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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는 그의 저서에서 ‘흔히 ‘탕자’라고 번역되는 문구의 형용사 ‘prodigal(프러디걸)’은 ‘제멋대로 군다’는 뜻이 아니라 Merriam 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메리엄웹스터대학생용사전)에 따르면 ‘무모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프다’라는 뜻이다. 하나님도 남김없이 다 쓴다는 의미이다‘ (20p)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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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탕자인, 둘째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고귀하고 소중한 것을, 가락지와 짐승을 잡아 돌아온 탕자를 위해 잔치를 베풀 준비를 하신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가치들을 둘째를 위해 쏟아부으실까? 아낌없이 부어주신다. 말 그대로 <그 탕자의 그 탕부>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모양새와 풍경을 첫째 아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logic한 삶, legal한 삶, 바르며 올바르고, 합리적이고, 종교적이고, 율법적이며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았던 그의 바른 생활은 엇나간 둘째, 동생의 방탕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탕자를 어찌 용납할 수 있으며, 탕부를 어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3
누가복음 15장에 대한 팀 켈러의 통찰은 이 비유가 단지 둘째 아들, 탕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 아니라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꼰대’, ‘영적 꼰대’인 첫째 아들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탕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첫째 아들을 위한 메시지임을 기억하자! 모든 비유는 깨닫게 하기 위함에 있다.‘제멋대로 집 나가 방탕한 삶을 산,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한 둘째 아들, 탕자’에 대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에선 용납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 사람들 중에 아버지의 재산을 다 말아먹은 망나니같은 아들에 대해 입대기를 얼마나 좋아하는가! 그럴 수 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 보편의 편에 바로 첫째 아들이 있다.
-현 시대와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
세대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책이다.
깔끔하구나! 젊은이들은 꼰대를 싫어한다. 극혐대상이 바로 꼰대이다.
4
팀 켈러는 ‘스스로 하나님 노릇한다면, 충성했어도 죄다’(59p)란 이야길 첫째 아들, 장남에게 한다.
당시 장남(장자)는 다른 아들보다 두 배의 유산과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아무런 결점과 흠도 없는, 탕자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충성된 첫째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노예처럼 아버지의 집에 충성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을 품는 아버지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첫째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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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팀 켈러는 ‘겸손한 사람들이 실세이고 교만한 사람들은 퇴물이다’라고 말씀하신다는 눅 18:14의 구절을 들어서 이야기하고, ‘여호와께서는.....겸손한 자들을 돌보시며 교만한 자들을 멀리하신다’(시 138:6)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예수님이 보시는 시각과 관점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관계>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관계이다. 기독교는 교리도 아니고, 신학도, 사상도, 이론도 아니다. 기독교는 관계이고, 그 관계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예수님을 보고 듣고 느꼈고 주목했던 증인들witness, 제자들은 제자훈련받은 ‘관계의 힘’을 가지고 세계선교의 무대로 나아갔던 것이다. 물론 세계선교의 초석은 사도바울이 놓았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는 기독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법 없이도 잘 살아가는 순수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인 인간이다. 신앙인의 입장에선 적대적인 인물이고 원수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그 ‘관계의 힘’으로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며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저술했다. 그리고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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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첫째 아들에게는 왜 이런 ‘관계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가?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자신이 입던 럭셔리한 옷을 입히고 잔치를 배설한다. 그리고 첫째 아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마음은 그림자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거부감과 불편함과 불평과 분노가 가득 차 있다. 이 상황과 이 시츄에이션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7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토록 충성하면서 아버지의 가문을 융성시키기 위해 뼈 빠지게 노예처럼 일한 그가 왜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는가? 그것이 핵심포인트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관계’가 결여된 신앙은 갑갑한 종교생활의 육중한 갑옷을 입고 있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득 떠오른 성경 구절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한복음 15:4)
8
내 생각이다.
둘째 아들 탕자는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아버지 안에 있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돌아온 것이 중요하다. 비록 그가 빈털터리 거지 신세가 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보편의 시각에선 용납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게 아버지인 것이고, 그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위화의 『인생』에서 하루 아침에 집안의 가산을 도박으로 날려버린 아들 푸구이를 용납하던 푸구이의 아버지, 푸구이의 아버지는 푸구이의 빚을 어떻게어떻게 다 갚아준다. 그것도 은화로 주면 될 것을 동전으로 다 바꿔서 어깨에 보따리를 짊어지고 빚을 갚아오라고 한다. 아들의 어깨는 피로 물들고 상처를 받았지만, 아버지는 ‘돈은 쓰는 것은 금방이지만, 버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한 시청각적 재료이기도 했다(위화는 진짜 이야기꾼이다. <인생>을 읽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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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삶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집에서 제대로, 무탈하게 잘 지낸 첫째 아들에겐 ‘아버지 안에 있으면서도’, ‘아버지 안에서 누리지 못한’삶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팀 켈러의 탁월한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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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탕자의 그 탕부 아버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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