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한 사람을 사랑하여>라는 신간시집에서 게재된 '눈사람'이란 시를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이 시는 굉장히 밝게 느껴졌지만, 감상하다가 보면 굉장한 슬픔과 비극이 서려져 있어 깜짝 놀랬기도 했던 시이기도 합니다.
눈사람
밤을 새워 누군가 기다리셨군요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그만
새하얀 사람이 되고 말았군요
안쓰러운 마음으로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었을 때
당신에겐 손도 없고
팔도 없었습니다.
이 시를 읽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밖에서 눈을 맞으면서 기다린 한 사람, 눈이 온 몸에 쌓이고 쌓였다. 기다림이 맺히고 쌓이고 엉키고 또 쌓이고 계속 쌓였다. 결국 눈사람이 되고 말았다.
근데 제목만 눈사람이지, 실제는 사람이 하얗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새하얀 사람! 눈사람이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기다리다가 새하얀 눈사람이 되었다는 건데. 그냥 눈덩이, 눈보라, 눈사래가 기다리는 육신에 계속 쌓이는 영상을 상상하니 뭔가 마음이 찌릿했다. 마치 기다림에 목을 매다 결국은 새하얀 사람, 눈사람이 되어버렸는 것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저리다. 그런데, 여기서 제목이 '눈사람'이라서 의례히 눈사람이란 형태를 생각하고 시를 감상해간다. 그런데, 시 안에는 눈사람이란 말이 없고 새 하얀 사람만 있다. 기다리는 것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은 새하얗기 보다 새까맣다. 너무 오래 기다려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다리다가 결국 새하얀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기다리게 했던 사람은 안쓰러운 마음에 그 사람의 손을 잡으려고 장갑을 벗는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대구한다.
"당신에겐 손도 없고
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시를 생각하면서 너무 제목 <눈사람>을 보고서 눈 사람이니깐 당연히 눈에 내리는 밤에 기다렸겠지 하고 전제premise를 깔고 들어갔다는 생각이 하나의 색안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다. 그냥 눈도, 비도, 바람도, 아무것도 전제된 것은 없다. 그냥 밤을 새워 기다렸다는 것이고 2행의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의 반복은 그만큼 기다림이 길었다는 것이다.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깊어 '새하얀 사람이 되고 말았군요'라고 표현한 시인의 의도에는 제목만 <눈사람>이지, 시의 배경이 눈이 무조건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니깐 너무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치고 힘겨워 새하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데, '새하얀'이 핏기하나 없는 창백한 시신일 수도고, 영안실 위에 놓여진 육체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충격을 받는다. 기다림 때문에 아니 기다리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새하얀 사람이 되었으니 '손도 없고 팔도 없었습니다'로 귀결되는 것이다. 생명의 기운이 떠나니 어떠한 안쓰러운 마음의 온기의 손이 다가가도 반응할 수 없는 그런 형국이다. 처음에 나는 '눈사람'을 생각하면서 눈사람이 원래 팔을 나뭇가지나 꼬챙이로 만들어 꽂아두기 때문에 손도 없고, 팔도 없나 상상했지만, 그건 나의 '눈사람이란 편견'을 가지고 대한 잘못된 접근법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시를 계속 읽다보면, 눈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결론적으로 탄생한 시는 맞지만, 그 내용에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눈snow은 없다. 단지 밤이 있고 기다림이 있고 그 기다림의 끝은 어둠이 아니라 밝음인데, 그 밝음이 '새하얀 사람이 되고 말았군요'라는 말은 너무 충격적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서 보는 영안실 싸늘한 양철침대 위에 누워 있는 더 싸늘한 시신이 생각이 나서 무슨 호러horror시인가 싶기도 하다. 그게 잘못된 해석은 아니겠지만, 시인이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기다림이 얼마나 가혹하고 아프고 힘겨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제목 <눈사람>때문에 모든 고통과 아픔과 상처가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었는데, 알고보니 시 안에는 엄청난 기다림의 무게감과 기다림의 고통이 깊에 배여 있다. 크리스마스 날 별빛이 드문드문 빛나고 눈이 아주 살포시 내리는 날 집안에선 발간 빛에 검은 색의 그림자가 소리를 내면서 정겹게 비추는 정경을 처음에는 생각했던 시이지만, 눈사람이니깐 눈을 맞으면 밤을 새울 수 있겠지 라는 색안경 때문에 시인이 말하는 기다림의 아픔에 결국 새하얀 사람이 되고야 만 비극적인, 더 이상 손도 없고 팔도 없는 지경이 된 기다리는 자의 비극을 말해주는 것이 더 충격적인 시이다. 아마 시인은 기다림의 깊이를 더 강조하기 위해 '눈사람'을 가져온 게 시를 대하는 독자에게 더 큰 묵직함을 선물해 준 것 같다.
"당신에겐 손도 없고
팔도 없었습니다"
이 말은 또 한편으로는 기다림을 상대가 '안쓰러운 마음으로 장갑을 벗고 손을 내민다'는 것으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당신에게 손도 없고 팔도 없는', 눈사람이 뭉개지거나 녹아지면 형체가 사라져버리지 않는가! 이 대목이 굉장히 파격적이다. 시인은 눈사람이란 제목을 끌어와 기다림에 대한 접근을 약한 흐리게 만들더니 마지막엔 손도 없고 팔도 없는 눈사람, 쉽게 흔적도, 형체도 없이 녹아 없어져버리는 눈사람의 이미지를 통해 기다림이 헛헛하고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맹목적인 기다림이 얼마나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솔로몬식의 허무주의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기다림의 강도를, 기다리는 자의 마음을 기다리게 한 사람이 아무리 측정하려고 해도 측정할 수도 없고 계측하려고 해도 계측할 수 없는 리얼리티를 그려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망부석이란 말을 쓰는데, 망부석은 그래도 돌이라도 남아 있지만, 그리움의 눈사람은 형체도, 흔적도 없다는 것에서 더 깊고 깊은 그리움은 시인은 그려내고 있는 듯 하다.
이 시 너무 충격적이다.
기다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호러horror시이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극대값, 깊이를 보여주는, 그만큼 기다림이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격정적인 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기다림이 벌거벗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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