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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종이달' 드라마 3개의 실화 사건 바탕(ft.시가은행 9억엔 횡령사건)

탐독: 탐미/TV 프로그램

by 카알KaRL21 2023. 5. 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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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드라마는 불륜과 불법 횡령과 배임 등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스토리인데 실제로 일어난 일본의 3개의 실화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세가지 사건을 알아보고 특히, 시가은행 9억엔 횡령사건을 한번 알아볼께요.

 

 

일본 종이달 드라마 3개의 실화사건 바탕
일본 종이달 드라마 3개의 실화사건 바탕

 

일본 '종이달'(2014) 5부작으로 NHK G에서 방영

2014년 1월 7일부터 2월 4일까지 NHK G에서 방영되었고 총 5부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소설의 결말과 다른 점은 주인공 리카의 1억엔 횡령 사건 이후 남편이 메스컴을 통해 다 자기 잘못이며, 리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돌아오면 리카와 함께 죄값을 치르고 싶다는 매스컴의 언급, 그리고 리카가 국경선을 넘어가려고 하자 국경 경찰이 다가오는 리카를 보면서 국제 수배 인물로 인쇄된 듯한 파일을 들고서 리카를 확인하려고 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때 “저는 우메자와 리카입니다”(My name is Rika Umezawa)라고 말하며 끝납니다.

 

 

 

원작과 영화, 그리고 한국 드라마의 차이

일본 원작에서 돈을 소액으로나마 횡령하게 된 최초의 원인이 ‘어린 남자 친구’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품을 비싸게 주고 샀다‘면, 영화에서는 ’내가 더 잘 났다는 것을 어린 남자친구에게 과시하기 위해 화장품을 비싸게 주고 샀다‘로 나옵니다.

 

ENA드라마 종이달의 주연, 김서형(출처: Genie Original Insta)
ENA드라마 종이달의 주연, 김서형(출처: Genie Original Insta)

 

심심한 천국에서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쇼윈도 부인에서 이제는 은행의 영업사원으로 두각 나타내면서 은행의 돈을 횡령하기 시작하면서 능력없는 연하남을 도와주는 것, 즉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어떠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은 리카의 심리나 한국 드라마 '종이달'에서 유이화가 보여주는 심리는 좀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유이화(김서형 분)가 보여주는 연기는 대단하긴 하지만, 고독하고 외롭기 그지없는 심심한 천국과 같은 쇼윈도 부부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경단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직장에서 우수한 실적으로 성공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헛헛함과 지루함을 지우기에는 모자랐던 걸까요? 결국 유이화는 젊은 연하남, 그것도 VIP사채업자의 손주에게 빠져들고 마는데요. 제가 이걸 보면서 그냥 뭐랄까? 중년 여성, 유부녀가 젊은 남성에게 빠지면 이렇게 될까? 그런 의구심이 들면서도, 반대로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빠진다면?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그런데, 아래에 실제 사건 '시가은행 9억엔 횡령사건'을 보니 조금 이해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김서형이란 배우가 주는 느낌이 있는데, 불륜의 금지된 영역에서 연기를 하게 되니 어색한 모양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SD저축은행이라는 게 아마도 2류, 3류은행이다 보니 요즘 시대의 분위기와는 조금 언밸런스한 느낌이 있기도 하고 현금을 그렇게 엄청나게 모아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제가 알지 못하는 부류의 레벨에 있는 이들은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약간 시대와는 어색한 느낌의 요소가 있다고 할까요? 김서형이 연기를 잘 하는 것은 맞습니다. 돈을 횡령하고 늘 불안해하는 김서형의 모습을 보니 숨이 막혀 이 드라마를 계속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종이달의 세 가지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원작 소설이 실화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일본 웹에서는 한 가지 사건만이 아니라 세 가지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연하의 남자친구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부자인 척하려고 공금을 횡령했으며 그 사실 또한 남자친구에게 숨겼지만 실제 사건의 경우에는 남자가 먼저 돈을 요구했고 횡령에 같이 가담했고 부추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유부녀도 아니었고 결국에는 모두 체포되어 죄값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 -시가은행 9억엔 횡령 사건(1973년)
  • -이시카가 은행 2억 1천만엔 횡령 사건(1975년)
  • -산와은행 1억 8천만엔 횡령 사건(1983년)
 

 

 

 

실제사건 "시가은행 9억엔 횡령사건"1)

 

  • 1973년 10월 21일

시가은행 야마시나지점의 베테랑 은행원 오쿠무라 아키코(당시42세)가 횡령의 용의자로 체포 되었다. 오쿠무라는 같은해 2월까지 6년간 약 1,300회에 걸쳐 9억엔의 돈을 횡령하였고, 그 대부분을 10세 연하의 전직 택시운전수 야마가타 겐지(당시32세)에게 주었다.

 

 

 

  • 1948년

오쿠무라는 1930년 12월에 오사카에서 세자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은 그 뒤에 교토로 이사하여, 오쿠무라는 1948년 3월에 시립호리카와여고를 졸업했다. 학제개혁이 있던 시기라 오쿠무라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지만 7월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내연녀와 함께 집을 나가버린 일로 남자를 불신하게 된 어머니가 남녀공학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해 12월, 오쿠무라는 시가은행 교토지점에 입사했다. "남자에게 지고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일에 매진했다고 한다. 한편, 연애에 대해서 말하자면 남성혐오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혼담도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1965년

1965년 봄, 기타노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쿠무라는 35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쯤 야마가타 겐지(당시25세)와 만나게 되었다. 당시 오쿠무라는 사귀던 남자와 싸우고 냉랭해있던 시기라, 회사 회식 후 귀가하던 택시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때 "무슨 일이세요"라고 상냥하게 물어 봐 준 젊은 택시운전수가 야마가타이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쿠무라가 "취해서 돌아가면 어머니가 잔소리 할 테니 드라이브하자"고 했다. 30분정도 교토 시내를 달렸고 오쿠무라는 택시에서 내리며 "xx은행의 오쿠무라 아키코에요"라고 다른 은행 이름을 말하고 떠났다. 부드럽게 말을 걸어준 야마가타를 매력적이라고 느끼고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서 거짓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 1966년 봄

오쿠무라는 그 후, 야마시나지점에서 근무하게 된다. 직무는 보통예금담당이었다. 1966년 봄. 오쿠무라는 귀가하던 도중에 버스 안에서 "아키코씨 아니에요?"라며 말을 거는 야마가타와 재회한다. 오쿠무라는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목소리로 기억을 떠올렸다. 야마가타는 경정(boat race)을 하다 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야마가타는 오쿠무라에게 차나 한잔 하자고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야마가타는 오쿠무라에게 '용돈을 많이 받기 때문에 도박에서 져도 상관없다'며, 형이 시모노세키에서 큰 회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야마가타는 말솜씨가 좋아서 오쿠무라는 그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정기예금의 모집기간이기도 해서 오쿠무라는 "우리은행에 저축해줘"라고 부탁했다. 오쿠무라는 그 날 이후로 몇번이나 야마가타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야마가타는 '연상의 예쁜 여자가 전화를 주다니 분명 놀리는거다'라고 생각을 했고, 그런 태도에 오쿠무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되어갔다. 딱딱하기만 한 동료들과는 전혀 달랐다. 두사람은 몇 번 식사를 하면서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야마가타는 1940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7남5녀의 다섯째로,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유리가게에서 살며 일을 하였다. 상업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그 때 즈음 친구 꼬임에 경정을 하게 되었다. 한편 야마가타는 가수라는 꿈이 있어 코 성형수술을 하고, 노래찻집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세련되기도 하여 당연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유리가게에서 6년간 일을 한 뒤 야마가타는 독립하여 도자기 가게를 열었지만, 경정으로 바로 가게를 날리고 택시 운전수가 되었다. 그 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였다. 매출의 납입금을 횡령했기 때문이었다. 오쿠무라와 버스에서 재회하게 된 것은 회사에서 쫒겨난 때 였다.

 

"경정을 할 돈이 필요해"

 

야마가타가 이렇게 말한 건 사귀기 시작하자마자였다. 처음엔 5,000엔, 1만엔 정도를 빌려갔다. 그 돈이 비록 돌아오지 않아도 오쿠무라는 좋았다. 하지만 요구는 몇 번을 거듭하며 결국 자신과 가족의 저금을 깨야 할 정도였다. 야마가타는 그 돈으로 중고 배를 구입하였다. 오쿠무라는 그런 야마가타에게 애정을 멈추지 않았다. 오쿠무라에게 있어서 야마가타는 이른바 "마지막기회"라고 할 남자였다.

그리고 그 연하의 남자를 묶어두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 1966년 가을

가을이 되어, 오쿠무라는 보통예금담당에서 정기예금담당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무렵 오쿠무라는 버스회사를 정년퇴직한 K씨라는 남자를 알게 되었다. K씨는 오쿠무라에게 노골적인 호의를 표시하였고, 오쿠무라가 정기예금의 팜플렛을 보여주자 K씨는 즉시 정기예금으로 100만엔 수표를 보내왔다. 오쿠무라가 정기예금의 증서와 인감을 건네려고 했지만, K씨는 받지않고 맡겨두었다. 그런 이야기를 오쿠무라가 데이트 중에 야마가타에게 말하자, 야마가타는 "100만엔이라고? 그 돈 어떻게 좀 안될까? 반드시 갚을게. 부탁해"라고 말을 했다. 오쿠무라는 그 때에는 "남의 돈에는 손 댈 수 없어"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좋은 차가있어. 사고싶어. K씨가 맡긴 돈 어떻게 안되겠어? 꼭 갚을게 조금만 빌려줘, 40만엔이라도 괜찮으니까"

 

야마가타와 드라이브를 할 때 잠시 들린 중고차 센터에서 그는 그렇게 졸랐다. 오쿠무라는 "안돼"라고 말하지 못하고, 결국 11월 8일 오쿠무라는 K씨의 정기예금을 위조증서로 중도해지하고, 100만엔을 인출한다. K씨의 정기예금은 6개월짜리였지만 야마가타는 빌린돈을 갚을 기미가 전혀 없었다. 조급해진 오쿠무라는 재촉했지만 "경정으로 크게 한방 해서 돌려줄게"라고만 하였다. 그 해 말, K씨는 은행을 방문하여 오쿠무라에게 70만엔 수표를 맡겼다. 또다시 증서 등은 맡겨두었다. 오쿠무라는 K씨에게 관심있는 척을 하며 그 후에도 착착 예금을 받아두었다.

 

 

  • 1967년

다음 해인 1967년 5월, 오쿠무라는 K씨와 육체적관계를 갖는다. 정기예금을 중도해지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야마가타는 그 이야기를 알게되고 발끈했지만 "그만둬"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결국 K씨는 총 계 1,240만엔의 돈을 오쿠무라에게 맡겼고 그것은 전부 오쿠무라에게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 1968년

1968년 1월, 변함없이 야마가타의 요구는 이어졌다. 시무식 날 야마가타는 은행에 전화를 걸어와 20만엔을 요구했다. 이 때에는 이미 K씨의 돈도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 돈을 긁어 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곤경에 처한 오쿠무라는 은행의 돈에 손을 댈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 자신이 맡고있던 정기예금 전표에서 20만엔 1년짜리를 발견하여 마침내 정기예금증서까지 위조하게 되었다. 지점장과 대리인의 직인이 필요했지만 기름종이를 사용하여 전사하고 20만엔을 가로챘다. 한번 금기를 깨면 죄의식도 흐려지는지 오쿠무라는 범행을 거듭했다. 그 수법도 점차 대범해져갔다. 정기예금의 중도해약으로는 충당이 되지않아, 가상의 명의를 만들어서 100만엔 단위로 인출하기 시작했다. 1972년 10월에는 정기예금사무결제자가 되어, 그 일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

 

 

  • 1973년

1973년 2월 1일, 지점을 이동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이동에 놀란 오쿠무라에게, 시모노세키에 있던 야마가타는 전화로 "수면제를 준비해두라"고 말했다. 오쿠무라는 동반자살을 각오했다고 한다. 그런데 8일에 교토에 온 야마가타는 오쿠무라를 만나자마자 돈을 재촉했다.

"같이도망가자, 같이 죽자, 나는 죽을거야"

 

오쿠무라는 몇번이나 그렇게 말했지만, 야마가타는 듣지않고 300만엔을 쥔 채 시모노세키로 돌아가버렸다. 2월 11일과 13일, 오쿠무라는 두번이나 시모노세키에 찾아가서 야마가타에게 "숨겨달라"고 애원했지만 거절당한다. 오쿠무라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 모습을 감췄다.

 

2월 19일, 구속영장이 나왔고 오쿠무라는 전국에 지명수배되었다.

 

당시 시모노세키에 있던 야마가타는 오쿠무라의 애인으로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다. 일정한 직업도 없는데 외제차, 모터보트를 몇 대나 가지고 있었고, 호화저택에 살고 도박과 유흥으로 1,000만엔을 쓴 다음 날, 다시 1,000만엔을 쏟아붓기도 하였다. 거기다 야마가타의 형과 모친도 갑자기 위세 좋게 사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 한 일이었다. 

 

10월 15일, 야마가타는 마침내 장물수수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시원하게 오쿠무라의 주소도 진술했다.

10월 21일, 시가현 경찰은 가명을 사용한 오사카의 아파트에서 숨어있던 오쿠무라를 체포하였다. 지명수배사진은 옅은 화장에 수수한 분위기의 여성이었지만, 그 때의 오쿠무라는 화려한 차림과 두꺼운 화장으로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결국 피해액는 4억8천만엔으로 파악했지만 두사람의 진술에 의해서 7억엔을 넘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 법원에서 인정한 금액은 8억9400만엔에 이렀다. 오쿠무라는 그 말도안되는 금액을 1,300회에 걸쳐서 인출했던 것이다. 또한 야마가타는 1970년 5월에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딸을 두고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녀가 부지런히 "애인"을 위해 돈을 빼내고 있을 때였다.

 

 

 

  • 1976년

1976년 6월 29일, 오쿠무라에게 징역 8년, 야마가타에게는 징역 10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또 은행에 대한 배상으로 오쿠무라는 1,000만엔 야마가타에게는 3,000만엔을 지불하도록 하였다. 오쿠무라는 와카야마여자교도소에서 복역을 하였는데, 입소때부터 이미 유명인이 되어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형무소내에서는 얌전하고 수줍어하는 분위기로 괴롭힘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세 개의 사건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이 시가은행 9억엔 횡령 사건이네요. 사건도 더 오래되었네요. 1973년이면 아무래도 전산시스템이나 보안이 허술했을 것이니깐 더 큰 금액, 사이즈를 횡령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9억엔이면 엄청난 사이즈의 금액입니다. 

 

주1) 참고자료  http://yabusaka.moo.jp/okumura.htm 번역한 https://blog.naver.com/justbeauty/220578695057

 

 

 

 

오늘은 일본 '종이달' 드라마가 3개의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그 세 가지 사건 중에 시가은행 9억엔 횡령 사건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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