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의 신간 시집<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의 첫번째 시 '이런 사람'에 대한 해석과 감상을 공유하고자 하는데, 오늘은 2-3행만을 해부해보고자 한다. 이건 순전히 카알KaRL21의 Selfish한 관점이고 사색이고 해석임을 밝힌다.
그런 사람
봄이면 꽃마다 찾아가 칭찬해 주는 사람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숨결과 웃음이 잇닿아 있는 사람
자신의 아픔이면서 그 아픔의 치료제임을 아는 사람
이따금 방문하는 슬픔 맞아들이되
기쁨의 촉수 부러뜨리지 않는 사람
한때 부서져도 온전해질 수 있게 된 사람
사탕수수처럼 심이 거칠어도
존재 어느 층에 단맛을 간직한 사람
좋아하는 것 더 오래 좋아하기 위해
거리를 둘 줄 아는 사람
어느 길을 가든 자신 안으로도 길을 내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기 영혼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
내어 주는 사람
아직 그래 본 적 없지만
새알을 품을 수 있는 사람
하나의 얼굴 찾아서
지상에 많은 발자국 낸 사람
세상이 요구하는 삶이
자신에게 너무 작다는 걸 아는 사람
어디에 있든 자신 안의 고요 잃지 않는 사람
마른 입술은
물이 보내는 소식이라는 걸 아는 사람
봄이면 꽃마다 찾아가 칭찬해 주는 사람
...이에 대한 나만의 해석과 포스팅은 따로 했었다.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요즘 듣고 있는 음악이 하나 있는데, Sade의 <By your side>라는 곡이다. 왜 이 곡인지는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심심하면 보시면 참조하시길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 연인에게 언제나 그 사람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내용의 가사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편'이 되어줄 지원군을 원한다.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힘을 주고 화이팅을 외치는 사람을 원한다.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을 원한다. 인생은 언제나 진정한 나의 우군을 얻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우군을 만나는 것을 녹녹치 않다. 부모를 만나는 것도, 연인, 친구, 배우자, 자녀라는 가장 가까운 데서 우리는 우군을 찾고 발견하고 그렇게 살아가지만, 때론 이런 수순 가운데서도 때로는 상처를 받는다. 인간은 원래 깨어지기 쉬운fragile 연약한 존재이기에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다. 상처를 받으면 사람은 위축되고 왜곡되기 쉽다. 그리고서 객관적인 시선과 관점을 잃어버린다. 거기서 트라우마가 발생하고, 콤플렉스가 탄생하게 된다.
스치고 지나가는 일상의 사소한 말과 스트레스를 주는 사소한 것들은 복싱경기에서 툭툭 치고 가는 잽과 같은 경미한 것이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결국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 복싱선수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강력한 펀치 한 방도 한 방이지만, 대다수가 '누적된 잽의 축적량'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소하지만 미세한 잽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게 결국 선수를 다운시키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이 말 한 것처럼 '남 모르는 상처 입'은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상처받고 상처주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의 형태form은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욕망의 크기도 다르고, 사람마다 마음의 사이즈도 다르다. 삼국지에서 나온 표현을 쓰자면, '정신적인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적인 크기는 선천척으로 타고난 경우도 있겠지만, 후천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금수저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엘리트코스를 밟은 수재라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크기가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여유는 있겠지만, 그의 삶의 탄탄대로와 견주어 볼 때 멘탈과 정신과 마음의 크기가 무조건 정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향해 날아오는 상처의 화살을 누구나가 다 맞을 수 있다. 맞아야 한다. 비켜간다고 비켜갈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상처의 비수가 내게 꽂힐 때, 그것이 말이든, 행동이든, 사건이든, 재난이든, 그 어떤 폭풍우든지 간에 우리는 그걸 감내해야 한다. 상처가 발발하면 그 상처가 덧나지 않게 우리는 처리를 해야 살아갈 수가 있다. 간단하게 손가락이 베이더라도 우리는 소독을 하고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야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듯이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회복탄력성'이란 말이 있다. 회복을 하는데 얼마나 탄력적으로 자신의 멘탈를 추스리고 일어서는가? 넘어지고 자빠져도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 회복탄력성 지수라고 해야하나? 그게 높은 사람일 수록 자신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빨리 치유하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시인이 이야기하는 이런 사람의 두 번째 정의에 해당하는 사람은 바로 회복탄력성이 구비되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이미 치료, 치유가 거의 완성단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에 연연치 않게 된다. 사람이 상처가 쌓이고 누적되면 그 상처로 인해 그에게서 나쁜 공기, 이른바 독소가 뿜어져 나오게 된다. 그 독서가 제일 먼저 드러나는 것은 표정이고 안색일 것이다. 그 다음에 그가 입을 열게 되면 나오는 말투, 어투이다.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이 말은 그 사람의 상처와 데미지 받은 경우가 있지만, 그의 언어에 독소가 없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 사이라도 서로의 약점이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면 버럭하게 된다. 그래서 어투가 강하게 되고 목소리의 데시벨이 높아지고 혈압이 올라가게 되고 스트레스를 주고 받게 된다. 우리의 어투가 왜 변하고 달라지고 평상시와 같이 평온하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가? 자신의 가슴에 비수가 꽂혀 있기 때문이고 상대방이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기 때문이다. 설사 비수를 꽂지 않았다고 해도 서로에 대한 몰이해나 자가진단이 제대로 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비수를 꽂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리액션이 나오게 되는 것은 상대방에게 아직도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게 되면 더 이상 그런 반응이 무의미하다고, 헛헛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리액션은 작아지고 사그라들게 된다.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시즌1 부터 보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최고기와 유깻잎이 등장한다. 딸 솔잎이가 이제 4~5살인데 그들은 이제 이혼한 지 1년도 안 된 이혼커플이다(시즌1에선). 속도위반으로 일찍 결혼한 그 두 사람은 남편은 최고기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유깻잎은 아이를 낳고서 독박육아에 치이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결혼의 허니문(Honymoon을 Honey Gate라고 한번 변경해 보자), 말 그대로
'결혼 = 꿀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꿀문은 개뿔, 완전 'Hellgate지옥문'와 같은 곳이 결혼생활이었던 것이다. 젊은 커플들이 자주 하는 실수이다. 왜냐하면 결혼하는 이들은 다 초보이기 때문이다. 유깻잎이 독박육아에 치이면서 스스로 표현하기를 '20대를 갈아넣었다'고 했는데(근데 애기 하나 낳고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 좀 거슬렸다.ㅋㅋ 하지만 사람마다 다 느끼는 고통의 값은 상대적인 절대값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인 최고기는 아내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밖에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가장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최고기는 바를 열고 사업을 하다가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유깻잎과 최고기는 이혼을 하게 된다. <우리 이혼 했어요>에서 두 사람이 재결합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물론 지금은 다른 상황이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최고기가 다시 유깻잎에게 '재혼'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냈을 때, 유깻잎은 '너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한다. '사랑이 비어버린empty'이 것이다. 완전히 감정의 잔고가 거덜나 버린 것이다. 잔고는 채워질 수 있기라도 하지만, 상처받고 누적되고 축적되어 방전되어 버린 유깻잎의 마음엔 최고기의 사랑이 '없다'고 확실히 못 박아 버린 셈이다. 유깻잎에게 최고기에 대한 기대가 1이라도 있었을때 최고기가 다가왔다면 달랐겠지만, 아내는 이제 남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체념과 체념과 또 다른 체념이 계속 쌓이면서 이젠 FULL 포기해 버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언가를 기대할 때는 상처를 주고 받지만, 기대감이 1도 없을 때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강 건너 불 구경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제 주관이 아닌 객관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가슴에 와 닿지 않을만큼 얼음가슴이 되어 버린 경우이다. 결혼의 허니문이 때로는 남녀가 주고 받는 사랑 때문에 헬게이트, 겨울왕국이 되고 결국은 이혼을 하게 된다.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여기서 류시화가 이야기하는 '이런 사람'은 상대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포기상태에 이른 유깻잎 같은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건 상대방에게 아무런 리액션을 원하지 않는 경우이다. 바라지 않는 것이다. 지금 유깻잎은 새로운 남친을 사귀고 있고 이혼이란 화두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방송출연이 잦아지게 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아래기사 참조). 이런 우려 또한 <우이혼>을 통해 시청자들이 유깻잎에게 받았던 자잘한 감동의 여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출연자에게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남친이 생기고 그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방송까지 출연해서 우이혼2에 게스트로 나온 것은, 그걸 섭외한 제작진도, 출연한 당사자도 시청자 입장에서 피로감이 누적된다는 내용인데, 왜 피로감이 생기는가? 그 출연자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 탓도 있겠다 싶다.
다시 원래 시의 자리로 돌아오면,
우리가 상처를 알게 모르게 받았지만, 그 상처에 대해 버럭하지 않고 치유된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비수나 독소를 뿜어내지 않는 단계의 사람을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상대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한 단계의 유깻잎의 단계의 경우는 아니다. 왜냐하면 유깻잎의 경우는 더 이상 전 남편, 최고기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길 거부하고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시인이 말하는 '이런 사람'은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태의 사람이다. 반드시 남녀관계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태의 '이런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에 집착하지 않기에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사관과 신사>에서 리차드 기어가 데보라 윙거에게 했던 대사였던가? 상대방이 누군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그런 대사를 했다.
"기대감이 크면 상처도 크다"
뭐 그런 이야기의 일종이었다.
'기대감이 크면 클수록 상처도 크다'
뭐 이런 류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기대감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상처때문에 독소가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 기대감을 줄이고 자기 안의 마음과 정신적인 크기와 자아의 무게중심을 잘 잡는다면 우리는 언젠가는 '이런 사람'의 두 번째 정의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지 모른다. 거기엔 세월의 풍화작용과 마모작용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있어 거친 시간(hardtime)을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어찌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하겠는가? 진짜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지 않고서는 개과천선하기 힘든 경우이기도 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이 좀 더 겸손하고 자기자신의 모난 모서리에 더 다듬을려고 노력한다면, 언제나 타인의 모서리로 인해 내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도 다소 덜 민감해지지 않을까?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이 시 하나를 가지고 언제까지 해석할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2-3행을 해석하다 보니 또 길어져버렸다. 이 포스팅 보시는 분들은 지루하시겠다 싶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시작은 했으니 끝을 봐야 하는데. 시 하나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의미 하나 하나를 파악하는데 이렇게 깊게 파고드는 카알KaRL21의 스타일인지라 여러분의 스타일에 안 드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바꿀 순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제가 10대, 20대도 아니고...^^ 류시화의 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 여기서 말하는 내용들 하나 하나가 류시화의 인생의 저점에서 고점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토해진 내용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을 예측은 했었다. 그래도, 괜찮다. 여긴 내 블로그니깐. 그리고 나는 이런 시를 좋아한다. 사색할 요소가 많고 꺼리가 많은 이런 시가 좋다.
오늘은 류시화의 신간 시집의 첫 시 <이런 사람>의 2-3행을 가지고 상처에 대한, 그 상처를 대하는 자세를 이야기하면서 <우이혼>의 최고기와 유깻잎에 대한 이야기까지 콜라보로 엮어 보았다. 상처에 대한 의연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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