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부부- ② 자아의 죽음의 차원에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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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부부- ② 자아의 죽음의 차원에서 해석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5. 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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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시집 <한 사람을 사랑하여>에 게재된 '부부'라는 시를 지난 번에 해석하면서 포스팅을 했는데요. 그때와 또 다르게 접근하여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관점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의 창문Window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죠.

 

 

 

 


부부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별이 되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꽃이 되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돌이 되지만
두 사람 모두 살아 돌이 되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한 사람은 죽고'를 실제적인 죽음, 물리적인 죽음으로 문자적인 해석을 했는데, 오늘은 '한 사람은 죽고'를 정신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서 '자아Ego'의 죽음으로 한 번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한 사람은 죽고② -자아의 죽음의 차원

 

이 대목은 많은 분들이 공감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다. 부부는 한 남자의 욕망과 한 여자의 욕망이 만나 가정을 이룬다. 욕망이라고 해서 거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예전에 영화에서 부부가 싸운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치약을 중간에서 짜느냐?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오느냐?'

 

로 싸운다. 너무 단촐한 예이지만, 그게 결혼생활의 실제이다. 그런 사소한 욕망들부터 시작해서 부부간의 욕망은 끝이 없지만, 여기서 '자아의 죽음'이라는 아주 거창한 표현을 사용했는데, 실제적으로 양보yield이다. 진정성이 있는 양보와 배려, 포용을 생각할 수 있겠다. 거기에는 용서도 들어갈 수 있겠다.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의 배우자를 위해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함께하는 그런 차원이겠다. 자아의 죽음은 말 그대로 내 것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다. 자기 것만을 내세우다 보면 분명히 한 쪽이 고통을 당한다. 서로 참지 못하면 결국 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너무 참으면 곪는다. 그래서 진정한 자아가 참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 싸우고 헤어진다. 싸우는 것도 잘 해야 한다. 때론 언성을 높이면서도 싸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시 화해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인생은 나를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다듬기 위해 너, 배우자가 필요한 것이고, 배우자도 자신을 다듬기 위해 배우자가 필요한 것이다. 부부라는 것은 그래서 신비스러운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가정이 출발하니 말이다.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별이 되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꽃이 되고

 

 

-이 두 가지 경우에는 좋은 결과물을 낳았다. 한 사람의 자아가 제대로 죽었다는 것이다. 배우자 중에 한 사람이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이 별이 되고, 또 꽃이 될 수 있었단 말이다. 부부는 상호작용이다. 한 사람이 너무 막 나가면, 한 사람이 따라가든가 도망가든가 헤어지든가 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한 사람이 죽으면(정신적 자아의 죽음, 종교적으로 영적인 죽음) 배우자가 별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돌이 되지만

 

 

- 그런데 3연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게 펼쳐진다. 부부가 아무리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한 사람이 자아를 죽여도 원래부터 아닌 경우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혼하는 커플이 다 사랑으로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인연으로 인해 결혼이 이어진다면, 아무리 한 사람이 자신을 내려놓는다고 해도 배우자는 여전히 '돌'이 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억지스럽게 해석을 끼워 맞추는 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 모두 살아 돌이 되기도 한다.

 

 

-4행의 의미는 이 <부부>란 시에 대한 첫번째 포스팅에서의 해석과 동일한 의미이다. 살아 있지만, 부부가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목석, 돌과 같은 것이다. 두번째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들이 살아 있다는 것은 육체가 살아있다는 말도 되지만, 더 나아가 자신의 자아Ego가 너무 강하게 살아 있어 너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너무 강해서 너를 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닌 모든 것이 '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를 내 임의대로 내용상으로 구분해 보면, 연을 2연으로 나눠서 진행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부부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별이 되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꽃이 되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돌이 되지만
두 사람 모두 살아 돌이 되기도 한다.

 

 

 

지상에서 '부부의 거리'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 수 있는 거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부부사이의 거리를 나태주 시인은 별, 꽃, 돌 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을 저는 '한 사람은 죽고'를 자아의 죽음의 차원에서 해석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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