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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 후기-"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한다"(실존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탐독: 탐미/TV 프로그램

by 카알KaRL21 2021. 11. 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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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웹드라마 <지옥>이 등장했더군요. 전 나온지도 몰랐습니다. 뭔가 싶었죠. 그러다가 보게 되었네요. 이게 전세계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던 <오징어게임>의 후광을 입은 거품이 없지 않아 있지 싶은데요. 일단 저 카알KaRL21은 뭐든지 보면 기록을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넷플릭스 <지옥>을 다 본 지는 좀 됐는데. 이제서야 후기를 올려보고자 합니다. 그냥 제 멋대로 해석하는 <지옥>해석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넷플릭스 '지옥' 후기-"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한다"(실존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INDEX


1. 넷플릭스 <지옥> 신선했는가? -갑툭튀한 신神
2. 신神의 존재보다 신의 심판에 관심이 가 있는 사람들
3. 그런데, 왜 사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선 관심이 없을까요?
4.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에 대한 해석
5. 지옥행 고지가 주는 공포로부터 출발
6. 사람이 자신이 죽는 날짜를 아는 것은 공포이자 고통이 아닌가
7.정진수의 욕망은 messenger!
8. 정의의 대의명분 앞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사람들
9. 박정자의 지옥행,그러나 결말에서 부활의 의미는?
10.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의 세계관에 깃든 <지옥>
11. 그렇다면 지옥의 사자는?
12. 신의 의도(신의 심판)을 바꿔버리는 인간, 배영재 부부


Epilogue...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한다




1. 넷플릭스 <지옥> 신선했는가? -갑툭튀한 신神

이 드라마가 약간 신선했던 것이 '신god'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판judgement과 정의justice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몬스터같은 검은색 지옥의 사자(?) 세 사람도 아니고, 세 놈도 아니고...천사는 아닌 악마라고 해야하나? 천사라고 하기엔 너무 검고, 파괴적인 성향이 강하며, 악마라고 하기엔 강도가 조금 약한 중립적인 레벨의 지옥의 사자라고 보시면 되겠는데요. 


서양철학사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God is dead)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신의 세계를 떠나 무신론으로 갈아타기에 바빴습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세계대전의 충격과 비극, 참상은 신의 존재에 대해 충분히 포기할 만큼의 큰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분석철학자 이를테면, 비트겐슈타인같은 철학자가 등장해서 '신은 죽었다'는 것은 모르겠고, '신이 죽었다'고 한 그 낱말, 단어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실체는 모르겠고, 존재는 모르겠고, 그냥 그 존재를 반영하는 단어를 가지고 어휘놀이를 해댔던 것이죠. 그러면서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존재유무에 대해서 모르겠다는 주의ism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철학도, 예술도 해체주의로 접어들게 되는데요. 모든 형식form을 허물어뜨리는 formless가 form이 되어버린 그런 형태, 스타일을 띠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을 받아 숨쉬는 작금의 현실인데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지금 우리의 시대는 신의 존재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동산, 주식, 자산증식, 경제적 자유, 노후대책, 자녀교육, 무병장수, 성공...뭐 이런 현실적인 사안들, 소위 말하자면 땅에서 누리는 것들을 생각하지, 하늘의 신에 대해선 달나라이야기로 취급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분위기가 그렇단 말이죠. 4차산업혁명, 메타버스, NFT, 우주여행, 친환경, 자율주행,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은 정말 '갑툭튀한 불청객'입니다. 그런데, 이 웹드라마 <지옥>은 이 신神을 초청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신이야기를 해댔던 중세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신의 존재보다 신의 심판에 관심이 가 있는 사람들

이 웹드라마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의 심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의 심판이 인간에겐 직접적인 데미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의 결정권을 쥔 신이 죽음도 선물하기 때문에 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인데, 그것도 고작 신의 심판에만, 자신의 죽음과 귀결된 부분만 관심있어 합니다.




3. 그런데, 왜 사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선 관심이 없을까요?

절대자 신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거든요. 인간의 불치병이나 암이나 이런 병도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고칠 수 있다는 확신에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서 냉동실에 살아있는 시신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십년이 지나면 불치병도 고치게 될때 그때 다시 해동시켜수술해서 더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은 것이 인류의 생명에 대한, 삶에 대한  갈구인데요. 유발 노아 하라리는 이런 인간의 이런 '불멸의 욕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만, 죽음만 제외하면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꺼리가 없는 것이죠. 요즘 AI가 모든 것을 다 해줍니다. 나중에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운전도 AI가 하겠죠. 점점 인간은 더 편리하고 안락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겠죠. 돈만 있다면 말입니다. 신을 찾을만한 건덕지가 없는 시대입니다. 옛날에 가난할 때는 배가 고파서, 너무나 가난해서 종교를 찾고, 신을 찾았지만, 이제는 그 신을 찾을 이유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절박한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는 뒷전이고, 신의 심판에 관심이 가 있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자신의 죽음, 지옥행 고지를 받은 이들의 절박한 생존의지 때문입니다. 그걸 지켜보는 이들에게 스물스물 기어들어 오는 것은 깊은 공포와 두려움이죠. 



그 신이 누구인지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냥 막연한 신이고, 두리뭉실한 신입니다. 그리고 지옥행 고지를 받은 자는 어김없는 심판을 받기 때문에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아가다가 죽습니다. 아주 비참하게 죽습니다. 근데 신이란 존재가 너무 막연합니다. 검은 지옥의 사자, 몬스터 monster 3마리(?)도 아니고, 3명(?)도, 3분(?) 아닌 것이 등장해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나중엔 육체까지 검게 빠삭말라버린 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런 지옥행 고지를 받은 이들의 당황스러운 죽음에 대해 해석을 덧대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정진수 새진리회 초대의장(유아인)입니다. 실제로 범죄자들이 그렇게 죽어가니깐 증거영상들을 모으고 방송하고 그러면서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게 됩니다. 




4.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에 대한 해석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죠. 

"사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에 대한 해석이다."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실FACT를 제대로 보지 못해 해석을 잘못하여 굴절된 시각을 가지고 덧대다 보면 왜곡된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지옥행 고지는 솔직히 말하자면,

'신의 심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단지 지옥행 고지, 몇날 몇시에 죽을 것이다라는 날짜를 받는 것 뿐입니다. 신의 심판을 갖다붙인 것은 정진수 외 새진리회 사람들과 화살촉입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해석이죠.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




5. 지옥행 고지가 주는 공포로부터 출발

사람들이 죽음의 사자에게서 뜯겨 죽어가면서 완전 재로 변해버립니다. 정진수 의장은 여기서 '신의 의도'를 나름대로 고안해냅니다. 지옥의 광장이 되어버린 시신을 보면서 신의 의도를 착안해내는 것이 바로

'너희는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진수가 신에게 직접 음성을 듣거나 메시지를 들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출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자면, '지옥행 고지가 주는 공포심' 때문이었습니다. 정진수는 이미 오래전에 이미 지옥행 고지를 받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공포가 늘 그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정진수가 살아가면서 계속 느끼는 그 공포감과 두려움을 그는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종의 교주(?)가 된 셈입니다. 그게 바로 새진리회 입니다. 자신이 느낀 그 깊은 공포를 증거자료와 증거사건들을 통해 세상에 새로운 메시지를 주고자 합니다. 

"너희는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


정진수의장이 사람들에게 거짓된 교리를 퍼뜨리고 있네요



뭐 이런 메시지를 '신의 의도'로 파악하는데요. 그가 10년동안 방황하며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합니다. 

"신의 의도가 보인다?"

정진수 의장이 이런 이야길 하자, 진경훈 형사가 이런 댓구를 합니다.

 

"뜯겨 죽을까봐 선하게 산다?"

진경훈 형사가 비웃습니다. 선하게 사는 동기와 이유가 공포심에서인가?  정진수는 인간 사회의 법체계와 시스템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인간의 자율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접근을 한 셈인데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출발한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이 메신저Messenger가 된 셈입니다.

새진리회의 2대교주, 김정칠 목사



근데 초대 의장 정진수와 2대 의장 미래종교의 목사였던 김정칠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정진수는 욕심이 없었죠, 왜냐하면 자신이 죽을 것을 아니깐, 고지를 받은 인물이니깐, 그런데, 김정칠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욕심을 새진리회에 담아냅니다. 그리고 위원들과 회의를 통해서 야심을 키워갑니다.




6. 사람이 자신이 죽는 날짜를 아는 것은 공포이자 고통이 아닌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아는 자'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자'의 삶이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 내일 일을 모른다는 것이 굉장히 인간에겐 감사한 사안이라는 점입니다. 정진수는 언제 죽을지 미리 다 알고나서부터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게 삶일까요? 그건 말 그대로 지옥같은 삶이 아닐까요? 이 <지옥>시즌1이 끝나고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없지만, 어떤 주제와 메시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그렇게 부분해석을 하고 싶네요.
 


7.정진수의 욕망은 messenger!

정진수는 지옥행 고지를 받은 후부터 공포의 고통으로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메시지,

'신의 의도=더 정의로워야 함'

이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박정자의 지옥행 시연을 전국방송으로 노출시킵니다. 정진수는 보다 더 정의로운 인간화를 위한 메신저 역할을 하는데, 자신의 지옥행 죽음이 넘사벽입니다. 결국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지은 죄의 댓가로 지옥행 고지를 받는다고 그렇게 열심히 설교(?)했던 교주, 메신저인 자신이 그렇게 지옥의 사자들에게 죽으면 자신의 그동안 그토록 주창했던 논리에 따르면 그도 엄청난 죄를 지어서 신의 심판을 받은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자신이 그토록  한결같이 외쳤던 메시지가 무너지고, 새진리회의 교리가 무너지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비밀에 부칩니다. 이것이 정진수의 욕망이라면 욕망이었죠. 그런데, 과연 진실이 그렇게 비밀에 부친다고 부쳐질까요? 

예전에 보았던 영화 크리스천 슬래티어 주연의 영화 <볼륨을 높여라>(1990)에서 "진실은 바이러스다"라는 말을 합니다. 진실은 숨겨질 수 없는 바이러스 같은 것입니다. 바이러스는 언제나 튀어져나오는 질병의 시발점이기도 하죠. 정진수는 인간사회가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그의 행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가 후에 드러날텐데요. 예를 들면, 진경훈 형사의 아내이자, 희정의 엄마를 죽인 그 살인범이 정신적인 장애를 이유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희정과 함께 정진수는 그 살인범을 죽이고 화장시켜 '신의 심판'인 것처럼 위장합니다. 하지만, 거짓은 언제나 들통이 나기 마련입니다. 


화살촉 틴톡TV 유튜버 이동욱




8. 정의의 대의명분 앞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사람들

 인간에게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것은 바로 인간이 이데올로기ideology 뒤에 숨을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요? 치우쳐진 가치관, 빗나간 사상이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새진리회라는 종교를 가장한 이데올로기 뒤에 숨는 '새진리회'나 정의를 명분으로 폭력과 살인을 서슴치 않는' 화살촉'이 이에 해당하는 그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이데올로기에 취하게 되면, 앞뒤를 가리지 않게 됩니다. 때론 그것이 광기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네 편, 내 편으로 나뉘게 되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원수이고 적'

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화살촉은 정의라는 이름하에 심판이란 수많은 불법적인, 파괴적인, 살인적인 폭력을 정당화시킵니다. 새진리회 정진수의장도 진경훈형사의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딸 희정이가 직접 처단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교묘하게 그것이 마치 신의 심판인냥 방송에 보도하게끔 조작합니다. 정진수는 약과였고, 이 세력들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하게 전염됩니다.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이야길 했다는 이유로 김광진 소설가를 두들겨 팹니다. 그들은 폭력을 통한 회개, 참회, 용서를 강요하는 심판자로 나서는 형국입니다. 




9. 박정자의 지옥행,그러나 결말에서 부활의 의미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죄를 지은 사람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논지인데, 박정자의 경우에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죄목입니다. 그리고 두 아이가 서로 아빠가 다르다는 사실을 진경훈 형사의 부하형사 은표(사실상, 화살촉 프락치)가 정보를 공개하면서 지옥고지를 받은 이유를 갖다댑니다. 사람들은 박정자가 지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의 죄를 일일이 다 까발리면 이 세상에 남아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박정자의 가정사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그녀는 애들이랑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엄마 밖에 없는데요. 화살촉은 박정자가 지옥행 고지를 받은 이유를 그녀의 과거사를 통해 정조준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의 조롱과 야유를 받으면서 지옥행 시연을 공개방송으로 하게 되고, 아이들은 캐나다로 이민을 보내집니다. 이런 박정자의 죄인몰아가기와 지옥행, 모든 것이 사이비종교인 새진리회와 광기적인 집단 화살촉의 뜻대로 되는 것 같아보이지만, 시즌1의 마지막 장면에서 재로 타버렸던 박정자가 마치 <터미네이터 2>였던가요? 그것처럼 벌거벗은 채로 다시 살아난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저는 최규석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이걸 급진적인 집단에 의해 희생된 박정자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는 효과라고 할까 싶기도 합니다. 




10.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의 세계관에 깃든 <지옥>

이 드라마 <지옥>이 갑툭튀한 신의 존재를 들먹이면서, 신의 심판, 정의, 지옥행을 운운했지만, 여기에는 신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신이 어떤 신인지 정체도 불분명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천국-지옥은 등장하지 않으며, 오로지 '죄-지옥'이란 설정만 등장합니다. 신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의 세계관'에 기초한 작품이라고 해석해 봅니다. 서양철학사를 앞에서 이야기했는데, 무신론, 불가지론, 이신론이 거의 동시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이런 세계관들이 결합되어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람은 물건과 달리 먼저 존재하는 상태, 즉 무인 상태로 존재하고 자기 자신의 선택이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낸다. 선택은 타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고, 종교적, 도덕적 윤리를 떠나 선택하는 고독한 작업임을 명심하며 끝까지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때론 실존주의가 종종 동행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다. 


이신론: 理神論 / deism
자연종교(自然宗敎, natural religion) 또는 자연신교(自然神敎)라고도 불린다.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이후에도 초자연적인 섭리와 기적을 통해 세계의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고 믿는 유신론과는 달리, 이신론은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이후에는 세계의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출처: 나무위키)


드라마의 마지막이었던가요? 민혜진 변호사(김현주)가 하는 말이 이 스토리의 중심을 잡아준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한다."


신이 인간과 세계에 직접 소통하는 개념을 개방체계(open system)이라고 한다면, 신과 인간이 서로 전혀 무관심하고 신경쓰지 않는 개념을 폐쇄체계(closed system)이라고 합니다. 신이 살아있는 시스템이 개방체계라면, 신이 인간을 방치하고 내버려둔 시스템이 폐쇄체계입니다. 이 드라마는 신의 이야긴 많이 하지만, 폐쇄체계를 기반으로 한 무신론적 실존주의적, 이신론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은 더 이상 인간사에 관여해서 아니되며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배영재PD부부의 갓난아이와 관계된 사건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12,13번 글에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소도 민혜진 변호사




11. 그렇다면 지옥의 사자는?

드라마적인 흥미꺼리를 제공하기 위해 지옥의 사자가 등장한 것 같은데요, 이 지옥의 사자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천사도 아닌 악마도 아닌, 중립적인 존재입니다. 달리고, 뛰고, 파괴하고, 부수고, 잔혹하게 피튀기며 죽이고, 아작냅니다. 1화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차를 아작냅니다. 기물파손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두들겨패면서 버스창에다 죄인(?)을 눌러버립니다. 피가 튀기고 결국 ash로 변해버린 죄인인데요. 이 지옥의 사자를 '지옥의 사자'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데, 드라마에서 지옥행 고지를 전해주고 집행하기에 '지옥의 사자'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데요. 왜 지옥의 사자라 부르기가 뭐한가? 드라마에서 지옥의 사자가 고지를 내리는 죄인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사자의 고지는 그냥 죽음에 대한 통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해석하고 싶은데요. 죽음은 언제나 나이와 성별과 그 어떤 어드밴티지를 제공하지 않은 채 갑툭튀하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을 작가는 지옥행으로 연결시키고 지옥의 사자를 등장시킨 듯 한데, 이것은 죽음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메타포metaphor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고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배영재PD의 박정민



12. 신의 의도(신의 심판)을 바꿔버리는 인간, 배영재 부부

새진리회나 화살촉의 '신의 심판' 운운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심판자 역할을 대행하는 것에 자신감이 넘쳤는데요, 배영재 PD(박정민)와 송소현(원진아) 부부의 갓난아기가 지옥행 고지를 받는 데서 난관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갓난아기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극중에서도 기독교나 천주교적인 관점에선 '원죄'(original sin)를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에선 인간의 죽음 이후에는 사후세계 즉, 천국-지옥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기독교에선 이런 갓난아기의 죽음에 대해선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더 이상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대답을 줍니다.

배영재부부의 아이에게 고지가 전달되는데요.
아이의 고지를 듣게 된 아이 아빠, 배영재PD



하지만,
카톨릭에선, 천국-연혹-지옥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카톨릭에선 죄없어 보이는 갓난아기나 정말 믿기지 않는 죽음, 불가사의한 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 인간이 판단하기에 천국-지옥을 판단하기가 너무나 애매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연혹'이란 공간을 만들어놓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장소입니다. 잘 하면 천국 가고 못하면 지옥가는 이른바 '일종의 대기실'인데요. 누가 잘 하고, 누가 못한단 말입니까? 카톨릭에서 당사자의 후손들이 선행이나 업적이나 헌금이나 다양한 공로를 통해 이런 선한 행적이 쌓이고 쌓이면, 쉽게 말하자면 적립된다는 셈인데요. 선한 행동들이 적립이 되면 그 친구는 천국에 갈 수 도 있지만, 더 이상의 적립이 없거나 기준치가 미달되면 지옥행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도에서 쉽게 설명드린 것입니다.



드라마 <지옥>에선 이런 세계관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오로지 죽으면 지옥, 죽음 너머의 지옥이라는 귀결인 듯 한데요. 배영재부부의 튼튼이(예명)의 죽음의 순간을 방송으로 내보내자는 소도 측의 민변호사의 의견에 배영재부부는 충격을 받지만, 서서히 그 부분에 동의를 하게 되는데요. 신의 심판,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새진리회와 화살촉의 참상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죄인이기 때문에 고지를 받고 지옥행으로 신의 심판을 받는다는 새진리회의 교리가 거짓된 것임을 밝혀줄 것이 바로 튼튼이의 고지 사건인데요.  금방 갓 태어난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지옥행을 고지를 받는단 말인가? 신의 심판이라면 그건 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죠. 새진리회의 교리가 얼마나 거짓된 것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준비하는데요.


배영재부부의 튼튼이에게 다가온 지옥의 사자들입니다



여기서 배영재부부의 아이의 시연에서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고지의 시간이 다가오고 죽음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배영재PD 부부가 함께 아이를 껴안습니다. 아이가 죽어야 하는데요,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부모가 죽고 아이가 살아남게 되는 인간사가 펼쳐집니다




배영재 부부가 바짝 말라 타버린 재가 되고 오히려 아이가 울면서 생존하게 됩니다.  배영재 부부의 아이를 향한 사랑이 신의 의도조차도 바꿔버린 것입니다. 화살촉의 수장이었던 동욱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메시지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합니다. 

화살촉의 수장, 동욱은 "메시지가 너무 복잡해"라고 읊조립니다




Epilogue...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신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하지만, 결국 인간의 세계는 인간이 알아서 한다는 것을 배영재PD 부부의 행위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봅니다. 신의 의도, 아니 그건 사이비 종교의 초대교주인 정진수의 말이고, '인간의 정해진 운명'이라고 해 볼까요? 인간의 운명도 인간의 일이기에 인간이 알아서 한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시사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미래가 정해지고 운명이 숙명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에서 무신론적 실존주의 운운하면서 휴머니즘을 자주 동반한다고 했는데요. 실존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이다 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한다."


 



긴 글이었습니다.
나눠서 포스팅하려고 하다가 그렇게 되면 연결이 끊길 것 같아 한꺼번에 포스팅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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