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허삼관매혈기 "내 이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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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허삼관매혈기 "내 이럴 줄 알았지!"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6. 1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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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 대한 리뷰를 여기에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1 내 이럴 줄 알았지!

도서관에서 위화의 <허삼관매혈기>가 있길래 냉큼 챙겼습니다. 그의 작품 <인생>, <가랑 빗 속의 외침>을 읽은 후 스토리 메이커 위화의 스토리에 대한 강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역시나 내가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주말 오후에 침대 위에서 몇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만큼 위화의 스토리의 압도력은 탁월합니다.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을 이렇게 잡아보았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2 우리가 왜 소설을 읽습니까?

왜 우리가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스토리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요? 팩트가 아닌 非팩트에 왜 열광하며 사람들이 자기 돈을 주고 책을 사보며 베스트셀러에 빠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가 늘 이야기하는 대목이지만, '스토리에는 힘力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팩트만 보고 싶어한다면 왜 다큐멘터리나 뉴스만 보면 되지(물론, 뉴스도 가짜 뉴스가 많습니다만) 드라마, 영화, 소설에 목맬 이유가 없지요.

 

 

 

최근에 완전 막장의 막장드라마로 스토리라인이 구축되어져가는 '펜트하우스'가 시즌3으로 접어들었는데요, 사람이 죽고 다시 살아나고(무슨 톨스토이도 아니고 '부활'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듯한) 그런 스토리에 왜 사람들의 눈과 귀가 주목하는 걸까요? 왜 시즌 1, 시즌 2... 그리고 시즌3(원래 금토드라마였는데, 시즌3으로 접어들면서 금요일만 90분 방영하는 것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었네요)까지 찍는 걸까요? 이유는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고, 반응하는 무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드라마를 시즌 1,2,3까지 찍어댈 이유는 없는 것이죠.



제가 이 <펜트하우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우리 초딩 애들이 이 드라마를 챙겨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는 것이죠. 펜트하우스를 둘러싼 청소년들의 학원폭력과 살인과 음모와 폭력... 뭐 이런 것들이 즐비한데도 말이죠.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사람들이 소설, 허구의 이야기에 목매는 이유는 스토리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스토리가 어떤 교훈적인 메시지나 대단한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보고 흥분하거나 너무 슬퍼서 공감의 눈물 한 줄기라도 흘리면, 윤동주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잎새에 이는 바람'이라도 있으면, 그 이야기는 성공한 것입니다.

 

 

3 위화의 이야기는 어떻냐구요?

위화의 이야기는 적어도 제게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리뷰 제목이 '내 이럴 줄 알았지!'가 아니겠습니까?

위화의 이번 <허삼관매혈기>는 너무 유쾌합니다. 제가 근래에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긴 적은 없는데 말입니다.

어떤 대목이냐고요?

허삼관의 가정이 기근 때문에 힘들어서 먹을 게 없는 겁니다. 그래서, 가족끼리 허삼관, 허삼관 아내 허옥란, 그리고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가 같이 자기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아버지 허삼관이 요리를 해주는 장면인데, 그 장면을 오로지 말과 대화로 하는 장면입니다. 먹을 게 없는 기근의 때에, 돈도 떨어지고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가족이 함께하고, 말(word)로 만이라도 영혼의 배가 부를 수 있게 하는 이 장면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위화가 이 소설에서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가족의 힘'이라고 얼추 추측해 보는데요, 그가 쓴 <인생>에서의 문장들을 잠깐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은 법이란다.”(57p)

"...자전의 말이 맞아. 가족끼리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복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112p).’


-위화의 <인생> 중에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가족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위대하다는 것이 보기에 거창하고 대단해서라기 보다는 가족이 가지는 위대한 성질, 캐릭터를 보여주는 스토리가 감칠맛 난다고나 할까요? 그게 위화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4 '매혈賣血'(피를 파는 행위)을 허삼관 이야기

<허삼관 매혈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소재는 바로 '매혈賣血'(피를 파는 행위)입니다. '피를 파는 것'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법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몸이 튼튼한 사람은 다 가서 피를 판단다. 한번 피를 팔면 삼십오 원을 받는데,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그렇게 많이는 못 벌지. 사람 몸속의 피는 우물의 물처럼 퍼내지 않으면 많아지지 않거든. 네가 매일 퍼내도 우물물은 아직도 그렇게 많이...."

 

"삼촌, 삼촌 말대로라면 피가 바로 돈줄이네요?"

 

"하지만 먼저 네 몸이 실한 지 부실한 지를 봐야지. 만약 몸뚱이가 부실하면, 피 팔러 갔다가 목숨까지 팔게 되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네가 병원에 피를 팔러 가면 우선 검사부터 하는데, 먼저 피를 조금 뽑아 몸이 실한지를 보고 나서 피를 팔든가....."

 


 

한번 피를 팔면, 35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당시에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못 버는' 큰돈입니다. 그 큰돈은 한번 피를 팔기만 하면 벌 수 있는 돈이지만, '몸뚱이가 실해야 하고', 리스크가 있긴 합니다. '피 팔러 갔다가 목숨까지 팔게 되는 수'가 있는 리스크입니다.



위화는 이 '매혈'이란 소재를 스토리로 가져와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피가 바로 돈줄'이 되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허삼관은 말로 들었던 '매혈'을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도 피를 팔았다는 것, 그리고 넷째 삼촌으로부터 들었던 매혈, 결국 그 당시 건강한 남자라면 가난의 위기를 피를 파는 것으로 어찌해보고자 했던 것처럼, 허삼관도 방 씨와 근룡이 틈에 끼여 처음으로 피를 팔게 된다.
오줌보가 터질 정도로 물을 엄청나게 마셔야 피를 더 많이 뽑을 수 있다면서 그들은 그렇게 피를 뽑아 팝니다. 그리고 뽑은 피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보통 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음식인, '돼지 간 볶음 한 접시와 따뜻하게 데운 황주 두 냥'을 식당에서 맛있게 먹어치웁니다.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 그 힘이란 게 주머니 속의 돈이랑 똑같은 거군요. 쓰고 나서 다시 벌어들이는..."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 일에 써야죠."

 

허삼관은 하소용과 연애를 하던 허옥란에게 자신의 피를 판 돈으로 음식과 선물을(팔십삼 전어치) 주면서 시집오라고 합니다. 원래는 허옥란의 부친은 먼저 점찍었던 하소용을 좋아했고, 허옥란도 하소용을 좋아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딸을 같은 허 씨 가문인 허삼관에 시집 보내면 두 허씨 집안의 대가 끊기지 않는다는 대의명분에 시집보냅니다.

 

 

 

 

5 '매혈賣血'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가족'

 

그리고, 허옥란은 5년 동안 아들을 셋 낳았죠. 허삼관은 애들 이름을 각각 허일락, 허이락, 허삼 락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애들 이름이 일락, 이락, 삼락이지. 내가 분만실에서 고통을 한 번, 두 번, 세 번 당할 때 당신은 밖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즐거웠다 이거 아냐?"

 

 

위화의 재치와 위트는 글에서 터져 나옵니다.

한평생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피를 팔아서 가정을 지켜온 아버지, 허삼관이 나이 들어 11년 만에 승리 반점을 지나는데, 늘 매혈을 한 후에 먹던 돼지 간 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이 냄새와 추억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이도 잊고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그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어 피를 팔기 위해 병원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병원에선 노인의 피는 '살아 있는 피보다 죽은 피가 많아서 아무도 안 산다'라고 매몰차게 거절당합니다.


노인의 죽은 피는 가구점에서 좋은 가구를 만들려면 페인트칠하기 전에 반드시 돼지 피를 한 번 발라야 하는데, 허삼관의 늙은 피는 가구 칠감으로 딱 맞겠다며 병원의 젊은 혈두(피를 뽑는 직원)가 조롱을 합니다. 허삼관은 너무 열 받아 진저리를 치면서 이렇게 대꾸합니다.

 

"내 평생 이렇게 심한 말은 처음이네. 내 세 아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자네 주둥이를 찢어버렸을 거야."

사십 년 만에 피를 팔지 못한 노인, 허삼관의 허망과 절망감이 그를 감쌉니다.




"사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피를 팔지 못한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기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니....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허삼관 노인은 이런 현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면서 마을의 거리를 걸어가면서 눈물을 뿌립니다. 지나가는 지인들의 대구에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것이죠. 이런 소식을 들은 세 아들과 아내 허옥란이 다급히 달려왔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우는 이유는 단순히 '돼지 간 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이 먹고 싶어서'였지만, 거기에는 더 큰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낀 대목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대낮에 서럽게 우는 아버지가 창피하다며 뭐 그런 일로 우시느냐고 타박을 합니다. 그때 아내 허옥란은 세 아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이 자식들아. 너희들 양심은 개에게 갖다 줬냐? 아버지를 그렇게 말하다니. 너희 아버지는 피 팔아 번 돈을 전부 너희를 위해서 썼는데. 너희 삼 형제는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웠다 이 말이다. 생각들 좀 해봐라. 흉년 든 그해에 집에서 매일같이 옥수수죽만 먹었을 때, 너희들 얼굴에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서 아버지가 피를 팔아 국수를 사주셨잖니. 이젠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그리고 너 이락이, 네가 생산대에 갔을 때 너희 대장한테 너 좀 잘 부탁한다고 아버지가 피를 두 번이나 팔아서 밥 먹이고 선물까지 사주고 그랬는데, 너 아주 까맣게 잊었구나.



일락이 너도 그럴 줄은 몰랐다. 네가 아버지를 두고 그렇게 말하다니. 참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너한테 아버지가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사실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너한테는 다른 어떤 아들 한 테보다 잘해주셨을 게다.


네가 상하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집안에 돈이 없어서 아버지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피를 파셨지 않니. 한번 팔면 석 달은 쉬어야 하는데, 너 살리려고 자기 목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사흘 걸러 닷새 걸러 한 번씩 피를 파셨단 말이다. 쑹린에서는 돌아가실 뻔도 했는데, 일락이 네가 그 일을 잊어버리다니....


이 자식들아, 너희들 양심은 개새끼가 물어갔더냐. 이놈들..."(328-329p)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피를 뽑아 파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허삼관은 '가족을 위해 위해 몰빵 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의 대표주자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피를 뽑다가 기력이 쇠하여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의 허삼관입니다. 이 대목이 약간은 너무 고전적이면서도 진부한 느낌이 풍기긴 하지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고 봅니다. 막장드라마 같으면서도 묵직한 여운이 있는 작품입니다.



 

 

6 허옥란과 첫째 아들, 일락이는 '약방의 감초'

<허삼관 매혈기>에서 중추적인 스토리텔링의 화제는 바로 아내 '허옥란과 일락이'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신의 세부에 깃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야기의 모든 재미와 흥미와 힘은 '구체적인 세부 details'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말이죠.

 

 

결혼 전에 하소용과 썸을 탔던 허옥란이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일락이 자라면 자랄수록 주위 사람들이 일락이는 허삼관을 닮은 게 아니라 하소용을 닮았다는 구설수에 계속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일락이 학창 시절에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낸 사건으로 인해 허삼관과 함께 매혈을 했던 방 씨에게 엄청난 빚을 지게 되는데, 허삼관은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소용의 아들이니 하소용에게 가서 빚을 갚아달라고 하는 장면도 웃지 못할 해프닝입니다. 하소용이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허삼관은 이락이, 삼락이에게 나중에 커서 하소용이에게 복수를 하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하소용에게 있는 두 딸을 강간해버리라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허삼관은 그때도 자신의 피를 팔아 일락이로 인해진 빚을 다 갚습니다. 허삼관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이락이, 삼락이 보다 일락이를 더 애지중지했습니다. 일락이를 품는 이것이 허삼관의 첫번째 포용입니다.

 

 

허옥란의 생의 무거운 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화 대혁명 때에 누군가 붙인 대자보에 허옥란이 '화냥년'이라고 고발합니다. '몰래 매춘을 해왔으며, 열다섯 살 때는 아예 하룻밤에 이 원씩 받고 영업을 하는 기녀였는데 그녀와 잔 남자가 트럭 열 대로로 모자랄 정도로 많다'는 거짓 대자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대자보로 인해 허옥란은 머리 절반이 밀리고 반동 기생, 화냥년으로 몰려 매일 비판 투쟁대회에 들러리를 서야 하며 '기생 허옥란'이란 목판을 목에 걸고 번화가에 매일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누가 과연 이런 중상모략을 했을까요? 허옥란과 질긴 인연이었던 하소용이 트럭 사고로 죽고 과부가 된 하소용의 부인 짓이었을까? 혼자서 추측해봅니다.

 

 

 

허옥란의 죄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이 팩트일까요? 과연 일락이는 하소용의 자식이었을까?(오늘날처럼 당시에 유전자 검사를 할 수만 있었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을까요?) 작가 위화는 허옥란과의 허삼관의 첫날밤 관계에서 피가 보였다는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주변 세상은 계속 허옥란을 '화냥년'으로 몰아가고 문화 대혁명 시대에는 극에 달했습니다.




"아니, 하소용하고 있었던 그런 사소한 일 가지고도 날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당신하고 임분방 사이에 있었던 일을 비판하는 사람은 어째서 하나도 없는지 모르겠네."




임분방은 허삼관이 허옥란과 결혼 전에 마음에 스쳤던 여인이었습니다. 결혼 후 한참 시간이 흘러 한 순간의 일탈로 인해 임분방과 관계를 가졌던 허삼관의 불륜 스캔들을 두고 허옥란이 말한 것입니다. 허옥란의 공개적인 비난과 비판의 수치와 모욕은 아이들까지도 더해졌습니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그러했지만, 허삼관은 길거리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는 아내에게 밥을 해 나르면서 사람들에게 밥만 준다고 하지만, 밥 밑에 고기와 홍사오러우를 깔아 놓아 아내를 배려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정사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허옥란을 품는 대목을, 허삼관의 두 번째 포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허삼관의 이런 포용과 희생과 얼싸안음이 이 가정을 꽃피우게 합니다.




 

7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두 노인네 부부가 승리 반점에서 돼지 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을 시켜서 먹습니다. 나이가 들어 허삼관의 피는 돼지 피라고 조롱하고 놀려댄 젊은 혈두의 이야기를 듣고는 허옥란이 되받아칩니다.

 

" 그 자식 피가 돼지 피지. 그 자식 피는 칠장이도 안 쓸 걸 그놈의 피야말로 도랑이나 하수도용이지. 제까짓 자식이 뭔데? 난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인지 잘 안다고요. 그 심 꼴통의 아들이잖아. 그 자식 아비는 진짜 밥통이라고요. 일 원짜리하고 오 원짜리도 구분 못하는 천치라니까요.

걔네 엄마도 내가 잘 알지. 알아주는 화냥년이라고요. 그래서 그 자식은 누구 씨앗인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 그 자식, 삼락이 보다도 어린 자식이 감히 그렇게 말하다니. 우리가 삼락 이를 낳았을 때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자식이 말이야. 이제 와서 감히 어느 면전이라고 으스대기는......"



매혈의 현장에서 거절당한 남편을 위해 변호하는 아내, 허옥란의 말투에서 '가족의 풋풋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족은 서로의 죄와 잘못과 시행착오와 상처를 포용하고 얼싸안아주고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을 연습하는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Epilogue...

저자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허삼관 매혈기>를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저는 '가족의 힘'이란 패러다임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위화의 <인생>의 프리즘으로 이 또 다른 작품을 본 것은 아닌가 싶은 노파심도 생기지만, <허삼관매혈기> 또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작품은 또 하나의 세계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은 다양하기에 나의 paper의 편견이라면 편견이랄까? 읽는 이들이 널리 용납해주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

 

역시 위화는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멋진 이야기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별 5개에 만점을 부여하고 싶습니다. 소설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그런 기억을 한번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네요^^... 기대하시고 보셔도 좋은, 믿고 보는 위화 표 소설입니다!

 

 

위화의 '평등'이야기를 접목해보니, 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누가 화냥년입니까?"

 


 

<허삼관 매혈기>가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길래, 중국 영화인 줄 알았는데, 한국영화라고 합니다. 알고 보니 내가 익히 들어봤던 바로 <허삼관>이란 영화입니다. 감독, 주연, 그리고 각본까지도 하정우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아마 하정우가 이 책을 읽고 감동받아 영화를 제작한 것 아닌가? 뭐 그런 추측을 해 봅니다.


영화를 보고 싶은데, 평가를 보니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감동과 격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가족 코메디물로 생각하고 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실 수 있겠다 싶네요. 넷플릭스에서 찾아보니 없고, Btv에선 있는데 돈을 줘야 해서 아직 보지 못한 상황입니다. 언제 보게 되면 리뷰를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연진에는 하정우, 하지원, 전혜진, 성동일, 김성균, 이경영, 조진웅, 장광, 주진모...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만, 하나의 성장드라마이자 휴먼 코미디 영화로 대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허삼관매혈기의 원작과는 다소 다르게 각색된 한국영화 허삼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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