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봄 직한 대목이다. 소설은 한반도가 통일이 된 상황을 가정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하지만, 그 통일이란 것이 한방에 완벽하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장강명의 소설에서 통일에 대한 몇 가지의 접근과 생각을 해 볼 수 있겠다.
1 민준의 이야기
“그것도 다 똑같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비유를 들어볼까요? 롱 대위님한테 형제 자매가 여러 명 있다고 쳐요. 그런데 그 형제자매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들 나가서 매일매일 대형 사고를 치는 거예요. 누구는 음주운전을 하고, 누구는 사람을 때리고, 누구는 터무니없는 빚을 지고, 누구는 물건을 훔치고.....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롱 대위님도 형제자매 소식은 더 듣고 싶지 않게 될 거예요. 마음에서 지워버리게 되는 거죠. 그 형제자매를 다 합해 놓은 게 북한이에요.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 소식은 듣고 싶지 않아 해요. 너무 지겹고, 감당이 안 되니까요. 하나님, 왜 저런 형제를 저에게 주셨나요. 그런 심정이에요.”(227p)
2 여성장교 롱대위의 이야기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꼭 통일을 해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말레이시아는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를 억지로 분리시켰죠. 1965년에 싱가포르 주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냈어요. 싱가포르는 원치 않은 독립이었고, 분리 당시에는 심지어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보다 더 잘 사는 나라였지만, 그렇게 갈라선 결과는 말레이시아에도 싱가포르에도 좋았어요.
한 나라로 있었다면 인구의 대부분인 말레이계가 싱가포르 화교 자본에 종속된 채로 중산층이 되지 못한 채 살았어야 했을 거예요. 말레이계와 화교 사이 갈등도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을 거고요. 두 나라로 떨어뜨려놓고 나니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대로 똘똘 뭉쳐서 선진국이 되었고,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 없이 자기 힘으로 선진국 문턱까지 왔어요.”
“한국도 북한과 갈라서야 한다는 건가요?”
민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3 롱 대위의 이야기
“남한의 통일론자들이 통일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신문에서 몇 번 봤어요. 저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더군요. 특히 남한과 북한이 합쳐지면 내수 시장이 커지고 북한 싼 임금 덕분에 남한 기업들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 그건 남한 자본이 북한 사람들을 노동자로, 소비자로 이용해 먹겠다는 얘기죠. 북한 주민들이 말레이시아 사람들보다 인내심이 더 많을까요?”
그리고 북한에 이런저런 인프라 투자를 하면 몇십 년 뒤에 막대한 경제 효과를 낼 거라는 이야기는 눈 가리고 아웅으로 들려요. 다른 분야, 예를 들어, 기초 과학에 그만한 대규모 투자를 해도 막대한 경제 효과를 가져올 거예요. 어느 편이 더 수익이 높을지는 모르는 거죠. 게다가 누가 거둬 갈지도 모르는 몇십 년 뒤의 이익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런 사업에 투자를 하라고 하면 저는 사양하겠어요.“
롱이 말했다.
민준은 한동안 대꾸하지 못했다(333-334p).
우리는 종종 통일을 이용해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장강명의 소설을 보면서 스스로 ‘아차!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의 모습이 내 모습처럼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기를 원한다면,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인데, 그게 제대로 된 이상적인 방향인데, 과연 그렇게 될까?
또한, 4차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잡킬러>에선 저출산 문제의 위기의 타계책을 우리나라가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란 이상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장강명의 통찰이 드러난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4 우리의 자화상은 건전한가?
소설에선 남북한이 통일이 되긴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어 다국적 군대 즉 제3국 군대가 등장하여 우리나라를 안보와 안전을 관리하는 부분이 나온다.
장강명이 또 다른 작품 <한국이 싫어서>에서 보여준 한국인이 무의식적으로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은근한 무시에 깔린 콧대 높은(?) 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히는 순간이다. 2018년 젊은작가수상집 중 <세실, 주희>에서 보여준 서양인들에 대한 동양인의, 한국인의 은근한 열등의식은 동남아시아인들을 향한 은근한 우월의식으로 변질되어 나타나는 듯 하다. 순전히 내 느낌이다.
그게 우리의 초상화가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의 자화상은 건전한가? 자문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북한을 대할때도, 통일을 대할 때도 이런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이 작용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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