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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불화, 시대에 대한 책임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5. 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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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불화

1

나쓰메 소세키는 신지식인이다. 당대에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재원이다. 영국 유학경험이 그를 지식인의 반열에 가지게 올려놓았다고 하기보다는 무엇보다 유학 생활 가운데서 느낀 무한한 고독감, 고립감이 그를 더 치열한 지성인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선진국인 영국, 하지만 정작 영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느꼈던 심각한 괴리감은 그를 정신병까지 몰고가서 유학을 보낸 고국에서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

소세키의 『태풍』에서 주인공 도야는 다카야나기 군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만 외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 역시 외톨이입니다.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입니다.”

 

....

 

 

“숭고? 왜 그렇지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외톨이가 된 거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만한 곳이라면 그들도 올라설 수 있는 곳입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군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업신여길 때 화가 치민다거나 번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과 동등하다면 창작을 해봤자 역시 동등한 창작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이 나옵니다.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지요.....”

 

 

...(중략)...

 

 

“...훌륭한 작품을 써서 후세에 전하고 싶은 것이 당신의 희망인 듯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떠신지 가르쳐주십시오.”

 

 

“난 이름처럼 미덥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만족을 얻으려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가 악명이 되든, 오명이 되든, 아니면 광기가 되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내가 걸어야 할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자신의 길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길의 동물이기 때문에 길을 좇는 것이 가장 존엄하다 생각합니다. 길을 좇는 사람은 신 역시 피해야 합니다. 이와사키의 담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하하하.”(139-140p)

 

 

 


 

 

 

3

이 작품에서 등장한 도야 시라이는 당대의 지식인이지만 외톨이 신세이다. 소세키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로 비쳐진다. 소세키의 목소리를 도야의 연설을 통해 드러내준다. 소세키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지성을 소유한 인물인지는 도야의 목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소세키의 『태풍』은 그의 타 작품들에 비해 덜 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흥미로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야 시라이, 다카야나기 군, 나카노 군.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주된 스토리를 이어간다. 흥미를 위해서라면 독서가 힘들겠지만, 소세키의 지성의 면목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4

소세키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급변하는 시대의 분위기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를 갖지 않은 개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기준으로 따를 만한 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메이지 40년은 전례가 없는 40년입니다...전례가 없는 사회에 태어난 사람만큼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요. 나는 여러분이 이런 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난 것을 깊이 축하하는 사람입니다....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났다는 것은 스스로 전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예요. 속박이 없는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은 이미 자유를 위해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자유를 어떻게 능숙하게 사용할까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권리이자 동시에 큰 책임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이상을 갖지 못한 사람의 자유는 타락입니다.”(179-180p)

 

 

 

 

5

“영국식을 고취하며 위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엾은 일입니다....모든 이상은 자신의 혼입니다. 내부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돼요. 노예의 두뇌에 웅대한 이상이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로 만족할 뿐 아니라 앞다투어 노예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상이 발효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상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학문이나 식견이 여러분의 피가 되고, 육체가 되고, 마침내 여러분의 혼이 되었을 때 여러분의 이상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벼락치기로는 어떤 일도 되지 않습니다.”(183p)

 

 

 

 

6

노예 이야길 하니 예전에 읽었던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의 내용이 생각난다. 인간은 첫 번째 종교의 노예, 두 번째 권력의 노예, 세 번째 황금의 노예로 전락하였고, 이제 우리 시대에는 네 번째로 ‘스마트폰의 노예’로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1권, 33p의 내용을 편집함).

 

 

 

 

 

7

작가 소세키는 도야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백지가 인격이 되어, 그 바깥으로 넘쳐 흐르고 뛰어오르는 문장이 있다면 바로 도야의 문장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귀족, 거상, 박사, 학사의 세상이다. 부속품이 본체를 밟아 뭉개는 그런 세상이다. 도야의 문장은 세상에 발표되는 족족 몰살당한다. 아내는 돈이 되지 않는 문장을 도락문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락문장을 쓰는 사람은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65p)

 

 

소세키는 신자유주의의 태풍 앞에 흔들리는 시대에 대해 염려한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작품이 바로 『태풍』이다.

 

 

흰 나비, 흰 꽃에

조그만 나비, 조그만 꽃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기나긴 근심은, 긴 머리카락에

어두운 근심은, 검은 머리카락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부질없이, 부는 태풍

부질없이, 사는가 속세에

흰 나비도, 검은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109p)

 

 

 

 

8

소세키가 느꼈던 시대와의 불화, 그리고 시대로부터 느꼈던 불안은 그의 작품 『행인』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대에 대한 불안이 소세키 자신에게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의 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형인 이치로가 동생 지로에게 질투를 느낀다. 왜냐구? 지로의 형수이자, 자신의 아내인 오나오가 동생가 썸을 타서 불륜의 관계가 있다는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오의 정조를 시험해 봐다오.”(『행인』, 129p)

 

 

팩트 없는factless 추측과 상상으로 조합된 자신만의 서사에 형 이치로의 정신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아내와 동생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형 이치로가 느끼는 개인의 불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인류적으로 확장되어진다.

 

 

“자네가 말하는 불안은 인간 전체의 불안이지. 유독 자네 혼자만 괴로워하는게 아니라고 깨달으면 그만 아닌가? 결국 그렇게 유전해나가는게 우리들 운명이니까.”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네. 앞서가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르는 과학이 일찍이 우리에게 멈추도록 허락한 적이 없네. 도보에서, 인력거로, 인력거에서 마차로, 마차에서 기차로, 기차에서 자동차, 그 다음엔 비행선, 그 다음엔 비행기, 아무리 가봐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아. 어디까지 끌려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참으로 두렵다네.”(『행인』,327p)

 

 

 

 

소세키는 100여년 전에 이미 ‘인간 본유의 불안’을 감지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전집에 씌여 있는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소세키는 위대하구나!

 

 

 

 

9

‘시대와의 불화’라고 하니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 양반은 유대인이었다. 그는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압박해오자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이다. 하지만 히틀러의 인해 생긴 전쟁의 군화발로 짓밟힌 자신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을 바라보며 츠바이크는 우울증을 겪는다. 지독한 시대와의 불화를 느꼈던 지식인이 바로 스테판 츠바이크였다. 츠바이크는 1942년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동반자살했다.

 

 

스테판 츠바이크

 

 

츠바이크는 죽기 일 년도 안 되는 시점인 1941년에 『체스 이야기』를 출간한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라틴어에 능통했던 츠바이크의 영민함은 이 작품에서 더 빛을 발한다. ‘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시기에 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설정하고 있다. 이로써 틀이야기의 심리전이 단순히 체스 대결자들 사이의 심리전으로만 읽히지 않고 시대적, 역사적 심리전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154p)고 해설자는 말하고 있다. 이 짧은 단편소설을 통해 자신의 심경과 시대의 우울을 그려내는 스테판 츠바이크!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히틀러가 괴멸하는 것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었을 텐데...츠바이크의 천재성, 그의 존재를 그렇게 사라지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시대와의 불화’였다는 것!

 

 

 

 

 

독서가의 책임

 

10

누구보다 많이 알고 배우고 익히고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세계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살고 있는 시대까지 사유가 확장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지식인이고, 지성인이다. 그게 바로 소세키같은, 츠바이크 같은 지성인이 지향해야 할 바른 자세이자 태도가 아닐까? 시대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하면서 대안을 찾고 나아가는 지성인의 책임이 느껴진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은 지식을 체득했다면, 더 많은 사색과 사고가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셈인데, 어쩌면 그것은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이 말한 ‘빚진 자’라는 개념으로 적용될 수도 있겠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장 14절)

 

 

우리가 누린 지성의 향연은 그냥 우리의 말 잔치로 끝나버리는 하나의 도구, 악세사리가 아닌 우리가 디디고 있는 세상이란 공동체의 그라운드에서 ‘빚진 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이런 지적 부담감이다. 내가 과연 받은 만큼 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시대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있는가?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독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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