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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 당신의 아주 먼 섬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6. 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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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벗어 두고 간 나이키 새 신발

 

 

아는 지인의 이야기이다.


재벌이 아닌 다음에야 유학시절은 다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로 추측해 본다. 부담스런 금액이지만, 한번 쯤은 신고 싶은 나이키 에어 신발을 구매했다. 그 새 신발을 신고 볼일을 보고 차에 타려는 찰나였다. 새 신발이라 너무 애지중지한 탓인지, 순간적으로 착각을 한 탓인지, 지인은 그 신발을 살포시 도로 위에 벗어놓았다. 그리고서 차는 출발했다.

 

도로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이키 새 신발...

 

정미경의 미완성 소설, 당신의 아주 먼 섬이다




정미경의 『당신의 아주 먼 섬』은 그녀의 유고작이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몸을 삭아내리게 했던 그 소설’이라고 한다. 체력적으로, 육체적으로 항상 자신의 한계를 알던 작가는 자기가 감당할 분량만큼만 글을 썼다. 그래서 교수직 제의도 자신의 체력의 분량을 알기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남편, 화가 김병종의 이야기이다. 글을 치다가 병원에 들렀는데, 그녀는 다시 자신의 데스크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완의 삶이고 미완의 인생이다. 그리고 이 원고 또한 정미경이 출력만 해놓고 다듬고 다듬은 완전체의 작품이 아니다. 태아로 치면, 육삭둥이, 칠삭둥이쯤 된다고 보고 싶다. 태아는 세상에 이렇게 작품으로 등장했는데, 태아를 낳은 작가 정미경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미완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인생 자체가 미완이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화가인 남편은 안타까워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대목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게 인생이다...



 

당신의 아주 먼 섬

작가 정미경의 마지막 장편소설지난해 1월 18일, 소설가 정미경이 세상을 떠났다. 암을 발견한 지 한 달 만이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남은 사람들의 비통함이 컸다. 그를 아끼고 그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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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의 내용보다 정미경 작가에 대해, 그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되었다. 나는 정미경작가를 우연찮게 알았고, 문체나 이야기가 참 세련되었다는 생각에 덥썩 덥썩 잘 읽는다. 그리고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모든 게 만족할만 했다. 근데 정미경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권하지 않겠다. 하지만 정미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유고작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녀의 미완성의 작품 속에 남겨진 한 소설가의 미완의 인생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근데 인생이란게 완성, 완벽이란 게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 가운데 뭔가 덜 풀어헤친 듯한, 덜 다듬어진 듯한 그 개운치 않음을 남편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직 나이키 새 신발은 더 신어야하는데...질이 나게 뻔질나게 더 신어야 하는데...그녀의 유고작은 마치 너무 애지중지하게 여기던 나이키 신발을 벗어놓고 인생의 막차는 출발해버렸다...



정미경의 유고작은 도로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이키 새 신발 같구나!

 

소설가 정미경 프로필

 

"할미, 나 돌아가면 보고 싶을 거 같아?"
"말이라고, 들어온 자리는 없어도 나간 자리는 있는 겨."
"겨우?"

"남의 마음에 자리 하나 만드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

할미는 이우더러 술 한 잔을 따르라 하고는 첫잔을 바다에 힘뿌렸다. 다시 한 잔을 청해 넘칠 듯 부은 술잔을 조심스레 입에 대고 달게 마셨다. 뱃전에 팔을 걸치고 앉아 있는 할미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보내야 더 좋은 사람이 오는 법이여."

배를 띄운 후로, 판도는 없는 사람처럼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먼 하늘에 별 몇 개가 가까스로 돋아났다. 저- 별빛은 지푸라기로 변한 누군가가 놓쳐버린 행복의 순간일 수도 있고 스쳐갔으나 잡지 못한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며 다시는 들 을 수 없는 지상의 음악일 수도, 배는 천천히 미끄러져 포구 쪽 으로 나아갔다. 어이어이. 할미는 이우보다 더 오래 울었다(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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