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feat.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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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feat.상실의 시대)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6. 17.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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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쇼의 일본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다

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이 말을 나는 한때 좋아했었다.

 

“젊음이란 무엇이냐?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이냐? 꿈의 내용이다.”

 

젊은 나날의 우리 세대(90년대 학번)의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지독히 파격적이고 외설적인 내용들이 담긴 하루키의 글은 나를 비롯한 청춘들에게 과대 흡입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으니 말이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과 박일문과 이인화의 소설을 두 번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화현상으로도, 그리고 글로써도 나타난 시기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그때 남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리뷰는 하단에 링크를 걸어둔다.

 

 

 

 

윤리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극단적인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고우영의 『십팔사략』<춘추시대> 2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찍이 제환공의 딸 제강은 진나라 군주에게 시집을 갔는데, 군주가 죽고 그 아들 진 헌공이 대를 이었다. 아들은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제강을 자기 아내로 삼아버린다. 제강은 진 헌공의 아들을 낳으니 이름은 신생(申生)이라 했다. 후에 융족에게서 끌려온 미녀 여희는 매서운 여자였다. 여성편력이 대단했던 진 헌공은 여희의 치맛폭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신생의 고뇌가 시작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여자를 깔았다. 그녀는 내 할머니인가, 어머니인가? 나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겨난 생명. 하늘의 섭리를 벗어나 태어난 놈...’

 

 

신생은 결국 여희의 모함에 의해 궁지에 몰리자 ‘어차피 이상하게 생겨났던 목숨...’이라면서 미련없이 자결하고 만다(십팔사략 2권 <춘추시대>, 74p).

 

신생에게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반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 출생이었다. 자기의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문제였다. 여희의 모함도 모함이었지만, 자신의 윤리적인 공백이 더 큰 존재의 문제였다.

 

 

『상실의 시대』는 와타나베의 대단한 여성편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상처와 생채기, 젊은 청춘이 보여주는 상처다발로 인해 가슴 가득히 안은 채, 마지막 대사가 뇌리에 남는다. 신생이 느꼈을 법한 질문과는 또 다른 질문이라고 보고 싶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라는 미도리의 물음에 그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대구한다.

 

이 질문은 일종의 윤리적, 도덕적 딜레마 가운데 방황하는 청춘을 향한 질문이다.

 

 

 

 

 

시바타 쇼가 보여주는 것은?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시바타 쇼의 분위기도 그런 분위기이다.

하루키는 청춘들의 딜레마와 고뇌에 대해 질문만을 던졌다. 시바타 쇼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학생운동이란 이름으로 모인 청춘들은 성에 대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섹스에 대한 모더니즘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바뀌면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연애관은 폐기처분 된 지 오래다. 이 책의 배경이 195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그런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물론 작품에는'남자와 손만 잡아도 처녀성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는 미야티사란 인간도 있긴 하다.

 

아무튼 욕망이 있으면 섹스를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게 용인되는 청춘! 주인공 오하시와 세쓰코는 약혼관계였다. 요즈음은 약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약혼이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대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나오는 청춘들은 청춘이기에 좌충우돌의 역사를 펼치고 있다. 욕망, 섹스, 사랑, 현실, 취업, 적응, 연애, 결혼, 그리고 죽음...남자 주인공 오하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와타나베만큼 여성편력이 심하다. 하지만, 다소곳한 세쓰코와 약혼을 하고 별일 없는 한 평범한 가정을 이룰 예정이었다. 소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집안에서 지원하고 후원하는 애정관계였다.

 

 

 

하지만, 사달이 난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심도있는 정신적이고 심층적인 부분으로 작가는 들어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후손들의 상처

김광석의 노래 중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곡이 있다.

너무 아프고 상처받은 이는 그 상처가 사랑을 뒤덮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치유해야 한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그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이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또한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 그게 우리가 사는 인간세계이다. 그런데, 그 상처의 최고점은 아마도 죽음이 아닐까 싶은데.

 

 

오하시는 대학때 연극그룹에 있을 때 사에코와 섹스파트너로 지냈다. 그러다가, 그들 그룹이 MT를 갔다. 거기서 사에코와 냉기서린 방에서 섹스를 한 오하시, 그를 본 또 다른 여자, 유코! 유코가 오하시를 짝사랑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여자로서 누군가로부터 탐닉받고 싶어 소유받고 싶은 열정이 넘쳤던 유코는 오하시와 두 번의 섹스를 한다. 어젯밤 잔 여자와 다른 오늘의 여자, 유코! 그런데 유코와 오하시가 먼저 MT장소를 빠져나올 때 엊그제 오하시의 배위에 있었던 사에코는 1년 후배 구니에다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청춘이란 것이 얼마나 탈도덕적인가! 이런 말 하는 것 자체가 포스트모너니즘에 어울리지 않는다. 안 그런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엄정화가 출연한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고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처음 소개팅한 남녀가 그날 바로 침대까지 직진했다. 하지만, 20년전에 받았던그 충격 이후로 우리 시대의 성윤리는 아우토반이다. 거칠 것이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리가 어디 있으며, 윤리적인 잣대가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시바탸 쇼가 그리는 시대도 그러했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두 남녀가 처음으로 만난 컷이다(출처: 네이버영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녀가 몸을 섟고 애정행위를 가진 후에 대처법이 필요하다. 클럽에서 만나 원나잇을 한 남남이라면 몰라도, 거사를 치른 후 그 다음날 얼굴을 자주 봐야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그리고 <상처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육체를 섟는다는 것은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을 터치하는 것인데, 그 다음날 안면몰수하고 생까는 것은 상대를 능멸하는 행위이며, 모욕하는 처사이다. 그런데, 주인공 오하시가 그러했다. 유코와 꼴려서 자긴 했는데, 그 이후에 행동이 부재중이었다. 이게 가장 큰 상처이다. ‘소통의 부재’, ‘소통의 단절감’이 영혼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주는 것이다. 이거 심각한 죄악이다. 심각한 상처이다. 그런데, 웬걸...유코가 임신을 해버렸네. 유코는 오하시란 인간에 대해 과대평가나 기대를 하진 않는다. 그리고 낙태를 한다. 그리고....수면제를 먹고 강의실에서 자살을 한다....죽음이다.

 

 

 

유코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유서 비슷한 편지를 유코는 남긴다.

 

‘아, 가엾은 엄마. 당신 딸의 결혼식을 보지 못하다니. 딸의 결혼식 대신 장례식을 봐야 하다니....나는 내가 한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다시 태어난다 해도 한번 더 같은 일생을 살 거야.(128p)’

 

유코는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와 자고, 임신하고, 낙태하고 그리고 자살한다. 그런데, ‘다시 태어난다 해도’ 똑같이 살거다라고 한다. 이런! 이게 젊음인가! 청춘인가! 청춘의 불끈불끈한 에너지는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되는 사춘기라서 그런걸까!

 

 

 

 

오하시의 상처, 거대한 상실감은 존재를 뒤덮고...

‘나의 공허함은 일시적이거나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동의어라는 것을 알았다(133p).

 

어떤 노력도 내 공허함을 메울 수 없다는 것, 공허함을 공허함으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세쓰고와 약혼했다.’

 

오하시는 공허감이 ‘나 자신과 동의어’라는 것을 깨닫는다. 채울 수 없는 공허감, 이전에 원나잇 하고 난 후 느끼는 공허감과는 질적으로 다른 묵직한 공허감이 자신이 되어버렸다. 영혼이 공허감으로 갑옷으로 휩싸여버렸다.

 

 

 

상처의 과거를 가진 영혼을 만난 세쓰코

사람으로 인한 상처,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한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유코는 자살했다. 그 죽음의 그림자가 오하시를 휘감고 있다. 그것이 오하시의 영혼의 깊은 우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모양처와 같은 세쓰코를 만났지만, 세쓰코는 오하시를 떠나면서 이런 편지를 남겼다.

 

 

‘....당신의 부드러움 속에는 언제나 당신이 남기고 온 과거가 느껴졌어. 그걸 시기했던 건 아냐. 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런 과거 없었던 양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처음인 것처럼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아마 여자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라도 첫 경험을 전혀 두려움 없이 맞을 수는 없을 거야.

 

 

그런 행복한 날이 계속되는데 어째서 그렇게 무거운 피로가 내 안에 가라앉고 있었을까?

 

 

사람에게 과거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야. 그걸 부정한다는 건 그 안에서 태어나 자란 현재의 자신을 모두 부정하는 거라 생각해.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어. 그러지 않으면 미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 없어?(177p)’

 

 

 

 

영혼의 피로는 제거되어야 하는 것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Soul과 Soul이 부딪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하시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 치유되지 않은 상처, 그로 인한 영혼의 피로도가 세쓰코의 영혼에 ‘무거운 피로’로 가라안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없는 커플이었으나, 한 영혼이 가진 과거가, 자살이라는 죽음의 영혼의 상흔이 오하시를,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세쓰코를 누른다. 세쓰코는 늘 이상하고도 뚱딴지같은 소릴 한다.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던 피로의 각질을 벗고 다른 이를 만나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고, 세월이 필요하고, 작업이 필요하고, 수술이 필요하고, 회복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한데,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섣불리 또 다른 영혼을 만나 사랑을 하려고 벼른다.

 

 

 

드디어 터져버린 세쓰코의 영혼

소설 초반에 세쓰코는 자꾸 이상한 말을 해댄다.

 

“...내가 당신을 위해 밥을 짓고, 당신이 내가 지은 밥을 먹는 것, 그건 좋아. 다만 왜 내가 당신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하는지 왜 당신이 내가 만든 밥을 먹는지, 그 두 가지의 왜가 같은 건지, 뭐가 먼지 몰라서 불안할 때가 있다는 거였어.”(25p)

 

“두 가지 왜가 너무 따로따로면 아무래도 싫어.”(26p)

 

 

세쓰코의 이런 생뚱맞은 질문이 왜 터져 나왔는지 오하시가 가져온 H전집, 그리고 그 H전집의 원래 주인이었던 대학 선배, 사노-사노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이 빠져나왔다며, 자신을 ‘나는 배신자다!’라고 했다. 그는 자살했다-에게서 오하시가 경험한 공허감의 그림자를 세쓰코는 만나게 된다. 사노의 편지를 읽게 되면서 그녀의 내면의 질문들은 더 오리무중이 된다.

 

 

 

“나 불안해. 우리 이제 곧 결혼할거야. 지금도 거의 결혼한 거나 다름없지만. 그런데 부부란 이런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우린 뭐랄까. 너무 가난해서 이대로라면 이내 지쳐 버릴거야. 언젠가 미치도록 지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105p)

 

“사노 씨처럼.”

 

 

 

한 영혼을 소외케하는 인간의 인격적인 결점

세쓰코의 오하시에 대한 절망은 이 부분이 가장 심각하다. 하지만, 세쓰코와 오하시가 학교 들어가기 전, 유년시절에도 소꿉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거기서도 오하시는 벽돌쌓기를 하면서 세쓰코에게 배려하지 못하는 인격을 드러내준다.

 

 

“조용히 좀 해. 내 것까지 무너지잖아.”하더니 높이 솟아 있는 당신 탑 쪽으로 돌아섰어. ...함께 놀고 있는 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말이야. 당신은 일단 나무토막 쌓기를 시작하면 자신이 얼마만큼 높이 쌓을 수 있을지. 오로지 그 생각에만 몰두해서 애초에 나와 함께 놀고 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 따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어(180p).

 

 

 

 

 

시바탸 쇼의 ‘상실의 시대’를 관통해가는 자아 탐색의 길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고, 소외케하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의 결핍에서 터져 나오는 것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찌르게 만든다. 물론 인간은 모두가 완벽할 수 없다.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모두가 완벽한 부모와 가정에서 자랄 수 없었다. 모두가 결핍을 가진 채 사랑을 하게 된다. 하루키의 제목처럼 <상실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바탸 쇼는 오하시와 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것을 선택한 세쓰코를 통해 <자아 탐색의 길>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 말고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당신은 내 청춘이었다는 것! 아무리 괴롭고 답답한 날들이었어도 당신은 내 청춘이었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것은 오로지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야. 그렇지 않다면 왜 이런 편지를 쓰겠어(190p).’

 

 

세쓰코는 오하시를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오하시는 오히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또 다시 만나기 위해서란 목표는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지 않다. ‘자아탐색’은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길이기 때문에 더 그러한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찾기 위해 가는 거야....그리고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거야. 나는 그 사람들에게 미천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한번은 무너져버린 나 자신을 다시 꼿꼿하게 세워보려고 해....사람의 마음 속에 그렇게 자신조차 모르는 은밀한 소망이 몰래 자라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상실의 시대, 상실의 세대에 대한 반성

‘H전집...나야말로 은근히 세쓰코와 헤어지기를, 세쓰코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 그게 나 혼자뿐이었을까....내게 내 의지와 무관하게 H전집을 사게 한 그 오한은, 과연 나 혼자의 것이었을까. 그것을 느낀 나의 것이자, H전집의 소유자였던 사노의 것이자, 나아가서는 동시대를 산 노세의 것이고, A의 것이고, 소네의 것이며, 나아가서는 죽은 유코와 다코, 구니에다, 다마코, 또 이름도 잊어버린 그 몇 명의 여자들의 것이지 않았을까.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 모두의 것이지 않았을까....마음 깊숙한 바람, 혹은 원한, 시끄럽게 떠들어낸 아우성이 아니었을까? 그 바람 혹은 원한이야말로 내게 H전집을 들게 하고, 세쓰코가 자신의 세대에서 벗어나려 하는 행위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만약 한 사람의 행위가 자신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바람, 혹은 원한을 짊어진 것이라면.....’

 

 

 

 

그래, 아직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 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쓰코의 상처 자리가 아프진 않을지. 아프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데......’

 

 

 

상처를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또 다른 상처를 기다리고, 그리고, 사랑할 준비를 한다. 영혼의 피로를 발견하고, 그 피로를 풀어헤치고, 또 다른 피로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또 다른 영혼을 사랑할 준비를 한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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