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사진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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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사진의 용도'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6. 2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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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밝히는, 성(性)을 밝히는 색녀?

나는 이 책을 펼쳤다. 남녀의 섹스 과정을 보여주는 옷들의 무질서한 배열을 보여주는, 에로티시즘을 유발케 하는 사진들...그리고, 남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쓴 글에 조금은 식상했다. 그래서 읽기를 멈췄다.

 

아니! 아니 에르노는 늘 밝히기만 하는가?

 

 

그러다가 이 문장을 접했다.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없이 지내기 힘든 것은 단지 성적인 필요성 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떤 깨달음을 위해 M을 만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71p)

 

 

 

그리고서 읽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에 대한 나의 ‘색녀의 편견’은 사라졌다. 그녀가 유방암에 걸렸단다.

 

그러면서 질문을 한다.

 

 

“내가 만약 암(유방암)에 걸렸다면, 욕망에 치중할 수 있을까?”

 

 

 

 

사진은 그녀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 머무는 욕망

그녀의 사진들은 ‘삶과 죽음 가운데 머무는 욕망’이었다.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역사를 ‘동학(動學) dynamics’이라고 했다. 아니 에르노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욕망의 동학’이다. 유방암이 걸려 죽음을 생각하면서 병원 퀴리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그녀는 단테의 문장을 떠올렸다.

 

 

“이곳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다.”

 

  

 

 

 

사진은 그녀의 <생존 의지>와도 같았다

암이란 낯선 불청객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그녀가 느낀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죽음의 기운이 아닌 자신의 살아있음의 기운과 에너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욕망의 생기를 통해 살아있음을, 생존의 단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일종의 ‘생존의지’같아 보였다.

 

 

 

 

 

 

그녀의 벌거벗은 글쓰기

‘글쓰기, 그것은 하나가 되었다가 또 다시 분리되는 행위이다. 가끔 두렵기도 하다. 글이라는 자신의 공간을 내놓은 일은 자신의 성기를 내놓는 것보다 더 폭력적이다.’(49p)

 

 

어느 날, 그(M)는 내게 “당신은 글을 쓰기 위해 암에 걸린 거야.”(60p)

 

 

나는 삶이 글의 ‘소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위한 ‘미지의 기획’을 원한다(61p).

 

 

 

 

 

 

아니 에르노는 폭로disclosure의 대가이다

‘프랑스 여성들의 11%가 유방암에 걸렸고, 유방암을 앓고 있다. 3백만 여성이 넘는다. 꿰매고, 스캔하고, 붉은색, 파란색 그림으로 표시하고, 방사선을 쬐고, 재건한 삼백만의 가슴이 셔츠와 티셔츠 안에 감춰져 있다. 보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언젠가는 과감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내가 내 가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 드러냄의 의지에 동참하는 것이다(93p).’

 

 

내게 글쓰기란 모든 감각의 정지 상태다. 다만 그것을 탄생시키고 일으킬 뿐이다(115p).

 

 

 

 

 

 

나를 향한, 나를 위한 글쓰기

‘나는 그가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와 상관없이 세상을 향하기를, 내 경우는, 그가 내 것을 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를 고려하여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단순히 사진에서 그리고 현재의 구체적인 흔적에서 내가 이중으로 매료되었던 것들을 탐색하여 하나의 텍스트 안에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173p)

 

 

 

 

 

그녀의 글의 목적과 방향과 의도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결코 나쁜 의미가 아님)이고 개인주의적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한 사람이라도 나의 글을 읽을 독자(?)를 향해서 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독자는 세상 그 어떤 누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 가장 또렷한 독자, 단 하나의 청중(the audience of one)이다. 페이퍼를 쓸 때마다 느낀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쓰는가? 작가도 아닌 내가 누굴 위해 종을 울리며, 누굴 위해 이 글을 적고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서민 교수는 리뷰나 서평을 적을 때, 스포일러를 방출하지 말라고 했다. 난 그게 잘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글을 읽을 때,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한 디테일한 것을 기억하고 싶고 곱씹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당연히 스포일러가 방출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적지 않는다면, 닳아져 가고 나빠져 가는 나의 기억과 뇌를 위해 누가 위로해준단 말인가!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 이해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을 위한 글쓰기의 정신과 본질이 너무나 충실한 작가이다. 그게 없으면 아니 에르노의 매력은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의 어느 여류작가가 자신의 애정행각 이후의 사진과 함께 글을 실어 출판할 용기가 있을까? 아니 에르노이기 때문에,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출판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진의 용도>를 읽으면서 아니 에르노의 철학과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별점을 원래 2-3개 정도만 주려고 했다. 하지만, 완독한 이후에 별 5개를 과감없이 준다.

 

 

 

 

나는 <진부한 것을 추방하는 것을 목격한 우연한 관객>이다

 

 

아니 에르노는 진부한 사진, 진부한 모양새와 형식을 벗어버리고 거기서 생존의지를 보여준다.

 

 

 

 

 

 

몸의 증발, 죽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의 몸이 증발하고, 남은 것은 옷뿐인 것이다.’(103p)

 

 

 

유방암에 걸려 계속 치료를 받으면서도, 온 몸에 의료기구가 달려 있으면서도 그녀는 섹스를 했다. 그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었고, 생존에 대한 무겁고도 심각한 갈망이었다.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어떤 사진도 지속성을 나타내진 않는다. 사진은 대상을 순간에 가두어 버린다. 과거 속에서 노래는 확장되어 나가고, 사진은 멈춘다. 노래는 시간의 행복한 감정이며,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한평생을 노래와 사진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14-115p)

 

 

 

‘우리들의 사진을 볼 때면, 나는 내 육체의 소멸을 본다. 그러나 그곳에 더는 내 손이나 얼굴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걸을 수 없다는 것, 먹을 수 없다는 것, 성교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소멸이다. 나는 몇 번이고 내 사고가 다른 곳에서 계속될 수 있다면 죽음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을까? 그녀가 두려워한 죽음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고의 죽음, 사고의 소멸’이었다. 얼마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각하고 사유하고 철학한 여인인가! 그래서 <사진의 용도>는 별 5개!

 

 

 

 

 

‘이제 나는 과학적, 철학적, 예술적인 모든 연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무(無)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임을, 그리고 무의 그림자가 어떤 형태로든 글을 따라 배회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무용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페드르, 고백6, 보바리 부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구토, 바흐, 모차르트, 와토와 실레 그림 속의 그 그림자.’(126p)

 

 

 

 

 

삶을 삶되게 만드는 것은 욕망이다?

‘나는 세일이라는 상품이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의 가치하락과 사물, 보수가 매우 좋지 않은 일에 대한 모독으로 이뤄진 매혹적인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특징 없는 옷들과는 거리가 먼, 사랑을 나눈 후 버려진 우리들의 옷들의 작품들을 다정하게 생각했다. 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 내게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에게 존엄성을 돌려주는 것이자,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의 <신성한 제복>을 만들려는 시도로도 보였다.’(159p)

 

 

 

아니 에르노는 모든 옷이 상품에서 출발하지만, 욕망을 거쳐간 옷은 다르다는 것, ‘다정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 욕망은 단순한 리비도libido가 아니라 삶에 대한 욕망이자, 갈구이다.

 

 

 

 

 

아니 에르노의 <The Voice Within>

이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The Voice Within>을 많이 듣게 되었다. 가사의 내용도 좋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우리가 젊을 때 익히 들었던 뮤지션 아닌가! 혹자는 에드립이 너무 심해서 싫어한다고 하지만, 아길레라는 아길레라 대로의 멋이 있는 법이다. 마치 아니 에르노가 아니 에르노 대로의 멋이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니 에르노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The Voice Within’을 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곡을 애청했던 아니 에르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아니 에르노와 그의 연인 마크 마리가 뽑은 탑 나인 곡 중에서 이 곡이 제일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뮤지션과 익숙해서인지도 모르지만. 가사가 너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nA2k79EGHbc

 

 

 

 

The Voice Within - Christina Aguilera

 

Young girl, don't cry

I'll be right here when your world starts to fall

Young girl, it's all right

Your tears will dry, you'll soon be free to fly

 

 

When you're safe inside your room you tend to dream

Of a place where nothing's harder than it seems

No one ever wants or bothers to explain

Of the heartache life can bring and what it means

 

 

When there's no one else Look inside yourself

Like your oldest friend Just trust the voice within

Then you'll find the strength That will guide your way

If you will learn to begin To trust the voice within

 

Young girl, don't hide

You'll never change if you just run away

Young girl, just hold tight

And soon you're gonna see your brighter day

 

 

Now in a world where innocence is quickly claimed

It's so hard to stand your ground when you're so afraid

No one reaches out a hand for you to hold

When you're lost outside look inside to your soul

 

 

Yeah...

Life is a journey

It can take you anywhere you choose to go

As long as you're learning

You'll find all you'll ever need to know

 

 

You'll make it You'll make it

Just don't go forsaking yourself

No one can stop you

You know that I'm talking to you

 

 

Young girl don't cry

I'll be right here when your world starts to fall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아니 에르노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라 더 인간적인 매력이 간다. 인제 80대에 접어든 그녀에게 더 많은 글을 기대하는 것은 내 욕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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