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꿈을 꾼다. 기억하고 싶은 꿈, 문장, 사건, 등장인물, 대사 ...하지만, 그것을 일일히 기록하고 메모를 남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휘발된다. 단초가 될 만한 키워드가 없다면, 우리가 꾼 꿈은 레테라는 망각의 강에 떠내려 가버리게 된다. 우리가 밤에 꾸었던 꿈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지내온 과거의 역사들, 살아온 삶의 흔적들, 일상들, 그때 그때 그 순간 순간의 온전한 기억들도 다 시간이 지나면 휘발된다. 그때 그 시간과 그 장소에 누가 있었는지 이름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 사건 하나 제대로 디테일하게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 때의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해 낼 수만 있다면, 기억으로 재현해 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의 스토리는 더 풍성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해 본다.
작가 정혜윤은 자신의 지인이었던 선배, 그 선배의 아들이 감명받았던 세계적인 성악가의 공연, 그리고 거기서 받았던 감동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그러자, 친구가 그 세계적인 성악가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어쩔!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억이 나질 않는 거다. 이럴 때 대화의 맥이, 김이 빠지는 것이다.
"메모해 둘껄."
우리의 습관은 그런 후회와 자책과 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액션이 가해진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두목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목, 당신이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십시오.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게요."
정혜윤은 스스로 묻는다.
'나는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가?'
취업준비 시절 작가는 "나는 너무 후져!"라고 하면서 자책하고 허망해하고 절망했다. 하지만, 만년 표류하는 '아무튼, 유망주(기대주)'란 이런 꼬리표와 딱지표에서 자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슬픈 세상에 기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에 그는 르포작가가 되고자 맘을 먹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메모의 화신'이 되었다.
'그때 나는 노력하면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근거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믿어야 했다. 믿기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의 히스토리는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나의 메모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플로베르가 말한다.
"나를 괴롭히는 뭔가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나의 크기를 모른다는 거지. 나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해. 어느 정도까지 당길 수 있는지 근육의 힘을 알고 싶어."
나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고 싶었다. 내 메모장의 여백이 현실보다 더 중요한 현실 같았다...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보르헤스
"작은 불씨가 새로운 불길을 만든다."-단테의 <신곡> 중에서 '천국'편에서
사회가 힘이 셀수록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적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작가는 말한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하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을 되새기게끔 한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메모는 단어와 문장과 글로 순간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seize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대목이 좋다.
'비행기가 날아오를때 활주로가 필요하듯 우리도 날아오르려면 토대가 필요하다.'
그 토대는 자신이 택한 삶의 새로운 원칙과 새로운 '시선'으로 가득 찰수록 좋다.
<우주 만화>에서 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변화라는 최초의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다른 변화가 뒤따르기 시작한다. 세상 무엇도 인간의 변하기 전에는 변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단련'의 결과이다.
'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하다. 이 세상에 우리의 관심을 원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니까. 우리는 스치듯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많이 배웠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슴 아리게도 '설레는 느낌'도 없이 살게 된다. 삶은 시들시들하다(시들한 사람의 특징. "아무것도 관심 없어!").'
↘우리는 언젠가부터 다양한 관심사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 손 안에 스마트폰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재붕 교수는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스마트폰 인간'이 탄생했음을 밝혔고, <CHANGE 9>에서는 코로나19가 오히려 이런 현상을 더 부채질할 수 밖에 업었다고 기술한다.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다 이뤄진다. 거기서 손을 뗄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과다 정보와 과잉 정보에 노출되어 더 행복해졌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세상과 인류와 지구를 스캔하고 서핑한다. 말 그대로 '스치듯이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져버렸다. 뭔가 진지하고 깊고 우직한 맛을 잃어버려가는 것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 메모한다는 것은 무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붙잡는 것리라!
'우리는 그냥 살지 않는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산다. 반대로 마음이 텅 빈 날이 있다.'
첫번째, '재미없어' 에너지.
삶을 즐기라고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삶을 견디고 있지 않은가? 삶을 견디려고 재미를 찾는다면 그야말로 패배주의적 재미다.
두번째, '나는 안 변해'에너지.
세번째, '돈 좀 돼?' 에너지.
돈 때문에 정말 많은 성장 이야기들이 사라졌다.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그러나 많은 좋은 것이 반자본주의적이다.
↘어느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보이는 게 있다' ...
가난이 무엇이기에 부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단 말인가? 무언가 결여되고 무언가 부족한 상태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톨스토이가 있다. 두 사람 다 어마무시한 거장들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삶의 이력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너무나 가난하였다. 속된 말로, '똥구멍 찢어지도록 가난하였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왕실가문의 후손으로 대단한 가문과 재력을 누리며 지냈던 작가이다. 톨스토이는 그렇다치고,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돈이 없었다면 그가 글을 썼을까? 란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돈 때문에 글을 썼다는 주제의 책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란 책이다. 돈의 부족, 가난, 결핍, 찢어지게 가난한 그의 지갑이 가난한 자들의 심리와 마음을 헤집어 낼 수 있지 않았는가! 도박으로 돈을 날려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과거도 있지 않는가! 아무리 대문호 톨스토이라도 도스토예프스키가 보았던 것을 절대 볼 수 없는, 가난에 대한 넘사벽이 있었다는 말씀이다.
"누군가 진짜로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그 순간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이나 희망과 관련된 소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존 버거
"들꽃은 꿈을 위해 태어났고 우리는 삶을 위해 태어났다."-로르카 시인
메모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
'문장수집가'인 작가 정혜윤은 말한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괴로움 속에서 말없이 메모하는 기분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정혜윤의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진짜 메모하고 싶어진다. 메모가 얼마나 비범한 활동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세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들"-소로우는 자신의 '일기'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나 자신에게 주는 격려의 말한 번만 새로워지자, 딱 한 번만!
모름지기 영혼은 향이 나야 한다. 모름지기 사람의 눈은 빛이 나야 한다.'
"나는 싸우지 않고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 세대들이 볼 수 있는 무언인가를 나는 완성할 것이다. 나는 싸우고 사랑하다가 죽어갈 것이다." -<일리아드>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전투를 앞두고 한 말이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질 것이고, 트로이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주저앉아 패망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헥토르는 전진했던 것이다. 메모는 그런 전진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가족은 어느 해 홍수 때문에 포도 농사를 다 망쳤다.
"아버지,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시끄럽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이에 대한 니코스의 말.
"아버지의 재난을 지켜보며 아버지 혼자만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오늘의 헛수고는 무엇이냐?
-오늘도 나는 다른 사람을 닮으려고 너무 노력했다.
-오늘도 나는 다른 사람 마음에 들려고 너무 노력했다.
-오늘도 나는 나의 그림자로 살았다...그림자도 아무도 공격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공격받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인간의 특징: 인간은 걱정, 희망, 욕망, 이 셋 중 하나에는 꼭 사로잡힌다.
인간은 자신감과 두려움, 이 둘 사이를 왕복운동한다. 신이 아가에게 삶을 주면서 말했다.
"아가야, 선물이란다. 가지고 놀아라!"
그리고 인간은 삶을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쪽과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나뉜다.
작가는 메모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 침묵과 긍정을 기다리지 않았던 날은 하루도 없다.'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보르헤스
↘내가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에 대한 느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문장이 마음에 내려앉는다'란 표현이 정확하겠다. 나는 보르헤스의 이 말에 너무 심쿵했다. '나쁜 일은 바꿔라.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오오! 어떻게 이런 말을...그래서 보르헤스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아직 보르헤스의 책을 사놓기만 하고 읽어보지 못했다는 전설이...
"아침볕이 흐릿하게 사라질때 해변을 걸으며 상상하는 것이 진실"- 휫트먼의 시구
휫트먼은 "전기 띤 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전기 띤 몸을 사랑한다. 놀라운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 그 충격으로 감전되는 것이 좋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은 결국 우리 안에 다 있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타인들은 존재하고, 나는 그것을 찾아내서 결국은 '우리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잘 전해야 했다.
"지옥같은 세상에서 지옥 같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내라"- 이 문장은 별 100개를 줘도 모자랄 문장이다. 그렇지 않은가?
꿈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사는 날도 많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꿈이란, 기쁘게 이 세상의 일부분이 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꿈은 '아니면 말고'의 세계가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의 세계다. 꿈은 수많은 이유가 모여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일, 포기하면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일이다. 진짜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 때문에 많은 것을 참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선택하고 대가를 치른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꿈의 추구가 아니라 꿈의 포기로 자기 삶을 설명하려고 한다.
꿈의 재료와의 싸움이다.
"해답이 아니라 경이로움을 즐기라."-이탈로 칼비노
↘'고통에도 에너지가 있다'라는 이 문장을 접하면서 참 심쿵했다. 우리는 좋은 분위기와 괜찮은 컨디션, 보다 쾌적한 환경, 내 맘에 흡족할 만한 동료들과 사람들로 인해 에너지를 받는다. 하지만, 고통은 내가 생각치도 못하는 잽과 훅을 날리면서 때론 나를 KO시키기도 한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우리는 낙심과 절망과 좌절과 고통의 낭떠러지에서 삶의 새로운 에너지와 힘을 받는다. 그것은 우리 영혼과 멘탈의 근육을 단련시킨다. 온실 속에서 안락하게 자라난 화초는 광야의 들판에서 온갖 자연의 풍파를 겪은 야생초와는 비교할 수 없다. 내구성의 격차가 발생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이 고통', '저 고통' 제발 나를 좀 비켜갔으면 좋겠다, '이 놈', '저 년' 만 없으면 내 인생이 새롭게 꽃피울텐데 나는 그 인간(들) 때문에 늘 거덜 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이 문장,
'고통에도 에너지가 있다!'
정혜윤의 문고판과 같은 이 <아무튼, 메모>는 도전과 힘이 되는 문장이 페이지마다 주옥같이 배열되어 있다. 그 문장들이 나를 붙잡고 흔든다. 그 문장이 내 가슴에 내려 앉도록 내 마음을 담금질하려고 이렇게 주절주절거리고 있다오.
'내가 쓴 글은 꿈꾸는 대로 살면서 만신창이가 된 한 사람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은 또 수많은 사람에게 그 힘을 몇 배로 되돌려주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
"슬픈 눈동자를 보면서 꿈꾸는 법을 배웠다."-네루다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의 몸을 가리켜 피를 담는 자루가 시간을 담는다고 했다. 쿤데라의 말대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몸과 단둘만이 남겨진 시간을 마주한다.
"위에서 오는 빛이 너무 강렬해서 우리는 어두워질 수 없었다."-파울첼란
"나는 나자신에게는 너무 무겁고 타인에게는 너무 가볍습니다."-카프카
뉴욕 미스터 소방관이 매일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아름다운 복근을 만드는 이유가 있었다. 미스터 소방관으로 명성과 명예를 만들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본업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직업을 꿈꾸면서 몸을 단련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꿈은 오로지 고층 건물 소방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을 때, 긴급한 돌발상황이나 비상 상태에 놓여졌을 때, 더 빨리 뛰어 올라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내 몸과 가장 잘 지내는 순간은 내 몸을 어디에 쓸지 알고 있을 때고, 나는 내 몸과 함께 할 일이 있다. '
"노을을 사랑하듯 삶을 사랑하라"
'세상엔 슬픔이 많아.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라니까."
플라토노프의 소설 <구덩이>
-"아무도 너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기억할께."
작가는 창경원의 콘도르인 '꼽추'이야기를 전한다.
그 콘도르는 새끼일 때 동물원으로 온 듯 하다. 콘도르가 본 하늘은 언제나 철창 위의 하늘이 전부였다. 대기를 날아 하늘 깊숙한 곳으로, 창공을 날으며 비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친구였다. 그 콘도르가 날개를 다 펴면 길이가 240센티미터가 된다.
그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서도 한 번도 날개짓을 하지 못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그렇게 35년을 살았다. 창경원에서 한번도 날아보지 못한 콘도르 '꼽추'는 35년동안 장수하고 노화로 죽었다. 한번도 날개를 펴지 못하고서 말이다.
세상의 수많은 새 뿐만 아니라 곤충조차도 매일 매일 날개짓을 해야 한다. 그것은 연습이기도 하지만, 생존의 위한 필수사항이다.
'...그러나 가장 작은 새인 벌새는 날개도 매우 작아 매초 80회 정도 날개를 퍼덕이지 않는다면 공중에 떠 있을 수조차 없다.'-유범주 <새>
"땅 가까이 있고 싶다. 그러나 날면서. 갈매기가 그러하듯이."-페소아
↘우리가 비상할 수 있도록, 아니 비상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우리가 매일 매일 매순간마다 절망의 맨홀 뚜껑을 열고 지상 위로 올라갈 수 있기 위해선 디딤돌이 필요하고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작가 정혜윤은 그 힘의 토대, 기초를 자신의 메모에서 출발시키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에 일본인에게 포로로 끌려가 조선인의 신분이지만, 자신의 동족들인 포로들을 감시하는 일본제국의 하수인인 포로감시원을 했던, 실존의 인물 이학래의 이야기를 작가는 해주고 있다. 그는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을 위해 일했지만, 전쟁 재판을 할 때는 결국 조선인으로 분류되어 결말이 을씨년스러웠던 이야기이다.
'조선인 전범 149명 중 23명 은 조국을 해방시킨 연합국에 의해 사형당했다. 그동안 천황, 731부대 책임자, 강제징용의 기획자 누구도 전범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철저히 혼자였던 그들은 당시 역사가 필요로 했던 것, 정의실현을 위해 엑스트라 역할을 하다가 죽은 뒤 이내 역사의 쓰레기 통 속으로, 망각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전범재판에는 조선인 판사, 조선인 검사도 없었고, 증인도, 대질심문도 없었다.
그들은 일본인 정부에 의해
"필요하면 써먹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고, 책임을 떠넘기고, 아무런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은 것이이야말로 부조리, 부정의"
였다. 같은 조선인으로서 사형을 언도 받은 두 명의 사형수 중에 이학래가 있었다. 이학래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사람은 사형집행 전날 먹지도 마시지도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서 교수대로 가기 직전 이학래에서 최후의 악수를 하면서 한 마디 했다고 한다.
"당신이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만약 살아남는다면, 임영준이가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었다고 말해주세요."
지옥을 여행했던 단테가
"산 자의 눈으로 죽은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오."
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학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사형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죽을 이유를 몰랐듯이 산 이유도 몰랐다. 이학래는 그들이 얼마나 살고 싶어 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이학래는 해마다 새해가 밝으면 수첩에 조선인 전범 명예 회복이라는 똑같은 목표를 써넣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메모하고 싶은 것은 없다. 다른 쓸 거리가 필요 없다. 메모지에 적힌 이름들이 그에게 삶의 이유를 주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메모지가 자신의 삶이다. 그리고 글자가 보인 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
↘조선인감시원 이학래에 관한 뉴스 더 보기
'자기만의 작은 질서,작은 실천, 작은 의식(ritual)을 갖는 것이 행복이다. 메모는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방식, 자신만의 질서를 잡아가는 방식이다. 메모는 미래를 미리 살아가는 방식, 자신만의 천국을 알아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
정혜윤의 작가의 글과 내 글이 뒤섟여버렸다.
요약인지, 감상인지, 내 생각인지, 네 생각인지 혼란이 있을 듯 해, 내 생각이 전부인 것은 ↘로 표시를 해 두었고, 인용은 거의 따옴표 ' ' or " "로 표시하고자 했다. 누락된 부분도 있지만, 너무 따옴표만 많으면 형색이 ugly할 것 같아 꼭 필요한 부분만 체크했다.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책 다시 훑어 보면서 재독하는 효과를 누렸다. 좋은 문장이 내 마음에 내려앉길, 그리고 그렇게 메모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여러분들께도,
별것 아니지만 도움되길 바라~
이건 그냥 추가로 올리는데, 제가 즐겨쓰는 펜들입니다. 빠진 것도 있지만, 대충 이렇습니다.
만년필이나 펜에 대해 한번 글을 써보고 싶어 찍어두었던 사진인데, 그냥 오늘 올리네요!
요즘 제가 워낙 사진을 잘 안 찍어서 사진이 없네요.
나중에 저도 <아무튼, 펜>이란 시리즈로 한번 글을 써볼까요? ㅋㅋㅋㅋ 농담입니다.
비싼 건 없습니다. 다이소에서 구입해서 잘 쓰고 있는 몇천원짜리 만년필도, 일제 preppy 만년필도 저렴하면서도 잘 써집니다. 요즘은 거의 다이소 만년필로만 씁니다. 그립감은 좀 떨어지지만, 글 쓰는 느낌은 역쉬 TWISB죠. 대포같은 느낌...또 길어지네요. 요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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