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원 -양파껍질로 둘러싸인 소우주microco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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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원 -양파껍질로 둘러싸인 소우주microcosmos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8. 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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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신간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에 게재된 시를 들추어 보다가 우연히 '원'이란 시를 보고 포스팅해 봅니다. 삶이 지칠 때 나태주 시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두 손에 아직도 시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라는 말이 다가오네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둘레에
보이지 않는 원을 그려 가지고 있다


자신만 겨우 들어가는 새둥지 크기의 원을 그린 이도 있고
대양을 품을 만큼 흑등고래의 거대한 원을 그린 이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 들어올 동심원을 그린 이도 있다


다른 원과 만나 어떤 원은 더 커지고
어떤 원은 더 작아진다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있고
부딪쳐서 더 단단해지는 원이 있다


나이와 함께 산처럼 넓어지는 원이 있고
오월붓꽃 하나 들여놓을 데 없이 옹색해지는 원이 있다


어떤 원은 몽유병자의 혼잣말처럼 감정으로 가득하고
어떤 원은 달에 비친 이마처럼 훤하다


영원히 궤도에 붙잡힌 혜성처럼 감옥인 원도 있고
별동별처럼 자신을 태우며 해방에 이르는 원도 있다


원을 그리는 순간
그 원은 이미 작은 것


저마다 자기 둘레에 
원 하나씩 그려 가지고 있다
생을 마치면 마침내 소멸되는 원을


 

 

최근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이준호(강태오 분)를 앞에 두고 우영우(박은빈 분)가 대사를 친다.

 

 

"나는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옆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합니다"

 

 

뭐 그런 대사였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옆에 있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합니다. 이건 우영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자신의 남친에게 하는 말이긴 하지만, 비단 우영우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인간은 옆에 있는, 곁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원circle 때문이다.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있고

부딪쳐서 더 단단해지는 원이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원이 곁에 있는 사람, 가까운 사람을 외롭게 한다면, '부딪쳐셔 더 단단해지는 원'인 셈이다. 그 보이지 않는 원이 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옆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고 품어주고 안아줄 수 있다면 그 원은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되는 셈이다. 그 원은 벽이 아니라 울타리라는 품이 되고 보호막shield이 되는 셈이다. 이 사람의 원과 저 사람의 원이 만났다. 그리고 부딪혔다. 부딪혀서 튕기는 그래서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거북이 등가죽같은 단단한 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부딪혀서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있다. 그 부서짐을 통해 서로에게 열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원은 작은 원이 아니라 더 큰 원으로 화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원에 갇혀서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는 그 원은 감옥이 되겠다. 하지만, 자기만의 원이 깨지고 다른 이를 받아들이면 다른 이의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겠다. 그러면 서로 외롭지 않게 된다. 물론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태생이고 외로운 존재이긴 하다. 하지만, 그나마 잠시라도, 일시적으로라도 서로에게서 쉼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원은 쉼터가 될 수 있고 보호막이 될 수 있다. 

 

 

류시화의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표지
류시화의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표지

 

 

 

 

 

내가 가진 원은, 내가 그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원은 때론 감옥이 될 수도 있고, 때론 울타리, 쉼터, 보호막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인간의 내면, 인간이 가진 보이지 않는 원은 하나의 소우주(Microcosmos)이다. 나의 소우주, 너의 소우주가 만나면 반드시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나의 소우주의 질서와 너의 소우주의 질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양파껍질로 둘러싸인 소우주인 셈이다. 결국 양파껍질을 벗겨내느냐? 아니면 양파껍질을 더 겹겹히 쌓이게 하느냐? 이것의 문제인 듯 하다.

 

 

 

 

 

오늘은 류시화의 시 중에서 '원'에 대해서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사람마다 가진 원, 그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원이 감옥이 될 수도 있고, 보호막이나 울타리나 피난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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