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괴테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파우스트>일 것이다.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 등일 것이다.
이 책은 괴테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드러난 괴테의 가치관과 철학, 생각, 사상들을 다루고 있다. 짧은 문장들이지만 깊숙하고 음미할만한 문장들이 많다. 나는 이 책을 E-book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귀로 듣는 오디오북을 먼저 들었는데, 너무 짧아 아쉬움이 컸다. 아는 내용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대충 알던 괴테가 굉장히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껏 괴테만큼 높은 경지에 다다른 인간이 있었던가?"
"괴테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아. 오히려 우리는 괴테가 한 대로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
천하의 니체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니체가 괴테에서 물려받은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교양이다. 교양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교양은 교양인에게 배울 수 밖에 없다. 괴테는 모짜르트의 음악을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 세상에 내보낸 음악'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파우스트>에 곡을 붙일 권리가 있는 사람은 모차르트 뿐이다"고 했다. 그런데도 많은 작곡가들이 <파우스트>에 곡을 붙였다. 오페라만도 50곡이 넘는다. 악성 베토벤은 괴테를 숭배하며 괴테와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때, 그 모든 일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던가! 괴테를 위해서라면 나는 열 번이라도 죽었을 것이다."
이 베토벤의 말이 괴테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괴테는 7년 전쟁, 미국독립혁명,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의 영웅시대와 몰락을 경험한 격동의 시대의 인물이다. 괴테는 말했다.
"나는 크게 득을 보았다. 세계사적 대사건이 마치 예정된 일처럼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발발한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나 그 시대에 태어났다고 괴테처럼 사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괴테가 괴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괴테에 대한 칭찬과 찬사는 니체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괴테는 공직자의 생활을 했다. 권력의 수장으로 있었다(괴테는 작가, 박물학자, 그리고 바이마르 왕국의 내각주석과 재무국장관으로 지낸 귀재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검소하고 기능을 중시한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화려한 방이나 호화로운 가구는 아무런 사상도 갖지 못하고, 가지려는 의식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장식일 뿐이다."
"화려한 건물과 방은 왕이나 부자를 위한 것이다. 그런 곳에서 지내면 안락을 탐하고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나는 천성적으로 그런 생활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공직자의 생활이 얼마나 안주할 수 있는 위치인가! 하지만 괴테는 안주하지 않고 움직였다. 역류하는 연어처럼 자신의 영혼이 꿈틀거리게 움직이고 또 움직였던 것이다. 괴테가 사랑한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바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사랑했다'. 얼마나 큰 인물이 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의 절제된 삶의 방식도 돋보이지만, 그는 항상 '존경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사귀지 말라.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은 사람도 피해야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카를 아우쿠스트 대공을 섬겼던 괴테는 말했다.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행동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항상 존경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라."
"자신보다 더 유능한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속물이다. 더욱이 속물은 자신이 갖지 못한 환경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이 자신과 똑같은 존재이기를 바란다."
괴테의 이런 면은 '은혜를 잊는 약점(023)'에서 드러난다.
"은혜를 잊는다는 것은 항상 약점이 된다. 유능한 사람 중에서 받은 은혜를 잊었다는 사람을 이제껏 나는 본 적이 없다."
괴테는 권력과 재산과 능력의 보이는 면에 혹하지 않았다. 괴테는 인간적인 가치가 뒷받침되지 못한 권위는 존경을 잘라냈다.
"훈장 달린 상의와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고작, 최하위층의 무지한 대중을 위협할 뿐이다."
괴테는 자신보다 8살이나 아래인 아우구스트 대공의 위대한 면모에 끌려 그를 향한 존경심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할 때 나이가 얼마인지를 보는 경우가 혹 있다. 하지만 괴테는 물리적인 나이, 비주얼한 사이즈에 현혹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뚝심이기도 했다. 그의 이런 정신적 뚝심, 멘탈의 퀄리티quality는 그의 대작 <파우스트>에서도 드러난다.
괴테는 8세에 시를 지었다. 13세에 첫 시집을 냈다. 그는 조숙한 문학 신동이었다.20대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여 베스트셀러작가가 된다. 대박이다. 이런 괴테였지만, 괴테가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예술이든 실제로 해보면 대단히 어렵고도 광대해서, 어느 예술 분야에서든 대가의 반열에 오르려면 실로 한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테는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업 활동은 단 한 분야에만 국한시켜왔다. 그는 단 한가지 예술을 연마했으며, 사실 거장답게 실력을 쌓아올렸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일’이었다.‘-『괴테와의 대화』, 185-186
그의 말대로 괴테는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위해 60년의 시간을 소요한다. 완성 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원고를 봉인한 뒤, 자신의 죽음 이후에 발표할 것을 주위에 지시한다.괴테는 ‘독일어로 글 쓰는 일’에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 공직자의 생활도 했지만, 늘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예술적인 열정’ 때문에 공직자의 생활에서 도망치기도 했던 괴테였다. 문학 신동이라고 불렸던 다재다능한 괴테조차도, 한 가지 일,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쳐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괴테의 뚝심, 파우스트"이 대목은 이전에 썼던 <천년습작>에 대한 나의 리뷰에서 발췌 인용하였다) 괴테는 저술활동을 통해 독일어를 정리한 근대 독일어의 아버지로 불린다. 근대 독일 정신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괴테는 독일어를 천재적 수준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니체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경쟁자였다. 하지만, 그런 니체조차도 번역된 괴테를 따랐다. 니체의 저작권집만 봐도 니체가 괴테를 언급한 부분이 260군데가 넘는다. 니체가 언급한 '한층 높은 인간들' , 초인(Ubermensch위버멘쉬)은 육체적인 강자, 영웅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을 의미하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 유형을 초월하는 '초인'이란 말도 괴테에게 붙인 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괴테의 친구중에 프리드리히 실러(독일의 시인, 극작가, 철학자로 괴테와 함께 고전주의 예술 이론을 확립했다)작가가 있다. 그는 유명한 희곡 <군도>와 <빌헬름 텔>을 발표했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중 <환희의 송가>를 지은 인물이다. 하지만 실러에게 가장 큰 결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악취였다. 악취? 그게 무슨 말이냐? 실러는 글을 쓰거나 집필할 때 영감이 잘 떠오른다는 이유로 썩은 사과를 작업실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사과의 악취를 맡으면서 집필에 몰두하는 실러의 이런 고약한 습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괴테는 '인간은 누구나 이상한 버릇을 하나쯤 갖기 마련이다. 그러한 버릇을 모두 없앤다면 시시할 것이다.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연인의 결점을 미덕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결점은 인간의 매력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괴테는 '결점까지 사랑하라(014)고 조언한다. 괴테와 실러는 처음부터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희곡 <빌헬름 텔>을 쓴 실러의 작품 분위기를 괴테는 매우 싫어했다. 매우 선동적이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괴테는 이 점을 싫어했다. 괴테는 실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자주 토로했다. '강렬하지만 미숙한 재능을 지닌 남자'라고 비난했다. 실러의 작품을 '내가 가장 혐호를 느끼는 타입'이라고 평했다. <군도>도 비판했다. 반면에, 실러는 괴테를 흠모하고 있었다. 실러는 친구에게 괴테에 대한 마음을 호소했다.
'괴테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다네. 이제껏 내가 이 정도로 정신세계를 숭배한 사람은 없었어.'
1788년 가을, 드디어 괴테와 실러가 만났다. 괴테 39세, 실러 29세였다. 괴테는 달갑지 않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괴테는 10살이나 연하인 실러의 정체 모를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의 비난과 비판이 이제는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신뢰하고 괴테는 실러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상연했고, 1799년 실러를 바이마르로 초대했다. 괴테의 대단한 점은 자신과 다른 캐릭터의 연하의 남자를 대등한 동료로 대했다는 사실이다. 괴테가 56세 때 실러가 먼저 죽었다. 괴테는 한달 동안 기운이 쳐저 절망가운데 있엇다. 3개월 후 비로소 실러의 추도회를 열 수 있었다. 실러가 죽은 후, 괴테는 이런 시를 썼다.
'장미의 계절을 떠나보낸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겠구나, 장미 봉오리가 무엇인지를.
뒤늦게 피어난, 줄기에 빛나는 단 한 송이
천자만흥보다 아름답구나.
괴테의 시신은 현재 바이마르 영묘에 실러의 관과 함께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두 사람의 동상도 보인다. 두 사람의 나이와 성격과 캐릭터를 뛰어넘는 우정이 너무나 탁월하다. 아마도 괴테가 남들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경멸하는 것을 혐호하고 존경할 것을 평생 주문한 것은 실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혼자서 추측해본다. 평생 죽음에 대해 생각한 사상의 결대로 괴테는 실러 곁에 죽어 있다.
"죽음은 기묘한 일이다. 주변에서 죽음을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괴테는 이렇게 읊었다.
"죽은 후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
수많은 연애상대가 있었고, 부인이 있었지만, 괴테, 그의 곁에 누워있는 사람은 바로 실러였다.
괴테는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를 굉장히 중시했다. 괴테는 결혼을 '모든 문화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문화는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쌓아올리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연애야말로 괴테를 쉼없이 움직인 원동력'
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남녀평등은 악절적인 허구'라고 했다.
"여성을 가장 든든하게 보호할 줄 아는 남자만이 여성의 마음을 얻을 자격이 있다."
괴테는 57세,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1806년 10월 14일 나폴레옹의 프랑군이 프로이센군을 격파한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한 프랑스군이 바이마르로 쳐들어와 거리에서 약탈을 범했고 괴테의 자택에서 침입했다. 위험했던 괴테를 내연의 처인 크리스티아네가 기지를 발휘해 구해냈고, 이 일을 계기로 크리스티아네와 오랜 동거생활을 끝내고 정식으로 결혼했다는 일화가 있다. 참고로 내연녀 크리스티아네는 그가 39세였던 1788년부터 시작되었으나, 18년동안이나 그녀를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
<더는 사랑도, 방황도 하지 않는 사람은 죽느니만 못하다>
아,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독일의 대문호, 괴테답지 않은가!
괴테는 또 이런 말도 한다.
'세상은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꿈만 꾸는 사람보다 실제 글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을 인정한다.'
이 말은 글을 쓰는 우리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주는 듯 하다. 꿈만 크고 위대하고 그로테스크하게 꿈꾸면서 다른 이들의 글과 저작을 폄하하고 비판하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지 정곡을 찌르는 대목인 듯 하다. 멍 때리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괴테
"나는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일이 효율적으로 되지 않는 날에는 잡담을 하거나 차라리 낮잠이라도 자는 편이 낫다. 그럴 때 무리하게 글을 써봤자 나중에 후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도 가치가 있다.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수많은 천재들의 영감과 아이디어와 창조력은 멍 때리는 시간에 탄생했다는. 괴테가 이런 말을 하다니 참 새롭게 다가온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자신이 잘하는 방법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좋은 일을 하려고 언제나 애쓰는 사람이다."
'자유가 아닌데도 자유라고 굳게 믿는 사람만큼 노예상태에 빠진 사람은 없다'고 괴테는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자유라고 선언하는 순간 스스로 제약을 느낀다. 과감히 자신이 제약되어 있다고 선언하면 오히려 자유를 느낀다.'
괴테는 '추상적인 자유'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자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모두 인정하지 않고는 자유로워질 수 없으며 ,자신에 관한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무엇이든 다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의문점도 많아지는 법이다."
괴테에 대한 이 책을 보면서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다분하다. 마무리는 괴테의 이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진리는 꾸준히 반복해서 흡수해야 한다. 오류가 우리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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