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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후밀 흐라발/너무 시끄러운 고독Review/한탸의 러브스토리

탐독: 탐서/Book Review

by 카알KaRL21 2021. 7. 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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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Index


- ‘체코소설의 슬픈 왕’
-보후밀 흐라발, 49세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세상에 나오다
-35년 동안 폐지를 처리하는 인부, 한탸
-몸은 비록 비천하나, 그의 정신은 고상한
-한탸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한탸의 러브스토리
-한탸의 해피 엔드
-Epilogue

 

 

 

 

 ‘체코소설의 슬픈 왕’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고 불리는 보후밀 흐라발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그가 쓴 책들 중에 가장 사랑한 책이었다.

 

 

 

 

 

 

보후밀 흐라발, 49세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1960년대 공산주의 체제하의 체코 프라하가 배경이다. 흐라발은 42년 동안(1948-1990) 체코를 지배한 공산주의 체제의 감시 아래 글을 썼던, 매우 파란만장했던 작가였다. 그는 나중에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지만, 한 번도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법조인으로 일한 적이 없다. 오히려 더 나을 바가 없는, 공증인, 서기, 창고업자, 전보배달부, 전신 기사, 장난감가게 점원, 약품상 대리인, 단역 연극배우, 폐지 꾸리는 인부,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작엽부 등으로 살았다. 세상의 모든 직업에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소설은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이후로 금서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흐라발은 끝까지 조국을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글을 썼다. 그와 동시대의 유명한 작가 밀란 쿤데라(1929~ )는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작가이다. 대조적인 행보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퍼도 망명작가에 속하게 되는 셈이다. 보후밀 흐라발은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았던 작가라기보다는 ‘살아 있기에 글을 썼던 작가’이다. 자유국가로 망명하여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에서 그 일을 계속해나갔던 것이다. 물론 작가가 49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고자 했던 결심을 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많은 작가들에게 살아 숨쉬기에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세상에 나오다

1977년(63세) 프라하에서 지하출판으로 유통되었던 책이 1980년에 독일에서, 체코에서는 1989년에서야 공식적으로 출간되었다.

   

 

 

 

 

 

 

35년 동안 폐지를 처리하는 인부, 한탸

35년 동안 폐지를 처리하는 노동자로 지냈던 한탸였다.

 

 

‘35년째 나는 책과 폐지를 꾸려왔고, 십 오대에 걸쳐 사람들이 글을 읽고 써온 나라에서 살고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그보다 더 큰 슬픔이 담긴 생각과 이미지를 머릿속에 차근차근 쌓아가는 습관과 광기가 항시 존재해온 유서 깊은 왕국에 나는 거주한다. 단단히 동여맨 한 보따리의 개념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고 있다(11p).’

 

 

 

 

 

 

 

몸은 비록 비천하나, 그의 정신은 고상한

그는 하루살이 인생같은 모습이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남다르다.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가 반드시 신사이거나 살인자일 필요는 없다는 헤겔의 생각에 나 역시 동의하기 때문이다(12p).’

 

 

비록 비천한 노동자의 신세로 살아가는 그이지만, 그의 생각과 사상은 고급지다. 그는 독서의 쾌락을 그 비루하고 어둡고 더럽고 추한 지하실 공간에서 인류문명의 활자들을 대하면서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35년 동안의 탐닉적 독서(?)를 통해 정신의 누각을 세워온 것이다.

 

 

‘한 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몸에서 맥주와 오물 냄새가 나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16p).’

 

 

 

 

 

 

 

 

한탸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비천한 노동자가 활자에 빠져 거대한 사고의 전환과 변혁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육신의 껍데기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감도 자신을 어찌 할 수 없다. 그의 멘탈과 정신이 그를 오롯이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활자가 담긴 책’이다. 어떻게 노동자가 쓰레기더미 가운데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작가인 보후밀 흐라발이 대학시절 때는 독일군의 침략으로 인해 제지당한 자유와 기회들, 그리고 후에는 공산주의 체제아래서의 깊은 탄식과 절망이 쓰레기더미로 상징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쓰레기더미 가운데서 망명과 같은 탈출을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쓰레기더미 속에서 활자사랑을 실천하며 글쓰기를 감행했던 것이다. 체제와 시스템과 국가와 사회는 ‘너무나 시끄럽지만’ 그가 더럽고 냄새나고 누추하고 생쥐가 우글거리는 그 지하실에서 보내는 ‘깊은 고독’이 있었기에 그는 체코에 남아 작가로서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 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75p).’

 

 

‘작업을 하면서 어쩌다 읽게 된 책들, 그 안에 든 사고의 기름으로 내가 날마다 영원한 야등을 밝히는 책들을 이제 집으로 가져간다(17p).’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19p).’

 

   

 

 

 

 

한탸에게는 폐지 속의 활자는 활자 이상의 인격이었다!

 

 

작가의 저돌적인 자세를 보라! 돈키호테에 비유하고 있다. 35년 동안 폐지더미 속에서 살았던 한탸이지만, 그가 만난 활자는 거대한 영웅이었고, 성인이었고, 철학이었고, 인생이었던 것이다. 렘브란트, 모네, 마네, 클림트, 괴테, 니체, 실러, 헤겔,에라스무스, 예수, 노자, 칸트...

 

 

 

그래서 그는 ‘삼십오 년 째 폐지더미 속에서 하는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이다’(9p)라고 책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못 박는다. 작가들이 보통 첫 문장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백년의 고독>을 23년 동안 구상하고 18개월 동안 집필해서 출판을 했지만, 그 첫 문장을 뽑아내는 데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 마꼰도로부터 시작되는 그 이야기들이 ‘첫 문장’이 터져 나올 때 서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삼십오 년 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해왔다. 내게 선택권이 다시 주어진다 해도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35p).’

    

 

 

 

 

 

 

 

한탸의 러브스토리

내가 주인공 한탸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가 활자를 통해 만난 모든 정신적 지주들은 그냥 활자, 문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폐지더미에서 건진 활자는 활자를 넘어 인격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폐지더미 속에서 하는 그 일을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라고 하지 않는가! 어떻게 폐지더미 속에서 독서하며 정신세계를 업그레이드했다고 해서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으며, 다시 선택하더라도 그 일을 선택하겠다고 할 수 있냔 말이다. 그게 바로 한탸의 러브스토리의 이유인 것이다. 얼마나 사랑했는가! 너무 사랑한 나머지 존재의미까지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그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활자를 통해 인격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그가,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인해 35년간 몸담았던 그가, 너무나 시끄럽지만 고독하게 사랑을 나누었던 활자들과 이별을 하고, 자신은 백지를 만드는 일이나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같은 종이이지만, 활자가 있는 페이지와 활자가 없는 백지는 똑같은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른 종류이다. 한탸는 그 사랑을 도저히 놓아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삼십오 년을 잉크와 얼룩 속에서 일해온 내가,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을 살아온 내가, 이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다니! 이런 통고를 받자 나는 평정심을 잃고 벌렁 나자빠졌다(106p).'

 

 

 

    

‘나는 녹색 버튼의 작동을 중단하고 폐지가 가득한 압축통 속에 나를 위한 작은 은신처를 마련한다....욕조에 들어가는 세네카처럼 나는 한쪽 다리를 압축통에 넣고 잠시 기다린다. 다른 한쪽 다리도 마저 통 안으로 무겁게 떨어져내린다....이제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책을, 책장을, 쥐고 있다....사랑받는 대상은 모두 지상의 천국 한복판에 있다, 라고 쓰여 있다. 멜란트리흐 인쇄소 지하실에서 백지를 꾸리느니 여기 내 지하실에서 종말을 맞기로 했다. 난 세네카요 소크라테스다. 내 승천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압축통 벽에 눌려 내 다리와 턱이 들러붙고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이어진다 해도 결단코 두 손 놓고 천국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무엇도 나를 내 지하실에서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리를 바꾸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의 단면이 내 늑골을 뚫고 들어온다.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온다. 궁극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가혹한 고문을 겪는 것일까? 압축기의 중압에 내 몸이 아이들의 주머니칼처럼 둘로 접힌다....일론카, 그렇다, 이젠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131-132p).’

 

 

 

 

 

 

 

 

한탸의 해피 엔드

그래서, 한탸는 35년 동안 함께한 폐지압축통에 자신을 던져버린다. 자기가 사랑했던 활자들과 함께 유의미하게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활자들이 자신을 접고 누르고 뚫고 압박하지만 행복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소녀의 이름, ‘일론카’를 발견하게 된다.

 

 

 

 

 

Epilogue...

 

보후밀 흐라발이 이 책에서 말해주고자 하는 것을 이것이다, 저것이다 구분지어 정의내리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책을 읽은 후에 느끼는 ‘묵직함의 선물’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 아닐까? 

한탸의 러브스토리는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활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뜻을 어렴풋이 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득 김겨울의 <독서의 기쁨>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종이냄새를 맡아보았다. 책의 냄새, 활자가 쓰여진 종이냄새를 깊게 음미했다. 한탸의 활자사랑은 얼마나 그로테스크했을까?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활자를 활자 너머 인격체로 받아들였던 한탸!

 

 

 

삶은 때로 우리를 속이고 세상은 시끄럽다. 세상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속까지 시끄러울 때가 있다. 그때 우리가 마주친 활자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맛보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돈키호테가 되는 것이다. 한탸의 해피 엔드가 우리의 해피 엔드로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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