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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feat.이어령+김진영+폴 칼라니티)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6. 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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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이어령 작가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와 김진영 교수의 <아침의 피아노>,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이 될때> 3권의 책을 읽은 느낌을 콜라보로 묶었음을 밝힙니다.  

 

   

메멘토 모리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타고 나온다.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수의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한밤에 눈을 뜨면

어머니 숨소리를 엿듣던

긴 겨울밤

어머니 손 움켜잡던

내 작은 다섯 손가락.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냇가로 가고

애들은 새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나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보리밭 길

 

여섯 살배기 아이의 뺨에 무슨 연유로

눈물이 흘렀는가.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너무 조용해 귀가 멍멍했는가.

 

굴렁쇠를 굴리다 흐르던 눈물

무엇을 보았는가.

메멘토 모리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

 

 

 

 

이어령 교수의 저서에 나오는 시이다. 

 

 

메멘토Memento는 ‘기억하다, 생각하다’이고, 모리Mori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생각하라’,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의미이다. 

 

여섯 살 짜리 아이의 볼에 흐르는 눈물, 굴렁쇠를 굴리다 흘리는 눈물...이 모든 것이 ‘모리Mori’(죽음)에 대한 ‘기억(메모리아memoria)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죽음을 유념해둔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가!

 

    

이어령의 에세이, 지성에서 영성으로 입니다

 

철학자 김진영의 <메멘토 모리>

『아침의 피아노』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한 철학자의 마지막을 담은 글이다. 김진영 철학자의 애도일기(1952-2018)이다. 죽어가는 철학자, 한 인간...인간은 누구나가 다 시한부 인생이다. 소설가 하일지는 죽음에 대해서, 20대는 20km로, 30대는 30km로, 40대는 40km로....죽음을 향해 간다고 이야기했다. 다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생애 내포된, 내재된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단지 끝이 어딘지 모를 뿐이기에 잠시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뿐이 아닐까? 이 책은 북튜브 김겨울의 소개로 인해 읽게 된 책이다. 한 철학자의 종말로 치닫는 가운데 발견한 일상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일상이 길이다.’(99p)

 

 

   ‘소리가 있다.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살아있는 소리,

   일상의 소리.’(179p)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77p)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255p)  

 

 

 

-아침에 눈을 뜰 때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면, 시한부 인생이라고 자각한 자신에게 얼마나 큰 환희로 다가올까? 우린 그 환희를 자각하지 못하지만, 작가는 그 '아침의 피아노'소리의 일상에 환호하며 글을 적고 있다.

 

 

 

죽음을 예정해 두고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이방인처럼, 외계인처럼, 인생의 관객이나 구경꾼처럼 느껴지는 삶이라고 저자는 말해준다. 그 삶들 가운데 저자는 자신이 붙들 수 있는 남아 있는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되새겨 준다. 이 책은 여백이 많다. 시집보다도 더 많은 여백을 할애하고 있다. 고통이 심해질수록 후반부에는 백지로 남겨둔 것도 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자연인이 죽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어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다.

 

 

‘지금 나의 신체는 지나간 옛 신체들의 앨범이다.’(195p)

 

 

철학자답게 철학하며 사유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문득 자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륵익는다는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순간(Der Stille Stunde)’라고 불렀다....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 평생을 사는가.‘(112p)

 

 

 

‘우리는 모두 특별한 것들이다.

   그래서 빛난다.

   그래서 가엾다.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199p).’

 

 

‘나는 살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17p)

 

 

‘살아 있는 동안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한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24p)

 

 

철학자 자신은 육체적인 위기 이후, 자신이 이제껏 정신적인 것들로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을 담고, 정신을 유지해가는 것은 육체이다.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29p)

 

 

꺼져가는 육체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을 안고 매일 매일 버티지만, 결국 그 죽음의 문에 들어간 철학자 김진영이다. 그는 프루스트의 글을 두 번 인용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그때 우리를 구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그 문을 우리는 우연히 두드리게 되고 그러면 마침내 문이 열리는 것이다.”-마르셀 프루스트 <되찾은 시간>(231p)

 

 

그의 희망적인 문장은 ‘몸무게를 달아본다. 자꾸 마른다. 자꾸 가벼워진다. 나중에 나는 날아오르게 될까.’(251p)라고 적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18년 어느 한 날에 마지막 문장을 남긴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279p)

 

 

그리고서 생을 마감한다.

 

죽어가면서 글을 남긴다는 것, 얼마나 비통한 심정일까? 실은 우리 모두가 다 죽어가면서 글을 남기는 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를 뿐이지 글을 남기고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더 당겨질지 조금 더 유보될지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을까?

 

 

 

구약성경의 모세의 <메멘토 모리>

아침에 성경을 읽는데,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이집트의 구출작전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죽음에 대한 소식을 미리 주지시키는 대목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신명기 31장 14절)

 

모세는 출애굽EXODUS의 위대한 영도자였지만, 그의 미션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그는 결국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모세 다음의 지도자, 다음 세대 여호수아를 준비시키신다. 자신의 모든 사명을 마무리해야 한다. 모세의 적극적이고도 긴급한 ‘메멘토 모리’의 불씨가 당겨진 셈이다. 참고로, 모세는 불치병이나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건강한 채 120살의 생애를 살다가 떠났다. 너무 건강했지만, 그도 죽음의 문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우리의 일생의 마지막, 끝도 이러한 준비가 주어진다면 좋을까? 나쁠까?

    

 

 

 

폴 칼라니티의 <메멘토 모리>

암에 걸린 30대의 젊은 의사이자 남편 폴 칼라니티의 애도일기인 셈이다. 화려한 명성과 전도유망한, 기대되는 의료계의 귀재, 하지만 그는 36살에 사랑하는 아내 케이티와 자신의 분신인 딸을 남겨두고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자 김진영 보다 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책의 서문에 실린 글이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브루크 폴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숨결이 바람이 될 때...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이 될 때'란 작품이다

 

 

메멘토 모리, 그래도 우리의 나날

 

철학자 김진영은 죽기 직전까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삶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죽음이란 거대한 괴물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질 수 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잡히는 책 한권을 넣는다. 슈베르트 평전과 뮐러의 시<겨울나그네>. 왈칵 솟으려는 눈물을 겨우 참는다. 그래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아침의 피아노, 106p)’

    

‘그래, 미워한다는 것, 그 또한 사랑이고 생이리라.’(아침의 피아노, 107p)

 

그는 시종일관 사랑에 대한 이야길 한다. 삶은 사랑이다.

폴 칼라니티도. 와이프 루시 칼라니티도 의사이다. 육체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그들은 그 죽음이란 대적 앞에서 또 하나의 무기를 집어든다. 그것은 故 김진영 철학자가 이야기한 바로 <사랑>이다.

 

 

‘불치의 병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숨결이 바람이 될 때, 254p)’.

 

칼라니티 부부는 불치병을 사랑으로 이겨내고자 했지만, 암은 그 부부를 육체적으로 갈라놓았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칼라니티의 분신인 딸과 함께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에게도 수놓고 있다. 남편은 재혼을 하라고 했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메멘토 모리의 연속이고, 반복이지만, 그대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이리라!

 

 

 

에밀리 디킨스는 이런 시를 남겼다.

 

 

 

당신은 제게 두 가지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뜻하셨다면

만족하실 그런 사랑의 유산을,

 

당신은 바다처럼 광대한

고통을 남기셨습니다.

영원과 시간 사이에,

당신의 의식과 나 사이에.

 


 

 

메멘토 모리, 그래도 우리의 나날들

메멘토 모리,

그래도 우리의 사랑할 수 있는 나날들이 있음에

그래도 우리가 사랑해야 할 나날들이 있음에 감사하자!

박일문의 소설제목들로 마무리를 했음 좋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것은 죽음이다. 메멘토 모리.

하지만 '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박일문의 소설 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페이퍼 쓰기 전에는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란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하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냥 시바타 쇼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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