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가 우연히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Philip Hampson "Phil" Knight, 1938년 2월 24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롭게 보고 제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구성해서 '나이키Nike의 나이트Knigt'에 대한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1등은 하지 못하고 늘 1등의 등만 바라볼 수 밖에 없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육상선수로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후에는 스탠포드 대학원에 진학하여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합니다. 그에 관심은 육상에 대한 깊은 회한이 서려 있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런닝화'에 대한 보고서, '일본의 런닝화가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게 오히려 사업적인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일본을 여행하던 중에 저렴한 운동화 브랜드가 눈에 들어 옵니다. 당시 미국은 운동화가 크게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에 운동화를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일본의 운동화를 미국으로 들여오는 것에 사업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고작 일본 운동화를 떼다가 마대에서 파는 트럭에 파는 것에서부터 나이키의 모태가 되는 '블루 리본Blue Ribbon Sports'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주위 모든 이들이 필 나이트의 이런 생각을 '미친 아이디어Crazy Idea'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1960년대였고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일본의 운동화를 들여온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그지 없었던 것입니다. 육상선수를 했지만, 운동할 때 발바닥이 너무 불편했던 경험이 있던 필 나이트는 운동화를 좀 더 편하게 만들 수 없는가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육상선수 동료들을 불러 모아 창업에 이르게 되는데요. 육상선수들의 현장경험을 토대로 운동화를 만들게 되는데요. 말 그대로 육상계출신 경영인들인 셈이죠. 고향출신 육상코치 필과 함만을 불러들여 1969년 신발회사 '나이키'를 세우게 됩니다. 슈독(Shoedog)이란 말이 있는데요. 말 그대로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 말 그대로 신발뽕, 신발에 목숨과 인생을 건 사람들을 말하는데요. 그런 슈독이 또 다른 슈독을 만난 셈입니다.
나이키의 모체와 같은 '블루 리본'은 원래 일본에서 들여온 '타이거'라는 신발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대행업체에 불과했는데요. 일본에서 더 이상 물건을 줄 수 없다는 계약파기 선언 비슷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필 나이트와 관계자들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고 '나이키'를 만들어 출범하게 되는데요. 당시 사업자금이나 환경이나 모든 것이 변변치 않았던 필 나이트는 동네 여대생 중에 디자인을 좀 한다는 캐롤린 데이비스에게 나이키 로고디자인을 의뢰하는데, 그때 받은 돈은 35달러였다고 합니다. 진짜 변변치 않는 조건이었죠. 물론 나이키로고의 지금의 가치는 260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집니다. 누가 나이키가 이렇게 성공할 줄 그 당시에 알았을까요? 필 나이트와 나이키는 1983년에 나이키 디자인의 시안자인 캐롤린 데이비스에게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보답합니다. 이처럼 필 나이트는 초기 친구 제프 존슨, 우델, 바우어만 코치, 아내 페니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면서 사람들에게 매일 '운동화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인물입니다.
나이키 하면 마이클 조던이 생각나는데요. 마이클 조던이 신고 출전했던 농구화의 색상이 워낙 화려했는데요. 원래 농구경기출전시 농구화의 색깔은 무조건 흰색이어야 한다는 당시 규칙을 어기는 행위로 인해 벌금을 5,000달러를 내야만 했지만, 필 나이트는 과감하게 과감한 색상을 도입한 운동화를 보급하여 벌금을 상쇄하고도 남는 엄청난 대박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필 나이트는 나이키를 세우면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운동화를 신고 더 밖으로 나가 걷고 뛰고 즐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사는 운동화 밑에 욕실 실내화의 쿠션을 넣으면 어떨까 하는 적용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나중에는 나이키 에어맥스로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필 나이트와 아내 페니는 필 나이트가 졸업한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1억 5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자신의 모교인 오리건 대학에는 3억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낸 것으로 추정되며 이 기부금은 역사상 최대의 대학 기부 기금이라는 영예를 누리게 됩니다.
나이키홈페이지에 가보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정말 육상선수 출신의 빌 나이트의 전심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기업이 나이키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발, 매일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의 발에 대한, 운동화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홈페이지라고 생각합니다.
1988년 TV광고대행사 대표 댄 위든이 나이키의 정신적인 모토라고 할 수 있는 이 Just do it을 만들어 냈는데요. 1976년 사형제도가 부활한 이후 첫 집행의 대상이 바로 게리 길모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라고 묻는 사형수를 향한 질문에 그는 'Let's do it!'이란 말을 남겼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가 내뱉은 이 말 '자, 한번 해 보자' 이 말이 굉장히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댄 위든은 게리 길모어의 이 말에 영감을 얻어 "Let's do it"을 "just do it'로 바꿔 지금까지 나이키의 슬로건이 되고 있습니다. 사형수 게리 길모어는 자신이 뱉은 그 말이 이렇게 변형되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겠죠. ㅎㅎ
한 사람, 육상선수 출신의 경영인이 가진 '런닝화', '운동화'에 대한 관심이 결국은 NIKE를 만들어 낸 셈입니다. 나이키는 지금도 빌 나이트의 정신이 고수하여 세계시장에서 '운동화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하고 있는 멋진 기업이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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