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에 게재된 '그 말'이라는 시에 대해 함께 감상해볼까 합니다. 나태주의 시는 쉽고 간결하며 깔끔합니다. 그런 단순성simplicity는 아마 그가 40여년 동안 초등학교 교편생활의 내공 때문인 듯 합니다.
그 말
보고 싶었다
많이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남겨두는 말은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입속에 남아서 그 말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마 볼 수 있는 싯구의 내용이지만, 실상 우리 삶에서도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정말 사랑하는데 고백하는 것을 참고 미루고 아끼는 대목들은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고 안타깝게 만든다. 가슴 속에 깊이 내려앉은 그 말이 너무나 시간이 오래된 탓에, 그 시간의 무게감 때문에 도저히 말이 저장된, 단어와 언어가 저장된 내장에서 식도를 타고 입 밖으로 올라오질 못하는 것이다. 너무 무거워서 말이다. 말이 무겁다기 보다 너무 오랫 시간동안 가라앉은 시간의 질량과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나는 트위터에 익숙하지 않다. 티스토리 때문에 트위터를 계정해서 연동을 시키지만, 트위터를 거의 하진 않는다. 그런데, 트위터는 내가 모르는 기능이 많은 것 같다. 트위터 뿐만 아니라 수많은 SNS가 다 그렇다. 지금은 사람들이 말을 참는 시대가 아니다. 입안에 말을 담아두고는 못 사는 시대이다. 무조건 입으로, 아니면 손으로 자신의 스쳐가는 생각과 감정을 뱉어내는 시대이다. 그야말로 인터넷의 SNS는 인류의 구토글과 배설글로 넘쳐나는 듯 하다.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다 구토이고 배설이긴 하다. 구토와 배설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구토물과 배설물이 때론 토양에 윤택하게 하는 거름이 되듯이, 수많은 말들 중에 일부는 인류를 선하게 만들고 윤택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기능 보다는 SNS는 역기능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나는 오늘 이 '그 말'이란 시를 대하면서 우리 시대의 특징은 '참지 못하는, 참을성이 없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말이 그래도 여운이나 울림을 남겨두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입속에 남아있는 말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속에 담아둔 것은 죄다 다 뱉어내고 표현하고 떠벌리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상처가 되는 것은 오래 시간 필터링과 마음훈련을 통해 토로되어지는 경우도 있다. 너무 극단적인 경우는 평생 한이 되어 무덤까지 들고 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을 보면 마구 마구 말을 뱉어낸다. 정말 자기 얼굴에 자기가 먹칠을 하는 지 모르고, 똥칠을 하는지 모르고 마구마구 뱉어낸다. 거기에 댓글이 달리고, 리트윗이 달리고, 좋아요를 날리고 그런 시대이다. 어쩌겠는가?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데. 이 포스팅 또한 내가 입을 벌리지 않고 타이프를 치지 않으면 내 마음에 가라앉아 있어야 할 요소에 불과할 것이다.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한 듯 하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요지는 그렇다.
감정과 감각이 있지만, 때론 남겨두는 말이 필요하고 입속에 남아서 맴도는 말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속성으로 처리되는 모든 것들은 때론 탈이 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숙성된 것은 인류를 이롭게 한다. 고전이 왜 위대한가? 시간이란 인고의 기간을 거치면서 검증된 숙성되어 인류에게 이롭다고 판단이 확정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전 또한 과거의 어느 정신적 거인이 뱉어낸 스토리이고 말들의 집이긴 하다.
시인은 말한다.
입속에 남아서 그 말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남겨두는 말, 입속에서 남은 말은 언젠가는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남겨두는 말이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라는 아름다운 테제인데, 그런 테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남겨두는 말의 위력, 입속에 남은 말의 위력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남겨두기 때문에 더 귀하고 가치있고 의미있고 심사숙고하게 되고 곱씹게 되는 말은 결국 발화력이 폭발해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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