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의 신간 <문장과 순간>이 나왔습니다. <여덟 단어>를 읽었을때 굉장한 도전과 감동을 받았는데요. 그래서 구매한 <문장과 순간>에서 이런 글이 있어 이야기해 봅니다.
박웅현은 제일기획에서 광고일을 시작하여 수많은 카피를 남긴 크리에이티브한 인물입니다. 박웅현이 이번에 쓴 <문장과 순간>은 자신이 평소에 읽고 발췌하고 기록한 글과 자신의 사색을 콜라보하여 엮은 책인데요. 사람이 유명해지면 모든 게 자산이 되는구나 싶네요. 게중에 자신이 읽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중에서 이런 문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은
절망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생은 언제나 희망과 절망을 오갈 수 밖에 없는 생태계와 구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데요. 절망이 습관이 되어버린다면,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은 정말 절망 그 자체 보다 더 나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냥 마음에 와 닿아 적어봅니다.
문득 계절과 절망을 연결시켜보면 말이죠.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 다를텐데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여러분은 어떤 계절을 최애하시나요? 봄이 계속될 것 같지만, 여름이 어느새 들어서고, 여름의 태양이 작열해서 숨이 막힐 것 같지만, 어느새 가을비와 가을바람이 우리를 시원하게 합니다. 그 가을이 좋아서 붙잡고 싶지만 어느순간 그렇게 자태를 뽐냈던 모든 대자연의 잎들이 낙엽이 되고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면서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합니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너무나 혹독한 추위로 인해 절망할 수 있지만,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하는 것처럼 절망도, 희망도 순환하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절망도 없고, 영원한 희망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카뮈가 이야기한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 우리에게 해롭다는 뭐 그런 적용도 되는 것 같네요.
가을하늘을 한번 찍어 봤습니다.
이번주부터 부모님의 대추 수확시기가 다가와서 제가 부랴부랴 고향으로 출발했는데요. 고향의 하늘은 언제나 아름답고 정겨운 것 같습니다. 그게 가을하늘이니깐. 여름의 절망을 날려버린 푸르른 희망의 하늘이라고 이름 붙여 볼까요?
집 앞에 붙박혀 있는 단감나무입니다. 이번 가을도 변함없이 색감을 내면서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고향을 방문하니 반갑다고 얼굴을 붉히는 착각(?)을 하게 하는데, 고향집 앞에 있는 이 단감나무는 한번도 저희를 실망시킨 적이 없네요. 언제나 가을이 되면 열매로 우리를 보답해 주었습니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가 봅니다. 하지만 지난 여름 태풍과 홍수의 피해를 입은 재해민들을 보면 자연이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만을 주는 것은 아닌 듯 한데요. 자연이 주는 경고인 것 같기도 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자연이 우리에게 늘 열매와 안식과 공기와 맑음과 빗방울을 제공해주긴 하지만 때론 화가 날 때가 있다는 것, 그걸 절망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자연은 두 얼굴을 가진 듯 한데, 그런 측면에선 희망과 절망을 빗대어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두 얼굴을 가진 건 사람 따라올 피조물이 어디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연히 차를 주차하다가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았습니다. 대개 이쁘지는 않은데, 가을만 되면 이렇게 고개를 내밀고 아무렇게나 펴 있는 코스모스는 언제나 봐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찍어 봤습니다.
어릴적 학교를 걸어서 다녔는데 그 비포장도로 위에 코스모스가 한없이 수놓아져 있었다는 기억이 나는데요. 코스모스는 정말 너무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뷰를 무료로 관람하게 해 주면서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흔들거리면서 인사를 하는 듯 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대추수확을 돕다가 점심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휴식은, 점심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너무 행복해서 그 맘을 어떻게 표현할 까 하다가 열심히 일하고 난 장갑을 나무에 걸어두고 식사하러 갔습니다. 점심시간의 행복, 잠깐의 행복과 해방감과 힐링을 이렇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워낙 화이트칼라 일만 했던 제게 블루 칼라의 일은 부담이 됩니다. 부모님은 한평생 그렇게 흙과 부대끼면서 사셨는데, 전 그게 너무 부담이 되었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부모님의 업을 도와드리는 차원에서 몸을 쓰긴 하는데,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깐 갑자기 굉장히 달콤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완전 방전된 느낌인데, 온 몸을 다 쓰고 난 후의 카타르시스같은 느낌이랄까요? 한동안 절망을 친구로 살았던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그 절망의 터널을 견뎌나올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게 관심을 가지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부모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정말 나는 카뮈가 말했던 것처럼 '절망이 습관이 되어버린' 채 살아갔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오늘도 감사하고 돌아왔던 카알입니다. 홈트 보다 더 강렬한 근육운동은 부모님과 함께하는 가을수확 육체운동인 듯 합니다.^^
몇일 동안 포스팅할 힘과 여유가 없는데, 오늘은 어찌어찌 구역구역 넋두리를 포스팅해 봅니다. 가을하늘 너무 좋은데요. 가끔 하늘을 보면서 여유도 찾고 절망이 습관되지 않게 하루 하루를 생활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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