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의 시집에 게재된 '그리움'이란 시에 대해 공유하고자 하는데요. 나태주의 '그리움'이란 제목의 시가 좀 몇 개나 되는군요. 그리움을 읊는다는 것이 시인도 하나의 의미로만 정의하기엔 힘들었나 봅니다.
그리움
때로 내 눈에서도
소금물이 나온다
아마도 내 눈 속에는
바다가 한 채씩 살고 있나 보오.
그리움에는 애절함과 기다림, 그리고 그 결과물이 눈물이니깐 시인은 소금물이 눈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 소금물은 결국 '바다가 한 채나 살고 있는' 모양새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리움은 독특한 감정이다. 애절하고 간절하고 갈급한 감정이다. 우리의 눈은 그런 감정이 극점에 이를 때 눈물을 배출하는데, 시인은 소금물로, 바다가 한 채씩 이란 표현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시인이 애절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는가? 그 사랑하는 대상이 굳이 연인이 아니라고 해도 또 다른 대상일 수도 있다. 시인의 개인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랑하는 부모님을 그리워하기도, 이별로 인해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들, 죽음의 강을 건너버려 더 이상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그 누군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그리워하면 눈물이 나게 되니깐. 너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마음.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시각/촉각/후각/미각/청각, 여기에다 공감각이란 국어시간에 배운 뭐 그런 표현도 있지만, 그건 감각이 아니기에 여기서 배제하자. 사람은 오감의 존재이다. 그래서 시각(눈), 촉각(손, 발, 키스, 포옹, 섹스 등 우리 신체기관을 통해 만지면서 느끼는, 촉감을 통해 느끼는), 후각(코), 미각(혀), 청각(귀)...근데 가만히 보면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무언가를 대할 때 우리의 감각은 하나만 가는게 아닌 것 같다. 시각과 촉각이 같이 가면서 후각도 따라오고 미각도 청각도 다 같이 가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의 오감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오감이 작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각의 주체인 눈에서 소금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 소금물은 우리 눈에 살고 있는 바다 한 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물이다.
오늘은 나태주의 <그리움>이란 시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움1,2,3...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움'이란 제목으로 자신이 원하는 시를 찾으려면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아래의 그리움은 또 다른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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