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경의감을 느꼈던 카알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이 되는데요. 영화에 등장한 명대사들을 살펴보면서 개인적인 해석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분과 우연히 <헤어질 결심>에 대한 영화이야기를 했는데, 그 분은 이 영화가 너무나 지루했는지 영화관에서 졸았다고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관심사나 취향과 기호가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내용이나 스토리라인은 그렇게 특별할 게 없으니깐요. 하지만, 이 영화는 울림과 여운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제목 앞에 붙는 문구가 또 있었다.
'짙어지는 의심, 깊어가는 관심, 그리고 헤어질 결심'
이 영화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모든 대사와 단어가 시적이다. 함축된 단어, 뉘앙스...우리 나라 말로 '의심'도, '관심'도, 그리고 '헤어질 결심'도 '심'으로 끝나면서 주는 여운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런 여운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헤어질 결심>은 BBC선정 2022년 최고의 영화 20선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영화이다. 저는 예전에 하이쿠를 접했을때 받은 느낌이 참 신선했다.. 그냥 이 영화의 대사는 마치 '하이쿠'를 대했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영화 대사를 접하면서 이런 느낌은 진짜 refresh하다.
박해일 분, 부산서부경찰서 강력2팀장이다. 계급은 경감이다. 정장을 즐겨입는 댄디한 스타일이다. 기도수(송서래 남편) 실족사 사건으로 인해 용의자 송서래를 만나면서 관심을 보인다. 장해준은 송서래에게 '의심'을 그리고서 나중에는 두 사람 모두 '관심'의 단계까지 나아가고 후에는 '헤어질 결심'으로 나아간다.
탕웨이 분, 실족사한 기도수의 아내이지만 피의자로 지목된다. 처음에는 불법체류자였지만 과거 외조부가 조선인 출신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공을 인정받아 그 후손인 송서래는 한국 국적을 부여받아 귀화한 셈이다. 기도수와 결혼하면서 간병인으로 근무하지만 가정폭력을 당했다. 한국말을 사극에서 배워 말투가 현대 한국어와 거리감이 있어도 한국어 실력이 좋은 편이다. 피파고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단어선택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피파고 번역기가 때로는 엉뚱한 면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그 번역기 때문에 단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이 외국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정말로 내 심장이 갖고 싶어요?”
여기서 심장은 '마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했기에 '마음'이 '심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피파고의 오류라기 보다는 용의자를 쫓는 형사, 장해준의 심리적인 해석이 가미되기 때문에 '마음'이 아니라 '심장'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송서래는 이게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피파고 번역기의 독특한 매력, 번역의 차이에서 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송서래는 보기보다 치밀하고 비범하고 잔혹하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철두철미하게 용의주도하게 살인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형사의 정체성까지 흐릿해져 버린 장해준을 보면서 마음 아파한다. '헤어질 결심'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부분에서도 자신의 살인을 저지른 대목처럼 용의주도하다.
이정현 분, 장해준의 아내, 이포 1원자력발전소 안전관리팀 과장이며 최연소 원자로 조종감독자이다. 장해준과는 14세 아들이 있지만 기숙학교에 지내고 있어 극중에는 보이지 않는다. 남편 장해준과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는 모양새이다. 극중에 얼마전 이혼하여 돌싱이 된 이 주임과 차를 타고 오는 것을 의도적으로 장해준에게 목격하게 하는데, 이것은 불륜이 아니고 자신에게 소홀해진 남편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이 주임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감독의 말이다.
고경표 분, 부산서부경찰서 강력2팀 형사(경사), 해준의 후배이다. 장해준이 송서래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 챈 후배 동료이다.
“초밥은 왜 사줬어요?”
-이 대사가 아마 오수완이 장해준에게 한 대사인 듯 한데, 피의자인 송서래에게 지나치게 비싼 초밥을 사 준 장해준이 이해가 되지 않은 오수완의 질문이다.
하지만 이포가 배경이 된 2부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김신영 분, 경북이포경찰서 형사팀 여자 형사, 계급은 경사이다. 개그맨인 김신영이 배우로 나오다니 약간의 의외였던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에 몰입하는데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살인은 흡연과 같은 거"
형사 장해준이 송서래를 의심하는 대목이다. 흡연도 중독성이 있듯이, 살인도 중독성이 있다는 것인데, 장해준은 자신의 의심을 애써 부인하면서 송서래의 살인 죄목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이러한 의심은 '깊어가는 관심'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이 문장은 예전에 영화제목처럼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라고 하는 문장처럼 도발적이다. 하지만, '중단한다'는 말이 굉장히 신박하게 들린다. 결혼했다고 해서 이전에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멈추는가? 중단하는가? 이런 말인데. 모던한 시대에는 당연하게 좋아하는 것을 멈추어야 하지만, 포스트모던한 요즘같은 시대에는 이런 문장이 남발하고 있다. 이건 영화니깐 하나의 문학으로, 스토리로 이해하면 좋겠다. 영화를 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려고 하는 그 애절함이 엿보인다. 그게 결국은 '헤어질 결심'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더 빛이 나는지도 모른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에서처럼 유부녀와 유부남의 애절한 사랑이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이 영화에서도 엿보인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 호감과 관심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
영화를 다시 봐야할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 시간은 없고. 송서래가 장해준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날린 대사이다. 두 사람이 키스를 한 것은 아니었는 것 같은데. 송서래가 장해준에게 잠을 자게 할려고 주문을 외우는 듯한 느낌이다. 범죄자인 송서래는 잠을 자는데, 형사는 잠을 못 자고 있다.
1시간에 47번 깬대요. 내 잠을 빼주고 싶어요. 건전지처럼.
이 대사는 후반부에서 나온 대사인데요. 송서래가 얼마나 장해준을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두 사람이 범죄자와 형사로 만났지만, 그 경계에 서서 서로를 바로보며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좋았습니다. 날 책임진 형사치곤 품격있어서.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예요.
송서래가 만나는 남자들마다 폭력과 폭행을 당하면서 무시를 당한다. 그런데, 그녀가 살인용의자 선상에 올라 피의자의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음에도 장해준은 그녀를 친절하게 대한다. 장해준이 송서래의 외모에 끌렸는지, 반했는지, 호감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송서래의 마음에 장해준의 마음이 닿은 듯 하다. 송서래는 '처음부터 좋았습니다'라고 하면서 품격, 품위라는 단어를 이야기한다. 탕웨이가 연기한 송서래가 중국인이라 한국어를 하는데 쉽지 않다. 물론 그녀가 한국인 감독과 결혼을 해서 한국어를 조금 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문장을 이야기하는 중국사람의 말이라서 더 이 문장에 울림이 느껴진다. 그것은 완벽하게 구사하는 모국인의 모국어의 완전한 발음이 아니라 외국인이 말하는 서투른 발음에다 살인자로 취조를 받고 있는 한 사람의 떨림이 합쳐지니 이게 더 강한 뉘앙스를 발휘한다고 할까? 탕웨이가 연기를 너무 잘 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송서래와 장해준이 두번째 살인사건을 통해 만났는데, 송서래가 장해준에게 한 말입니다. 살인사건을 매개로 해서 만난 두 남녀, 하지만 두 사람 다 유부남, 유부녀입니다. 그런 와중에 송서래는 살인 사건에 대해 말하면 두 사람의 애정에 대해 thing같은 취급을 하자,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라고 합니다. 송서래는 '우리 일'이라고 했는데요. 이건 두 사람이 썸같은 관계를 탄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장해준이 이것에 대해 폄하하는 듯한 말을 하자 되받아친 송서래인듯 합니다.
살인자를 취조하면서 그 용의자가 바로 살인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형사 장해준에게 찾아온 '낯선 관심'을 외면하지 않았다. 장해준은 송서래를 그렇게 무죄로 풀려나게 했고 송서래의 첫번째 남편은 자살이라는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장해준의 가슴 속에서 터져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난 완전 붕괴됐어요.
붕괴: 무너지고 깨어짐
송서래는 '붕괴'라는 말을 처음 접하고서 스마트폰으로 단어 뜻을 검색한다. '붕괴는 무너지고 깨어짐'. 이것을 알고는 송서래가 요동친다.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송서래의 궁극적인 단초는 바로 '붕괴'란 단어를 접했을 때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이런 갑툭튀한 단어들이 연결이 되고 연결이 되어 거대한 서사를 이루는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저 폰 바다에 버려요. 빠뜨려요. 아무도 못 찾게.
수사의 단서가 될만한 것들, 그리고 송서래와 장해준이 썸이 온 간 것에 대한 증거인 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이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장해준을 붕괴하게 만든 자신과의 모든 증거들을 인멸하라는 송서래의 말입니다.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결혼했습니다
송서래가 기도수의 살인사건이 종결된 후 시간이 흘러 장해준이 다시 재회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남자'는 바로 장해준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게 결혼을 했지만 그런 불순한(?) 의도로 한 결혼이 제대로 된 결혼일 수가 없습니다.
같은 관할지에서 살인사건이...참 불쌍한 여자네
송서래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가 재혼을 한 이유가 '헤어질 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다른 남자'가 장해준이 아닐까 생각하니 약간 섬뜩한 기운이 든다. 장해준은 처음에 송서래에게 느꼈던 의심의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의심의 날blade '이 자기 안에 있는 '관심의 날blade'과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서로 날을 세워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산에서 만났던 송서래와 장해준, 그런데, 이포에서 다시 두 사람이 만났다. 그런데, 그게 공교롭게도 살인사건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는 매개체가 살인사건이었다.
연고가 없어서 왔습니다....
진짜 왜 이 동네에 왔어요? 그게 왜 중요한데요?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것 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지난 402일 동안 당신을, 당신이...
송서래가 장해준을 만날 수 있는 방법, 그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사건'이었습니다.
당신은 살인이랑 폭력도 같이 있어야 행복하쟎아
이포라는 곳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온 송서래, 그런데, 송서래의 아내, 안정안이 근무하는 이포이기에 이포로 전근 온 장해준,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살인사건으로 만난 것이다. 형사라는 직업 자체가 범죄자와 마주치는 직업이기에 송서래는 장해준에 대해 '살인'과 '폭력'이 같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장해준의 직업정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형사의 직업, 형사가 제일 잘하는 것은 사건현장에서 자신의 능력이 발휘된다. 형사가 사건현장에 아닌 곳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직업은 자신의 직업의 현장에서 가장 빛이 난다. 장해준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송서래는 그렇게 언급한 것이다.
그 남편은 자살이고, 이 남편은 피살인데...
이러려고 왔냐고 물을텐데. 이미 그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
송서래는 장해준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그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살인이었다. 장해준이 형사이니깐. 어쩌면 송서래는 중국인이고 불법체류자의 라이프스타일로 살다가 한국 국적을 받긴 했지만, 유부녀와 유부남이 어떻게 서로 만나 관심을 갖고 만남을 가질 수 있는지 잔머리가 굴릴 줄 모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만남의 방법은 바로 살인이었다. 첫번째 남편이 자살로 종결지어졌지만, 영화의 전체 그림에서 보면 그것도 타살이다. 송서래는 두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두번째 남편은 아주 교묘한 방법과 수법으로 살인 사건의 배후에 자신이 있었지만 감춘다. 하지만 영리한 형사, 장해준은 이를 알아챈다. "이미 그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
사철성의 모친도 죽고, 자기남편도 죽고, 송서래는 펜타닐로 사망했다.
"다 나 때문에 죽은거죠?"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를 깊이 생각하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모든 것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캐치할 수 있다. 송서래는 극단적이고 과격하기까지 한 살인범이지만, 로맨스에 대해선 인간의 따뜻한 마음에 대해서 온기가 넘친다. 관심의 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관심이 욕심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이미 살인을 저지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런 황무지와 같은, 페허와 같은 상황에 피어난 애정의 꽃이라니...어쩌면 그녀는 자기의 두번째 살인사건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도, 목적도 없는 그녀를 취조실에서 환대(?)해주었던 장해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한 셈이다. 사람 죽이고서 편히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송서래는 장해준의 불면증에 비해 잠을 더 잤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심리적인 상황은 난파선과 같았다. 그녀는 그 난파선을 바닷속 깊은 곳으로 잠식되게끔 계획을 짠 것이다. 그 계획이 바로 '헤어질 결심'인 셈이다.
이걸로 재수사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난 해준씨의 미결사건이 되기 위해 미포에 갔나 봐요.
송서래와 장해준이 살인사건을 또 다시 만났는데, 송서래는 장해준의 미결사건이 되기 위해 미포로 왔다고 합니다. 송서래는 자신이 장해준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바다로 사라지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인데요.
당신 목소리...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너무 좋아서 자꾸 들었어요. 남편에게 들켜 버렸어요.
송서래가 장해준을 기억하는 방법은 그 두 사람이 정말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느냐? 절대 아닙니다. 송서래는 장해준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고 그것을 스마트폰을 듣습니다.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하진 않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와 대사 가운데서 그 분위기 속에 송서래가 빠져든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사람끼리 느끼는 썸의 기류가 대화 속에 묻어나지 않는가요? 바로 송서래는 장해준의 그 목소리를 늘 듣고 듣고 듣고 하다가 남편에게 들켜버린 것입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생선초밥이 아니라 핫도그
장해준이 처음에 송서래를 취조할 때는 비싼 생선초밥을 사 줘서 동료 형사가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했는데요. 두번째 살인사건이 터지고 나서 취조할 때는 메뉴가 바뀌었습니다. '생선초밥'이 아니라 '핫도그'가 되었네요. 장해준도 송서래에 대한 마음의 빗장을 걸기 위해 노력한 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신 생각 났어요. 당신이 와서 이걸 볼 텐데. 당신이 무서워할텐데.
첫번째 살인사건 때 송서래와 장해준이 대화를 나누면서 장해준은 자신이 형사이지만 사람의 피를 보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고 했는데요. 송서래가 자신의 두번째 남편을 살인하고 난 후 낭자한 피를 형사 장해준이 볼까봐, 그걸 보고 무서워할까봐 피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했다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가 독특한 것이 살인자와 형사의 애정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아주 특별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에 아마도 BBC의 2022년 BEST20선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냥 영화를 보면서 박찬욱 감독에게 경이감을 느낀 영화이기도 합니다.
한국가면 네 산 있다. 누가 뭐래도 호미산은 내 산이에요. 꽤 믿음직한 남자 데려왔다
송서래가 자신의 조상들의 산이었나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그 호미산에 가서는 "꽤 믿음직한 남자 데려왔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아마도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자신이 사라질 준비plan을 다 짜 둔 송서래가 마지막으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행동을 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송서래는 그러면서도 자조합니다. 형편없는 남자들과 결혼하고 또 결혼하고 그런 자신의 행태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하는 대목입니다.
얼굴 보고 한마디로 할려면 ...날 떠난 후에도 당신은 한숨도 못 잤죠.
당신은 다시 사는 것 같았죠? 이제 내 손도 충분히 보드랍죠?
첫 살인사건 때 송서래의 손은 굉장히 까칠했는데, 아마 그게 살인사건의 흔적 때문인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은근히 달달한 데 이게 확 들어오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의 썸의 기류에서 은근히 풍기는 뉘앙스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변한 건 아니에요. 경찰한테 피의자로 의심받는 사람, 내가 서래씨 왜 좋아하는 지 궁금하죠? 몸이 꼿꼿해요. 많은 것을 말해줘요.
바다에서 건진 전화...더 깊은 바다에 던져요.
장해준이 송서래가 살인자인 것을 알고도 풀어 준 행태가 담겨져 있는 증거물을 바다에 던지라고 하는 송서래입니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형사는 살인자, 범인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살인에 대한 전방위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데, 송서래를 용의자로 놓고서 수사를 하는 장해준의 머릿속에는 송서래에 대한 감정이 있기 때문에 벽의 사진을 쳐다보면서 '잠도 못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라고 장해준의 속을 다 들여다보듯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자바위 해면...송서래 긴급 수배
"만조야!"
송서래는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하고서 밀물 때 자신이 숨을 구덩이를 모래밭에 팝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장해준은 '사자바위 해면'에 송서래가 있는 걸을 알고 '사자바위 해면...송서래 긴급 수배'라고 알립니다. 하지만 이미 송서래는 모래바닥으로 꼭꼭 숨어버렸고 이제는 썰물이 밀려와 송서래의 존재를 덮어버립니다. '만조야!' 장해준이 송서래를 가둔 모래밭, 바닷가로 달려와 보지만 이미 송서래의 존재는 보이지 않습니다. 장해준은 자신의 마음에 뭉게뭉게 피어났던 범인이었지만 자신의 애정이 닿았던 송서래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송서래는 없습니다. 헤어질 결심이 제대로 실행된 후였기 때문입니다.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 붕괴됐어요.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송서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센스가 남다른 여자인 것 같습니다. 남자 볼 줄 몰라 결혼상대로 만난 남자는 형편이 없었지만, 제대로 선택한 남자는 형사였고, 그 형사는 유부남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마디 주고 받지도 못했지만, 살인사건을 흡연이 중독인 것처럼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렇게 애절하고 애틋한 마음을 '헤어질 결심'으로 그려낸 송서래였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명대사 중심으로 개인적인 해석인데요. 그냥 영화의 느낌을 소환하려고 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다 보니 여러가지 어설픈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냐 이 영화는 너무 잔잔한 감동을 주는 듯 합니다. 송서래를 연기한 탕웨이의 다소 부자연스러운 한국말 대사가 더 인상적이었고, 대사 하나 하나가 특별한 여운을 주는 스토리였습니다.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 <헤어질 결심>은
"영화가 닿을 수 있는 가장 깊고 가장 높은 경지"
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명대사를 읊으면서 개인적인 해석과 생각들을 훑어보았습니다. 등장인물도 같이 한번 살펴 보았습니다. 왜 BBC에서 2023년 최고의 영화 20선에 포함시켰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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