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후기 감상/문학이 주는 위로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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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후기 감상/문학이 주는 위로와 상처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8. 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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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배려
너를 위한 배려
나를 위한 배려
배려는 불편하다?

불편한 문학이 주는 위로와 상처
   



 

 

한 사람을 위한 배려

 

너를 위한 배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유부남이다. 연하남이다. 게다가 외국인이다. 그 사랑에 여주인공은 올인한다. ‘사랑해서는 안 될’이란 문구가 붙었다는 것은 사랑의 제약이 따른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그 모든 제약을 받아들인다.

만남에 대한 약속도 일방적이다. 여자 주인공은 늘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11p)

 

그녀가 먼저 약속을 잡는 경우는 없다. 일방적이다. 연인을 위한 철저한 배려다. 그래서 그녀는 연인에 대한 요행을 시험하고 대가를 치른다.

‘저녁에 그 사람의 전화가 오기를 빌면서 지하철역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들에게 적선을 했다. 내 멋대로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그 사람이 나를 보러 오면 자선단체에 200프랑을 기부하겠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평소의 생활습관과 다르게 나는 그런 식으로 돈을 마구 썼다. 하지만 내게 그런 일은 A를 향한 나의 열정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지극히 필요한 정상적인 지출로 생각되었다(23-24p).

 

‘만약 이달 말까지 그 사람이 내게 전화를 해온다면 자선단체에 500프랑을 기부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48p).’

 

만남에 대한 기대감, 그에 대한 자신의 욕망의 값을 이런 식으로 그녀는 지출하면서 연인을 기다린다. 사랑의 방식, 표현하는 방식에도 제약이 많았다.

‘나는 그 사람이 내 집에서 떠날 때 미리 써둔 편지를 직접 그에게 건네주곤 했다. 한번 읽고 나면 조각조각 찢어서 고속도로에 날려버릴 것이 뻔하지만, 그렇다고 편지 쓰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31p)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해주고 싶은데, 그 애정의 증거는 소멸되어야 마땅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너무 지나치다 싶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 지나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던가!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39p)

 

 

 

만남의 제약과 한계는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하기로 한다. 남자는 갑이고, 여자는 을이 되어버렸다.

    

‘그 사람은 6개월 전 프랑스를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온 몸이 아팠다....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고통은 도처에 있었다. 차라리 방에 강도라도 들어와 나를 죽여주었으면 싶었다. 낮 동안에는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노력했다....상태가 심각해지자, 나는 카드점 치는 사람을 찾아가 상담을 받고 싶어졌다...하지만 나는 점쟁이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될까 두려웠다. 나는 ’내가 그에게로 가면 돼‘라고 생각했다. 내가 왜 그에게 가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는지 모르잖아.’(45-46p).’

    

남자를 찾아 외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찾아가지 않는다. 기다린다. 에이즈 검사.... 

섹스를 한 후에 정액을 더 오랫동안 받아두기 위해 샤워도 종종 하지 않았던 그녀, 그녀의 집착, 탐닉!

 

‘여러 가지 제약이 바로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었다.(32p)

‘그 사람은 욕망이라는 값진 선물을 하고 있잖아.’(29p)

사랑에 빠진 여인이 한 사람, (가정이 있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배려한다.

    

 

 

  나를 위한 배려

고통스러운 이별의 현실이 여인을 옥죄어 온다.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다.’(47p)

 

그녀는 무언가 해야했다.

‘현재를, 행복을 향해 열려 있던 과거로 바꾸어 놓고 싶었다.’(49p)

그래서, 그녀는 카드를 내민다. 그것은 글쓰기였다. 배려의 글쓰기였다. 바로 이 작품이다.

남자를 위해? 아니다. 너를 위해? 아니다. 바로 나를 위해 글쓰기가 시작된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전의 기다림이나 전화벨 소리,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52-53p)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내기 위해 20년 전 낙태수술을 받은 곳으로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자아를 위한, 자신을 위한 배려를 하고 싶은 주인공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35P)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59p)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66p).‘

   

작가는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상처받은 영혼의 위로를 위해, 자신을 향한 배려의 몸짓으로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배려는 불편하다?

 

작가는 마지막 대목에서 이런 고백을 마무리한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66-67p)

이 책의 제목은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이다. 열정은 열정인데,‘단순한simple’이라고 했다.

  

주인공은 자녀들에게 불륜의 바람난 관계를 이야기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의 성적인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고 ‘불편’하다.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고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고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22p)

 

 

 

이 소설은 1991년 발표되었을 때, 프랑스 문학계에는 충격이었다. 르노도상을 수상한 유명작가이자 대학교수인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외국인, 그것도 유부남과 불륜을 저질렀다니. 그것을 사실 그대로 고백한 작품이라니.

 

하지만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단순한 열정>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팬이 아니 에르노를 찾아왔다. 그리고서, 그녀의 애인이 된다. 33살 연하의 남친 필립 빌랭이란 청년이다. 그 청년은 에르노와 5년 동안 사랑을 나눈다. 헤어진 후에 그 청년은 두 사람의 5년을 책으로 펴낸다. <포옹>으로 작품이다. 막장드라마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는 마음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인을 위한 배려는 없다!

너를 위한 배려, 나를 위한 배려가 있다,

그 배려가 불편하다? 그 배려가 불편한가?

문학이 불편하다?

 

 

작가 아니 에르노

 

 

 

 

불편한 문학이 주는 위로와 상처    

작품을 읽는 독자 누군가는 아니 에르노를 통해 배려 받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상처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그렇게 자전적으로 작품을 기술한 작가이다.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책 여백에다 적었다!

  -소외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고, 치유될 필요가 있다.

모든 상처는 치유가 필요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했다. 그리고서 자기만의 감옥과 같은 이별의 현실에 앞에서 눈물지우며 지내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소외된 영혼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아니 에르노의 불편한 문학은 배려와 위로를 줄 것이다. 실제로 아니 에르노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의 그런 글을 보냈다고 한다. 불편한 문학이 그들에겐 위로가 되고, 아니 에르노에겐 글쓰기가 구원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격정적인 애정사를 폭로하는 것이 그의 주변인들에게 심각하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너무 불편한 것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아니 에르노에게 있어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투영시킨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전적이기 때문에 더 불편한 것이다. 당시 문단에 파문을 일으킨 것 이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겐 심각했을 것이다. 문득 불편한 문학이 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는 정말 어마 무시한 무기를 들고 있는 존재란 생각. 문학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넬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소설가가 얼마만큼 자전적으로 기록을 할 수 있는지, 물론 아니 에르노는 벌거벗긴 자아를 그대로 폭로하는 스타일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면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자 했던 그 경험을 <부끄러움>이란 작품으로 표현했다. 어릴 적의 그런 상처에서 구원받기 위해 아니 에르노는 글을 썼지만, 그것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물론 아니 에르노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에 대한 작품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작품으로 썼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제대로 말도 못하는, 단말마적인 대화의 스타일을 소설의 스타일로 차용하기도 했다. 

 프랑스가 아닌 한국사회에서 이런 자전적 이야기가 등장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그런 생각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문학은 어떤 이에겐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겐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은영 소설가가 <내게 무해한 사랑>이란 책에서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글로 인해 상처받는 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소설을 누군가에서 선물로 줘버려서 정확한 표현을 옮기지는 못하겠다. 불편한 문학은 누군가에겐 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문학이 무조건적으로 교훈적이어야 하고 계도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이 어떠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문학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 있다. 문학의 효용성, 문학의 기능에 대해서까지 생각해본 아니 에르노의 작품이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 영화화되었구나! (단순한 열정 Simple Passion, Passion simple, 2020),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진솔한 시선을 여성감독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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