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년심판 5,6회 다시 읽기-"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쳐선 아니 된다"(스포있음)

탐독: 탐미/TV 프로그램

by 카알KaRL21 2022. 3. 12. 00:06

본문

티친님의 블로그글을 보면서 보게 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을 정주행중인데요, 제 성격이나 스타일상 모든 회차를 다 리뷰하는 게 제 스타일인데,  오늘은 내 마음 가는대로 <소년심판> 5,6회를 리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년심판>은 미성년자들의 범죄사건을 토대로 구성한 굉장히 잘 만들어진 넷플릭스 드라마인데요, 미성년자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봐도 너무나 느끼는 대목도 많은 드라마입니다. 특별히 5,6회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을 토대로 구성한 스토리입니다. 제가 느끼는 점은 술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혜수가 열연한 심은석판사 사진입니다
소년심판의 주인공, 심은석판사(김혜수)

 

1 주요사건

문광고등학교에서 시험지유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거기에는 권력과 명예가 대단한 집안의 자제들이 연루되었는데요, 그 이름이 바로 '데카르트'라고 합니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인데도, 거기서 내신을 위해서 시험지 유출사건에 연루된 21명의 학생들이 소년부로 넘어오게 됩니다. 소년부의 부장판사로 오랫동안 몸담고, 소년들의 개화와 갱생에 초점을 두면서 한평생 법조계에 몸담은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 분), 그리고 배석판사 심은석(김혜수 분), 차태주(김무열 분)이 주요등장인물입니다. 특별히 차태주는 소년범이었던 시절에 한 사람의 애정과 관심과 도움으로 엇나가지 않고 검정고시를 통과해서 판사가 된 경우인데요, 그의 은사가 바로 강원중판사였습니다. 심은석 판사는 '저는 소년범을 혐호합니다'라는 시작부터 굉장히 묵직한 대사로 등장했는데요, 왜 심은석 판사가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양파껍질은 9-10회에 나오늘 듯 합니다.

 

 

 

 

2 소년범죄는 소년범죄만의 문제가 아니다

5-6회는 명문고라고 할 수 있는 이 학교에서 왜 시험치유출사건이 발생했는가? 그것은 학부모, 어른들의 과욕이 부른 결과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소년심판>이라는 테제를 이야기하지만, 더 나아가 이게 소년, 미성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른들의 욕심, 사회의 시스템, 구조적인 악까지도 건드리는 부분이 굉장히 주목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주행하면서 이 드라마의 흥미가 더 배가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소년범죄>가 어른들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물과 기름의 어떤 범죄스토리가 아니라 어른들과 같이 얼키고 설킨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요, 처음부터 베일에 가려졌던 심은석 판사의 이야기는 9-10회(아직 보지 못한 대목입니다)에서 썰을 풀 것 같고요. 왜냐하면 심은석 판사, 김혜수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시청자의 텐션의 목줄을 끝까지 잡아당기게끔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3 스토리 전개의 점층적인 상향곡선과 텐션의 지속성

이게 점층적인 스토리 전개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소년범죄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점층적으로 상승하는데요, 7-8회에선 김혜수의 오른팔과 같은 차태주(김무열 분)판사의 애지중지했던 소년범 곽도석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차태주를 건드리고, 마지막 9-10회에선 심은석(김혜수 분)판사를 건드린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게 7회부터 그런게 아니고, 5-6회에서는 한평생 소년들의 변화와 갱생을 위해 판사의 길을 걸었던 강호중(이성민 분)판사의 문제를 터트리고 지나왔다는 점입니다. 

 

 


강원중 판사(5-6회) → 차태주 판사(7-8회) → 심은석 판사(9-10회)

 

 

이런 식으로 간다는 것이죠. 이런 점층적인 스토리전개를 통해 시청자에게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냐? 바로 이 사회 전체가 소년범죄를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고, 이 소년들이 커서 성인이 되지 않습니까? 그들이 제대로 온전한 변화나 갱생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전체에 전염병처럼 퍼지게 된다는 파급효과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소년심판>은 소년범죄에 마이크로스코프와 같은 시각으로 시청자들의 정곡을 찔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년부의 부장판사&#44; 강원중판사역은 이성민이 맡았네요 이성민사진
소년심판 강원중판사(이성민)

 

 

4 강원중 판사의 아들 강신우 사건을 통해 우리 가정의 민낯을 보여주다

 

위에서 강원중 판사가 무슨 문제로 시한폭탄 터지듯이 소년범죄가 일어나냐? 라고 질문할 수 있는데요. 바로 강원중 판사의 가족이야기로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아무리 정의롭게 살아온 강원중 판사이고 소년범죄를 위해서 애쓴 베테랑 판사라고 하더라도 이 문제에 배제될 수 없다는 이야기 전개입니다. 강원중 판사는 소년법 개정을 위해서 법복을 벗고 정치계로 나아가 소년들을 위한 제대로 된 사회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오랫동안 준비해온 정말 제대로 된 판사입니다. 하지만, 강원중의 첫째아들 강신우가 문광고에 다니지만 성적이 늘 아버지 강원중의 기대를 져버렸고 그에 대한 실망감을 강원중도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둘째아들과 비교하면서 혹독한 응대를 해 왔습니다. 그게 결국은 남편 강원중이 만류했던 '데카르트'에 가입하면서 이 사건에 연루가 됩니다. 강원중 판사는 정말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법원 일을 마무리하고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이었는데요, 아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아들 강신우는 '아버지의 인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하루에 3시간만 자고, 수면제까지 처방 받으면서' 공부하는데요, 성적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데, 그때 이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실은 강신우는 데카르트에 잠시 가입했다가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어머니가 탈퇴시켰습니다. 아버지가 이 일을 알게 되고 강원중의 자랑스럽고 정의로운 법조계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는 사건! 국회의원으로 나선다는 이야기는 언론에서 벌써 회자되고 있는 상황에서 21명의 직접적인 가담자에는 포함되지 않은 3인 중의 하나인 강신우의 문제를 덮고자 합니다. 강신우는 아버지의 기대를 못 미쳤다는 자책과 죄책감에 자살기도를 하면서 병원신세를 지게 됩니다.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버지에게 문자를 다정하게 보냈던 신우였지만, 늘 기대를 채워지지 못한 신우에게 문자답장 한 번 보내지 않았던 강원중의 자업자득의 결과인 셈입니다. 이 일이 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 싶습니다.

 

 

"당신이 민거야, 우리 신우"

 

 

 

소년심판의 강원중아들 강신우는 배우 김준호가 맡았습니다 김준호사진
소년심판 강신우

 

 

아들이 그렇게 죽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강원중은 증거가 없다고 핑계하며 아들의 죄를 덮으려고 했지만, 심은석은 강신우를 찾아가 자백을 받아냅니다. 자신의 상사였던 강원중의 아들 신우의 범죄에 대해 심은석은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건 후에 '내부고발'이란 불명예란 타이틀을 안게 됩니다. 차태주 판사도 처음에는 그냥 놔두자고 했던 대목입니다. 

 

 

 

 

 

 

5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쳐선 아니 된다

태주 판사에게 강원중 판사는 위대한 스승이었고 멘토였습니다. 강원중이 없었다면 지금의 차태주는 없었을 것입니다. 차태주와 이런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만, 심은석 판사는 객관적으로 이 사건을 짚고 넘어갑니다. 강원중 판사는 자신이 소년법 개정을 위해 국회를 나가려고 한다, 강원중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소년법 폐지'란 강경책을 들고 나오지만, 강원중은 시스템의 변화와 환경의 구축을 통해 소년범들의 갱생과 변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논쟁을 벌이던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강원중은 소년범의 '교화'를 주장하는 '소년법 개정'이 자신의 일생의 목적이었습니다. 강원중은 자신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심은석에게 소리를 치면서 화를 냅니다. 하지만, 심은석 판사는 강원중에게 정곡를 찌릅니다.

 

 

 

"소년들을 짓밟으면서 소년법을 개정하면 뭐하냐?"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문광고 시험지유출 사건'에 연루된 소년범들은 전부 자퇴를 해버렸습니다. 자퇴를 하고 다시 검정고시를 보면 오히려 그들의 이력에 아무런 해도 없다고 합니다. 자퇴를 해버린 고위급 권력자들의 자제들은 어른들의 이런 조치로 인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잘 넘어갑니다. 그런데, 자퇴를 해버린 애들의 후유증과 몸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학교의 남아있는 소년들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재시험을 쳐야 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보여주는 학교는 소위 '가진 자'들이 보여주는 어른들의 기득권에 의해 소년범죄가 은폐되고 회피되고 그리고 남은 자들에겐 공정한 기회가 유린당하는 더럽기 그지 없는(?) 예비사회에 불과했습니다.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병든 사회입니다. 병든 소년들을 그래도 양산해내는 부모와 사회의 맨얼굴입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쳐선 아니 된다."

 

 

 

이 말은 아무리 좋은 목적과 선한 의도와 계획이 있다고 해도 그 방법과 과정이 선하지 않으면 그 목적의 의미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인 성경을 읽고자하는 거룩한 열망이 고매하다 하더라도 촛불을 훔쳐서는 아니 되는 것이죠. 촛불을 훔친다는, 훔친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회와 소유을 박탈하는 것이고 도둑질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상처와 강탈을 경험한 그 사람의 생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중세의 마키아벨리식의 처세술에 익숙하여 '목적을 위해선 어떤 방법과 수단이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철저한 정치술로 문광고의 소년범들을 처리해버립니다. 가진 자들의 아버지들이 하는 그런 방식으로 혜택(?)을 입은 소년범들은 어떠한 피해도 없이 교묘하게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아버지가 보여준 아주 CUNNING한 지혜(?)를 그대로 답습해 이 사회를 그렇게 물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카톨릭에 보면 '성수HOLY WATER'라는게 있다고 하더군요. 그 '성수'는 신자를 깨끗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고 믿는데요, 만약 사제가 마련한 그 성수에 똥파리가 빠졌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성수가 똥파리로 인해 더러워진 겁니까? 아니면 똥파리가 거룩해진 겁니까? 당연히 더러운 파리가 성수에 빠졌기 때문에 성수가 더러워진 것입니다. 사람이 깨끗해지고 정의로워지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테제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타락하고 더러워지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똥파리가 성수에 빠지면 똥파리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수가 더러워지듯이 이 사회전체가 범죄의 맛을 똥파리와 같은 아주 작은 한 사람이라도 알게 되고 빠지게 되면 그 전염성은 사회라는 성수 전체가 오염되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너무 확대해서 해석한 면도 있지만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정의를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이며, 한 사람이 혼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소년심판>을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한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