이 여친 사건으로 인해 갈등이 점점 증폭되어 친구가 아닌 자신은 기태의 '꼬붕'으로 전락하는 것을 평가하면서 좌절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둘 과의 교실에서의 대면에서도 기태가 학교의 짱이어서 애들이 같이 어울리면 학교생활 조금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울리는 것이지 너에겐 친구가 없다고 그런 신랄한 날카로움과 비판을 가한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내려놓을 것도 없는, 전학을 앞 둔 희준의 도발이었다. 그 자리는 기태의 희준을 향한 다가감이었지만, 너무 미성숙한 방식이었다. 그것이 기태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희준은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가한 상처와 고통을 뒤로 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다가가는데, 네가 왜 다가오지 않느냐? 식의 기태의 다가감이었다.

 

 



희준은 전학을 가버린다. 희준의 극약처방은 'out of sight, out of mind'였다. 기태에게 희준의 전학은 굉장한 상처였다.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기태는 희준을 찾아가 세 사람이 그렇게 즐겨했던 야구, 기태에겐 굉장히 소중한 가치가 있는 야구공을 선물로 주고 헤어진다. 그 야구공이 가진 의미와 가치가 얼마나 큰 지는 희준은 잘 알았을 것이다. 그때 그들이 성숙하였다면, 화해와 용서의 분위기가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연약했고 여렸고 아팠기에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게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기태와 희준의 관계를 지나, 기태와 동윤의 관계에서도 균열의 조짐이 더해진다. 기태가 진짜 동윤을 생각한다면서 하는 이야기였다. 동윤은 자신의 여친(세정)의 과거, 즉 ' 동네에서 세정이 모르는 애가 없다더라'는 기태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 과거가 진실인지 여부를 떠나서 그 충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려고 했지만, 그걸 감내하기엔 과부하였다. 그날 자신과 만난 세정 앞에서 얼굴에서 다 드러나버렸다. 세정은 자살소동을 벌였다. 동윤은 분노한다.

 



 

5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안다는 것

기태의 세계 VS 동윤의 세계 VS 희준의 세계,

이 세 개의 세계관들이 부딪히고 갈등한다. 둘 도 없는 친구였고 우정을 나누는 그들이었지만, 우정의 방뚝은 작은 틈새의 균열이 점점 더 커져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 세 사람의 구도를 보면서 나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안다는 것, 온전히 이해하고 용납하고 받아들이고 얼싸 안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그토록 함께 우정을 나누었던 그들의 관계는 기태가 이야기했던 말 처럼 '가식적이었다'는 말일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가식적인 면이 있다. 기태든, 동윤이든, 희준이든...오해는 오해를 낳고 세 사람의 세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동윤의 집을 찾아간 기태와의 장면이다.

기태에게 분노하는 동윤(파수꾼 스틸컷)

 

'"너 친구 아무도 없어. 나도 너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알아?"

"역겨워서 토나올 것 같다"

"너까지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진짜. 야 너만큼은 나한테 이러면 안된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거냐"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세 사람 모두 10대의 멘탈형성기에 있었고, 그 멘탈은 아직 유리멘탈과도 같이 여리고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fragile 요소가 많았다.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6 기태의 '파수꾼의 부재'

영화제목 '파수꾼'이란 팁으로 해석을 끌어오자면, 동윤과 희준은 살아남았지만, 기태는 살아남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태는 두 친구에게 있었던 영혼의 파수꾼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질풍노도의 세대의 고통과 상처를 받아줄 수 있는 완충장치, 안전장치와 같은 존재인데, 기태의 '파수꾼 부재'는 기태를 무너져버리게 만든다. 파수꾼의 부재는 가장 강하게 보이고 거칠고 터프하고 독보적이었던, 학교 짱 기태(이제훈)의 삶을 포기해버린다.

 

 

기태는 많은 말을 쏟아내는 학교의 짱이었지만, 그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야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에서 졸했다. 미숙했다. 그게 그 청소년들의 생리이기도 하다. 미성숙하고 미완숙한 청춘들의 스토리를 엿보게 하는 이 영화 <파수꾼>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영화라서 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지도 모르겠다.

 

 

 

 

 

7 '피해보고 싶지 않은' 영혼들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점은 그 세 사람의 우정의 살가움과 따뜻함이었다.

 

그런데, 그 푸르른 청소년, 그들의 투명한 영혼들을 잠식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서로를 더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불신하고 차단하고 떠나버린 그들의 투명한 벽은 기태의 죽음, 기태의 떠남(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이제는 서로를 인해 '기억하고 싶은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성가시고 귀챦은 그 어떤 것thing'(그 어떤 인격person이 아니라 사물로 처리되어질 수 있는)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태의 부친이 기태의 친구들을 찾는 와중에 희준을 겨우 찾아왔을 때 희준은 이런 상황이 굉장히 싫은 것임을 후에 재호에게 털어놓는다. 자신은 기태의 죽음에 아무런 의미도, 원인도, 이유도 모르는 '이방인'이라고 대구한다. 자신은 현장에 없었고 전학을 갔다는 것! 기태의 자살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이제는 '피해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제3자의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상처입은 영혼들이었다. 모두가 상처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모두가 기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기태는, 그 저돌적이고 피해끼치기 대왕인, 학교 짱 기태는?



기태는그들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였던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이 남는가? 뭐 그런 생각까지 해 보는 영화, 파수꾼이다.





 

8 <파수꾼>을 보고서 문득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가 생각이 났다.

피츠제랄드의 명작인 이 작품의 첫 페이지에는 너무나 유명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누구나 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은 아니다."

 

피츠제랄드의 이 문구를 <돈의 심리학>의 모건 하우절이 갓 태어난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 편지는 마치 피츠제랄드의 유명한 문구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떤 사람은 교육을 권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교육을 반대하는 가정에서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모험 정신을 장려하는 경제 번영기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전쟁과 결핍의 시대에 태어난다. 나는 네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네 힘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모든 성공이 노력 덕분도 아니고 모든 빈곤이 게으름 때문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꼭 알아두어라. 너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판단할 때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라."

 


 

 

문학이 위대한 것은 무엇을 설명하거나 설득해서가 아니라

그 무엇을 있는 그대로 날 것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스토리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 <파수꾼>에 나만의 칭찬문구를 하나 붙여 본다.

 

 

Story is Enough!

 

영화 <파수꾼> 은 성장소설같은 영화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과거와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빛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이렇게 묵직한 울림이 있을 수 있을까? 다시 봐도 좋은 명작이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 윤성현은 10년 후에 다시 배우들과 다시 작품을 만들게 되는데, 그 영화가 바로 <사냥의 시간(2020)>이다. <사냥의 시간>과 함께 영화리뷰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관계상 다음에 해야 겠다.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추천해 봅니다!



↘넷플릭스: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2020)>

 

넷플릭스: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2020)>

*스포주의!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노출하니 참고바랍니다! 1 영화 <사냥의 시간>을 보았다. 이제훈, 박정민이 10년 만에 뭉친 영화이기도 하다. 윤성현 감독이 10년전의 <파수꾼>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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