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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사는 법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9. 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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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 게재된 '사는 법'이란 시입니다. 어떤 감상과 해석이 나올지 일단 포스팅하면서 결과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이 시가 오늘은 다가와서 말이죠 ^^

 

 

 


사는 법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림보Limbo라는 말은 다들 아는가?

림보의 뜻을 네이버박사에게 일단 물어보면,

 

[명사]  수용소라는 뜻으로, 중앙아메리카에서 발생한 곡예 댄스 춤을 추면서 낮게 가로놓인 막대 밑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림보 사진을 보면 다들 잘 이해하시겠지만, 굳이 올리진 않겠다. 림보는 수용소라는 뜻을 가졌다. 삶이 때로는 림보같은 때가 있지 않을까? 시인은 '사는 법'이란 말을 던지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법, 살아남은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시인이 화가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은 일종의 삽질이다. 하지만 방황이나 표류의 삽질이 아니고 생산적인 삽질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방황과 표류는 흔적도 없이 날려가는 라이프스타일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래도 남는 것이다. 그림실력도 느는 것이겠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사색을 하게 된다. 생각은 중요하다. 심사숙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림은 사색의 결과물이고 반추의 결과물이다. 그리운 날은...정말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단, 그건 생산적이어야만 한다. 과거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몇달 동안 게임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임은 비생산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생각을 해야 한다. 게임은 생각을 못하게 한다. 사색과 반성과 후회를 못하게 한다. 그냥 게임에 몰입하여 망각하는 것이다. 게임은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니고 피하는 것이고, 도피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그 그리움의 후유증인 허탈함과 허무함과 외로움과 답답함의 실체와 마주쳐야 한다. 그냥 연기delay시킬 뿐이다. 그 고통과 힘듬과 아픔의 실체를 보류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연체'라는 말이 좋겠다. 우리가 카드대금이나 대출금을 연체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차량할부나 주택담보대출 이런거 제때 제때 이자를 내지 않으면 나중에는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아니면 최악에는 감옥에 가야할 수도 있다. 

 

 

그리움이 올 때 그 그리움을 맞설 수 있는 '히든 카드'가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무언가에 푹 빠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프로게이머라면 게임을 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겠다. 유튜버라면 자기 일이니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활동, 액티비티가 필요하다. 그것은 생산적이어야만 한다. 시인이 그걸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데, 저의 해석이 강요조로 들렸다면 용서하길 바란다. 그냥 제가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은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림보와 같은 그리움의 순간에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리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겠다.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은 방편이지만, 그것은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시인은 그리움을 그림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표지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음악을 한번 씩 들으면 우리에게 음악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심코 듣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쓸쓸한 날, 외로운 날, 괴로운 날...음악을 들으면서 심쿵하거나 감동받거나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가사와 멜로디가 얼마나 나를 위로하는가? 음악이 나를 토닥토닥하게 해 준다. 이 문장이 너무 좋다.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여러분도 쓸쓸한 날은 음악을 한 번 들어보시길. 다들 그렇게 하시겠지만, 음악을 듣는 것도 자발적인 행위가 될 때 음미하는 게 있고 얻어지는 게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이 되고 사고가 되고 사색이 되는 뭐 그런. 저의 뇌피셜이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이 대목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데. 그리움이라는 것이 원래 누군가, 특정 대상을 그리워하는 것인데, 이 대상이 특별한 '너'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막연한 '너', 미래에 만나게 될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상정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 잊어서 헉헉대면서 림보를 통과할 때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그런 것 보다는 과거의 연인, 과거의 수많은 인연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이제는 그것을 '그림'과 '음악'을 통해 필터링한 후에 '미래의 너'를 생각하는 그런 <과거-현재-미래> 이런 구도도 좋은 것 같다. 내 멋대로 해석이고 감상이다. 

 

 

 

 

그리운 날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 그림에 집중, 음악에 심취, 그리고서 남은 날은 '너'에게 집중하는 것이 나태주가 말하는 시 '사는 법'에 대한 카알의 해석입니다. 무언가 상실하고 어려울 때는 또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여 에너지를 리필하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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