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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지금이라도 알았으니

탐독: 탐서/시와 케렌시아

by 카알KaRL21 2022. 2.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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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최근 시집(2022년 2월 홍성사 출간) "한 사람을 사랑하여"에 게재된 시이다. 우연히 후루룩 책장을 넘기다 이 시에 꽂혀 잠시 생각에 빠진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한다.

 

 

 

 

 

 

나태주의 2022년 2월 홍성사에서 출간한 시집입니다
나태주 시집, 한 사람을 사랑하여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이 세상은 오직 나 한 사람과
내가 아닌 수많은 너로 되어 있다
왜 그걸 일찍 알지 못했을까?


가장 좋은 인생은
나한테 보다는 너에게 잘하며 사는 인생이다
왜 또 그걸 진즉 알지 못했을까?


그래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자.

 

 

시를 생각하다

인생과 삶은 나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게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내가 빠지면 무슨 재미가 있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지만, 내가 빠진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거나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나는 너무 배가 아플 것 같다. 내가 사라졌는데, 지구가 멸망한다던지, 태양이 떨어진다던지, 달이 사라진다던지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좀 섭섭하다. 너무 열 받는 현실이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내가 이 세상에 사라져도 세상은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간다'는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리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은 잘 돌아간다. 그 말은 이 세상은 어쩌면 한 사람에 대해 너무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 사람, 바로 나 자신에게 너무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은 내가 없으면 무슨 소용? 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은 수많은 나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상은 다 자기 잘 난 맛에 사는데, 무수한 '나'들중에서 하나에 불과한 '나'는 찬밥 신세인가? 세상은 수많은 나로 구성되어 있는데, 덩어리로 따지면 정말 나는 점에 불과한 존재인데, 반대로 내가 빠진 덩어리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지만, 그 덩어리는 처음부터 1(하나)부터 시작된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잡설이 길었다.

 

 

 

 

시인은 오늘 이런 '나'로 향한 관점과 시선을 180도 달리하여 시를 적고 있다. 1연에서 현실적인 분석에 들어간다.

 

"이 세상은 오직 나 한 사람과 내가 아닌 수많은 너로 되어 있다'"

 

수많은 나로 구성되어 있는 세상이지만, 수많은 나, 오로지 1이란 한 사람에겐 나이고, 그 외 모든 사람들은 너란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 세상은 오직 나 한 사람과 내 아닌 수많은 너로 되어 있다' 그 말은, 나 하나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인가 싶기도 하고,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물론 자기 혼자서 호의호식하면서 자기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만큼 더 큰 쾌락은 없지만, 그것은 "내가 아닌 수많은 너로 되어 있"는 인류와 세상에 아무런 덕이 되지 못하는 셈이다. 

 

 

 

2연에서 그 현실에 대한 분석 위에 자신의 처방을 내려간다.

 


가장 좋은 인생은

나한테 보다는 너에게 잘하며 사는 인생이다
왜 또 그걸 진즉 알지 못했을까?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가장 좋은 인생은 나가 아닌 수많은 너에게 잘하며 사는 인생'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 위대한 진리를 시인은 후회하면서 고백한다.

 

"왜 또 그걸 진즉 알지 못했을까?"

 

3연에서 '그래도 다행'이라며 자위한다.

 


그래
지금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자.

 

 

이 세상은 오직 나 한 사람과 내가 아닌 수많은 너로 되어 있다...
나한테보다는 너에게 잘하며 사는 인생...쉽지 않겠지만. 생각이라도 하면서 살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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