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천년습작'에 대한 북리뷰이다. 개인적인 감상과 더불어 해석, 요약정리도 해 보았다. 제목은 '거인들의 글쓰기와 작가정신'이라고 달아보았다. '거인에게 배우는 작가정신'이라고 해도 좋겠다.
괴테는 8세에 시를 지었다. 13세에 첫 시집을 냈다. 그는 조숙한 문학 신동이었다.
20대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여 베스트셀러작가가 된다. 대박이다. 이런 괴테였지만, 괴테가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예술이든 실제로 해보면 대단히 어렵고도 광대해서, 어느 예술 분야에서든 대가의 반열에 오르려면 실로 한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테는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업 활동은 단 한 분야에만 국한시켜왔다. 그는 단 한가지 예술을 연마했으며, 사실 거장답게 실력을 쌓아올렸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일’이었다.‘-『괴테와의 대화』, 185-186
그의 말대로 괴테는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위해 60년의 시간을 소요한다. 완성 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원고를 봉인한 뒤, 자신의 죽음 이후에 발표할 것을 주위에 지시한다.
괴테는 ‘독일어로 글 쓰는 일’에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 공직자의 생활도 했지만, 늘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예술적인 열정’ 때문에 공직자의 생활에서 도망치기도 했던 괴테였다.
문학 신동이라고 불렸던 다재다능한 괴테조차도, 한 가지 일,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쳐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기독교 철학자 오스 기니스의 <소명>에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가 나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재다능한 최고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시간은 너무나 적고,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는 말을 했다. 당대와 후대에 걸쳐 사람들은 종종 다빈치가 너무나 많은 토끼를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분산된다는 지적을 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다른 예술가들은 ‘생산적인 삶’을 산 반면에, 다빈치의 경우는 초점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미적거리는’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가 1519년 죽기 몇 개월 전에 밀라노에 있던 산타마리아 교회에 박힌 자신이 그린‘최후의 만찬’ 벽화가 습기 때문에 손상되고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대가의 최고의 걸작들은 미완성인 채 당대에 이미 파괴되거나 부패되고 있었다....자신의 방대한 지식과 비범한 발명품들이 사용되지 못한 채 남아 있고, 자신의 엄청난 저작들은 출판되지도 못하고 사장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죽기 전에 아주 작은 글씨로 수줍어하듯이 공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원해서는 안 된다.”(소명, 18-19p참조).
레오나르도의 다빈치의 멀티플레이적 재능에 비하면, 괴테는 단순하고 명료했으며 한 가지 일에 집중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 바로 카프카였다. 카프카는 글쓰기에 대한 일종의 불안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1912년까지 그는 늘 이런 변명을 했다.
“나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아주 위대한 작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한, 나는 아무것도 감행할 수 없다.”(28p)
그는 자신이 작가적 열정을 다해 마무리한 <선고>에 대해선 만족하였지만, <변신>에 대해선 자신의 재능 없음을 괴로워했다. 하지만 문단의 평가는 반대였다. 작가가 스스로 만족하고 충일한 감정을 갖는 것과 대중의 평가는 다르다는 것, 저자 김탁환은 ‘불안을 없애고 글쟁이로 평생을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는 조건’(29p)을 외부적 시간의 조건(시간이 없다, 번거롭고 거추장스런 일이 많다 등)이 아니라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속으로 돌입하는 것이라고 한다(31p). 위대한 작가 카프카는 자신의 불안의 이유가 ‘더 많은 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탓’으로 돌린다(31p).
물리적인 시간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은 바로 심리적인 여유, 그 시간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단 것이 내 생각이다. 카프카만한 작가가 있는가! 하지만, 그는 평생 작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다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이구나 하는 위로를 받게 된다.
김탁환은 4-5장에서 글쓰기를 위한 자신의 방을 꾸며보라고 권한다. 먼저 발자크와 폴 오스터에 대한 이야길 한다.
‘어떤 친구도, 어떤 지상의 인간도 이 책상만큼 그를 많이 알지 못했으며, 그 어떤 여자와도 그토록 많은 밤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 발자크는 바로 이 책상 앞에서 살았고, 이 책 앞에 앉아서 죽도록 일했다’-『발자크평전』,(240-242p).
‘작가의 방은 그곳에 쌓인 책과 자료들로 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객관적인 방의 크기나 높이나 가구들이 아니라 작가가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그곳에 들여놓았다가 소화시키고 버린 것들이겠지요.’(김탁환, 56p)
토지의 박경리 선생은 장편작가에겐 두루마리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발자크는 그 완전한 고독에 잠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 자는 밤을 택했다. 김탁환은 <발자크의 평전>을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변했다고 말한다.
발자크의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폴 오스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 말고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빵 굽는 타자기』,(6p)
‘...내 문제는 그런 이중생활(작가가 투잡을 가지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데 있었다. 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 아침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장에 묶여 있는 생활은 생각만 해도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취직해서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원치도 않는 필요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빵 굽는 타자기』,(7p)
무엇보다도, 발자크의 철두철미한 작가정신, 작가의 태도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작업실에서 필요한 서른, 마흔 장의 종이, 까마귀 깃털 펜, 잉크와 예비용 잉크와 밤새면서 마실 커피까지 준비하고 작업에 들어갈 때는 자신만의 의식 차원에서 옷을 바꿔 입는다고 한다. 이것은 자기 암시이자 의도적인 단절이라고 한다. 마치 운동선수들의 일종의 루틴처럼 발자크도 그런 루틴을 가졌던 것이다.
김탁환은 작가가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한 이야길 이렇게 기술한다. 충격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는 머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입니다. 발자크처럼 손으로 쉴 새 없이 집필하는 것, 과잉으로 소설 세계에 빠지는 것만이 뛰어난 소설가가 되는 길입니다.’(김탁환, 67p)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결국 작품은 손으로 쓰는 겁니다.
소설은 ‘노동’이라고 믿습니다. 소설이 유희라면, 기분 좋을 때만 즐기고 기분 나쁠 때,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라면, 소설에 헌신할 까닭이 없겠지요. 적당히 즐기다가 떠나면 그만입니다.....노동이란 무엇일까요. 땀방울입니다. 일정한 시가을 정해놓고 하염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투입하는 겁니다...발자크의 지칠 줄 모르는 글쓰기를 통해 소설이 과연 노동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71p)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언어와 문장에 굉장한 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내가 왜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훌륭한 작가와 평범한 작가는 여기서 갈립니다. 계속해서 한 문장에 집중하지 못하면 평범한 작가가 되고 맙니다. 영화도 마찬가지겠지요.’(69p)
문득 영화감독 왕가위가 생각이 났다. 왕가위가 소설을 썼다면, 얼마나 다듬고 다듬었을까? 그의 영화의 장면 하나 하나는 예술이다. 한 컷 한 컷이!
사무엘 베케트는 제임스 조이스의 친구였고 비서였다. 릴케는 조각가 로댕의 내제자였다. 그는 로댕의 작업하는 자세를 보면 작가정신을 키웠다.
‘대화중에 누가 영감을 주장하면 그는 너그럽고 반어적인 미소로 따돌리면서 영감이란 없다, 영감이 아니라 작업이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 우리는 퍼뜩 깨닫게 됩니다. 이 창조자에게는 영감이 지속하는 것이 되었다는 것을, 영감이 그치지 않기 때문에 영감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것을 말입니다.’-『릴케의 로댕』,(134p).
릴케는 로댕의 작업현장을 몸소 배우면서 ‘한 인간의 삶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능력’을 배운 것이다.
발자크의 지칠 줄 모르는 작가정신과 작업태도, 폴 오스터를 보면서 감탄을 했고, 또 하나는 아니 에르노란 작가를 소개받은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살아가는 나’와 ‘소설 속의 나’를 일치시킨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총체적인 탐구를 이어간다.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 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갈 수 있으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부끄러움』,(98-99p)
아니 에르노는 이것을 ‘찰나의 영원성’을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아니 에르노는 <부끄러움>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스런 순간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드러낸다. 평생 자기 혼자서만 간직했던 비밀스런 부끄러운 순간들을 작품에 고백하고 폭로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녀가 간직한 부끄러움이 사실은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140p)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글은 아주 오랜 시간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어야만 가능합니다. 문단이 줄어들고 문장들이 삭제되고 단어들이 수없이 바뀌면서, 가장 짧지만, 강력한 울림들이 만들어집니다. 울림이 너무 클 때는 차라리 단어까지 지워 한 줄씩 띄워놓는 여백에 독자들이 동참하여 마음껏 상상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아, 참으로 지극히 느린 글쓰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에르노는 ‘간결한 문장을 쓰기 위해 더 없이 느리게 글을 쓴다’(142p)고 말한다.
‘난 글을 쓸 때 내가 단어가 아닌, 사물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추상적일 수 있는 감정, 혹은 그와 반대로 기억에 떠오르는 장면이나 이미지처럼 구체적일 수 있는 것들과 만난다는 말이죠....문자의 리듬에 관해 말하자면, 난 의도적으로 작업하지 않습니다. 내 내면의 귀로 듣고, 옮겨 적을 뿐이지요.’(143p)
글을 쓸 때 이미지를 생각하고, 사물을 둔다는 이 말...작사가 김이나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의 작사를 할 때, 그 노래를 부를 가수의 나이와 외모, 이미지를 그려가면서 작사를 한다고 했다. 가수가 가진 총체적인 모든 것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작사를 한다고. 나는 아니 에르노의 말을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그 사람과 함께 있던 어느 날 오후, 펄펄 끓는 물이 들어 있는 커피포트를 잘못 내려놓은 바람에 거실의 카펫을 태워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불에 탄 그 자국을 볼 때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열정적인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다.’-『단순한 열정』,(24p)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도 도전적이지만, 이 고백이 너무 심쿵했다. 김탁환은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에 대한 정직한 시선이 보편을 잉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라고 정의했다(148p). 그렇다. 이야기의 힘은 작가의 정직한 고백에서 나오는 것이고, 독자는 거기서 깊은 공감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우리 마음에 hi-touch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문학성이란 낯선 삶을, 위험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살아내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입니다...문학성이 넘치는 글쓰기는 개인의 구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고로 인생에 최고의 보물은 목숨을 건 모험의 여정 그 자체라고 하지 않습니까!’(154p)
아니 에르노는 내면일기는 단순히 살아온 순간들을 ‘보전’만 할 뿐이지, ‘사랑, 부끄러움, 증오’를 객관화시켜 정확히 쓰는 자신의 글쓰기와는 차별된다고 말한다. 그런 정직한 글쓰기에 삶을 구원하는 방법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말미에,
‘내가 누구인지 가장 잘 아는 이도 나지만, 내가 누구란 걸 정확히 나타내기 어려운 이도 역시 나입니다. 거기 1인칭 리얼리스트의 고민이 서려 있습니다.’(156p) 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꼭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쌍봉낙타들 닮’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떤 매체이든지 소감이나 후기를 꼭 남길 것을 권한다. 나는 작가 뭐 이런 거 집어치우고, 기억하기 위해, 휘발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을 남긴다. 되새김질이 잘 되었나 모르겠다. 근데 정말 리뷰를 남기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하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도전받은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인용만 많다. 그래도 좋다. 이제 이 책을 내 손에서 놔아야 겠다. 더 붙들고 있다간 넘어가시겠다. '글쓰기에 대한 글을 글쓰기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절실히 느낀 리뷰이다. 김탁환은 내가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란 책을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작가이다. 그 700쪽이 넘는 책을 보고 누군가 김탁환의 소설<거짓말이다>를 추천했다. 빌렸지만,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또 다시 ‘세월호’를 들춘다는 것이 내겐 너무 부담이 되었고 힘들었다. 그렇게 해서 김탁환은 내게로 다가왔다가 멀어져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이름이 내 뇌리에 확실히 새겨지게 되었다.
감사하다.
그가 글쓰기 특강을 통해 이야기한 ‘따스함’이 내게 전해지는 듯 해 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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