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관에 우연히 눈에 들어와 빌린 책이다. 알고 보니 이소은이라는 가수가 있었다구. 큰 딸 이소연, 작은 딸 이소은, 두 사람 모두 음악인으로 성장했다. 큰 딸은 신시내티음대 종신교수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둘째 딸은 16세에 가수로 데뷔했다가, 지금은 미국의 뉴욕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이 두 딸을 키운 아빠, 이규천의 ‘방목 철학’이야기이다. 법학과 행정학, 그리고 정치학 박사를 받아 교수로, 공무원을 지낸 저자이다.
2
아빠의 철학을 대변하는 모토, “잊어버려(Forget about it.)”
솔직히 육아와 교육에 정답(해답)은 없다. 학부모들끼리 모여 ‘카더라’통신에 연루되면, 자신의 철학 보다는 시대의 줌마들의 분위기와 흐름에 끌려다니는 것이 육아이고 교육문제이다. 저자는 아이를 키울 때 언제나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엄마 아빠, 나한테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유익한 것을 하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14p)
저자의 방목 철학은 그냥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뼈대)이 있는 자녀교육이었다.
‘방목은 무관심이나 무절제가 아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게 아이들의 본성과 독특함을
최대한 보장하고 유지해주려는 세심한 배려이다.’(55p)
“너희들의 인생은 너희들 것이지 엄마 아빠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너희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고 억제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식 일 앞에서 더더욱 그렇다. 딸들의 결정과 판단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애쓸 때 내게 가장 요구된 자질은 ‘절제’였다. 큰 딸이 피아니스트로 가기로 진로를 정하면서, 딸만을 미국에 유학생으로 두고 돌아오는 부모의 마음이나, 작은 딸이 가수로 지내다가 로스쿨을 간다고 했을 때, 부모의 마음은 마아블링처럼 혼란스웠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천천히’부모가 되어간다. 생물학적으로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엄마, 아빠’가 되지만, 진정한 ‘엄마, 아빠’는 ‘아주 천천히’되어가는 것이다.
‘아이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과 별개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기다림의 여유가 생긴다.’(59p)
3
“책임감은 일부러 가지려 한다고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네 의무를 다하면 자연적으로 생겨난단다.”
저자는 아이들을 키울 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 자신도 사회도 행복해진다는 말을 자주 했고, 아이들은 그것을 자신의 철학으로 적용시켰다.
4
교육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믿음과 관계맺음이라고 생각한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하지만, 부모는 늘 조급함에 아이들에게 강요와 간섭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삶에는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 없지만 그냥 옆에 있어줄 수는 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것이 가장 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106p)
5
이규천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의 철학이 반영된 이 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작은 딸이 로스쿨에서 첫 학기 관문을 통과하는 중요한 중간시험에서 실패했다. 딸의 실망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딸에게 ‘다음 시험을 잘 치르면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망쳤어도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는 식의 격려도 아니었다.
“성적과 너를 분리해서 생각해. 너는 성적이 아니라 이소은이야!”(125p)
아이의 자립심, 독립심, 자존감을 스스로 세워주게 만드는 부모의 철학이 놀랍다.
“세상 모든 나무의 모양이 다르듯 아이에게도 각자 타고난 모습이 있다. 제 모양대로 자라는 나무를 주인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려고 하면 많은 손상을 입는다. 아이도 각각의 본성대로 자라게 두지 않으면 기형이 된다. 기형을 막는 방법은 부모의 사랑 뿐이다.”(188p)
‘일상은 배움의 과정이고 불평불만은 새로운 것과 진부한 것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소음’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엄마, 아내의 모토이다. 새로움에 따른 반감으로 불만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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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가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형제나 자매가 되는 것이고, 아이들은 부모를 위해 아빠와 엄마가 되는 것이며, 형제와 자매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235p)-헨리 나우웬 신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느린 과정이다.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데 부모의 멘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늘 부모들은 허덕인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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