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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잠들기 전 기도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6. 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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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 게재된 시 '잠들기 전 기도'를 공유하면서 시인의 마음을 같이 느껴 보았음 좋겠다. 단순하고 짤막한 문장안에 잠과 일어남을 죽음과 부활로 연결시켜 해석해 본 포스팅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집의 삽화 그림은 윤문영 화백
나태주 시집의 삽화 그림은 윤문영 화백

 

 


잠들기 전 기도




하나님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
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 주십시오.

 

 

 

오늘 향년 95세의 최장수 MC인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씨가 별세했다. 더 이상 방송활동을 하기 힘들겠다며 MC하차를 선언한 지 몇일 후의 일이다. 사람의 일이란 것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TV를 우연히 보다가 '환갑'(60세 생일)이 사라진 문화적인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잠깐 이야기해 보자.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는 환갑잔치라고 하면 온 마을사람들이 축하를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그래서 어릴적 동네의 잔치, 환갑 잔치를 기다리는 꼬마이기도 했던 1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환갑잔치는 이제 사라졌다. 왜일까? 바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환갑 즉 60세 생일은 이제 젊은 축에 속한다. 환갑잔치가 성행할 때의 사람의 수명길이는 52세였다. 그러기에 60세를 맞이한다는 것은 장수했다는 의미로 생신을 축하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80세로 훌쩍 길어져버렸다. 그래서 60세 생일 환갑, 70세 생일 환갑도 조촐하게 소박하게 가족잔치로만 보내는 것으로 안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것. 앞으로 2년마다 평균수명이 1년 더 연장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래서, 인간의 평균수명을 이제는 90을 잡고, 30+ 30 + 30 이렇게 기간을 분류할 수 있다. 30세까지는 개인 성장, 60세까지는 자녀양육, 그리고 90세까지는 노후생활로 구획을 나눌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80을 살든, 90을 살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기독교 신자이기에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기도를 적고 있다.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

 

 

기독교에선 죽음을 '잠'에 비유한다. 불교에선 윤회론적인 역사관을 띠지만, 기독교에선 직선적인 역사관을 가진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하루가 죽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난다. 깨어난다.

 

 

'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주십시오'

 

 

는 죽음의 잠에서 깨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해달라는 시인의 신앙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밤에 자면서 죽음을 경험하고 아침에 부활을 경험하는 셈이다. 매일 죽고 매일 산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오늘 하루는 어제 죽었던 사람이 그토록 기다렸던 내일이기에 우리는 그 하루의 생명을 연장받아 다시 사는 셈이다. 

 

 

 

 

 

매일 하루를 살고 매일 하루를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아침에 네 발, 점심때 두 발, 저녁 때 세 발로 걷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잘 살고, 매일 하루를 잘 죽으면 된다. 그리고 '잠들기 전 기도'를 나태주처럼 드리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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