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일이다. 그때 우리 첫애가 태어났다.
난 직장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그냥 직장을 나오고 싶었다. 부끄러웠다. 실수한 그 날 바로 상사를 찾아 사직서를 제출했다. 붙잡지 않더라.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는 생각과 열패감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빨리 그 직장을 탈출하여 해방감을 맛보고 싶었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정말 사표를 확 던지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 그때가 그랬다. 사람들에게 일구이언이나 변명 따위는 하지 않고 직장을 나왔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군은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내주는 사택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사표는 수리되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당시 나는 너무 지쳤고 힘들었다.
직장생활의 틈바구니에 나는 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느낌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보면 ‘unsuitable’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맥락과 문맥을 떠나 정말 ‘몸에 맞지 않는, 적합지 않은’느낌이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들었다.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정년은퇴를 한 분이 자신이 직장생활이 맞지 않았던 인물이었다고. 그렇게 따지면, 다들 보편적으로 자기에게 꼭 맞는, 안성맞춤의 직업군에 속해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어쩌겠는가!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가! 그때 나는 와이프랑 아들과 함께 처갓집 신세를 2-3주 지게 되었다. 짐은 컨테이너에 맡겨두고. 근데, 정말 그런 짓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집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본가는 시골이었고, 아내가 그래도 편한 처갓집에 다음 직장을 준비하면서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더라. 그리고 생활의 짐들을 컨테이너에 맡기는 것도 참 못할 짓이다. 어쩌겠는가!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것이지.
김승옥의 『무진기행』(민음사)에 포함된 10개의 단편소설 가운데 오늘은 『차나 한잔』이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20대 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맘에 드는 여성에게 다가가 ‘차나 한잔 하시죠?’ 아니면 ‘커피나 한잔 하시죠?’이런 이야기로 접근하면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작 나는 그런 길거리 헌팅을 시도해 본적은 없는 듯 싶다. <차나 한잔> 김승옥의 이 단편은 말 그대로 ‘차나 한잔 하자’면서 대화의 물고를 트는데, 그 대화의 내용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되느냐인데,
“오늘 치는 빠졌더군요.”(153p)
“김 선생님, 결국 목 잘렸습니다.”(187p)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맥락에서 상사가 당사자에게 건네는 문장이 바로 ‘차나 한 잔 하자’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신문사(잡지사)의 만화연재작가이다. 그런데, 자신이 실컷 그린 만화가 지면에 빠지고, 실리지 않은 상황들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물론 60년대의 배경하의 언론사는 작품 속의 복덕방 영감이 김 선생의 해고 이유를 추측하는 데 다분히 정치적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심하게 정부를 까더니 그예 당했구려?’(164p)
이유가 어찌 되었던지 간에 신혼부부와 같은 주인공이 꼼짝없이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기 일보 직전이다. two job으로 다른 일을 프리랜서로 뛰고 있었지만, 변변치 않은 수입이었다. 작가 김승옥은 위태위태한 직장생활인의 불안을 주인공의 소화불량, 설사, 배앓이를 통해 표현해 준다. 말 그대로 ‘똥이 더 나올 듯한 개운치 않음’이 젊은이를 뒤따라 다니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신경쓰는 불안을 걱정해 휴지를 챙겨주고 안위를 걱정하고 염려해준다. 주인공은 설사가 자주 나올까 봐 늘 불안해한다. 버스를 탈 때도, 길을 걸어갈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불안해한다. 방귀를 끼려다 설사가 나올 수도 있으니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60년대에는 자가용이 오늘날처럼 흔한 시대가 아니었다. 밖에서 변을 당하면 손 쓸 도리가 없는 지경이다.
‘그야말로 어쩌다가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기가, 지난날 우연 속에 자신을 맡겨버린 것이 갑자기 역겨워졌다. <거지 같은 자식이었다>하고 그는 자신을 욕했다. 손톱만큼이라도 좋으니 나의 주장이 있었어야 할 게 아닌가’(155p)
우리가 우리의 직업과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 신중함과 심사숙고함이 셋팅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일과 job이 우연한 동선에 의해 놓여질 때가 얼마나 많던가! 주인공의 독백을 보면서, 십수년 전에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나올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실패의 쓴 맛을 맛보았을 때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욕하고 싶고 저주하고 싶고 또한 내가 몸 담았던 과거에 대해 욕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가득한가!
자신의 연재만화를 관리했던 문화부장이 주인공과 ‘차나 한잔’하자고 한다. 두 사람은 그토록 일로, 사무적으로 부대끼면서도 ‘차 한잔’하지 못한 관계였다고 문화부장을 새삼 떠올린다. 하지만, 문화부장의 마음도 굉장히 드라이하다. 문화부장은 오늘 분량의 만화 원고를 그려왔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당연히 자신의 밥줄과도 같은 그 원고를 그려왔다. 하지만, 신문사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고 눈치 빠르게 대구한다.
“그려오지 않았는데요.”
“그럼 알고 계셨군요.”
“차나 한잔 하러 가실까요.”(166p)
나는 주인공이 문화부장 앞에서 “그려오지 않았는데요.”라고 말하는 이 대목이 너무 짠한거야. 그렇게라도 말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엿보여 다 마음이 싸하다.
평상시에 ‘차나 한잔’ 하지도 않은 관계가 그 심각한 상황에서 ‘차나 한잔’한다는 것이 참으로 사람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물론 자초지종도 모른 채 잘리는 경우도 많지만. 문화부장의 말은 자신의 역할을 이제 좀 더 비용이 저렴한 미국의 만화가들의 신디케이트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전에 ‘기사 폭주관계’로 자신의 원고가 누락 되었고 빠졌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이걸로써 내가 그 속에서 살아났던 한 가지 우연이 끝장났구나....그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서 또 무엇을 붙들어야 한다. 오늘 중으로 무언가 확실한 걸 붙들어 둬야 한다.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을 순조롭게 연속시켜 주는 것을 붙잡아 둬야 한다.’(172-173p)
‘오늘 중으로, 반드시 오늘 중으로 붙잡아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무엇을 말인가?...그는 답을 얻었다. 만화다.’(176p)
‘차나 한잔, 그것은 일종의 추파다....내가 그곳에서 성실을 다했던 하나의 우연이 끝나고...그것은 이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동양적인 특히 한국적인 미담....’(189p)
우리가 흔히 빈말로, 형식상의 인사말을 한다. ‘다음에 좀 봅시다’길을 걷다가 자신의 잘린 직장과 연관된 키 큰 카메라맨을 만난다. 그리고서, 그는 이 말을 툭 던진다.
“이 형, 다음에 좀 봅시다.”
작가 김승옥은 이 말에 대해 이렇게 묘사해준다.
‘그는 그네들의 말투를 알고 있었다. 저 도회의 어법을, 그리고 그는 항상 그 어법에 잘 속았었다. 방금 카메라맨이 말한 “다음에 좀 봅시다.”는. 그 뜻을 따라서 정확히 표기하자면 “그럼 다음에 또 만납시다. 안녕히 가십시오.”이다.
그런데, 그들은 <좀>이란 부사를 집어넣어서 듣는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음에 좀 만납시다.”어쩌면 당신에게 일자리를 얻어 줄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요인가? 생각해 보라.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지 않은가? 그는 아침나절에, 그가 관계하던 신문사에서 문화부장에게 속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가 해고당한 것을 알리기 전에 문화부장은 먼저 “오늘치 만화 좀......”했던 것이다....“오늘치 만화....”라고 했으면 그는 자기가 해고당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리라. 또는 “오늘부터는 그리실 필요는 없게 됐습니다.”라고 하면 유감스럽긴 하지만 그것도 뜻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치 좀......”했던 것이다. 오늘치의 만화를 보아서 재미가 있으면 계속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해고다라고밖에 들리지 않던 그 말투, 그는 갑자기 꽥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186-187p)
주인공은 설사로 인해 늘 조심조심 움직인다. 그런데, 자신의 옆방에 세든 부부가 사는데, 그 아줌마는 하루 종일 재봉틀을 돌리면서 생계를 꾸려간다. 직장도 짤렸고 동병상련을 겪은 만화가 김선생을 만나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옆방에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주인공이 던지는 말이다.
“어지간히 성실하게 사는 척하지?”
그런데, 갑자기 옆방에서 방귀소리가 둔하게 들려왔던 것이다. 아내가 말한다.
“그래도 별수 없이 보리밥만 먹는 신센데요, 네?”
그러면서 주인공 부부가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그런데, 방음이 안 되는 그 이웃끼리 웃음의 비밀이 공유되어버렸다. 아주머니의 ‘어지간히 성실하게 사는 척’하는 재봉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주머니, 그건 건강한 증거입니다. 돌려요. 어서, 돌려요.’다시 재봉틀 소리가 돌아간다. ‘그럼요. 아주머니, 방귀 좀 뀌었기로서니 재봉틀 소리를 죽여야 할 거까지는 없습니다. 돌려요, 어서요.’(191p)
다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다.
주인공도, 옆집 아줌마도. 옆집 아줌마의 방귀 소리에 호들갑을 떨며 웃어버린 주인공이지만, 정작 자신의 똥을 쌀지도 모르는 설사를 참아가면서 사는 더 불쌍하고 슬픈 현실인 것을 작가는 대조시켜주고 있다. 술김에 아내를 안고 누운 주인공은 자신이 지금은 아내를 부드럽게 대하지만, 언젠가는 옆집 부부의 아저씨가 아내를 때리는 것처럼 지금은 그 부부를 욕하지만, 자신도 어떤 상황과 환경과 원인에 의해 언젠가 아내를 때리게 될지도 모르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수많은 불안, 수많은 정신적인 설사들을 떠올리면서 ‘그는 울음이 터질 뻔’했던 것이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십수 년 전에 느꼈던 나의 열패감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지나갔다. 시간이 수년 지났을까? 그 상사분이 '나의 진가(?)'를 알아봐주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ㅋㅋㅋ 상사는 무척 아쉬워하셨고 나중에 같이 MT도 같이 갔었다. 지금도 관계의 끈은 계속 연결되고 있다. 뭐 그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나는 탁월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안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나는 내 에너지를 다해 일을 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안 해주고는 차후의 문제이다. 일단 나 자신에게 나는 충실하고 싶은 습성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같은 유형은 직장생활에서 치이고 치여 지치고 낙마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직장생활은 수많은 <좀>이 필요한데 말이다. 아부도 좀... 감언이설도 좀...적당한 좀의 형식적이지만 수사학적인 칭찬과 둘러치기, 오버래핑, 가면, 철판, 강심장....뭐 그런 좀좀좀....좀좀의 그런 것들들....그런데, 그게 나하고 안 맞다.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마터면 절망할 뻔 했다. 하지만, 인생에게 절망도 때론 약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절망하지 않고서 희망의 싹을,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는가!
하지만, 지금은 더 큰 열패감과 실패의식의 유령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생이 롤로코스터인데 말인데. 하우석의 『내 인생 5년 후』에 나온 문장이다.
“나쁘지 않은 인생은 나쁘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문장만큼은 좋다.
<나쁘지 않은 인생은 나쁘다>
<나쁘다>가 있기에 <좋다>가 있는 것이 아닐까! 롤로코스터 인생에서 절망의 벽에 부딪힌 인생에게 김승옥의 단편소설 <차나 한잔>은 어떨까 싶다. 추천한다. 공감의 울림이 있을 것이다.
아, 저는 커피로 하겠습니다.
드립커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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