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알KaRL21입니다.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우연찮게 본 영화 <후쿠오카 Fukuoka, 2019>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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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2 이 영화는 50대 권해효, 윤제문의 첫 사랑의 이야기를 소환시키는 박소담의 이야기입니다. 3. 이 영화의 매력은? 한 마디로 '엉뚱함'입니다. 4. 28년 동안 넘사벽이었던 관계를 이어주는 소담 5. 때론 나와 너 뿐만 아니라 제3자도 필요한 게 인생인가 싶네요!
1. 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갓 스무살을 지낸 소담이 교복을 입고 중년의 서점 주인, 제문에게 돌발적으로 제안합니다.
'일본여행을 같이 가지 않겠느냐?'
이 영화는 그렇다면 '원조교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20대의 젊은 여성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제문은 평소 얼굴이 낯익던 소담이 그런 소릴 하자 의아해합니다. 소담은 제문이 장사가 잘 안되는 지하 책방에서 자주 야동 보는 걸 목격하고서 자주 입에 댑니다. 제문과 소담의 원조교제? 절대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2 이 영화는 50대 권해효, 윤제문의 첫 사랑의 이야기를 소환시키는 박소담의 이야기입니다. 이십 수년 전, 권해효와 윤제문은 연극반 선후배였습니다. 그때 해효와 제문은 서로 사랑하는 여자, '순이'이 있었습니다. 해효가 사랑하는 순이, 제문이 사랑한 순이는 동일한 인물이었습니다. 순이는 이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습니다. 하루 동안 해효와 자고 그날 또, 제문과도 잡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첫사랑 순이에 대해 모든 것을 선점하고자 합니다. 나이가 그렇게 들어도 추억조차도, 기억조차도 선점하고자 합니다. 28여년 전이었던가요? 그 두 남자와 잔 순이는 다음날 자퇴를 해서 사라집니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해효는 일본 후쿠오카에 가서 선술집을 하면서 지냅니다. 순이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이가 후쿠오카 출신이라서 거기에 간 것입니다. 순이란 이름도 당시에 그렇게 한인들이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군요. 순이를 찾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후쿠오카에서 그러고 삽니다. 어처구니 없지요.
제문은 순이가 학교 다닐 때 자주 들렀던 지하 책방 서점을 인수해서 혹여나 순이가 찾아올까봐 그렇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그러고 삽니다. 둘 다 물론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을 그러고 삽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이죠. 그들은 서로 서로가 순이를 더 사랑했다고 생각하고 오해하고 살아왔는데요.
그런 두 중년 남자를 20대의 소담이 후쿠오카로 모이게 만듭니다. 약간은 또라이같고, 때론 귀신같이 사람의 마음과 모든 미래를 점치는 소담, 두 남자의 3박 4일의 여행이야기인데요. 잠이 너무 오질 않아 무심코 한국영화 뒤지다가 그냥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결론 없이 멍청하게 보면서 한번씩 어의 없이 웃을 수 있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영화
입니다.
3. 이 영화의 매력은? 한 마디로 '엉뚱함'입니다. 정말 동네아저씨 같은 권해요와 윤제문의 부담없는 마스크와 연기를 보고 싶다면, 그리고 거기서 통통 튀는 박소담과의 티키타카! 정말 제가 권해요와 윤제문이 커피샵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옆에서 같이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더군요. 그런 느낌의 영화 입니다.
정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조합 속에서 케미 아닌 케미가 엿보이는 영화, 정말 엉뚱한 영화 <후쿠오카>였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의 감독은 장륭감독으로, 조선족 출신의 감독이자, 소설가입니다. 원래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의 연세대교수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요소요소에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목이 보통사람 같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조선족 출신이라고 하니 조금 의아했습니다. 그게 암튼, 대개 엉뚱하긴 합니다만...
4. 28년 동안 넘사벽이었던 관계를 이어주는 소담 이 이야기가 이야기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런 것 보다도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고, 아마 두 사람의 동정을 동시에 바친 듯 싶은데요(이건 뇌피셜입니다), 그런 순이를 잊지 못해 한 사람은 일본에서, 한 사람은 한국에서 그렇게 침묵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헤집으며 벽이 되어버린 두 사람, 해효와 제문...소담이 아니었다면, 후쿠오카에서 만날 날이 없었겠죠?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과 왜곡과 편견으로 자신의 마음을 스크래치하면서 결혼도 안하고 그렇게 늙어가겠죠?
순이가 어떻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었나요?
"두 사람이 너무나 똑같다"
고 이야기합니다. 순이도 그랬고, 소담도 그렇게 말합니다. 너무나 똑같아서 순이가 동시에 사랑할 수 있었다고. 순이로 인해 멀어져버린 선후배, 절친과도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어져가는, 얼어붙은 관계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인데요. 소담은 어떤 매개자, 메타포일까요? 너무 멀어져버린, 너무나 멀리 가 버린 관계를 다시 이어가기 위해선 때론 누군가가 필요한가 봅니다. 똘아이 같고, 엉뚱하기 그지 없는 소담이가 해효와 제문의 깨져버린 관계의 에 다리를 놔 주는 bridge builder가 되었군요.
그럼 소담은 어떻게 해서 재문에게 후코오카에 가자고 했을까요?
영화 도입부에 뜬금없이 후코오카행을 제안하는데요. 영화 스토리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제문의 추억속의 이야기를 소담이 알고 있었는가? 어떻게 후쿠오카를 가려고 했을까? 하는 것이죠. 거기엔 권해효가 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소담의 soul에서 터져나온 일본 후쿠오카행이 해효와 제문의 soul을 터치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영화 처음부분에서 지하 책방에서 들려오던 권해효의 목소리는 후쿠오카 행을 통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권해효의 존재가 거기에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이 부분은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5. 때론 나와 너 뿐만 아니라 제3자도 필요한 게 인생인가 싶네요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까? 이런 영화가 조금 골치가 아픈데요. 그냥 그렇게 이야기해 봅니다.
"나와 너 뿐만이 아니라 때론 제3자도 필요한 게 인생이다."
너무 영끌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짜맞춰 본 저만의 해석입니다. 너무 큰 넘사벽과 불통과 고통이 가로막혀 있을 때, 때론 나, 그리고 너 외에 또 다른 타자가 필요한 게 인생이라는....똘아이같은 소담이 때문에 두 사람의 Soul이 다시 부딪힐 수 있었으니, 소통할 수 있었으니...그런게 인생에 있어 소중한 게 아닐까요? 평생 가슴에 한을 담아두고, 응어리를 담아두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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