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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밥보다 일기/일기의 세 가지 힘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7. 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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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수는 유쾌하다.

나는 서민교수가 방송에 출연한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전지적 참견시점> 첫 방송이었던 것으로 안다. 나비넥타이를 하고 나오셨던데. 헉! 바로 서민교수님! 그런데 첫 인상은 별로였다. 정신과의사가 한 분 거기 나오지 않는가! 그분을 첫 대면한 자리에서 외모에 대해 딴지를 걸었다. 나는 순간 좀 놀랬다. 그런데, 그 정신과의사 분의 대처가 좋았다.

 

 

 

‘서민 교수님이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면 보통 상대가 얼굴을 붉히게 되는데, 우리의 서민 교수님은

 

 

‘아, 그래서 이 자리에 계시는구나!’(인기가 있을 만한 자격이 있구나! :개인적인 의역임)

 

 

라고 맞받아치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상대방을 까는 대화로 물꼬를 튼다는 것은 굉장히 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낮추는 농담은 상대방의 마음을 언짢게 만든다.

 

 

 

아무튼, 그 대목만 보고 그 뒤는 보지 못했다. 원래 내가 TV랑 친하지 않아서.

책으로만 대하던 서민 교수가 방송에 나오니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목차Index



-밥보다 일기
-첫째, 기록의 힘이다.
-둘째, 사소한 것, 평범의 힘이다.
-셋째, 공유의 힘이다.


 

 

 

 

 

 

 

그런 와중에,

 

 

밥보다 일기

 

 

책이 나왔다. 일기...너무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다. 방송에서 보여준 약간의 편견을 독자 입장인 내게 선사해 준 서민교수가 책을 통해 과연 만회할 수 있을까?

 

 

 

 

 

 

 

 

책은? 일단 재미있다. 쉽고 잘 읽힌다. 우리 초등학교 2학년 딸에게 읽히고 싶을 정도로 쉽다(근데, 우리 딸이 읽으려고 할지는 모르겠다, 아직 안 물어봤다). 잘 읽혔으면 일단 까먹은 점수는 만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몇 자 적어볼까 싶다.

 

 

 

 

 

 

 

첫째, 기록의 힘이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매일 쓴 일기이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일기를 썼다.

아무 일 없는 날은 말 그대로,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 문장의 반복 밖에 없다.

 

 

근데, 그게 역사적인 사료 가치가 된다. 매일 쓰는 일기가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기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친절하게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서민교수의 이야기 중에 ‘인스타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SNS에서 ‘좋아요’를 날리는 이 온라인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지존 지식검색 네이버 박사가 과연 사라질까? 요즘 동영상의 트렌드의 절대지존 유튜브가 사라질까? 절대 그럴 일이 없다.’

 

뭐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일례로,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싸이월드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도토리만 까먹다가 망했다는 이야길 한다. 싸이월드는 패전을 면치 못했고, 오히려 마크 주커버크는 싸이월드를 통해 페이스북 왕국을 세웠다. 하지만, 올해 들어 싸이월드가 일어설려고 노력중이다. 암튼 우리의 추억을 재건중이라니 반가운 소식이다.

 

 

 

아무튼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모든 온라인 공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인터넷 온라인에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기록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끔 한다. 또한, 사진으로 도배하는 현 시대의 트렌드를 지적한다. 그토록 목매던 ‘좋아요’는 공중분해되고 나의 추억의 기록과 과거의 기록은 어디에도 사라져버린 현실을 서민 교수는 이렇게 지어냈다. 진짜 웃긴다.

 

 

 

 

‘젊은 날엔 일기를 안 쓰고 인스타에만 올인했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남는 것은 일기밖에 없구나

인스타가 문을 닫을 때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허세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추억을 남기는 건 소중하구나

언젠가는 우리 후회하리 어디서 뭘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우리 후회하리 남은 추억 하나도 없다고‘ (69p)

 

 

 

 

 

우리는 종종 사진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하고자 한다. 추억보따리는 사진첩이기도 하니. 하지만, 사진첩을 우리는 자주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세밀한 분석과 매의 눈을 가진 서민 교수가 좋다. 여행을 가더라도 꼭 일기를 쓰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사진으로 도배하고 끝내버린다. 그런데, 서민교수의 축적된 독서량에서 튀어나온 책은 바로 『마크 트웨인 여행기』였다. 나는 이걸 보면서, 작가는 여행을 해도 다르구나! 싶다. 요즘 읽고 있는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도 감칠 맛 난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은 역시 거장이다 싶다. 마크 트웨인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관람하면서 적은 글이다.

 

 

 

 

‘식탁 높이의 계단, 매우 많은 층, 우리의 팔을 잡고서 한 계단씩 위로 튀어가 우리를 잡아당기면서 매번 우리의 다리를 가슴 높이까지 빨리 들어 올려서 우리가 거의 기절할 때까지 들고 있으라고 강요하는 아랍인들. 피라미드를 오르는 일이 기분 좋거나 상쾌한 것이 아니라 몸을 찢고 근육을 긴장시키며 뼈를 비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고문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나는 시종들에게 더 이상 내 관절을 조각조각 비틀지 말라고 애원했다. 나는 되풀이해 말하고 반복하고 심지어 꼭대기까지 가는 것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싶지 않다며 그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그들은 팁을 요구하면서 10분 동안 나를 쉬게 하고서는 미친 듯이 피라미드를 오르기를 계속한다. 그들은 다른 일행을 이기고 싶어한다.....그들은 언젠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이런 생각으로 평온해지고 기뻐져서 나는 정상에 절뚝거리며 지친 채 잠잠히 있었지만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했고 평온했다.’(『마크 트웨인 여행기』 상권, 320-322p; 밥보다 일기, 207-208재인용)

 

 

    

 

 

서민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서민교수가 예를 들어주는 책들이 참 좋다. 나는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해주는 저자를 좋아한다. 나처럼 서평 쓸 때 이것 저것 다 이야기하는, 스포 완전대방출하는 사람 말고, 좋은 책인 것만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그런 저자를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정혜윤의 『스페인 야간비행』여행일기를 예를 든 부분도 인상적이다. 굳이 인용하진 않겠다.

 

    

 

 

 

 

 

둘째, 사소한 것, 평범의 힘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개인적은 것은 무시할 수 있고, 배제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고 평범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요즘 겨우 남기는 메모식의 일상,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일기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일기뿐만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한 부분, 한켠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1952년, 맨해튼 이스트 10스트리트에 아파트를 얻어, 201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그 집에서 살았다. 미술 애호가이자 오랜 파트너였던 솜스 밴트리(2002년 사망)도 같은 건물에 살았다. 말년에 레이터는 고양이 레몬과 함께 살았다. 레몬은 레이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함께 사는 사람을 바꾸며 살다가 2016년에 죽었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292p)

 

 

내가 읽은 유일한 '사울 레이터'책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사울 레이터'를 좋아하게 됐다

 

 

 

 

사울 레이터가 말한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90p)

    

 

 

 

 

    

 

 

 

 

한때 보았던 영화중에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다. 터무니없는 소원들도 많이 적어댔다. 그 때 버킷리스트의 초점은 언제나 <장소>였다. ‘지금과는 다른’, ‘현실과는 차이가 있는’ <장소>가 주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anytime, anywhere 정말 중요한 것은 사울 레이터가 말한 ‘자신의 시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가난한 도시라고 볼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동네에 사울 레이터는 60년을 살면서 거기서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의 명성을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시각>,<관점>이었다.

 

 

 

    

영화 '버킷리스트'

 

 

 

 

마찬가지로, 일기에서도 서민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시각’, ‘자신만의 시각’이 서린 기록을 남기자는 데 있다고 본다. 끊임없이 쓴다는 것,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계속 쓴다는 것,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역사가 된다는 말이다.

 

 

 

 

 

 

신학자 로버트 뱅크스는 말했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는 곧 영원으로 통하는 비범한 하루이다.”

 

 

 

평범한 일상이 곧 비범한 일상이다. 자신만의 일기, 자신만의 시각이 담겨진 평범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공유의 힘이다.

 

우리가 남긴 기록은 누군가에게 읽혀질 수도 있고, 읽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기억에는 아버지는 그냥‘무서운 아버지’로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의 일기를 보게 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아버지의 생각을 공유한다. 거기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왜곡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일기를 공유함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긍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서, 이 책은 마무리된다. 마지막이 감동적이다. 책의 순서를 그렇게 편집한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래도 감동적이다.

 

 

 

 

 

난 저자의 벌거벗은 글쓰기가 참 좋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솔직하게 못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이 책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아버지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 보이는 아들, 서민 작가를 볼 수 있었다. 한 인간, 서민을 볼 수 있었다. 서민이란 작가와 대화를 하는 듯 했다.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대화체 형식의 문체도 그렇지만, 저자의 마지막에 보여준 용기는 감동적이다.

 

 

 

 

 

일기쓰기의 기록은 후에 그것을 읽는 누군가와 공유하게 될 때 나타나는 힘이 있다. 서민교수가 아버지의 일기 이야길 하니, 문득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교외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존 치버의 일기』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일기가 문서로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내게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반복적으로 물어왔다.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가 쓰신 글이라면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고, 하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월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내게 공책 한 권을 주셨다. 그리고 읽어줄 수 있는지 물으셨다.......(중략).......

난 글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죽기 전까지는 그 일기들이 출판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난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아버지는 책이 출판되면 나머지 가족들이 힘들어할 것이라 했다. 난 감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일기에 내가 거의 언급되지 않다는 점 역시 나를 놀라게 했다....‘(존 치버의 일기, 10-12p)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든지 간에, 존 치버의 일기는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일종의 ‘공유의 힘’이다. 하지만, 공유의 힘이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음을 존 치버의 아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학 때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중에 주인공이 과거의 일기를 부인이 우연히 읽고 나서 파문이 일어난 스토리였다. 문학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지만, 삶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배타적이기도 하다.

 

 

 

 

 

 

 

*. 난 일기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 이야길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인 모양이다. 나는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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