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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쓴 자작시 '꽃비', 아버지의 감상과 해석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4. 4. 2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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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아들이 자작시를 썼다고 하는데, 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굉장히 칭찬을 하셨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시인가? 제목은 '꽃비'인데요. 아들이 쓴 시를 보고서 눈물이 울컥했던 감동이 있었는데요. 아들이 쓴 '꽃비' 한번 들어보실래요?

 

중학교 아들이 쓴 꽃비, 자작시
아들이 쓴 자작시, 꽃비

 

 

 

아들이 쓴 자작시, 꽃비

 

꽃비

 

너는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마치 바람은 남의 모습처럼 보인다

너는 나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내가 대답하기 힘든 모습

아니면 

바람이 선택지는 주는 것 같다

 

꽃비는 여러 방향으로 떨어지니까

바닥에 떨어진 모습은 내가

대답하지 못한 순간들  같다.

 

 

 

아들의 자작시, 꽃비에 대한 아버지의 감상과 해석

이 시를 적을 때는 봄이었다. 지금도 봄이긴 하지만 벚꽃이 마구 휘날리는 그런 벚꽃만발의 시기였다. 벚꽃이 나부대는 계절에 아들이 학교에서 시를 적었다. 아들의 자의로 적은 것은 아니겠지만. 아들이 벚꽃이 만발하는 자연현상에 대해서 '꽃비'라고 적은 것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흔히 벚꽃이 휘날리는 대목을 보면서 꽃눈이라고는 하는 데, 꽃비라고 하다니. 아들의 언어선택의 감수성을 칭찬하고 싶다. 그런데, 이 꽃비가 이 시의 분위기와 왜 어울리느냐 하면 꽃눈은 떨어질 때 느낌이 덜 슬픈데, 꽃비는 땅에 떨어지면 말 그대로 서글픈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아들은 벚꽃이 날리는 것을 꽃비라고 표현하면서 꽂이 이리저리 날리는 장면을 연결시키는데, 그 꽃비의 클라이막스는 떨어지는 대목이다.

 

먼저 1연에서 바람-꽃비를 대조시키면서 바람은 '남의 모습'이고, 자신은 '꽃비'에 대입시키고 있다. 

'너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내가 대답하기 힘든 모습'

이라고 적고 있다. 

자신은 꽃비, 바람이 선택지를 준다. 꽃비는 바람에 의해 자신의 향방을 정해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꽃비. 아들이 '바람이 선택지는 주는 것 같다'라고 하지만, 여기서 '바람이 선택지를 주는 것 같다'라고 하거나 '바람은 선택지는 주는 것 같다'라고 하지 않고 '바람이 선택지는 주는 것 같다'라는 말이 바람에 의해 꽃비의 운명이 결정되는 그 '선택지'에서 조금은 어쩔 수 없는 황망함을 그린다고 할까? 꽃비이기 이전에 꽃이 나무에 달려 있거나 줄기에 달려 있을때는 자신의 존재를 맘껏 발산할 수 있지만, 바람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나무나 줄기에서 떨어질 때 그 아쉬움과 슬픔이 '선택지는'으로 연결된다고나 할까?

 

'꽃비는 여러 방향으로  떨어지니까

바닥에 떨어진 모습은 내가 대답하지 못한 순간들 같다'

 

꽃비는 이리저리 날아가다가 바닥에 떨어지는데, 시를 적은 아들은 마지막 대목에 자신의 감정을 극대화시켜 대입시키고 있다. 아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딸이 오빠가 시를 적었는데 엄청나다면서 중심 주제를 이야기하고서 놀랬는데, 이 시를 보고서 더 감동받고 눈물이 울컥했다. 

 

'바닥에 떨어진 모습은 내가 대답하지 못한 순간들 같다'

 

 

 

 

아들이 시를 적게 되었던 과거의 트라우마 사건

아들이 초등학교 때였다. 유독 극I에 속하는 아들은 내성적인 경향이 심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대답을 잘 하지 않았다. 부모가 물어도 아들은 제때 제때 대답을 잘 하지 않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질문을 하다가 너무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으니 열받아 화가 나서 막대기를 세게 쳐서 부러진 기억이 있었다. 선생님도 화가 났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 화가 났다. 학교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면담을 해서 사과는 받았지만, 그게 아들에게 엄청나게 큰 상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은 그때 그 기억을 '트라우마'라고 했다. 

 

아들이 점점 크면서 원래는 굉장히 왜소하고 마른 체구였는데 중학교 들어가면서 엄청 커졌다. 키도 크고 덩지도 커졌다. 아빠 옷을 입어도 될만큼의 육체적인 사이즈가 커지면서 아들의 정신적인 크기도 조금은 커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시를 통해 자신의 답답함을 표현하는데, 아들이 자신이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들 꽃비에 대입하면서 주위의 사람들보다 자신이 제일 더 답답하다는 것을 표현했다. 벚꽃 잎이 떨어진다. 바람에 의해 떨어진다. 그리고 그게 꽃비로 날리다가 마치 비가 와서 물기가 젖은 꽃들은 이제 더 이상 거동하기  힘든 지경이 된다. 꽃비가 이제는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썩어질 것만을, 사라질 것만을 기다리는 순간이 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모습은 내가 대답하지 못한 순간들 같다'

 

아들의 미친 감수성에 내가 놀라 너무 흐뭇했던 순간이다. 아빠의 감수성의 DNA를 조금은 물려받았나 싶기도 하다. 아들은 늘 혼자서 스마트폰만 가지고 게임만 하고 방에서 잘 틀어박혀 나오지 않아서 늘 답답했는데, 자기도 나름대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어른이, 부모가 미리 속단하는 것은 금물인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랄드가 그의 '소설작법'이란 책에서 소설의 소스나 재료가 되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 '트라우마'(콤플렉스)라고 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남들이 느낄 수 없고 경험하지 못했던 쓰디쓴 경험과 체험이 오히려 창작의 좋은 재료가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오늘은 중학교 아들이 쓴 자작시 '꽃비'에 대한 소개와 꽃비에 대한 감상과 해석,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 보았다. 아이들의 잠재적인 포텐셜에 대해서 어른이 미리 속단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며 아이들도 어른들만큼 사유하고 생각한다는 것을 자작시를 통해 알아보았다.

 

 

 

자작시 '나 혼자 아니야'

막내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면서 느낌 감상이 순간 스치고 지나가길래 시를 한번 적어봤습니다. 정말 순간적으로 스치는 문장들을 살짝 자작시로 만들어 봤는데요. 제목은 '나 혼자 아니야'입

karl21.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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