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그분을 기억한다(feat.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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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그분을 기억한다(feat.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6.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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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인적으로 본 TV프로그램과 이병욱의 단편소설 '그분을 기억한다'라는 내용과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이야기를 콜라보하여 쓴 주관적인 스토리임을 밝힌다.

 

 

 

<전지적 참견 시점>이 아닌 <나혼자 산다> 

 예전에 즐겨보던 TV프로그램 중에 <전지적 참견시점>이란 방송이 있다. 그 인기는 다들 익히 아실 것이다. 처음에 나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어렴풋이 기억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운데서도 그런 분들이 몇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창시절에 배운 1인칭 주인공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뭐 이런 거 있지 않은가! 공부도 잘 안 한 1인인데, 어찌 이럴 땐 기억도 잘 안 나는 내 뇌의 밑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불완전하고 불투명한 데이터를 끄집어내는지 참 우스운 노릇이다. 딸내미가 ‘아빠,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고, 전지적 참견 시점이야!’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고 한참 보고 나서야 <전지적 참견 시점>이란 것을 제대로 기억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뭐 하나 각인시키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어쩔!

 

 

근데, 실컷 적어놨더니 기안84가 <전지적 참견 시점>에 나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쩔!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두 개인데, 그게 헷갈렸다. 아....

 

 

 

오늘 페이퍼는 <나혼자산다>에 나온 기안84이야기로 시작한다. ㅠㅠ

 

 

 

만화하면 그분이 생각난다, 삼촌!

   엊그제 방송된 내용에 기안84의 만화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안84가 젊은 나이에 만화, 웹툰 회사를 차렸다. 만화를 보면. 만화 하면 떠오르는 분이 한 분 생각 난다. 바로 우리 작은 아버지, 삼촌이시다. 삼촌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한다. 순전히 ‘만화’때문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만화에 몰두하는 삼촌이 이런 모습에 대해 “만화 그리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하시면서 역정을 내셨고, 삼촌은 할아버지를 피해 다락방에 올라가서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셨다. 삼촌이 그린 그림들과 습작노트는 전부 내 차지였다. 그걸 보면서 삼촌의 그림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의 문화자체에 만화가 끼어들 틈이 없던 시기였고, 만화라는 장르에 대해 사람들은 그냥 만화방에서 양아치나 공부 안하는 농땡이들이 보는 그림책 정도에 불과했다. 사회적 인식이 그러했다. 어쨌든 삼촌은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라는 하나의 무기만을 가지고 홀홀단신으로 상경한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셨다? 물론 성공하셨다. 당시에 이름을 걸고 하는 만화가가 있었던 반면에, 화백 밑에 들어가 그림을 그려주면서 일당을 받는 케이스가 있었는데, 삼촌은 후자를 선택했고, A4지 한 장당 몇 만원씩 받았으니 할아버지 눈에는 정말 돈도 안 될 것 같은 ‘만화’를 통해 자수성가를 한 셈이다.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고...

 

 

 

그런데, IMF가 문제였다. IMF가 터질 때 등장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그 인터넷으로 통해 온라인 시장이 등장했고, 만화라는 종이책이 인터넷의 스크린책으로 둔갑할 기미가 보였다. 그때 많은 실업자가 생겼고 만화계에 닥친 충격도 만만찮았다. 그리고서 삼촌은 그토록 좋아하는 만화를 접었다....삼촌의 그림 솜씨는 정말 탁월했는데...그 피를 이어 받아 나도 만화가를 해보고 싶었는데, 꿈이다...꿈....

 

 

 

만화의 불투명한 미래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연히 삼촌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삼촌이 ‘웹툰’이 이렇게 발전할지 알았다면 당신 자신도 계속 만화를 할 것인데, 라는 후회 가득한 고백을 하셨다. 만화를 좋아하는 나도 인터넷이 등장할 당시만 해도 만화, 종이, 아날로그는 사장할 기세였다. 만화가인 당사자 삼촌께선 얼마나 더 큰 충격을 받으셨을까! 지금 삼촌은 이 사업, 저 사업 하시다가 만화와는 거리가 먼 업종에 종사하고 계신다. 그래서 삼촌의 이름으로 만화를 한번 출판했음 좋겠다고 운을 뗐는데, 삼촌께서 틈틈이 삶의 한켠에서 느낀 사색과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하셨고, 기회가 된다면 책으로 내볼까 하시는 생각도 하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응원한다고 했다. 삼촌은 나의 어릴 적 우상이셨다.

 

 

 

삼촌의 뒷통수를 치게 만든 웹툰

   그 웹툰이다. 삼촌의 뒷통수를 치게 만들었던 웹툰! 웹툰이 돈이 된다는 사실에 많은 만화가 지망생들이 달려들 것이다. 4포 시대에, 취업도 안 되는 이 시대에 웹툰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가! 다행이다. 젊은이들을 올인하게 만드는 직종이 하나 자리매김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솔직히 이전에는 만화가라면 누가 거들떠봤는가! 대형 베스트작가인 허영만, 이현세(첨엔 나는 이현세를 ‘이문세’로 적고 이현세로 보고 있었네, 어쩔!)...요즘의 윤태호, 웹툰 작가들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과도기에는 만화계에 진출할 엄두를 다들 내지 못했던 것이다. 삼촌께서도 만화에 대한 불투명한 미래와 예견을 후배들에게 해주었는데, 그래도 그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에 올인한 친구들은 성공한다는 에피소드를 말씀해주기도 하셨다. 만화...아뜩하다!

 

 

기안84

 

 

다시, 기안84이야기로

   거기서 5명의 직원들과 일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총 6명이 회사인 셈이다. 기안84의, 젊으니깐 소탈하고 거리감 없는 모습들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본 것은 프로페셔날한 기안84가 직원들에게 웹툰 컷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충고하며 케어하는 장면이었다. 이미 웹툰작가로 명성을 굳힌 기안84의 레벨에 미치지 못하는 직원들의 화면터치나 그림들을 기안84는 날카롭게, 치열하게 업그레이드시켜주면서 마감을 하고 있다. 웹툰작가에겐 ‘마감’deadline시한이 중요하니깐! 마감이 얼마나 중요하면 사훈으로 그렇게 ‘마감시한을 앞당기자’는 슬로건을 내걸었을까!

 

 

무심 이병욱의 <그분을 기억한다>

   그 장면을 보니 무심 이병욱님의 첫 번째 단편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 중에는  <그분을 기억한다>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시골초등학교로 전학 온 도시학교의 미술부 출신의 주인공, 그의 그림을 보면서 미술부 선생이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그림은 종종 상을 탄 이력도 있다. 그리고 새롭게 오신 의욕이 불탄 미술부 선생님, 그는 금요일 오후, 토요일 오후까지 미술부원들에게 그림연습을 시킨다. 때론 일요일에도 나와서 연습을 시킨다. 그리고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아이들에게 미술지도를 한다. 그리고 대망의 전국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열렸다. 새벽부터 준비해서 상경한 시골학교의 미술부 친구들이다. 무언가 하나 대박을 터트릴 것 같은 의욕으로 가득 무장한 미술선생님은 대회를 마치고 내려올 때도 꿈에 부풀어계셨다. 아이들도 물론이다.

 

 

“나 참, 버스에서 사이다 박스를 내린다는 것을 잊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내가 출장비 받은 게 많으니까 사이다를 두 병씩 사 주마. 그깟 놈의 사이다가 문제냐, 우리 미술반 모두가 상을 휩쓸텐데!”(210p)

 

 

드디어 대회입상결과가 발표되었다.

어쩔! 한 사람도 입상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시골학교에서 미술지도에 공을 얼마나 들였던가! 그 충격은 아이들에게도 상처였다. 주인공은 그림그리기를 접었다. 미술지도 선생님도 그 사건 이후로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 무성한 소문만을 남긴 채!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오래전부터 ‘도제식 교육’이 많은 효과를 누린 것은 사실이다. 

위대한 왕, 알렉산드로스를 알렉산드로스로 만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이 있듯이, 모방을 통해 더 나은 창조, 재창조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 베로키오는 제자의 그림 솜씨를 보고는 '다시는 물감에 손대지 않겠노라'고 맹세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 당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나이가 스무 살이었다. 하지만 실은 베로키오가 재능 넘치는 도제에게 더 많은 그림을 위임하고 자기는 수익성이 높은 조각상 제작에 전념하겠다는 사업상의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튼 다빈치와 같은 천재라면 스승을 탁월하게 뛰어넘어버려 신경쓸 것도 없다(물론 음악가 살리에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재능에 대해 거대한 시기와 질투의 괴물에 시달렸긴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재가 아니다. 그러면 이런 도제식 교육이 오히려 젊은 유망주들을 아작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심 이병욱의 <그분을 기억한다>는 바로 그런 케이스이다.

 

 

모든 천재들의 스승이 바로 안드레아 델 베르키오였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모방은 모방의 달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다빈치 같은 위대한 천재가 아닐 바에야 결국 모방, 카피copy의 카피꾼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그 어린 미술부의 유망주들을 낙심하게 만들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만들었던 그 종국적인 원인은 무언가?

 

 

 

창조의 부재는 동심童心의 부재였다!

의욕 넘치던 미술지도 선생님이 떠나가고 새롭게 선생님이 오셨다.

 

“여기 미술반 맞지요? 내가 당분간 미술반 담당입니다. 뭐 미술이라는 게....뭔가 그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각자 만화를 그려도 좋고 낙서로 그려도 좋고, 여하튼 떠들지만 말고 조용히 그림 그리고 있으면 됩니다. 알았죠?”(211p)

 

 

   아이들의 모든 것에 어른의 기교와 테크닉과 감각과 시각까지 주입하려고 했던 미술반 선생님의 도제식 교육의 참담한 비극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때 인기가 넘쳤던 『SKY캐슬』이 생각이 난다(근데, 난 그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결론도 모른다 ㅜㅜ 드라마를 보지 않기에...)

 

 

요즘 헬리콥터 부모가 너무나 많은데, J.S.밀이 그렇게 대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제임스 밀의 교육 탓이기도 한데, 하지만 제임스 밀의 아들에 대한, <주지주의> 교육이 20세부터 아들의 ‘정서적 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한다. J.S.밀의 특이하고도 유니크한 연애와 결혼도 이런 정서적인 갈증, 정신적인 노선에서 연유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밀의 연애와 결혼은 보편적이지는 않은 경우이다. 밀은 유부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 결혼했다는 사실, 전 남편은 과연 밀과 아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ㅎㅎ

 

 

아무튼 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스승이 자녀의 교육에 얼마나 관여해야 옳은 것일까?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에 대해 나름 생각해 본다. 물론 정답은 없다.

    

모방과 창조에 대한 귀한 통찰에 대한 그림이 있어 소개해 본다. 과거에 적은 글인데, 그래도 옮겨 본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  나는 지금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다. 그런데 이 책 진짜 대단한 책이다. 매 페이지마다 명화를 수록할 정도의 꼼꼼한 챙김과 함께 늘어놓은 곰브리치의 진정한 미술에 대한 자세와 생각들...특히, 마태오의 성서를 기록하는 장면을 그린 그 그림은 참으로 예술, 미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고 그 미술, 즉 미술의 결과인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 평가나 생각들이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알고 있다. 나는 문득 이 대목을 가만히 생각해보면서 느끼는 것은 ‘미술’이란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 예술가들, 미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예술적, 미술적 상상력이란 것이 형언할 수 없는 정도의 정신적 크기라는 것에 은근히 압도되었다.

(20080129, 화요일의 기록)

 

특별히 마태오의 성서를 기록하는 대목에 대해서 내가 글을 적어놓은 것을 찾아보니 아마도 분실한 듯.  하드디스크를 뒤져도 없늘 걸 보니 백업하는 와중에 날아간 듯 싶다.

 

 

기계적인 기술이냐? 창조적인 시도이냐?

  내가 이 부분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준 적도 있는데, 아래의 마태오가 성경을 기록하는 장면이다. 왼쪽 그림은 천사가 직접 손을 지시하면서 문자하나 하나까지도 직접 기록에 개입했다는 신학의 '기계적 영감설'과 같은 그림이다. 이를테면, 메신저인 천사나 하나님이 받아적으라고 해서 마태오가 받아쓰기를 하듯이 '받아적는' 장면을 구현했는데, 카라바조는 오른쪽 그림에서 그는 예술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런 기계적인 받아쓰기가 아니라 마태오의 개인적인 모든 것을 동원하여 천사와 함께 성경을 기록하는 다소 '창조적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두 그림이 주는 차이가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神은 우리가 가진 모든 개인적인 능력과 은사와 창조성과 역량을 무시하고 배제한채 우리를 '받아쓰기용' 정도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의 모든 것, 모든 경험, 더 나아가 우리의 모든 실패와 시행착오와 열등감과 트라우마와 심지어 죽음까지도 통째로 사용하셔서 그분의 나라에 기여하게끔 하실 것이다. 물론 그 기여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그런 인사이트insight를 내게 주었다.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의 기록)

 

 

 

위의 그림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말이 달리는 모습을 굉장히 과장되게 표현했는데, 그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그림이다. 그림은 사진이 아니다. 그림은 사실적인 사진이 아니라 그림은 작가, 예술가의 개인적인 모든 감정과 편견과 의견이 조합되어 드러나는 표현물이다.

 

 

제리코의 그림은 그런 의미에서 창조적이다. 말이 달리는 긴 롱다리가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림만이 보여주는 달림의 힘참과 말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이 그림이 특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순전한 내 생각이다.

( 2014년 11월 28일 같은 시각의 사색)

 

 

 

서양철학사는 힐쉬베르거, 서양미술사는 곰브리치? ㅋㅋ(이것도 과거의 생각이다, 철학의 문외한이 외치는 어불성설을 널리 양해하시길~)

 

 

 

창조의 부재는 동심의 부재!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신만의 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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