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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산시로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5. 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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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시로』는 소세키의 소설 중에서 특별히 『그 후』, 『문』과 연결된다. 스토리 전개상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는 『산시로』를 읽고, 『문』을 읽고, 『그 후』를 읽었는데, 좀 더 흥미진진하게 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산시로』-『그 후』-『문』 ,

 

이런 순서로 읽으면 더 좋겠다 싶다.

 

 

 

 

2

8월 중순에 우연히 잡아 든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는 정말 경이적이었다. 100년 전의 일본작가가 어떻게 청춘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는데, ‘스트레이 십stray sheep’(길 잃은 양)이란 말로 대사를 쳐내는 게 압권이었다. 『산시로』는 갑 중에 갑이라고 생각한다. 구마모토 출신인 시골청년 산시로가 도쿄로 넘어와 생활하면서 도회인들을 만난다. 거기서 미네코를 만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소위 썸을 타는 관계였다. 하지만, 미네코의 마음을 확 잡아채지 못하는 산시로...

 

 

“마권으로 맞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맞히는 것보다 어렵지 않은가요? 당신은 색인이 붙어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맞혀보려고 하지 않은 태평한 분인데 말이에요.”(225p)

 

 

미네코의 대화를 들어보면, 산시로가 미네코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미네코는 산시로가 요지로에게 빌려 준 20엔 때문에 하숙비를 못 낼 처지가 생겼다. 하지만 요지로를 통해 미네코는 기꺼이 산시로에서 20엔이 아니라 30엔의 돈을 빌려준다. 남녀가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런데, 미네코가 산시로에게 거금의 돈을 빌려준다. 그 30엔은 좀 과장해서 산시로의 ‘가족이 반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했다. 산시로와 미네코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는 풍마우(風馬牛)로 마무리된다(풍마우: 발정기의 짐승도 찾아갈 수 없는 멀리 떨어진 거리,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비유한 말, 『사기』의 『제환공기』에서 나오는 말).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풍마우’란 단어를 사용했다. 어떻게 이런 말로 남녀관계를 묘사할 수 있을까?

 

 

 

 

3

『산시로』의 스토리는 대단한 스토리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소세키의 문장과 재치가 너무나 탁월하다. 산시로가 미네코의 미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미네코의 마음이 이 문장에서 드러나는데, 이 문장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다윗이 자신의 충직한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난 후 나중에는 우리야는 죽이는 계획을 실행, 밧세바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를 지적한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참회하면서 적은 시편이다).

 

 

‘내 죄를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330p-성서(공동번역))

 

 

산시로를 떠나는 미네코의 마음이 걸려 있는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미네코의 초상화인 <숲 속의 여인>의 그림제목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마지막으로 내뱉는 산시로의 말,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Stray sheep Stray sheep...

 

 

이건 완전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작품의 느낌이 격하되는 것 같다.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느낌! 현암사에서 소세키의 전집으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드는데, 디자인과 책이 주는 깔끔한 느낌이 작품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다 지르고 싶지만 참자!

 

 

 

 

4

나는 20대의 청춘에 얼마나 많은 방황을 했던가!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나누면서 저돌적으로 살아왔던가! 하지만, 소세키가 보여주는 산시로의 방황은 정제되어 있다. 왜냐하면 작품의 초반부에 낯선 여인과의 잠자리를 같이 하고 난 후(말 그대로 그냥 ‘잠자리’였다!) 그 여인은 ‘23년간 지녀왔던 자신의 약점’을 정곡으로 찔러 버린다.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24p)

 

 

산시로의 ‘배짱 없음’이 문제였을까? 미네코는 산시로도 아닌, 노노미야도 아닌 제 3의 인물에게로 가버린 것은 두 사람을 위한 배려였을까? 청춘의 계절에 해답을 찾을 수 없는, 해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편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00년 전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번역자는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와 산시로를 비교한다. 100년 전 욕망을 거세하며(?) 배짱이 없이 산 산시로의 상실과 돈 쥬앙과 같은 여성편력을 자랑하던 현대의 욕망가, 와타나베의 상실! 현대는 욕망이 증폭될대로 증폭된 시대이기도 하다.

 

 

『산시로』의 무채색의 투명하고 정갈한 느낌의 상실감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20대가 아니어서 그럴까?

 

 

 

 

5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

작품 가운데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란 하이쿠가 등장한다. 띠지에 그 문구가 나와 있어 두견새가 뭘까 싶어 뒤져보니 네이버 박사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견이는 대체로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한(恨)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가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두견새가 가진 심상, 두견새의 슬픈 울음소리...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그 소리의 느낌은 같은 동양권이니 더 하지 않을까 싶다. 배짱 없다고 지적받은 23세 청춘의 산시로의 깨진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해 감동이 더 하다.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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