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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히로노부/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5. 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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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전, 잠시 MLB 중계를 보고 있다.

류현진이 한 때 몸담았던 LA 다저스의 경기이다. LA 다저스에는 내 꿈에 등장해서 BOS 레드삭스에서 LA다저스로 트레이드된 것을 몇 개월 전에 미리 보여줬던 무키 베츠가 있고(진짜다!) , 내가 한때 굉장히 좋아했던 30홈런과 100타점을 도맡았던 노장, 알버트 푸홀스가 LA 에인젤스에서 방출되어 이 팀으로 왔다. 의외다. 야구선수들은 3할만 쳐도 굉장한 타자라고 한다. 10개 중에 3개라도 안타를 치면 되는 거다. 그런데, 그게 힘든 거다. 맨날 야구만 하는 사람들인데도, 왜 3할이 힘들까? 타자는 투수의 공을 치려 할 것이고, 투수는 타자가 공을 못 치게끔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 서로 상대방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훈련하니 3할도 쉬운 게 아니다. 글쓰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무키 베츠, 네가 왜 내꿈에서 나와~~~(출처: 네이버뉴스)

 

김병완 작가가 오늘의 시대는 Wrider의 시대라고 했다. writer와 reader를 합친 단어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글을 쓰고 많은 이들이 글을 읽는다. 모두가 스마트폰이라는 책을 읽고 또 그 안의 SNS에 글을 쓴다. 모두가 다 작가이자 독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넘쳐나는 글과 정보의 홍수 가운데 정말 읽혀지는 글은 얼마나 될까? 아니 정말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글을 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내가 즐거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쓰면 내가 즐거워진다'는 말을 저자는 한다.  '쓰는 행위를 통해 실제로 '현실이 달라지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쓴다는 것이다.단지 내 속에서 하라고 해도 하기 싫은 일과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해진 후부터 삶의 방식을 바꿨을 뿐이다. '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바로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가 나서 완전 몸이 아작이 났었다. 병원에서 도저히 기동도 할 수 없고 용신조차  하기 힘든 순간이다. 교통사고 나서 죽을 지경인데, 글이 나오겠는가? 그는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한참 유쾌하고 유머스러운, 그리고 자신이 알코올중독환자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서 후기를 대신하여 뒷부분의 <인생론>에서 이런 뜻밖의 이야기를 내어 놓는다.

 

 

 

 1999년 7월 24일, 산책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다.

 

“허파가 함몰됐군.”

“가슴에 튜브를 꽂아야 합니다. 스티븐. 약간 좀 아플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319p)

 

그는 5주 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꼬박 1시간 40분 동안 글을 썼다. 스미스의 승합차에 받힌 이후부터 그때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작업이 끝났을 때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며 너무 지쳐서 휠체어에 똑바로 앉아 있을 기력조차 없었다. 골반의 통증은 숫제 재앙에 가까웠다. 그리고 처음 500개쯤의 단어를 쓰는 동안 유별나게 힘이 들었다. 마치 난생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것 같았다. 예전에 갖고 있던 글쓰기 요령도 내 머리 속에서 몽땅 사라진 듯했다. 나는 마치 시냇물 속에 비뚤비뚤 놓여 있는 미끄러운 징검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힘없는 노인처럼 낱말 하나하나를 어렵사리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날은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오기를 가지고, 그리고 이렇게라도 계속하다 보면 곧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버텨낼 뿐이었다.’(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330p)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이끌고 글을 써가기 시작한 스티븐 킹을 보면서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스티븐 킹

 

스티븐 킹, 그는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아작난 몸뚱아리의 한계를 털고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귀찮지만 써보자는 마음을 멈출 수 없을 때 글이 나온다. '

 

 

'정직한 글쓰기'

무엇보다 내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모든 글은 자신을 위해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상은 결국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체, 사건, 사람은 사상이다. 그 사상을 접하고 마음이 움직여서 쓰고 싶은 기분이 생겨나는 그것이 '심상'이다. 이 두 가지가 갖춰졌을때 비로소 에세이가 써진다. 

읽고 싶은 글, 그리고 그 글을 읽고싶어하고 읽은 후에 댓글까지 달고 싶은 글'이 나오는 것이다. 

 

'사상과 심상이 교차하는 곳에서 생겨난 것이 에세이'

 

 

 

나에게 도전을 주고 자극을 주고 감동을 준다면, 다른 이에게도 영향력을 미치게 마련이다. 내가 쓴 글의 가장 큰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침에 외출할 때 최소한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다. 글도 그러면 되는 것이다."

읽는 사람을 상정하고 쓰지 않아도 된다. 그 글을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분명히 자신이다. 그런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내가 읽어서 재미없다면 쓰는 것 자체가 헛된 일이다. 자신이 읽어도 재미있는 글이란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글을 직접 쓴다는 뜻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쓴 사람이 없다. 그러면 내가 쓰는 수 밖에 없다.

 

 

 

작가로 유명해지고 싶다는 착각을 버리고 내가 쓴 글을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반대로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기회가 생긴다.어느 쪽이든 평가의 노예가 된 시점부터 글쓰기가 싫어진다.

 

타인의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쓰는 것은 자신이다. 아무도 대신해서 써주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 인생을 산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인 것이다.가장 말하고 싶은 것 한 가지만 말한다...그 핵심적인 한 마디가 바로 '헤드 카피'다. 
재미없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의 내면을 말하는 사람이다.반면에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사람이란 그의 외부에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에세이란 결국 심상을 기술하는 저술 형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사람의 외부에 있는 사상을 제시해서 흥미를 끌지 않으면 안 된다. 심상을 말할 때는 반드시 사상이 어느 정도는 전제되어야 한다. 

 

 

두번째는, 팩트(자료) 조사가 전제되어야 한다.

'글을 쓰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다. 작가의 작업은 먼저 '자료 조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조사한 것의 90%를 버리고, 남은 10%의 다시 10%에 겨우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쓴다. 글쓰기는 자료조사가 99.56 %인 것이다. 단지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방송을 보는 사람이 생각하는 주체가 된다. 즉 조사한 사실을 나열하면 읽는 사람이 주체가 될 수 있다. 자료 조사도 하지 않고 '글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장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작가로는 일을 할 수 없다. 그저 '내 생각을 전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육교에서 시집을 팔자.'

 

 

좋은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제멋대로 썼지만, 이 작가는 1차 자료에 기반해서 썼다'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글은 '나뭇잎'과 같다. 나뭇잎이 무성하려면 나무의 '뿌리'가 충분히 뻗어야 하듯이, 좋아하는 글을 원하는 대로 쓰려면 1차 자료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1차 자료를 구하기 위해선 인터넷의 떠도는 정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다. 1차 자료가 빈약하면 글을 쥐어짜내야 한다. 1차 자료가 흘러넘치면 글도 풍성해질 가능성이 크다. 저자의 말대로 1차 자료 즉, 글의 뿌리가 탄탄해야 글이 읽혀지는 글이 된다는 것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거인의 어깨 위'는 뉴턴이 1676년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르나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내가 저편을 멀리 내다봤다면, 그것은 오로지 거인이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1차 자료를 찾아내라는 이야기는 오로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기 위함이다. 거인이 어깨에 올라선다는 것은 '여기까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 다음을 이야기하겠다'라는 자세다. 나같이 허접한 블로거가 일본 작가의 어깨를 빌어 이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의 입지가 그만큼 좁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댈 어깨'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이야길 한다손 치더라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네가 도대체 뭔대? 당신 누구요?' 뭐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팩트, 자료조사, 기댈 어깨가 필요하다는.

 

 

 

셋째, 글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필요하다. 

대상에 대해 애정이 없는 상태로 글을 쓴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1차 자료에는 '사랑할 기회'가 숨어 있다. 과제를 받았다면 자료 조사 과정에서 '사랑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 부분을 찾지 못하면 계속 괴롭다.

 

대상을 사랑하는 방법 두 가지

1) 자료를 찾는 동안 사랑할 수 있는 포인트spot를 찾아낸다

2) 대충 훑어 본 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포인트의 자료를 파헤친다. 지론을 강화하기 위해 좋은 재료를 갖춘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있는 힘껏 말하자'. 좋아한 그대로 전달하면 글이 된다. 그럼에도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마지막 기회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지루했는지, 무엇을 알 수 없었는지, 왜 재미 없었는지를 쓰는 수 밖에 없다. 이럴때는 글이 '비평의 기능'을 한다. 하지만, 글을 쓸 때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존중'이다. 

 

 

에세이에서 사상은 늘 자신의 외부에 있다. 자신 바깥에 있는 '외부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으면 나도 나의 외부로부터 존중받을 수 없다. 

 

사랑과 존중, 이것이 글의 중심에 있으면, 당신이 쓰는 글에 의미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인 부분만을 골라내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는 '편집'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뛰어나게 쓴 것도, 잘 쓴 것도 아니다. 단지 '과함도, 부족함도 없다'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그 글은 타인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된다. 

 

기: 실제 경험이라는 전제

승: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었는가.

전: 그 의미는 무엇인가.

결: 감성과 제언을 아주 조금.

 

발견-귀납-연역-감상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좁게 하는 것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 사람의 세계는 좁아진다. 구체적이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당신이 접한 사상은 당신만 알고 있다. 당신이 품은 심상은 당신만이 기억한다. 당신은 세상 어딘가에 작은 구멍을 뚫듯이, 작은 깃발을 세우듯이, 쓰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누군가가 그곳을 지나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좁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작은 무언가가 결과적으로는 당신의 세상을 넓혀준다. 

애초에 지금 시대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많고 읽고자 하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글로 돈을 버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다. 

 

 

글자가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자신이 읽고 즐거워하는 거야 자기 마음이지만, 내가 무언가를 쓴다고 해서 읽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등산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과 마주하기 위한 '도박'같은 것인지도 모른다.우리가 인간에 대한 존경과 애정과 공감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각자의 고독 속에 있을 때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의 방식의 문제다.

자신을 위해 쓰면 된다.

읽고 싶은 글을 쓰면 된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괴롭지만, 즐겁다.'

 

 

이렇게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의 내용을 요약정리했는데, 진짜 별 거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진짜 흥미롭게 읽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그만큼 이 작가는 글을 찰지게 기술한다. 나는 왜 이렇게 잼없게 글을 쓰는걸까? 그런 자괴감이 든다. 젠장! 

 

 

'자기 소개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면 편리하다. 그런데 내 위키피디아는 누가 썼을까?'

-위키피디아는 인터넷의 관객들이 만들어 놓은 정보통이다. 저자 다나카 히로노부에 대해 수많은 관객들이 그의 정보를 수집하여 만들어 놓았다. 이 책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산뜻한 느낌을 받았던 책이다. 저자가 카피라이터로 24년 동안 글을 쓰면서 받은 솔직함과 작가로서의 여정을 심플하게 기술했다. 

 

 

글 잘 쓰는 법? 그런 기술은 없다. 그냥 쓰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3가지 정도만 마음에 새기면서 즐겁게, 1차 자료의 뿌리를 찾으면서 애정과 존경의 눈빛으로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해놓고 왜 이렇게 내 글이 재미없게 느껴질까? 야구선수가 3할 치는 것도 힘든데, 나는 1할 치는 것도 힘들겠다 싶다. 그래도 나는 글을 쓰련다. 엉덩이가 무거워야 뭐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1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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