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책,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를 너무나 흥미롭게 읽고 남긴 리뷰이다.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사색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은 도서이기도 하다. 자 그럼,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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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지를 관광하면서 일체의 메모나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같으면 인증샷을 얼마나 남기려고 애쓰는가? 우리는 마치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찍고, 찍고, 찍고...하지만, 하루키는 다르다. 하루키는 집으로 돌아와 여행지에서 받은 느낌, 잔상들을 떠올리면서 후기식으로 글을 적는다고 한다. 오로지 자기의 감정, 그 때의 느낌을 오롯이 기억에 의존하여 여행일지, 여행일기를 쓰는 셈이다. 이 이야길 하니 마크 트웨인의 여행기의 기록이 떠오른다. 그 기록이 어디 있더라???
내가 이 책, 『역사의 쓸모』를 다 읽고 데스크에 앉아 내 마음에 가라앉은 것은 무엇일까? 하루키식으로 한번 돌아볼까? 기억의 잔상을 추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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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태성이란 저자의 매력을 들고 싶다. 무슨 임용시험, 자격시험, 공무원 시험은 이제 나하고는 거리가 있게 되었다. 그만큼 나이를 먹은 셈이다. 최태성이란 이름만 들어본 나는, 이 책의 뚜껑을 열면서 ‘아하!’라는 감탄사를 연발케했다. 다소 대중적인 설민석보다 더 감동적인 역사 쌤이 있구나 싶었다. 『설민석의 삼국지 1,2』를 읽으면서 재미있고 흥미가 있었다. 중간에 삽화도 있고, 부연 설명도 괜찮았다. 이미 10권짜리 이문열의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은 나로서도 <삼국지>는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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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삼국지 1,2』는 말 그대로, 삼국지 입문서로는 굿이다. 이현세의 <만화삼국지>도 너무 재미있게 보았는데, 설민석의 삼국지 1,2』는 만화보다 쉽다고 하겠다. 쉽다는 말은 그만큼 압축되고 간단하고 수월하게 읽힌다는 말씀이다. 10권짜리 『삼국지』를 재독하려고 했을 때, 인상적인 대목이 어디 있던가 싶어 뒤적여 본다.
유비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길에 만난 한 허름한 노인이 이런 말을 날린다.
“말이 많으면 마음이 빈다”
아, 어떻게 이런 심금 울리는 대사를 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 더 볼까?
유비가 또 다른 스승을 찾지 않고 집으로 가니 어머니가 왜 이리 일찍 왔느냐고 하자, 유비가 대꾸한 말이다.
“글이 모자라서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 외에도 삼국지 군데군데 박혀 있는 주옥같은 명문장과 아포리즘은 가슴에 와 박힌다. 20대에 친구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잔이 넘치는 것을 보면서 ‘술 잔이 넘친다는 것은 정이 넘친다’는 뜻이라며 삼국지의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국지는 그만큼 수많은 보화들이 가득 찬 고전(古典)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설민석의 삼국지』에서는 이런 맛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가는 대목이다. 제갈공명을 인재로 사용하려고 벼르고 벼르지만, 제갈공명이 만날 기회를 주질 않는다. 공명보다 스무 살이 어른인 유비의 공들이는 모습에 아우 관우와 장비가 불만을 토로한다. 또 다시 입이 튀어 나온 관우와 장비의 반응에도 아랑곳 없이 와룡산으로 향하는 유비였다. 고을에 도착한 유비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자고 한다.
“여기서부터 걸어가자. 성의를 보여야지.”
“아니 누가 본다고 벌써 그러시오? 여기서 그 집까지 가려면 거리가 얼만데?”
“하늘이 보고 땅이 보질 않느냐? 진정한 성의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거다.”
(『설민석의 삼국지 1권』, 311p)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안다’.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다른 이가 알아주는 것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는, 자기 자신이 알아주는게,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게 가장 최선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이 나의 정곡을 찔렀다. 이 감동은 도대체 어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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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대중적인 설민석과는 또 다른 최태성의 깊이와 식견이 여기서 드러난다. 교사로 재직중에 웬 학원에서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연봉으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저자는 고민했다고 한다. 당연히 고민해야지. 안 그런가?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때 그에게 선택의 길을 제시한 역사의 인물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이었다고 한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눈을 감는 순간 예순여섯 노인 이회영이 답했다.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40p)
저자는 역사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진단하고 선택을 내렸다. 그는 그 화려한 제의를 거절했다.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가치에 주사위를 던진 셈이다. 이 이야기가 심쿵했다. ‘최태성’이란 저자가 솔직히 그냥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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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매력은,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이야기를 했다.
저자는 강의만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를 하는 주체라는 점. 바로 ‘역사적 사고’란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인기가 좋아서 연임 이후에 3선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수많은 이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양한다. 거절한다.
“정계를 떠나고자 하는 내 선택이 주의와 분별의 잣대를 비추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애국심의 잣대에 비추어서도 그릇되지 아니한 선택이라 믿는다.”(58p)
초대 대통령으로서 좋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박정희 대통령은? 왕, 대통령을 다 닮아가는 한국인인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기득권과 안전장치를 내려놓은 이들이 드물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사람보다 욕심이 더 많은가? 아니다. 인간은 원래 욕심의 동물이고,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역사 속의 소수의 인물들은 우리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이회영은 나라가 기울어가는 망국의 조짐을 보고서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압록강을 건넌다. 이회영 가족이 조선 땅을 떠난 이유는 가족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구차히 생명을 도모하지 않겠다’(219p)
는 가족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국외에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여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도왔다. 지금 시세로 따지면, 이회영의 재산은 헐값으로 매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600억 원이 넘었다. 만주 땅에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학교를 짓고, 인재를 양성하고 독립투사들을 지원했다. 또한 형제들이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액수의 자산이 3년 만에 바닥이 나버린다. 가족들 모두가 강냉이죽도 마음껏 먹지 못했다고 한다. 이회영의 가슴에는 오로지 식민지 해방의 꿈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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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고
쓸모 없는 것,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라...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이 일연의 <삼국유사>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너무나 다른 색깔의 야사집과 같은 <삼국유사>가 과연 정말 쓸모없는, 쓰잘데기 없는 기록인가? 그렇지 않다.
역사는 기록으로 승부한다. 저자는 쓰잘데기 없는 시시콜콜한 <조선왕조실록>이 남아있기에 지금도 TV와 드라마, 영화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인간의 삶, 인간의 역사는 버릴 것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라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 기록화된다면, 과연 그것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까? 그런 생각까지 뻗어간다. 내 자식들은 아비의 기록을 대하는 것에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쓰잘데기 없는 1인의 기록이 역사라고 회자된다면? 역사는 기록이 있기에, 과거와 현재가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백성들이 글을 깨우치고, 남편을 먼저 보낸 한 여인의 피맺힌 절규의 글이 1998년 4월 안동에서 발견된다. 무려 400년 전인 1586년에 쓰인 편지였다.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도 끝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115p)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길 바라>라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제목처럼,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 아닌 것이 아니더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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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쓸모, 인생의 쓸모, 역사의 쓸모...
쓸데없어 보이는 내 인생의 쓸모를 역사적 선분 위에서 한번 생각해 준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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