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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한국이 싫어서/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자의 이야기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8. 16.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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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olutionary Road is Here and Now.'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행복을 찾아 "남는 자, 머무는 자"이야기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글을 적은 기억이 있다. 그 스토리는 행복을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닌, '남아 머무는 자'의 이야기이다.

 

 

 

 

나는 또 다른 이야기, 행복을 찾아 '떠나는 자'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이야기이다. 나는 예전의 김선일씨가 이슬람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정말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떠나고 싶다고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런 생각 안 한 사람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한 여주인공이 한국이 너무나 싫어서 호주를 떠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절 2호선을 타고 이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본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p.16) 

 

6년 넘게 사귄 예나의 남자친구 지명은 한사코 그녀를 붙들지만, 그녀의 결심은 완강하다. '아니, 난 우리나라 행복지수 순위가 몇 위고 하는 문제는 관심없어.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런데, 난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어.'(p.61)

 

 '어차피 난 여기서도 2등시민이야. 강남출신이고 집도 잘 살고 남자인 너는 결코 이해 못 해.'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그게 너희 가족 수준이야. 서양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할까? 안 그럴껄? 서양사람들은 자식의 이성친구들에게 최근에 본 영화가 뭔지, 음악은 어떤 쟝르를 좋아하는지, 혹은 재즈는 좋아하는지를 물을거야. '누구를 좋아한다고? 나도 되게 좋아하는데, 공연 가봤어?'그럴거야." "야, 그리고 너희집이 뭐 그렇게 잘났어? 내가 이건희한테 무시를 당했으면 이해를 하겠다. 너희집이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는거 말고 가진게 또 있어? 대학교수가 그렇게 높은 자리야? 교수는 빌딩경비 딸 무시해도 되는거야?"(p.82)

 

 

 예나가 지명이의 부모님을 만나고 온 뒤의 대화이다. 지명의 모친이 예나에게 옷 사입으라고 봉투를 하나 줬는데, 롯데백화점 상품권이었다. 예나는 자존심 상한 나머지, 그 걸 찢어버린다.

 

 

 "야, 내가 거지인 줄 알아? 적선하냐?"(p.83)

 

 

 나는 갑자기 열이 올라서 그 봉투를 받아 그대로 좌악 찢어버렸어. 봉투가 두툼했더라면 미련이 남았을텐데, 다행이 봉투가 참 얇더군.(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주진우 기자의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났다. 주진우가 사건조사하고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봉투를 내민다고 한다. 근데 그게 50만원이란다. 그게 적정수준이란다. 주진우는 솔직히 50억 주면 자기가 기자노릇 안하고 포기할 수 있겠다 싶은데, 50만원은...웃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이후 나는 주진우도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생각 뿐이다. 아무튼 예나의 발언에 주진우의 솔직한 이야기가 스쳐지나갔다.

 

 

 

 

   "한국 애들은 제일 위에 호주인과 서양인이 있고, 그 다음에 일본인과 자신들이 있다고 여기지. 그 아래는 중국인, 그리고 더 아래 남아시아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데 사실 호주인과 서양인 아래 계급은 그냥 동양인이야. 여기 사람들은 구별도 못 해. 걔들 눈에는 그냥 영어 잘 하는 아시아인과 영어 못하는 아시안이 있을 뿐이야."(p.85-86) 

 

 

예나의 목소리는 작가의 목소리인 듯. 거침없다. 

 

 

"너도 보면 알거야. 사실 남아시아에 온 애들이 더 잘 살아.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애들은 그 나라에서는 잘 사는 애들이거든. 반면에 일본에서 온 애들, 한국에서 온 애들은 다 가난한 집 출신이쟎아. 너희 나라에서 좀 사는 집 애들은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지."(p.86) 

 

 

예나가 떠난 한국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보이지 않는 계급과 신분과 소유차이로 선 긋기를 하면서 산다.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 집이 몇 평이고, 아파트는 어디서 살고, 그게 자가인지 전세인지, 자동차는 무엇을 타고 다니는지 그런 격차로 사람들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형편이다. 이건 현실이다. 그 현실은 예나의 유부녀 친구, 은혜와 미연이의 입을 통해 보여진다. 

 

 

"사실 지루한 얘기는 두 가지뿐이었어. 은혜 시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미연이 회사 이야기. 그런데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는 너무 오래하는거야. 몇년 전에 떠들었던 거랑 내용도 다를 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거야. 걔들이 권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이대? 회사 진짜 거지 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주는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냐.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시드니에서 매일 크고 작은 모험을 겪고 있어서 그런가, 옛날 친구들이 좀 얄팍해 보이더라. 내가 걔들보다 더 나은 선택을 했다거나, 내 미래가 더 밝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p.121) 

 

 

예나가 도착한 나라 호주라고 해서 그런 선긋기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 

 

 

"국외자라는게 참 서럽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 나는 이곳에서는 평생 국외자겠구나, 그런 체념도 했지. 그런데, 난 한국에서도 국외자였어."(p.170)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는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데서 오는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맞아서 행복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내가 왜 지명이나 엘리처럼 살수 없었는지,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나는 지명이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성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끼만 먹고 살라는거나 마찬가지다, 하는걸.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걸 알려주면 좋을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가 자기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봤자 자산성행복도, 현금성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직원 못 살게 구는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 대접 받으려고 그러는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 대접 받으니까.'(p.185-186) '

 

 

...그런데 그 근성을 못 고치면 어딜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p.187)

 

 

 예나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현금흐름성 행복을 찾아 그녀는 사랑하는 남친이 주는 안정성과 매일 남편이 오는 것을 눈꼽 빠지게 기다리는 안락함이 충분히 보장되지만, 너무나 지겹고 모험이 없는 전업주부의 길을 포기한다.

 

 

 

 

 

책을 빌려 읽으면서 생긴 습관은 기억을 복구하기 위해 메모를 하는 것이다. 리뷰만큼 좋은 게 없지만, 메모 또한 종종 자극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행복이다. '남아 머무는 이야기'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전 paper에서, 그리고 '떠나는 이야기'의 <한국이 싫어서>를 살펴봤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 유발 노아 하라리는 첫번째 챕터 '인류의 새로운 의제'란 주제에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배가 고픈 불쾌한 느낌을 피하고 기분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즘을 즐기기 위해 음식과 연인을 필사적으로 찾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즘은 얼마 못 가고, 그런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더 많은 음식과 연인을 찾아나서야 한다...정확히 같은 이유로,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모으는 땅콩(돈 많이 버는 직업, 큰 집, 잘 생긴 배우자)도 우리를 오래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목표 자체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서는 거보다 그 산을 오르는 과정이 더 뿌듯하다. 오르가즘보다 희롱과 전희가 더 흥분된다....이 모든 사실은 진화가 다양한 종류의 쾌락으로 우리를 좌지우지한다는 뜻일 뿐이다. 진화는 때때로 행복과 평화 같은 상쾌한 감각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때로는 고양감과 흥분 같은 황홀한 감각으로 우리를 자극한다.'(p.61-62) 

 

 

저자는 약 2,300년 전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을 찾기 위해 무절제한 쾌락 추구는 사람은 행복하기 보다 오히려 더 비참하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절제를 이야기했다. 그보다 약 200년 전에 부처는 쾌감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인간의 고통의 근원이라고 가르쳤다.... 쾌감을 갈구하면 갈구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만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쾌락을 빠르게 뒤쫓을 것이 아니라 놓아줄 필요가 있다.  행복에 대한 이런 불교적 시각은 생화학적 시각과 공통점이 많다...'(p.67) 

 

 

 

유발 노아 하라리는 인류가 '불멸'과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마지막의 귀결은 '호모 데우스'라는 결론으로 책을 적고 있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거부하고 싶고, 인간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거절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그런 인간이 되려면 '신성divinity'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는 가설적 제안(추측)을 책에선 하고 있다. 

 

 

이야기가 너무 방대하게 넓어진 듯 하다.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행복이다. 그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인류의 영원한 목표이기도 하고, 의제이기도 하다.'자산성 행복'을 추구하고자 노력했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두 사람, '현금흐름성 행복'을 찾아 떠나갔던 젊은 여자 예나! 모두의 목표는 바로 '행복'이었다. 그것이 거대한 행복적인 결과의 자산이든, 아니면 순간 순간 느낄 수 있는 소확행이든 간에 인간의 영원한 목적은 '행복', 즉 레볼루셔너리 로드인 셈이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한 장면 

 

 

 

오늘 나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어디에,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까? 중요한 사실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먼데,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고', '그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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