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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뭣이 중헌디?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5. 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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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인터파크)

 

 

1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 아버지(해양학자)의 진로에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고 영국에서 철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특별히 이 『남아 있는 나날』은 1989년에 발표되어 부커상을 받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고, 2010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인”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2017년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의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출처: 인터파크)

 

 

그런데, 나는 왜 이 작품을 이제야 알았을까? 그래도 지금에서야 읽은 게 어디인가? 싶다.

 

 

 

 

2 뭣이 중헌디?-a

스티븐스는 위대한 영국 귀족인 달링턴 경의, 달링턴 홀의, 위대한 집사의 역할로 한평생 잘 달려왔다. 아버지도 ‘품격’있는 집사였고, 자기 또한 ‘품격있는’ 집사에 대한 자부심과 승리감이 가득했다. 달링턴 홀에서 유럽의 각국의 대사들과 정치가들이 은밀한 회동을 벌이는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움직였던 집사, 스티븐스! 회담이 진행되는 그 바쁜 와중에 아버지가 뇌졸중로 쓰러지셨다. 아버지의 임종을 옆에 지켜야 할 아들의 입장이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스티븐스는 아버지도 집사였기에 아들의 그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다. 스티븐스는 이 소설 속에서 달링턴 홀의 새로운 주인인 페러데이의 배려로 여행길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인생을 회상하는데, 1923년 3월의 그 회담이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91p)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그 회담이 내가 집사로서 진정한 성년에 도달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그날 저녁을 생각할 때면, 함께 떠오르는 가슴 아픈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뿌듯한 성취감에 젖어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144p)

 

 

거기에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3 뭣이 중헌디?-b

스티븐스의 사랑? 함께 달링턴 홀을 섬겼던 총무, 켄턴 양(후에 벤 부인이 됨)은 집사로서 ‘프로페셔날’한 직업적인 면모를 공유했다. 

 

그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기운이 싹트지만.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 ‘직업적인 실존’을 위해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거세한 듯 절제한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아쉽고 안타깝게 마무리된다.

 

 여자가 자신이 소개팅 or 선을 봤다면서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마음을 체크 해 볼 때, 남자가 그 순간 여자의 마음을 확 잡아채야 하는데. 스티븐스에게는 ‘사랑의 품위’보다 ‘집사의 품위’가 더 우선순위였나 보다. 그는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켄턴 양이 자신의 ‘쉬는 시간’에 집무실로 진군해 들어왔다고 굉장히 불쾌해한다.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찾아왔을 때,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지만, 스티븐스는 의외였다.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집사라면, 그 옛날 <헤이스 소사이어티>가 명시한 ‘자신의 지위에 상응하는 품위’를 열망하는 집사라면, 남들 앞에서 결코 ‘쉬지’ 않는 법이다. 그때 들어온 사람이 켄턴 양이었던 생면부지의 인물이었든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그 때 켄턴 양이 불쑥 들어온 사건의 경우에 원칙의 차원, 아니 품위의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때 내가 완벽한 본연의 역할 속에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207-208p)

 

 

 

 

4

달링턴 홀의 달링턴 나리를 평생 섬기면서 세계 각국의 내놓으라 하는 위인들과의 만남을 준비했던 ‘위대한 집사’, 스티븐스! 세계대전 중에 윈스턴 처칠까지도 달링턴 홀에서 섬겼다고 고백한 스티븐스였다.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149p)

 

스티븐스는 여행 중에 만난 칼라일 박사와의 대화에서 품위에 대해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겠지만....., 결국 사람이 공중 앞에서 옷을 벗지 않는 것으로 귀착된다고 봅니다.”(260p)

 

라고 말한다. 스티븐스가 말한 직업적인 실존, 직업적인 프로페셔날리즘, 집사의 품위는 너무나 독보적이다. 스티븐스는 35년을 달링턴 경을 위해, 달링턴 홀을 서빙하는 것에 온 몸을 바쳤다. ‘내가 드려야 했던 최고의 것을 그분께 드렸지요’(298p)

 

 스티븐스는 한결같은 ‘충성심’으로 달링턴 경을 섬겼고 그 35년간의 진액을 쏟는 ‘직업적인 실존’이 ‘존재론적 실존’을 압도한다. 거기서 그는 승리감과 보람과 성취를 자아도취적으로 느낀다. 하지만...그는 인생의 황혼 녁에 맞이하는 여행을 통해서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수십년 만에 만난 켄턴 양(벤 부인)은 노년에 이제 손주를 보게 될 기쁨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당신은 어떤가요, 스티븐스 씨? 달링턴 홀로 돌아가면 당신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글쎄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허함은 아닐겁니다, 벤 부인. 그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럴 리가 없지요. 일 다음에 일, 그리고 또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290p)

 

 

달링턴 경이 3년 전에 죽고, 미국인 패러데이가 달링턴 홀의 주인으로 바뀌면서 스티븐스 집사는 그 집과 함께 ‘일괄 거래에 낀 한 품목으로서’(298p) 남게 된다. 스티븐스가 추구했던 ‘위대한 집사’로서 그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작가가 스티븐스가 인생에서 놓친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묘사해주는 듯 하다. 켄턴 양과의 사랑을 거세하면서 성취한 ‘집사의 품격’은 이제 노년에 접어든 스티븐스에게 ‘점점 더 많은 실수들, 지극히 사소한 것들’(298p)이 치밀고 올라온다. 위대한 집사였던 아버지가 노년에 보여준 실수들처럼 그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세월을 비껴 가는 인생은 없지 않는가!

 

 

 

 

5 뭣이 중헌디?-c

35년을 달링턴 나리를 위해 헌신했다. 그 달링턴 경에 대해 스티븐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분에 대해 엉터리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 대다수를 난쟁이로 만들어 버릴 만큼 도덕적으로 대단한 거인이셨다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러셨던 분이라고 서슴없이 단언할 수 있다’(161p)

 

 

하지만, 스티븐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1923년 3월의 그 달링턴 홀에서의 회담은 1918년의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 편에서는 엄청나게 가혹한 조항들이었기에 수정될 수 있게 각종 방안들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스티븐스는 집사였기에, 주인인 달링턴 경의 모든 사업적인 결정, 직업적인 결정에 대해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결정들이 조심스러운 정치적인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무관심한, 맹목적인 ‘충성심’(250p)이었다는 데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달링턴 경이 대부였던 젊은 카디널은 이런 스티븐스의 도덕적인 무감각과 무관심을 작품 중간에 지적한다. 달링턴 경이 주도하는 회담과 모임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스티븐스는 시종일관 무관심하며 무신경하게 반응한다. 그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달링턴 경은 죽을 때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명성과 명예가 전쟁 후에 끊임없이 추락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는 알게 모르게 히틀러의 사주받은 꼭두각시 노릇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이런 도덕적인 책임에 대해 비겁한 핑계를 대고 있다. 일례로, 달링턴 경이 달링턴 홀의 직원 중에 유대인들을 해고하라는 지시에 대해 스티븐스는 총무 켄턴 양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명령 복종’만을 내세워 해고시킨다.

 

 

‘달링턴 경의 노력이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했음을 세월이 입증해 주었다고 해서, 어떤 면으로든 어떻게 내가 비난받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그분을 모셔 온 세월을 통틀어, 증거를 저울질하고 나아갈 길을 판단한 것은 바로 그분 자신이었으며, 나는 다만 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극히 온당하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가히 ‘일등급’이라 인정받을 만한 수준에서 내 능력 닿는 데까지 직무를 수행한 것 밖에 없다. 오늘날 나리의 삶과 업적이 안쓰러운 헛수고쯤으로 여겨진다 해도 내 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응분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251-252p)

 

 

이 대목에서 번역가 김남주는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언급을 한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였다면, 아이히만은 좋은 아버지, 자상한 남편, 성실한 직업인이었다’(308p)

 

 

 

 

6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

가족도, 사랑도 비켜 가고, 도덕성도 비켜 간 위대한 집사, 스티븐스에게 남은 것은 이제 황혼기의 ‘남아 있는 나날’뿐이다. 하지만, 몇 십년 만에 만난 옛 사랑 켄턴 양은 이런 말을 남긴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300p)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저녁 타임은 보통 사람들에겐 농담과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리이다. 그러기에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었다는 데서 오는 성취와 보람이 내려앉은 자리이기도 하다. 두 남녀 노인이 선창가에서 바라 본 풍경은 저녁을 즐기는 보통 사람들의 영상이었다. 거기에는 위대한 집사에게 빠져 있었던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농담의 기술’(302p)이라는 메타포를 등장시킨다.

 

 

 

 

7

직업의 현장에서 칼날 같은 집사의 삶을 살았던 스티븐스에게 노년에 맞는 달콤한 6일간의 여행은 인생에 있어 ‘뭣이 중헌디?’(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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