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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장길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6. 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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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 게재된 <시장길>이란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장길에 대한 통념적인, 보편적인 시각을 나태주 시인이 시인으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시장길



모처럼 시장에 가 보면
시끌벅적한 소리와
비릿비릿한 내음새,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와 소리들,
별로 살 물건 없는 날도
그 소리와 냄새 좋아
시장길 기웃댄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길 정말 살고 싶지 않을 때, 내가 인생에서 제일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그때 찾아가야 할 곳이 시장이라고 합니다. 재래시장에 가보면 거기서 들려오는 시장사람들의 살아있는 삶의 냄새가 구수하게 푸근하게 저미어 온다는 것입니다. 시장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그렇게 생활하지 않습니다. 흥정하고 장사하지 않습니다. 그냥 소소하고 사소한 금액들을 네고하면서 흥정을 합니다. 거기에는 

 

 

-시끌벅적한 소리

-비릿비릿한 내음새

 

 

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이란 공간 VS 경마장, 도박장이란 공간

시장길은 경마장이나 도박장의 사람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경마장과 도박장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담배냄새에 찌든 고약한 냄새와 체취이지만, 시장길의 사람들의 냄새는 그냥 신박합니다. 왜냐하면 욕망의 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경마장이나 도박장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탐욕은 과히 지나칩니다. 도를 넘어섭니다. 그래서 경마에서 지거나 도박에서 진 사람들의 뒷끝은 너무나 참담합니다. 일례로, 경마장에서 승부에 진 이들이 버려놓은 경마표(그걸 뭐라고 하나요?)를 버려두고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것이죠.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있죠.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죄-사망, 이렇게 연결고리를 짓고 있습니다. 마치 한 아이가 성장하는 것처럼, 욕심이 태어났고, 죄를 낳았는데, 그 죄가 장성해서 성장하니 종국적으로는 사망을 낳는다고 합니다. 욕망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죠. 욕망의 끝은 사망 즉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블랑쉬: 사람들이 제게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서, 묘지란 이름의 전차로 갈아 탄 다음 여섯 블록을 가서 내리면 이상향이라던데.
유니스: 여기가 바로 그곳이예요.
블랑쉬: 이상향이란 말인가요?
유니스: 바로 이곳이 이상향이예요.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면, 묘지란 이름의 전차로 갈아 탑'니다. 욕망이 탈 수 있는 기차는 죽음이라는, 묘지라는 전차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성경의 결론이 그렇게 말해줍니다. 굳이 성경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생에 있어 욕망의 끝은 비루하며 욕망의 결론은 언제나 파멸이고 멸망의 죽음이 아니던가요? 그래서 욕망의 냄새와 소리는 노이즈가 강하며 비루합니다.

 

 

Tennessee Williams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대한 paper는 여기에

https://blog.naver.com/karl21/221344265376

 

Karl21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네이버 블로그

누군가를 영원히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blog.naver.com

 

 

 

 

하지만, 시장길의 모든 것을 나태주 시인을 이렇게 말합니다.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와 소리들,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욕망이 존재합니다. 그 욕망이 크든, 작든...시장바닥의 사람들도 왜 욕망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거긴 도박장이나 경마장의 죽은 소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와 소리들' 존재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에겐 소소한 일상을 부여잡고 생계를 위해 발버둥치지지만 욕망이 보이진 않습니다. 시장길에는 욕망 보다는 욕구가 가득해서 오히려 수수해 보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살고자 하는 욕구, 먹고자 하는, 팔고자 하는, 사고자 하는, 깎고자 하는 욕구, 욕망 보다는 한참 레벨이 낮은 욕망이 제어된 욕구가 존재해서 그런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삶이 둔탁하고 답답할 때 가끔 시장길에 가서 바람 쐬고 오는 것도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간다는 것,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과 활력을 시장 바닥에 누려보길 바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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