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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힘이다(ft. 스물다섯 스물하나 & 영화 기적)

탐독: 탐미/TV 프로그램

by 카알KaRL21 2022. 4. 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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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타난 한 대목 중에서 나희도와 엄마 신재경이 가진 상처가 가진 양면성과 영화 <기적>에서 나타난 부자관계인, 이성민과 박정민의 트라우마 얘길 통해 '트라우마가 힘이다'라는 주제로 포스팅합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두 주인공&#44; 나희도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고 백이진이 옆에 앉아 있는 사진입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출처: TVING 홈페이지)
 


한동안 핫했던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가 종영이 되었다.

텔레비젼과는 담을 쌓던 내가 언젠가부터 넷플릭스빠가 되어버렸다. 독서가 최고이고 TV 보는 이들을 은근히 싫어했던 나인데, 인제 반대가 되어버렸다. 사람 일은 진짜 모르는 것 같다. 몇년 만에 후배랑 통화를 하다가

 

'형, 원래 드라마 안 보쟎아.'

 

그랬다. 그런데, 인제 드라마리뷰를 쓰고 있다. 보고 들고 느낀 것은 다 기록하는 스타일인지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런 느낌이다. 너무 강한 것은 잘 부러진다는 배워가는 시간인 듯 싶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신재경과 나희도의 트라우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정주행하진 못했고 띄엄띄엄 봤는데,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 기록한다. 주인공 김태리와 남주혁의 대화이다. 그 중에 김태리의 엄마, UBS 방송국 뉴스앵커 이야기가 나온다. 남주혁은 어린 시절에 김태리의 엄마가 방송국 아나운서인지 몰랐다. 남주혁(백이진)은 김태리(나희도)의 모친, 신재경의 방송인의 프로정신을 보고 꿈을 키웠다. 나희도의 엄마, 신재경의 남편(나희도의 부친)은 난치병? 불치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땐 아마 신재경이 메인뉴스 앵커로의 입지가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이 위독하다는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병원을 가야하는데, 신재경은 뉴스를 진행하겠다고 이 꽉 깨물고 결단했다. 남편은 죽었다. 장례식장에도 신재경은 참석하지 못했다. 속보, 뉴스 때문에 말이다. 신재경은 회식 자리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지만, 신창원의 탈옥 소식으로 인한 뉴스 속보시에는 완전히 프로페셔날하게 뉴스를 전달했다. 그게 신재경의 프로정신이었다. 그 프로정신에 나희도의 남친, 백이진이 도전을 받는다. 그 신재경을 보고서 꿈을 키운 백이진이다. 하지만, 나희도에겐 장례식에 엄마가 옆에 없었다는 것, 아빠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엄마에 대해 13살 짜리의 짠한 마음이 어두운 그림자로 항상 남아 있었다. 그건 희도의 상처였다. 13살 짜리의 희도의 마음에 남은 앙금은 희도가 20살이 되기 전까지 계속 고통스럽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백이진에겐 완벽한 프로정신을 갖춘 뉴스 앵커 신재경의 모습이 자신을 꿈꾸게 했다고 한다.

 

 

"선배의 프로정신 뒤엔 네 상처가 따라오는 거구나!"

"(엄마의 모습이)널 꿈꾸게 했구나!"

 

 

신재경의 프로정신은 백이진을 꿈꾸게 했고 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재경의 그런 모습은 나희도의 어린 가슴에 생채기를 남겼다. 삶의 모든 면은 흑백논리로 판단할 순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에서 나희도와 모친 신재경이 고인이 된 부친의 산소를 찾아가 신재경이 통곡하는 장면&#44; 두 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희도의 모친 신재경에 산소에서 트라우마가 풀어진다

 

드라마는 모녀간의 깊은 갈등을 풀어헤치고 나중에는 화해의 장을 연다. 사랑하는 남편의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던 신재경은 나희도와 남편의 산소을 찾았다. 그리고서 6-7년 만에 쌓였던 눈물이 터지면서 남편의 묘 앞에서 통곡을 하게 된다. 여인 혼자 딸을 키워야만 했던 신재경의 고통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 버렸다. 그때서야 나희도는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된다. 이 사건 직전에 희도의 아빠가 만들어준 의자 사건 때문에 모녀 간에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갔다. 두 사람의 갈등은 더 골이 깊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어느새 엄마가 추억과 애정이 들어있긴 하였지만, 이제는 다 부서진 아빠의 작품인 의자를 희도 몰래 목공소에 맡겨서 이쁘게 단장한 것을 본 이후로 희도의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다. 간만에 찾은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두 모녀간의 깊은 어루만짐을 드라마는 그려주었다.

 

 

 

 

신재경의 앵커 아나운서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오지 않은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가족들에게, 딸 희도에게, 그리고 고인이 된 남편에게도 도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희도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희도의 상처도, 신재경 자신에게도 상처이고 트라우마이다. 신재경이 저녁방송의 아이콘과 같은 뉴스 앵커자리를 위해, 자신의 직업정신을 위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도리를 져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먹고 보니 그렇게 애쓰고 악착같이 의지하고 몸 담았던 기업이나 직업이나,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과 응원을 받지 못하는 우선순위는 환대받지 못할 요소이다. 하지만, 상처나 트라우마나 콤플렉스가 그냥 그대로 폐기물처럼 방치되어 내버려지진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영화 기적: 이성민과 박정민의 트라우마

영화 <기적>에서 이성민(정태윤 역)이 자신의 아내가 출산을 하는데, 철도기관사 일 때문에 늦어버렸다. 아내의 출산현장에 자신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몸 담은 그 일, 그 직업,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직업정신 때문에 아내는 박정민(정준경 역)을 낳고 죽어버린다. 박정민은 평생 엄마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오해하고 산다. 아버지와 한 평생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부자관계가 된다. 이성민은 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철도기관사 일 때문에, 그 날 굳이 일하지 않아도, 다른 친구에게 맡겨도 되는데, 굳이 죽어라 일을 한다. 그것이 또 다른 불행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때 자신이 운행한 기차 때문에 자신의 딸이 다리난간에 떨어져 죽는다. 이성민은 자신이 목매는 철도기관사 일로 인해 아내의 죽음과 딸의 죽음을 경험한다. 아들은 자신을 낳다고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엄마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아버지는 엄마와 딸에 대한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슴 속에 깊히 설악산 계곡에 가면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한동안 직장인들은 자신의 직장을 위해 온 몸을 불태우며 혹사하는 것이 정석이고, 그래야 인정받고 했던 트렌드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하는 그 모든 행위는 결국 자신에게 쓴 열매로 돌아오게 된다.

 

 

 

영화 기적 포스터-주연배우 왼쪽부터 이성민 이수경 박정민 임윤아 가 차례로 서서 찍은 포스터이다
영화 기적 포스터

 

인간은 완전할 수가 없다. 원래부터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가정이란 공동체가 부모를 통해 진정한 환대와 애정과 돌봄의 향내가 나야 하는 것이지만, 부모도 인간이기에 늘 자녀들에게 모자라게 다가갈 수가 있다. 거기서 자녀들은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소유하게 된다. 상처가 거듭되거나 상처가 쌓여지면서 트라우마의 길이 되고, 콤플렉스의 첩경이 되고야 만다. 하지만, 인간이 유한하고 약하고 어리석긴 하지만, 인간에게 상대를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다행이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있다.

 

 

 

 

 

트라우마와 화해하다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서 신재경과 나희도는 화해의 문을 연다. 모녀 간에 진심이 닿았기 때문이다. 영화 <기적>에선 이성민은 아들 박정민을 향해 자신 안에 쌓여 있었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딸의 죽음을 몰고 간 게 자기 동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란 사실을 폭로하면서 눌렸던 모든 상처와 죄책감을 토로한다(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동료 기관사가 이성민 대신에 자신이 운전했다고 하라고 다급히 일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박정민은 아버지가 엄마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늘 자신을 멀리하고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두 사람이 화해와 용서와 포용의 장을 마련한다. 물론 영화 <기적>은 특이한 소재를 가져와 죽었던 '딸'의 존재도 한 몫 한다.

 

 

트라우마와 화해하고, 콤플렉스와 화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겠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그런 장이 마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트라우마가 힘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작가 피츠제랄드는 <소설작법>이란 책에서 '트라우마가 힘이다'란 이야길 한다. 자신은 트라우마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를 흔히 '미국의 체호프'라고 한다. 체호프는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레이먼드 카버가 그만큼 단편소설을 많이 썼던 것이다. 그가 단편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가난이 주는 생활고 때문이었다. 갓 20살이 된 그는 일찍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장편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단편소설을 쓰고 원고료 받고 또 쓰고 원고료를 받고 그렇게 생활했다. 그래서 그가 하고 싶은 소설의 이야기들은 단편이지만 헤밍웨이의 '빙산이론'처럼 생략되어 있고 압축되어 있고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레이먼드 카버가 담배를 왼손에 든 채로 얼굴에 손을 받치고 있는 포즈를 취한 사진
레이먼드 카버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 때문에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빚을 늘 시달렸던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난과 궁핍이란 트라우마가 그들을 더 거인을 만든 동력이 되었다. 너무 등 따시고 배부르면 글을 쓸까? 뭐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신재경은 자신의 남편의 죽음, 과부라는 트라우마와 딸 나희도를 부양해야하는 책임감과 콤플렉스가 자신을 더 버티게 한 힘이 되었다. 상처가 될 수 있는 곳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가 나왔기 때문에 존버할 수 있었다. 영화 <기적>에서 너무나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두 부자간의 관계였지만, 다시 회복될 때에는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고통에도 에너지가 있다'

 

 

인간사에 없어서는 안 될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이지만, 그게 오히려 우리를 더 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기름진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참고사항: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작중인물의 이름을 사용하고, 영화<기적>은 배우이름을 사용한 것은 의도적이다. 드라마는 최근에 방영되었고, 영화는 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하는 것이 읽는 이의 기억소환이 더 수월할 것 같아 의도적임을 밝힌다.

 

 


이번 포스팅에선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영화<기적>에서 보여준 트라우마에 대한 면을 살펴보면서 트라우마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면서도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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