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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유명한 시 즐거운 편지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5. 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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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시라고 하면 단연 '즐거운 편지'일 것이다. <즐거운 편지>에 대한 나의 추억과 감상은 20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늘은 간단하게 이 시에 대한 생각들과 감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찾아보다가 이 시를 시인이 고등학교 때 썼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이 연상의 여인을 향한 짝사랑, 안타까운 마음을 시를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경이적이다. 황동규 시인의 수많은 시들이 있을 텐데, 나는 이 시가 가장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시인이라는 직업이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고 늘 박봉에 가난과 어쩌면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는 직업군이다. 어쩌다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회자되거나 상을 받으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고 그게 생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기에, 시인이 어떤 경제적인 생태계와 구도 속에서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황동규 시인은 고등학교 때 지은 이 시 때문에 아무래도 생계에 많은 아니면 작은 도움이라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라는 직업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인지세 때문에 대박을 칠 수 있겠지만,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디셀러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요즘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책을 쓰고, 글을 쓰는 직업을 돈을 번다는 것이 쉽지 않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이다. 블로그의 글쓰기와 작가의 글쓰기에 비할 순 없지만 블로그 글쓰기 또한 하드타임 hardtime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라는 장르는 더없이 열악하다. 시 한 편 쓴다고 누가 돈을 엄청 주는 것도 아니고. 시집을 냈다고 대박을 치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황동규 시인은 <즐거운 편지>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금전적인 수익을 얼마나 얻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고등학교 때 쓴 시가 다른 모든 시들 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수입 안겨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모든 일은 배제하고서라도 시인은 오히려 이 시 한 편을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된 시인 황동규가 독자들에게, 적어도 내 인생에 자리매김했다 것이다. 이건 정말 독보적인 영향력이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내 나이가 조금 부끄럽다. 또 한편으로는 나이라는 것이 시를 적을 수 있는 감수성과는 연관도 있긴 하겠지만, 때론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결혼생활, 사회생활,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한 내공을 가졌다고 해서 좋은 시를 적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시인이 속된 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철딱서니 없는 고등학생 때 <즐거운 편지>는 썼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어린 나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무용지물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나오는 영주(노윤서 분)와 정현(배현성 분)은 고등학생들이다. 고딩들이 임신을 했고 출산을 한다고 하면서 사랑 운운하는 것이 피식 웃음이 나올 수 밖에는 없지만. 드라마는 고등학생들의 사랑의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고등학생이 고딩엄빠가 될 때 헤쳐 나가야 하는 기구한 인생의 무게, 사연의 무게를 통해 그들의 부모가 가진 얽히고설킨 문제의 매듭을 풀어가는 쪽에 포커스를 맞췄기에 자녀들의 임신 출산 소재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드라마 이야기는 드라마 이야기고, 시인 황동규의 고등학생 때 쓴 시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점은 가히 놀라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즐거운 편지>는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기다리고 갈구하지만, 이뤄질 수 없고 가망이 없어 보이는 듯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상의 여인을 만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나 결말 처리가 아니라 지금 시인의 기다림의 고통이다. 자신의 사랑이 '언젠가 그칠 것을 믿지만 지금은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고 곱씹는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청소년의 마음, 짝사랑하는 한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우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기다림과 안타까움을 결국 시인은 '즐거운 편지'라고 반어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인생은 어쩌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즐거움으로 합을 맞출 수는 있겠지만, 고통이나 슬픔이나 아픔이나 상처나 이별 같은 것은 그 당시에는 견딜 수 없는 노릇이다. 고등학생이 짝사랑하는 연상의 여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나오는 시지프스 같이 기다림과 안타까움과 절망과 좌절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했을 뿐일 것이다. 그 답답함의 무게가 얼마나 컸겠는가 마는 시인은 '즐거운 편지'라고 시의 제목을 적고 있다. 

 

 

 

 

요 근래 인기가 있었던 김태리와 남수혁 주연의 드라마 <스물하나스물다섯>에서 주인공, 나희도(김태리 분)와 백이진(남수혁 분)의 학창 시절의 러브라인이 결혼까지 골인할 줄 알았지만, 드라마는 두 사람의 결론을 결혼으로 맺어놓지 않는다.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 젊은 날의 아름다운 로망과 기억으로 그 자리에 놔두고 온다. 현재의 삶으로 이어오지 않는다. 나희도의 딸이 엄마의 일기장을 보면서 드라마는 이야기가 오가는데, 엄마의 첫사랑이었던 백이진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보통 해피엔딩이라는 틀을 벗어난다. 그런데, 그 드라마의 마지막이 슬프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고 막 유쾌하진 않다도 즐겁다. 나는 문득 그 드라마의 엔딩을 보면 떠올린 시가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현재 연결되지 않았어도 그런 사랑과 추억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느니 <즐거운 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황동규 시인 또한 언젠가는 자신의 모든 감정이 드라이되고 휘발되었을 때 그때의 기억과 흔적을 되짚으면서 '즐거운 편지'라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황동규 시인이 이 시를 적을 당시에 정말 이것까지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나이가 들어야만 깨닫게 되는 법칙들과 원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황동규 시인이 그런 사실을 인지했는지 못 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런 미래를 그리면서 <즐거운 편지>라고 제목을 붙인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를 선택하게 된 것은 <즐거운 편지>를 생각하면 늘 20대에 썼던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시 감상 paper(아래 링크 참조)가 생각이 난다. 떠나간 연인에 대한 괴로움과 고통을 우회적으로라도 즐거움으로 화하고자 노력했던 흔적이다. 근데 그게 잘 안 됐다. 하지만, 그런 고통의 터널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런 감상문을 적을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의 그 감상의 색깔을 조금 바꿔주고 싶었다. 이제는 조금 더 내려놓아야 하는 세월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고. 정말 즐거운 편지가 즐거운 편지가 될 수 있게끔 그렇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 이 시를 다시 집어 들었는데, <즐거운 편지>이지만, 막 웃고 떠드는 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어 참 독보적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 황동규의 제법 유명한 시 <즐거운 편지>가 되겠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프롤로그... 즐거운 편지 -----Giver의 일상과 사랑하기의 즐거움(?) 황 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항상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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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에 대한 생각들을 포스팅해 봤는데요. 시라는 것이 얼마나 좋고 위대하고 사람의 감정을 촉촉하게 하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짧을 줄 알았던 글이 또 길어져버렸단 소회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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