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병욱의 실화장편소설 <세 남자의 겨울> - 현실부적응자 세 사람의 현실적응기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2. 8. 5. 18:35

본문

오늘은 블로그활동을 통해 알게 된 작가, 이병욱님의 <세 남자의 겨울>이란 실화장편소설에 대한 리뷰를 포스팅합니다. 이병욱 작가는 교직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에 이전에 쓰고자 했던 소설쓰기로 작품을 냈는데, 이 책은 그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이병욱 작가의 <세 남자의 겨울>은 대놓고 ‘이병욱 실화 장편소설’이라고 소개합니다. 실화라고? 작가님께서 친히 작품집을 보내주셔서 비천한 제가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과연 어떤 리뷰를 쓸 수 있을지, 또한 실화라고 하니깐 작가님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있지만, 책은 읽은 독자로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이병욱의 세번째 신간 실화장편소설 세 남자의 겨울
이병욱의 세번째 신간 실화장편소설 세 남자의 겨울

 

 

이 소설은 1974년~197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현실부적응자 세 사람의 현실적응기

첫번 째 남자는 바로 작가의 부친(故 이형근님)입니다.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소유한 아버지(병욱의 조부) 덕에 유복하게 자란 집안의 차남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제 치하에서 조선총독부로부터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에 차출됩니다. 조선총독부의 명령에 불응한다면, 할아버지의 사업체들에게 규제가 가해질 것이 뻔했습니다. 장남도 있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 봐서는 장남 보다는 차남의 징용을 불가피했습니다. 가미가재 특공대는 말 그대로 자살부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자폭하는 부대인데요. 자신의 조국도 아닌 침략자 일본 제국의 욕망을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하는 부친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 가운데 하루하루 군복무를 하였는데, 다행히 두 달만에 천우신조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일본이 전쟁에서 지면서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면서,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또 다시 6.25전쟁이 터지면서 병욱의 조부이자, 이형근의 부친은 북에서 넘어오지 못하게 되고 많은 재산들만 형제의 몫이 됩니다. 그 많은 부동산과 재산을 잘 운용했음 좋으련만 당시에 대학까지 나온 부친은 연극영화과를 졸업합니다. 그리고서 그 많던 재산을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활동에 투자하고 나중에는 그 야산까지 팔아 김유정문인비 건립자금을 대는 등 예총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의 무능을 폭로하기라도 하듯 그 많던 재산을 다 탕진합니다.

 

 

‘의암호반에 펜촉 모양으로 선 김유정 문인비는 이제 아버지의 현실적인 무능을 입증하는 증거물처럼 되었다’(77p)

 

 

당시에 전화기가 집에 있을만큼 재력을 과시할만한 집안이었지만 나중에는 전화요금도 늘 연체되어서 결국은 해지할 수 밖에 없는 궁핍한 가정형편에까지 내려갑니다.

재정적으로 너무 큰 타격을 입은 부친과 가족들은 당시에 흔했던 연탄가스자살을 계획했는데요. 좁은 방에서 5남매가 ‘콩나물처럼 뒤엉켜 자던 새벽’에 부친은 아내에게 가족전원자살계획을 모의합니다.

 

 

아내(병욱의 모친)가 적십자사에 취직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기로 감행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곤핍했던 시기였는데 다행히 아내가 취직을 하면서 집안 생계가 근근히 이어지게 됩니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부친과 모친의 선남선녀의 결혼식, 그 당시에 부유한 집안의 대학졸업자 부친과 고등학교 졸업자 모친의 결합은 화려한 장밋빛 미래를 예고하는 듯 했습니다만. 하지만, 부친의 생활력과 현실감각이 너무나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연탄직매소도 차렸지만, 그 또한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친은 또 다른 탄광사업에 관심을 돌리면서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가족들의 집 전세보증금까지 갉아먹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리자 모친은 그나마 교류하지 않았던 부친도 모르게 아이들과 이사를 하고서 남편과 손절하고 가족들을 책임지게 됩니다. 부친은 자신이 이제껏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사업들과 그로 인한 손실을 새로운 사업을 벌임을 통해 만회하여 가족들을 호강(?)시켜주고자 하는 가장이었지만 그 모든 제스쳐가 가족들에겐 고통이었습니다. 부친의 이런 무모하고도 비현실적인 사업, 사업변경(전환)에 결국 큰 아들, 병욱까지도 분노가 폭발하여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병욱은 집은 나가버립니다. 모친도 이제 완전히 남편으로부터 등을 돌리고야 맙니다.

 

 

 

 

 

1950년 6.25동란이 터지기 2년 전에 결혼한 병욱의 부친은 가미가재특공대에서 복무한 이력을 활용하여

 

‘공군 창설에 참여했더라면 인생진로가 탄탄대로로 나가지 않았을까? 잘하면 공군 참모총장까지 하면서 우리 집은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게 됐을 게다’(186p)

 

라고 병욱은 푸념을 내비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전쟁 통에 부친은 제주도에서 겨우 공군에 입대, 공군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정훈 장교였습니다. 1.4후퇴 때 남편과는 따로 어린 딸(병욱의 누나)을 데리고 대구까지 피난을 왔다가 아들은 낳는데, 그 아들이 바로 병욱입니다. 1951년 2월에 추운 겨울에 아들을 출산한 모친은 남편이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제주도에 도착했더니 또 다른 기막힌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바로 부친이 바람이 난 것입니다.

 

 

‘하필 찾아간 그 날은 네 아범이 부대 근무를 하루 쉬는 날이라 했지. 내가 다방 레이지라는 그년의 머리채를 잡고서 난리를 한바탕 쳤지 뭐니.’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밑바닥부터 금가기 시작한 게 그 때부터가 아니었을까’(188p)

 

 

부친과 모친의 깊게 패인 골, 쌓이고 쌓였던 불신은 결국 이렇게 세월이 지나면서 넘사벽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병욱과 부친의 관계에 발전은 거의 없었던 차가운 겨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이제 무능한 경제력의 증거물이 너무나 많이 쌓여서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병욱의 누나가 한 번씩 부친을 불쌍하게 여겨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부친은 영원한 추방자의 삶을 살아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식구들한테서 얼마나 소외된 아버지였던가. 큰 아들이 가출해서 간 데가 먼 데가 아니라 바로 옆집이었는데 그 사실을 식구 중 누구 하나 일러주지 않아서 그렇게 강원대 캠퍼스까지 와 찾았으니.’(84p)

 

 

‘생 지옥도 그런 생지옥이 없었다. 춘천의 우리 교동 집에서 한동안 있었던 생지옥 소동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175p)

 

 

부친의 무능함과 허세는 하늘을 찔렀는데요. 무일푼의 누나 약혼식 날, 아내는 남편의 양복을 세탁소에 깨끗하게 클리닝해서 차려입기를 원했지만, 눈치가 없는 것인지 결국 예비사위의 돈으로 새 양복까지 맞춰 입고 약혼식을 참여했습니다. 현실성은 바닥인데, ‘내가 예총 도지부장을 할 때 말입니다’라고 하는 허장성세는 부친의 캐릭터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아버지가 누나를 시집보내면서 제대로 한 일이라곤 ’결혼식장에서 누나를 데리고 점잖게 걸어가 매형한테 인도한 일‘ 하나밖에 없었다’(94p)

 

 

신혼생활을 시작한 운교동 집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들러 용돈까지 받아가는 부친이었습니다. 경제적인 무능함은 온 식구의 체면의 비참함을 가져왔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우리‘에 들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런 당부까지 하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124p)

 

 

가족 모두가 시민 아파트로 야반도주 하듯이 아버지 몰래 이사한 탓에 부친은 누나의 집을 방문한다. 만약 거기 짐방에 아들 병욱이 생활하고 있지 않았다면 부친은 그 누나네 집에 같이 기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완전 소외된 부친은 현실부적응의 결과는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3년간 같이 지내면서 병욱과 부친은 대화를 딱 한번 했는데, 술기운에 취해 집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앞에서 병욱이 한 마디 합니다.

 

 

“니미, 나는 부모를 잘 못 만났어.”

 

 

이 말을 들은 부친이 왜 할 말이 없었을까요? 하지만 자신의 무능을 체감하면서 가족으로부터 왕따, 소외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 부친의 입에서 나온 말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나는...세상을 잘못 만났는데...”(218p)

 

 

부친의 뒤떨어진 현실감각은 가족들의 냉대와 외면을 통해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듯 한 데요. 예전 같으면 아들의 뼈 때리는 말에 자신의 화를 제대로 폭발시켰을 텐데. 부친은 지금 모든 것이 거세된 채 ‘나는 세상을 잘못 만났는데...’라는 말로 대구합니다.

 

 

 

 

 

 

두번째 남자는 바로 작가 자신 이병욱입니다.

작가가 실화라고 했으니 당연히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한 스토리가 가미되겠습니다. 병욱은 교대 졸업을 앞 둔 주인공입니다. 병욱은 고교시절 소설쓰기대회에서 2번이나 수상한 이력이 있어 장래 촉망받는 소설가 유망주로 가족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만. 집안의 열악한 상황은 그를 교대를 졸업하면 집안 경제에 보탬을 되는 가장의 역할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시점에 그는 우연히 자신이 미이수 학점이 두 과목, 교련과 독일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부랴부랴 간신히 이수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사실을, 당사자가 교생실습 나가 있는 것도 모르고 그냥 게시해 놓았을까? 아무리 어설픈 신생 대학이라도 너무했다.’(88p)

 

 

집안의 희망과도 같은 병욱의 교대졸업과 교사라는 벌이가 하마터면 병욱의 실수로 연기될 뻔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좁기도 좁고 춘천에서 제일 오래되고 낡디 낡은, 시민 아파트에서 나와 병욱은 누나네 집의 짐방에 거처를 두면서 생활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병욱을 찾아온 손님은 바로 불청객 이외수였습니다. 하나도 반갑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결국 소설쓰기에 대한 갈망도 공동생활로 인해 뒤죽박죽되고야 맙니다.

 

 

‘제기랄, 이 모든 사태의 출발은 아버지의 무능함이었다. 그렇다. 나는 아버지를 잘못 만났다.’(95p)

 

‘한 집에 부자가 살면서 어떻게 3년간이나 대화 한 번 나누지 않고 살 수 있냐?’(217p)

 

 

 

 

 

 

 

병욱은 고등학교 시절에 소설쓰기 입상에 대한 전리품에 집착한 나머지 대 작가가 될 꿈에 부푼 나머지 다니는 대학을 업신여기면서 학점관리도 제대로 못해 하마터면 졸업사정회도 통과하지 못할 뻔한 학생입니다. 병욱은 자신이 입학한 국어교육과가 자신의 소설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되길 기대는 했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야 맙니다. 병욱은 국어교육과는 ‘국어 교사로 발령 받기 위한 과’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그런 과에 대한 실망감에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고 이야기합니다.

 

 

병욱은 자신의 문장력을 키워준 13년 동안 쓴 일기장을 이사하기 전에 다 태워버리면서 허무를 느꼈습니다. 그는 엄청난 13년어치의 일기장 더미를 불태우면서 ‘대학 4학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소설 한편 쓰지 못한 침체의 죄’를 애꿎은 일기장에 묻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부터 다시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137p)

 

 

병욱의 현실진단은 과녁이 빗나가 있어 보입니다. 13년 어치 일기장을 태워버린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때론 우리의 화풀이가 필요한 법이기도 합니다.

 

 

 

병욱은 졸업을 앞 둔 시점에 형인 이외수가 영광 연탄직매소에서 더 이상 기식할 수 없게 되면서 다시 또 거처를 옮긴 곳이 장호의 하숙집이었는데, 그 하숙집이 있는 동네가 병욱의 첫 사랑 영미네 집 한 집 건넛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병욱은 자신의 실패한(?) 첫 사랑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자신의 첫사랑을 비극이라 칭하면서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병욱은 자신의 비극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희화화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듯 합니다. 영미와 시작된 첫 사랑은 사람들의 이목과 눈총을 피하기 위해 야산에서 늘 만남을 유지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영미는 이제 병욱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바칠 준비를 합니다.

 

 

“오늘 밤, 모든 걸 다 바치기로 마음먹었어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뭘 망실이겠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고이 간직한 처녀성을 스스로 포기한데서오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병욱은 오히려 이 순간 그녀를 가지고 사랑의 도장을 찍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냐, 그러지마. 나는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이렇게 둘러대자, 영미는 “당신은 정말 착한 사람이야. 사람들은 그걸 몰라.”

 

 

라고 대구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열어제친 여인 영미를 향해 병욱이 오히려 뒤로 한발짝 물러선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은 현실감각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다가 임신하게 되면 어떡하냐? 그러잖아도 아버지의 실직이 오래가면서 집안 사정도 힘겨운 판에 내가 임신사고까지 낸다면...집안은 쑥밭이 될 게다.’

 

 

병욱의 첫사랑 영미에 대한 절박함과 열정은 결국 쓸데없는 현실타령(?)으로 인해 흐지부지됩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선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라고 병욱은 말했지만, 영미는 자신이 거절당한 듯한 느낌에 그 날 밤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방학중에 연락하겠다고 합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더 이상 야산에서 만남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것저것 다 조건을 따지면 더 이상 만남을 유지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죠. 두 사람의 침묵기간 속에 당시 연락수단이 엽서라도 한 통 보냈어야 하지만 병욱은 그러지 않았고 별 생각없이 병욱은 단체미팅에 나갔는데 미팅에 나온 여학생 중에 영미의 친구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렇게 어줍쟎은 사건으로 인해 헤어지게 됩니다. 결별통보를 받은 한 달 후 고려대 학생들과 단체 미팅을 사회교육과 2학년 여학생들이 했는데, 그 중 한 쌍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여학생 이름이 김영미였다고 병욱은 아쉬운 대목을 쓰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여전히 야산을 떠나지 못한 것 같은 자괴감’

 

 

병욱의 현실부적응기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대작가를 꿈꾸지만 대학의 현실은 자기의 욕구를 채우지 못했고 첫 사랑 영미와의 사랑도 아쉬움만 가득 안은 채 후회할 여지만 가득 남기고 맙니다. 현실을 부적응하면서도 그 현실에 적응하고자 하는 어줍쟎은 무의식의 희생양이 자신의 첫사랑이 되고야 말았던 것일까요?

 

 

 

 

 

 

 

세번째 남자는 바로 소설가 이외수입니다.

 

“웬 거지같은 사람이 낮에 와 너를 찾는 것 같더니만...그 사람이냐?”

 

 

‘웬 거지같은 사람’이 바로 이병욱과 교류했던 소설가 이외수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 이외수의 젊은 시절의 암흑기를 그려주는 대목인데요. 이외수는 가정적인 상황으로 혼자 생활하다가 산골짜기 분교의 소사도 그만두고 그토록 추운 겨울에 어디 갈데도 없어 찾아온 곳이 바로 이병욱의 누나네 집 기생생활이었습니다. 남의 집에 들어온 주제에 아랫목을 차지한 이외수, 병욱에겐 형이 되는 셈입니다.

 

 

‘그 뿐 아니다. 이 짐방에 관한 한 우선권이 있는 나는 차가운 데에 앉아 있는데 형은 그나마 온기가 있는 아랫목에 앉아서 미코노스 항구 타령을 하는게 아닌가? 어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얄밉기까지 했다.’(66p)

 

 

이외수의 이 당시의 라이프스타일은 정말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장호의 하숙집 뒷방에서 이외수가 한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 눈에도 안 띄고 대낮부터 소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어도 되는 이 뒷방에서 평생 살 수는 없을까?”(164p)

 

 

술자리를 좋아하고 그림그리는 것에 재주가 있어서 그림으로 뭔가를 해보고자 했지만 그림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교대를 들어가라는 이외수의 모친(계모)의 생각에 전적으로 반대하면서 2년만에 졸업하는 교대를 10년 동안 다니면서도 결국은 졸업을 하지 못했던 이외수였습니다. 정말 답이 안 보이는 세대인데요. 그렇다고 대단한 대의명분이나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이외수입니다. 병욱의 누나네 짐방에 겨우 얹혀서 지내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가 보여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외수의 생존은 너무나도 잘 버텨냈습니다. 이외수는 고향에서 생활비가 오지 않아 방법이 없던 차에 너무 배가 고파 개집 앞 개밥그릇에 담긴 밥을 긁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외수의 이름의 기원은 이러했는데요.

1945년 경남 진주 사범학교의 한 남학생이 한 여고생과 사랑에 빠졌고 대책없이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른바 ‘고딩엄빠’가 됩니다. 집에서 몰래 아기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출산후유증으로 아이를 낳은지 석달 만에 산모가 죽고야 맙니다. 현실감당이 불감당인 남학생은 이 갓난아기를 처가에 맡기고 겨우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으니, 외가에서 키운 아이라고 외가의 ‘외’자를 따서 ‘외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외수의 인생은 자신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간 아버지의 가족과 물과 기름처럼 섟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외수가 아버지의 강원도 인제 집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지난 과거를 다 잊고서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자식을 넷이나 낳은 상태, 오갈 데 없는 아이와 할머니가 한집안 식구로 합류하자, 평온했던 집안은 복잡한 갈등의 집합소처럼 돼 버렸다. 졸지에 계모가 돼 버린 여자도, 가장으로서 면목 없게 된 아이의 아버지도, 없던 이복 형이 생긴 자식들도, 며느리의 눈칫밥을 먹으며 살게 된 아이의 할머니도, 연유야 어쨌든 ’환영받지 못하는 업둥이‘꼴이 돼 버린 아이도, 모두가 한 집에 사는 기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108p)

 

 

병욱이 74년에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교사로 발령을 받아 하숙방에 있을 때 형인 이외수는 병욱에게 편지를 하나 보내는데요. 그 편지의 의미는 말 그대로 삼척에 있는 자신의 하숙방에 기식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외수가 만약 병욱의 하숙방에 같이 생활하면 교사생활을 하기 힘들 것은 뻔했기 때문에 병욱은 천신만고 끝에 국어교사가 된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더 이상 편지 보내지 말 것. 형은 우리 아버지의 축소판일 뿐. 이만. 1974.4.18.”(235p)

 

 

끊임없이 현실에 적응하고자 하는 아웃사이더 이외수의 좌충우돌 현실적응기는 이렇게 병욱의 손절의 벽에 부딪히고야 맙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의 사연 가운데서 태어난 이외수의 이런 가정사를 통해 이외수라는 한 인간이 이렇게 겉돌 수 밖에 없는 방랑자로 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어찌 보면 가슴 아픈 노릇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버지, 병욱, 이외수- 이 아웃사이더Outsider들 누가 누굴 욕할 수 있으랴?

 

“내가 들어봐도 영 신뢰가 가지 않는 얘기이긴 해. 하지만 어떡하냐? 아버님이 돈 한 번 왕창 벌어서 식구들 고생도 그만 시키고, 일생에 남을 멋진 연극 한 편도 무대에 올려보는 게 소원이시라는데...문제작이 될 대단한 소설 한편을 쓰고야 말겠다는 너하고, 부자가 어쩜 닮았냐? 하하하.”

 

 

 

이외수가 병욱에게 이야기한 대목인데요. 인생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보게 되면 당사자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우리 아버지도 만만치 않거든. 병욱이 아버님과는 다른 차원의 걱정거리를 만든 죄인이지.”(107p)

 

 

병욱의 부친도 문제투성이였지만, 고딩엄빠로 시작해 태어난 이외수, 그리고 이외수의 부친 또한 문제투성이, 하지만, 그들을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냉정하고 비판하고 싶은 시선 보다는 따뜻한 시선처리가 요구되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누구에게나 겨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그들이 겨울이었다.'

 

 

누구에게나 겨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영원하진 않습니다. 겨울이 벼랑의 끝이고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속될 것만 같은 겨울의 냉혹함도 시간이 지나면 겨울을 깨우는 봄 햇살이 존재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겨울 안에 존재하는 뜨거운 여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겨울에야 나는 내 안에 여름이 계속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알베르 카뮈

 

 

 

작가 이병욱님이 보내주신 장편소설 세 남자의 이야기
작가 이병욱님이 보내주신 장편소설 세 남자의 이야기

 

 

이병욱 작가의 세번째 신간 <세 남자의 겨울>리뷰를 남겨보았는데요. 故 이외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고, 이병욱은 교편을 은퇴후에 소설가로 자리매김하셨으며, 부친은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겨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